Quantcast
Channel: 채널예스 : 작가와의 만남
Viewing all 3283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미미 시스터즈가 말하는 ‘미미라는 장르’

$
0
0

미미 시스터즈 1.jpg

 

미미의 장르는 미미입니다

 

지난 9일, 삼청동에 위치한 ‘삼청로 146’에서는 <미미와 미친 파티>가 열렸다. 미미 시스터즈의 멤버인 큰미미와 작은미미는 역시 트레이드마크인 가발과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있었다. 미미 시스터즈를 비롯한 파티 참가자들은 모두 맥주잔을 들고 있었는데, 미미들이 “미안하지만”을 외치자, 독자들은 제각기 “미친 건 아니에요!”를 외쳤다. 큰미미와 작은미미의 크고 작음의 기준이 가슴 사이즈에 있다던 그들답게 시작이 화끈했다.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의 작가 미미 시스터즈는 최근 세 번째 싱글앨범을 발표했다. 앨범의 제목은 <주름파티>. 에세이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의 주제곡이기도 하다. 3년 만에 낸 앨범인 만큼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리고 그 반응은 복귀를 앞두고 나온 에세이집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제목이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라니. 그동안 달출판사에서 출간했던 기존의 감성적인 글과 상당히 결이 다른 느낌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다른 가수들과는 상당히 다른 행보를 보여 왔던 미미 시스터즈이기에 그 제목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북토크는 토크와 노래 공연이 번갈아 이루어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미미 시스터즈의 2집 앨범 수록곡 「배시시」 공연 후, 미미 시스터즈는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큰미미: 책을 쓰는 데 무려 3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거의 후반부에 일어난 이야기가 책에 많이 담겼거든요. 그래서 되게 뻔뻔하게 출판사에다 잘된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당시 저희 에세이를 담당했던 인턴은 그 사이에 승진해서 정직원이 되셨대요. (웃음)”

 

뒤이어 편집자 인터뷰가 이어졌다. 보통 출간 이벤트에서는 대부분 편집자가 작가에게 질문하는데, <미미의 미친파티>에서는 미미 시스터즈가 편집자를 인터뷰하는 형식이었다.

 

큰미미: 달 출판사가 되게 감성으로 유명한 출판사잖아요.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 님의 『보통의 존재』 아시죠? 굉장히 메이저한 출판사에요.


작은미미: 저희는 처음 제목을 듣고 놀랬거든요. 어떡하다가 저희를 떠올리게 되셨어요?


박선주 편집자: 일단 제가 개인적으로 미미 시스터즈 작가님들의 팬이었기 때문에고요.


작은미미: 과거형이야.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야(웃음)


박선주 편집자: 그리고 달 출판사가 감성적인 것만 주로 내는 출판사여서 고민은 했는데, 그래도 잘 읽어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큰미미: 미미 시스터즈 책이 잘 팔린다면 다음 책을 기획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박선주 편집자: 네, 200퍼센트!

 

현재 인도에 살고 있다는 작은미미는 자신의 근황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들은 저렴한 신비주의를 고집했던 장기하와 얼굴들 시절과는 확연히 달랐다. 말도 없고 웃음도 없던 그때와는 달리 그들은 팬들과 차분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눈 빼고 모든 걸 공개했다는 미미 시스터즈다웠다.


책에 다룬 여러 가지 소재 중, 가장 먼저 시스터즈 언니들 이야기가 나왔다. 미미 시스터즈는 자신들이 시스터즈 정신을 직통으로 받았다고 한 바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시스터즈 언니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겠지만, 50년대의 김시스터즈, 70년대의 펄시스터즈 모두 당대를 풍미했던 걸그룹이었다.

 

큰미미: 김시스터즈를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테니까 잠깐 설명을 드릴게요. 김시스터즈는 1930년대에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를 부르신 이난영 선생님과 「오빠는 풍각쟁이야」를 만드신 김해송 선생님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에요. 저희가 어느 날 그분들의 영상을 접하고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영상을 매일 찾아보고 업적을 뒷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중 한 분에게 손편지를 전해드릴 기회가 생겼어요. 그러다 소문이 나서 김시스터즈의 김숙자 언니와 <가요무대>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고요. 꿈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게 굉장히 신기하죠.

 

작은미미는 책의 내용 중 한 부분을 읽으며, 큰미미의 말을 이어갔다. 그들이 처음 김숙자 선생님과 만났을 때,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숙자언니는 미국으로 떠나는 우리에게 또다시 멋진 유산으로 가방들을 보내주셨다. 언니의 손길, 따뜻한 체온이 그대로 남아 있는 소중한 가방들을, 우리 시스터즈들 모두에게 남겨주셨다. 언니를 만난 후부터, 우리 시스터즈 친구들, 친한 뮤지션 친구들 사이에서는 언니가 남긴 명언 한마디가 유행어가 되었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잖어? 그럴 때는 무대를 생각해. 우리 쇼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열이 펄펄 끓어 아파죽을 것 같다가도 무대 위에서는 어때, 신나게 헐 거 다 허잖어? 허기 싫은 일할 때, 외쳐봐. 지금부터 쇼 타임이다. 쇼 타임!”

 

1960-70년대에 활동했던 이시스터즈는 멤버 세 명이서 임신과 출산을 번갈아 하면서 계속 활동했다. 작은미미는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미미 시스터즈의 이러한 면모는 가히 시스터즈 정신을 직통으로 이어받았다고 할 만하다.


다음 코너는 ‘미미의 미친 퀴즈쇼’였다. 퀴즈를 맞추는 사람에겐 미미 시스터즈 리미티드 에디션을 상품으로 제공했다. 문제는 4지선다형이었는데 ‘미미는 미인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답을 맞히는 식이었다. ‘미미가 장기하와 처음 연습했던 노래는?’, ‘작은미미는 썸남의 옥상에서 부르스타에 뭘 구워 먹었나?’, ‘큰미미의 어릴 적 장래희망은?’, ‘큰미미와 작은미미가 처음 만난 곳은?’ 같은 질문들이 나왔다.

 

미미시스터즈5.jpg

 

미미와 함께한 사람들

 

퀴즈가 끝나자 남동생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남동생이란 미미 시스터즈가 홍대 앞에서 오랫동안 놀다보니 친해지게 된 여러 남자 뮤지션들을 말한다.

 

큰미미: 저희 책에 ‘음악하며 먹고 살기’라는 장이 있거든요. 거기 주인공이 바로 아시안 체어샷이에요. 저와 깊은 인연이 있어요. 그런데 ‘음악하며 먹고 살기’는 사실 이 친구보고 읽으라고 하면 집에 갈 거 같아 가지고(웃음). ‘형이라고 부르지마’라는 장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남동생 뮤지션들이 미미의 노래 「낮술」 피처링이나, 이사를 앞두고 오래된 미미의상을 대거 판매하는 ‘미미시장’ 이벤트 디제이, 이삿짐 나르기와 같은 번거로운 일을 부탁해도 귀찮은 기색 없이 흔쾌히 달려 와주니 그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의 요청에 기꺼이 응해주는 동생들에게는, 얼마나 쓸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미 자유이용권’을 투척한다. 쉽게는 밥이나 술이 고플 때나, 때로 심각한 혹은 사소한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새 음반의 짧은 리뷰를 써줄 사람이 필요할 때, 보도 자료 작성 및 발송법이 궁금할 때, 새 노래의 제목이나 가사가 잘 안 풀린다거나, 재미있는 기획 공연 콘셉트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 혹은 그냥 심심할 때 등등 언제든지 미미를 찾을 수 있다. 친인척의 결혼식, 환갑잔치 축가도 가능하다.   
 
“누나 뭐해요?”로 시작하는 남동생과의 대화가 “엄마 어디야? 뭐 먹어?”와 똑같은 유형이라고 말하는 미미 시스터즈는 이어 남동생과 불렀다는 ‘낮술’이라는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큰미미: 저희 2집 수록곡인데요. 낮술 들을 때는 낮술을 마셔야죠.


작은미미: 술 드신 분들 빨리 잔들 채우시고.


큰미미: 그리고 낮술을 부를 때는 또 남동생이 필요하잖아요. 소개해주세요.


작은미미: 오늘의 남동생, 한 번도 같이 안 한 남동생이에요.


큰미미: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데 제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남사친입니다. 첫 번째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로큰롤라디오의 보컬 김내현 씨입니다. 자 여러분 그럼 가볼까요? 술잔을 채우면서 들으세요!

 

‘오늘은 낮술이지만 술값은 누나가 낼게’라는 <낮술>의 가사 일부는 자연스레 미미 시스터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남동생들에게 미미 자유이용권을 투척하는 쿨하고 유쾌한 누나들의 모습을.

 

큰미미: 다음 게스트를 모셔볼게요. 이번에는 언니의 낭송입니다. 자기 소개해주세요.


모지민: 안녕하세요 저는 이태원에 살고요. 큰언니 이년들의 언니에요. 모지민이고요.


큰미미: 댄서세요. 춤 한번 보여드릴까요 언니? ‘미미 쫀딱 레드’ 라는 꼭지를 읽어주세요.

 

단순히 섹시해 보이기 위해 바르기 시작한 빨간 립스틱. 이 립스틱과 입술을 합체하는 시간은, 어떤 의식과도 같다. 이 세상에 내 입술과 립스틱, 단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상상 이상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내 입술보다 작게 그려서도 안 되고. 너무 욕심을 부려 도톰하게 그리다가는 자칫 <달려라 하니>의 ‘고은애’ 아줌마로 보이기 십상이다. 입술 산이 너무 도톰해지면 곧바로 펭귄이 되어버리고, 조금만 집중하지 못해도 입술은 짝짝이가 되어버린다.

그날의 립스틱 컨디션에 따라 우리의 컨디션도 달라진다. 순간의 실수로 입술 선을 삐죽 탈선해버리는 일이 있었다면, 그날 공연은 어딘가 찜찜하다. 순간의 과욕으로 립스틱을 덕지덕지 발라버렸다면, 그날은 앞니에 붉은 자국이 찍힌 굴욕의 사진이 뜨는 날이다. 모든 것이 적당히 어우러지는 날이면, 어쩐지 그날은 음정도 잘 맞고 흥이 솟아난다.

 

미미 시스터즈가 덕담 한마디를 요청하자, 모지민 씨는 책을 많이 팔아서 삼청동에 집을 사고, 그 집에 자신을 초대해달라는 말로 덕담을 대신했다.


다음으로 영상을 보는 시간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영상은 미미 시스터즈의 비하인드 컷을 모아둔 것이었다. 미미 시스터즈는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에 수록된 정예진 작가의 일러스트와 실제 사진을 비교하며 설명을 곁들였다. 김시스터즈부터 오사카의 소울 여제라는 유카리 언니, 대구보이와 가수 노라조의 사진까지. 미미 시스터즈는 작은미미가 인도에 가 있는 만큼, 다음 앨범으로 노라조의 「카레」를 잇는 나마스떼 미미를 만들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둘이었기에 무섭지 않다

 

큰미미: 또 하나 읽어볼까 하는데요. ‘미미라는 장르’라는 꼭지 교정을 네 번 봤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교정에 추가하겠다고 굳이 이야기를 해가지고 편집자님을 굉장히 괴롭힌 꼭지입니다.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미미의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리의 음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긴 한 걸까. 한줌의 멜로디, 한줌의 가사로 시작한 갓난아이 같던 곡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관객들 앞에서 불린다. 한 사람의 성장 과정과도 흡사한 노래 만들기. 여전히 울퉁불퉁한 사춘기 감정선에 머물러 있는 곡도 있고, 노년의 성숙함처럼 숙성된 곡도 있다. 미미의 음악은 처음부터, 그리고 여전히 들쑥날쑥하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의 음악은 달랐다. 진정한 뮤지션들 앞에서는 어쩐지 쑥스러웠다. 내가 뮤지션 흉내를 내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 격차를 다른 걸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예를 들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일. 그리고 미미만이 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일.

 

미미 시스터즈가 말하기를 뮤지션 흉내를 내고 있다는 자괴감 속에서 자신을 구원한 자는 그들 스스로였고, 둘이었기에 더는 무섭지 않다고 했다.

 

큰미미: 들으셨다시피 저희는 원래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제 데뷔 9년이 됐지만 이제야 앨범 두 개와 싱글 두 개를 냈고, 아직도 노래는 잘 못하고요. 하지만 노래를 하는 게, 가수가 되는 게 꼭 노래를 굉장히 잘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어느 날 들었어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치열하게 활동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렇게 놀듯이 음악을 해도 되는 건가라는 고민도 들어요. 어쨌든 그래도 저희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는 거예요. 계속해서 하는 것. 가늘고 길게 계속해서 하는 것이요.

 

‘미미는 노래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미미 공연은 학예회 같다’는 소리를 들어도, 이제 우리는 예전만큼 기죽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드는 여러분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을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을 찾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미미의 임무가 아닐까 한다.

귀 얇기로 소문난 미미이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안 하는 것보다, 누구보다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리고 우리와 가장 비슷한 사람들이 기쁘게 응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얼마 전에 본 영화 <플로렌스>의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의 부족한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인정하되, 조금 더 당당해지는 미미가 되고 싶다.

“내가 노래를 ‘못’했다고는 할 수 있어도, 누구도 내가 노래를 ‘안’했다고는 말 못할 걸.”

 

낭독 이후, 미미시스터즈는 첫 번째 싱글앨범에 수록된 ‘내 말이 그 말이었잖아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중간에는 “장기하의 양옆에서 두 팔을 흔들던 미미는 두 팔 뻗어 독립했다. 내년이면 10년째 우리는 미친 게 아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절대 미친 게 아니에요.”라는 내레이션이 있었다. 음악한 지 10년이 된 미미 시스터즈는 어느새 중견 가수만큼이나 성숙미를 뽐내고 있었다.


마지막은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의 주제곡, 「주름파티」로 장식했다. ‘주름이 가득한 내 얼굴에 뽀뽀할 수 있겠니’라는 가사에 한 팬이 크게 ‘네!’를 외친다. 팬들과 허심탄회하게 ‘늙어감’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수 미미 시스터즈. 미미라는 장르의 가장 큰 특징은 어쩌면 그들의 솔직함과 인간미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미 시스터즈가 지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호감. ‘오십 년 지나도 지금처럼 밤새 놀 수 있겠니’라는 가사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 미미시스터즈 저 | 달
선글라스와 두터운 메이크업, 앙다문 입술의 정체불명 여성 2인조를 아시는가? 이름하여 미미시스터즈! 그들이 첫 에세이집을 집필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애란, “가족은 처음 만난 타자이자 감정을 연습한 장소”

$
0
0

IMG_0168.jpg

 

지난 7월 11일, 아늑한 분위기의 홍대 레드빅스페이스에서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출간 기념 낭독회가 열렸다. 김애란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는 37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침묵의 미래」를 포함해 총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낭독회 사회를 맡은 이다혜 기자와 특별 게스트인 김연수 작가와 함께한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낭독회는 80여 명의 독자로 가득 찼다. 『비행운』이후 5년 만에 발표한 소설집인 만큼 뜨거운 반응 속에서 낭독회가 시작됐다.

 

책이 나오기까지

 

이다혜 : 책 나오기까지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김애란 : 책 나온 지는 보름 정도 지났는데요. 책 내기 전에는 교정이나 디자인 문제로 편집부랑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나온 후에는 ‘나왔어요’라고 알리는 시간을 가졌어요. 독자분들 반응도 접했는데 특히 기다리셨다는 말씀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어요.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이다혜 : 처음 단편을 읽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질 못했어요. 줄어드는 느낌이기도 했고, 또 방금 읽은 이야기가 마음에 꽉 차 있어서 약간은 여유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인데요. 쓰면서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쓰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텐데, 쓰시면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이야기가 있나요?

 

김애란 : 5년 만의 신작이라고 소개가 됐는데, 2년 동안은 장편을 많이 잡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3년 동안 단편을 꾸린 게 이번 소설들이에요. 두 개를 동시에 쓰거나 병행하시는 작가 분도 있는데 저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하나를 쓸 때 집중하는 편이라 오래 걸렸고, 또 사회적 환경이랑 상관없이 다섯 번째 책이라서 더 어려워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다혜 : 책 제목이 ‘바깥은 여름’이잖아요. 제목은 작가님께서 지으셨나요?

 

김애란 : 네. 제가 원래 홀수로 된 제목을 좋아하는데요. 3, 5, 7, 9 이렇게 떨어지는 걸 좋아해서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두근두근 내 인생』처럼 거의 다 홀수로 지었어요. 입에 붙을 때 리듬이 좋으니까요. (웃음) 좀 순하고 밋밋한 말들로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풍경의 쓸모」라는 단편에서 발췌했어요. 처음에는 『구 바깥은 여름』으로 여쭤봤더니 ‘구’를 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구’를 뺏더니 더 단순해진 대신에, 더 풍부해진 느낌도 들고 여름에 나왔다는 점에서 마음에 듭니다.

 

이다혜 : 책 표지도 제목하고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처음에 김애란 작가님을 모델로 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또 저 여인은 어디를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나가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는데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애란 : 책 디자인을 고를 때 처음에는 창문이었어요. 창문도 좋았는데 그러다 보니 너무 관조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창문 말고 문이면 행동이 들어가고, 또 제가 아직 젊은 작가인데 벌써 관조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문이면 큰 행동은 아니어도 망설임이든, 주저든 담을 수 있을 테니까 “편집자님, 문이면 더 좋겠네요.”라고 해서 나온 디자인이에요. 의견이 분분한 것 같은데 저는 중의적이어서 더 좋아요.

 

첫 번째 낭독, 「건너편」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건너편」, 118쪽)

 

이다혜 : 이 대목을 고르신 이유가 있을까요?

 

김애란 : 제가 데뷔한 지 15년쯤 되었고 『바깥은 여름』은 5번째 책이에요. 데뷔 초에 썼던 단편들을 떠올리면 가끔 그 인물들에 대해 궁금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한 10년 전쯤 썼던 인물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같은 거요.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기시감을 느낀 분들은 두 개의 작품을 떠올릴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모텔 순례기를 다룬 「성탄 특선」과 노량진과 관련된 「자오선을 지나갈 때」요. 두 작품에 나온 친구들이 10년쯤 흘러 지금 어디에 있을까, 를 많이 생각해봤어요. 노량진도 鷺(다리 양), 梁(나루터 진)이니까 ‘모두가 지나가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전에 썼던 단편이 떠올라서 골라봤어요.

 

이다혜 : 단편 제일 마지막 부분을 읽어주셨는데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 읽은 다음에,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있어요. 아마도 그런 게 소설을 포함한 예술작품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큰 영향 중의 하나일 것 같아요. 이 안에 있는 인물 하나하나를 내가 알게 되었다는 감각과 그들에 대해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다는 감각이요. 그래서 궁금한 건, 「건너편」의 이 두 남녀가 또다시 10년쯤 지나면 다른 단편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까요?

 

김애란 : 따로 생각은 안 해봤는데요. 「자오선이 지나갈 때」의 인물이 10년쯤 지나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나왔던 또 다른 단편이 「서른」이에요. 아마 또 안부가 궁금할 것 같긴 해요. 「건너편」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에는 사실 비밀이 하나 있어요. 이 단편에는 다섯 명 정도 이름이 나오는데요. 도화, 이수, 동오, 원덕, 명학. 다 지하철역 이름입니다. (웃음) 특히 한국 이름은 한자로 쓰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숨길 수 있어 좋았어요. 계속 어딘가 돌고, 정처하고, 이동 중인 젊은이들 이름으로 좋겠다 싶어 지하철역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소중한 비밀로 갖고 있으려고 하다가 여러분 얼굴을 뵈니까 말하고 싶어서 말씀을 드렸어요. (웃음) 그러니까 나중에도 이 인물들의 삶을 궁금해할 것 같아요.

 

이다혜 : 혹시 이번 책 쓰시면서 특별하게 어려웠던 부분이 있나요? 이 이야기는 안 풀려서 고생했다거나 이 인물은 특히 생각이 많이 난다거나.

 

김애란 : 단편 하나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이 있잖아요. 그게 늘 예상이 됐었어요. 난 이 정도 걸렸지, 라고 생각해서 썼는데 이 단편들을 묶을 때쯤부터 마감이 많이 늦어졌어요. 제가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서 그럴 수도 있고, 소재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리 고쳐봐도 처음 쓸 때 생긴 리듬이 사라지지 않아서 호로록 읽히지 않고 서걱서걱하는 단편들이 몇 개 있어요. 마지막 단편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그렇고요. 과속방지턱처럼 턱턱 걸려서 제가 읽기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소설가 몸이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아야 하는데 「입동」을 쓸 때 허둥지둥 마감했던 기억도 납니다.

 

두 번째 낭독, 「침묵의 미래」

 

“어느 민족에게 사랑은 접속사, 그 이웃에게는 조사다. 하지만 또다른 부족의 경우 그런 건 본디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라 하여 아무런 명찰도 달아주지 않는다. 어떤 민족에게 ‘보고 싶다’는 한 음절로 족하다. 하지만 다른 부족에게 그 말은 열 문장 이상으로 표현된다. 뿐만 아니다. 어느 추운 지방에서는 몇몇 입김 모양도 단어 노릇을 한다.” (「침묵의 미래」, 139쪽)

 

이다혜 : 이 부분은 어떤 이유로 고르셨나요?

 

김애란 : 이야깃거리가 많다기보다는 입말로 낭독하기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와 봤어요. 또 곧 게스트로 나오시는 김연수 선배님과 작은 추억이 있어서 골라봤어요. 이 단편이 관념적이다 보니 어떻게 꾸려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그때 우연히 문학 행사로 중국에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어요. 김연수 선배랑 소수민족의 삶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을 같이 가서 ‘이 소설을 어떻게 꾸리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저희가 지나가니까 갑자기 소수민족이 나와서 밭을 가는 시늉도 하고 아가씨들이 춤을 추기도 했어요. 거기에 응답하는 것이 예의라 선배님은 맑은 얼굴로 같이 춤도 췄죠. (웃음) 그걸 보고 ‘아, 그럼 이것과 비슷한 테마파크를 상상해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다혜 : 사실 저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소수 민족의 언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는 사람들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잖아요. 가족과 이야기하는 방식과 연인과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그래서 어떤 관계가 끝나면 어떤 방식의 언어 사용도 끝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만나지 않게 된 사람들을 떠올리며 읽었던 단편이에요.

 

세 번째 낭독,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265~266쪽)

 

이다혜 : 울 것 같아서 약간 긴장하면서 읽었는데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 보면 시리하고 대화하는 장면이 몇 개 나오잖아요. 저는 남을 쉽게 믿지 않기 때문에 단편에 실린 모든 대화를 시리와 나누어보았어요. (웃음) 똑같은 대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그새 달라진 것도 있어요.

 

김애란 : 시리와 대화하는 내용 중 제가 지어낸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어요. 모두 시리가 한 이야기인데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다혜 : 이 단편에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 갑자기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그의 안부를 물을 때가 있잖아요. “걔는 잘 지내?” 이런 식으로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면 끝날 이야기인데 갑자기 말이 안 나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그 이후의 상황이 굉장히 어색하게 돌아간다든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생각하게 된다든가 하는 게 너무 슬퍼서 계속 멈칫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IMG_0192.jpg

 

네 번째 낭독, 「풍경의 쓸모」

 

마지막 낭독은 게스트인 김연수 작가의 몫이었다. 『바깥은 여름』에서 가장 해학스럽고 유머러스한 부분을 준비했다는 김연수 작가는 「풍경의 쓸모」 중 일부를 낭독하기 위해 무대 위로 올랐다. 낭독에 앞서 그들은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다혜 : 김연수 작가님은 『바깥은 여름』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김연수 : 앉아서 읽었고요. (웃음) 가끔 누워서도 읽었습니다. 그전에 제가 읽었던 작품들이 있는데요. 항상 계간지에 실린 작품을 먼저 보고 소설집이 나오다 보니 음악처럼 싱글앨범과 정규앨범의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김애란 작가의 5년이 지나왔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다혜 : 몇 년 전에 김연수 작가님이 김애란 작가님의 첫인상에 대해 “기억나는 건 눈동자, 어쩌면 그 시선뿐이었다. 단발머리였는데 그건 마치 작은 집 출입문에 드리운 발과 같았다. 눈동자는 그 발 안쪽에 있었다. 호기심에 가득한 눈동자였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몸은 뒤로 물러서려는데 눈동자만은 앞으로 나오려는 듯한. 이율배반적인 형국이랄까. 두둥”라고 쓰셨어요. 혹시 김애란 작가님도 이 글을 읽으셨나요?

 

김애란 : 네. 『비행운』나왔을 때 『문학과사회』에 써주신 「김애란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산문으로 기억해요. 어릴 때는 분석 당하는 재미가 있어서 호로록 읽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 굉장히 날카로운 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다혜 : 두 분의 첫 만남이 어땠을지 궁금한데, 소설집 나오고 혹은 등단하시고 이런 자리가 있었던 건가요?

 

김연수 : 저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창작과비평』에 김애란 작가님이 소설을 실었고 뒤풀이에서 만났어요. 뒤풀이에 갔더니 웬 대학생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그때 처음 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좀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눈을 계속 움직이는데 좀 비정상적인 거예요. 그래서 이 친구는 눈처럼 감수성이 뛰어나거나 좀 이상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후 노래방에 가서 제가 탬버린을 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걸 기억하고 계셨어요. 책 잡힐 일을 한 거죠. (웃음) 김애란 작가님이 저를 보고 처음에 문인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고 합니다. (웃음)

 

이다혜 : 김연수 작가님은 이번 단편집 중에서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김연수 : 저는 「노찬성과 에반」이 좋아요. 저희 집에서 개를 키우는데 점점 커가면서 병에 걸린 적이 있어요. 수술비가 100만 원이었는데 수술 후에 최근에 또 담석이 생겼어요. 또 수술비가 100만 원이었고 재발할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수술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어요. 물론 수술했죠. 「노찬성과 에반」을 보면서 그런 장면이 깊게 다가와서 슬펐습니다. 에반이 자연치유되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김애란 작가님이 소설을 너무 사실적으로 써서 좀 상처가 되었습니다. (웃음)

 

이다혜 : 저도 개를 키웠는데요. 「노찬성과 에반」에 나오는 것처럼 반려동물과 같이 나이를 먹다 보면 병원 갈 일이 정말 많아요. 의료보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요. 경제적인 부분인 거죠. 그래서 작품 속 찬성이가 어렵게 돈을 모은 뒤에 야금야금 쓰게 만들었을 때 작가님이 잔인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기분이었나요?

 

김애란 : 오늘 제 캐릭터가 이상하게 생기고 잔인한 사람이 되었네요. (웃음) 사실 이 단편을 쓰기 전에 반려동물에 관한 관심이 없었어요. 무관심했다가 어떻게든 정보를 조사해서 썼죠. 그런데 그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잘못 쓰면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 금방 알아차리실 것 같아서 긴장하면서 썼어요. 쓰고 나니까 그다음부터 동물들이 좀 다르게 보였어요. 그리고 이 단편을 마치고 생애 처음으로 흰 머리가 하나 났어요. 에반이 흰 개니까 털 한 가닥 남기고 간 것 같아서 이상하게 기분이 괜히 그랬어요. 워낙 경험이 없어서 부족한 부분이 좀 있을 거예요.

 

“따로 기다리는 전화가 있는 터라 휴대전화 진동이 울릴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랐다. 복잡한 마음에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버스 앞쪽에서 ”정답은 삼계탕“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풍경의 쓸모」, 172쪽)

 

이다혜 : 이 부분은 교수 임용 때문에 핸드폰에 신경이 가 있는데 문자가 오는 건 아버지밖에 없고 관광버스 안에서 다들 흥겹게 퀴즈를 풀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데요. 이 대목을 고르신 이유가 있나요?

 

김연수 : 이런 비슷한 장면이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에 나와요. 이런 식으로 바깥의 대화와 자신의 대화가 섞여서 진행되는 거죠. 김애란 작가의 소설에는 이런 식의, 소설적이라기보다는 영상적인 기법이 많이 나와요. 작가가 개입하지 않고 직접 독자에게 던짐으로써 박진감이 넘치게 그리는. 김애란 작가가 그런 걸 굉장히 잘해요. 독자보고 해석하라고 하는데 그게 어렵지 않고 느낌이 뭔지 전달이 잘되거든요. 김애란 작가는 대화를 워낙 잘 쓰고 여백, 공백도 참 잘 써요. 말을 안 하는 거죠. 말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너무 잘 알 수 있게 만들어요.

 

이다혜 : 『바깥은 여름』에는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죽음의 순간에 직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요. 근래 최근 한국소설에는 죽음이라는 소재가 특별히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나라 전체가 유가족으로 살아가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작가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특히 현재 한국 사회는 누군가가 “무슨 일 있었어? 어떻게 지내?”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작가로서는 그걸 소설로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고민할 것 같아요. 세월호 사건 같은 게 담겨있다는 인상도 받았는데 혹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김애란 : 넓게 이야기하면 죽음이든 상실이든 그 이후든 관련된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 온 주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시골에서 19살 때까지 자라다가 20살에 대학에 왔어요. 그때까지 큰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 사건 없는 세대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서울을 만난 것 자체가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제 피부와 살갗에 닿는 감각을 많이 썼어요. 근데 이제는 감각이 아니라 제 몸으로 이야기가 통과해가는 것 같아요. 초기 단편이 감각에 관한 이야기라면 지금은 이야기가 지나간 자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김연수 :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또래인 부모님들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됐어요. 제 나이가 되면 죽음이 가까워져요. 나이에 상관없이 주변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기죠. 그런데 전부 다, 어떤 사람도 지금 죽을 때가 아니에요. 설령 100살을 살았더라도요. 너무나 억울한 죽음 앞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분노나 죄책감 같은. 그런데 제가 세월호 부모님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에겐 책임감이 있었어요. 저는 예전에 완전한 타자라는 건 없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관계성이 중요하다고 느껴졌어요. 비록 타자일지라도 관계를 맺으면 책임감이 생기는 거죠. 나의 관계 속에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면 분노에 그치지 않게 되는 거예요. 김애란 작가도 이제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데, 그런 시기를 우리가 지금 같이 거쳐 간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다혜 : 김애란 작가님께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김애란 : 가족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타자 혹은 타인이자 감정을 연습해봤던 장소의 이름처럼 느껴져요. 고마움, 연민, 미움, 짜증, 안타까움, 사랑과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연습해본 장소요. 그래서 저는 가족이 다른 타인을 상상할 때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도움 닫기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대 같아요.

 

이다혜 :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해주신다면?

 

김연수 : 김애란 작가와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늙어가게 되어서 기쁩니다. (웃음) 홀수로 제목을 정한다고 하셨는데 반대로 저는 『밤은 노래한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세계의 끝, 여자친구』처럼 짝수로 제목을 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김애란 : 10년 전쯤에 전자책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요. 저는 작가 관점에서 책의 물성에 집중해 어색함, 거부감 위주로 이야기했어요. 그때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으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10년쯤 지나서 몇 번의 이사를 경험하고 시대를 보니까 한국의 대부분이 거주 조건이 불안정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특히 젊은 분들은요. 그래서 누가 내 책을 사준다는 건 사실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불안정한 거주 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간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공간의 일부를 양보해주는 거라는 느낌이 문득 든 거죠. 그래서 종이책을 사주시는 분들께 각별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결론이 그게 아닌데 책 사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같네요. (웃음) 여러분들 직접, 그리고 책으로 만나 뵙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독자들의 질문

 

「입동」이라는 단편을 보면 큰집으로 이사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김애란 작가님에게 큰 집으로 이사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99년도에 처음 상경해서 이제 서울 산 지 15년쯤 되었는데요. 이사는 9번쯤 간 것 같아요. 한국의 평균 계약 기간이 2년이니까 사실 딱 맞아떨어져요. 그래서 제 또래의 이사 이력에 비해서 그렇게 엄살 부릴 만한, 자랑할 만한 횟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정착에 대한 욕구는 있어요. 그래도 저는 지나치게 운이 좋아서 방에서 방으로 옮길 때라도 조금씩 나은 데로 갔어요. 또 방과 사랑에 빠져서 맨날 쓸고 닦고 방을 물고 빨기도 했고요. 결혼하고 나서는 방이 아니라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입동」의 주인공처럼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우리 집을 남의 집 보듯이 구경하는 느낌도 있었어요. 「입동」의 감각과 DIY를 하는 풍경은 제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과 감정에서 뽑아낸 문장들이에요."

 

개인적으로 김애란 작가님의 단편을 읽을 때마다 부끄럽다는 감정이 많이 들었어요. 혹시 소설을 쓰고 나서 부끄럽다거나 내면을 다 보여주는 기분이 들어 거부감이 들지는 않으셨나요?

 

"언제나 소설이라는 핑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지어낸 거예요, 소설이에요, 그냥 인물이에요”라고 그 뒤에 숨을 수 있어서 괜찮아요. (웃음) 숨을 데가 없다는 면에서 산문이 더 어려워요.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건 독자분에게 “너도 이렇지?”라고 비판하고 싶은 솔직함이라기보다는 친해지려는 방법일 때가 많았어요. 저도 검열 많이 하고, 많이 숨기고, 제 이미지 관리도 많이 하고 사포질해서 내놓는 편이에요. (웃음)"

 


 

 

바깥은 여름김애란 저 | 문학동네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김애란의 신작 소설집.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환경, 저출산 문제, 어린이를 최우선에 두면 해결할 수 있다

$
0
0

DSC04091.JPG

 

엄마 정체성을 가지고 쓴 책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의 저자 이소영은 자신의 책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동문학가이자 놀이터디자이너 편해문의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놀이와 놀이터에서 배운다’고 한 말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말이었다. 엄마 정체성을 가진 입장이 본 놀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과연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곳이었을까. 저자는 2016년 여름, 독일의 대표적인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 독일 남서부 스위스 국경에 가까운 도시)로 떠났다. 목적은 놀이터 탐방이었다. 저자를 중심으로 저자의 가족(남편과 딸 두 명), 저자의 어머니, 저자의 동생 가족(동생과 남편, 아들 한 명) 모두 여덟 명의 대인원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과 함께 구글 어스로 프라이부르크를 살펴보았다. 화면을 본 아이들은 외쳤다. “와, 초록색이다!”

 

“프라이부르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아니지만 사실 유럽에서는 꽤 유명한 관광도시예요. 구도심 부분에 중세 시가지가 2km 정도 복원이 되어 있고요. 거기에 있는 대성당에서 소시지빵을 먹는 게 관광객의 주요한 일과입니다.(웃음)”

 

후설(Edmund Husserl),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등의 철학자가 수학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가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진 이 도시는 무엇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생태도시다. 1992년 독일의 환경수도로 선정, 전체 고용인구의 3퍼센트인 1만여 명이 재생에너지, 태양전지 등 환경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도 굉장히 커서 학생 수가 2만여 명 정도가 돼요. 학생과 교직원, 관련 연구기관 종사자와 환경 산업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22만여 명의 인구 중 4만여 명 정도가 굉장히 젊고 진보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시 전체가 아주 개방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요.”

 

DSC04115_1.jpg

 

경계가 없는

 

“도시의 다채로운 표정을 만드는 것이 바닥을 흐르는 수로예요. ‘베힐레’라고 부르는데요. 이 물길을 따라 쭉 걸어갈 수도 있어요. 딱히 지도가 없어도 물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심 산책을 하며 즐길 수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그곳에서 잘 놀았어요. 만약 이 수로가 우리가 아는 어떤 도시, 서울이나 뉴욕, 파리 등의 한복판에 있다고 상상해보시면 어떨까 해요. 언제든지 신발을 벗고 발을 담글 수 있는 차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면 그게 얼마나 마음과 몸에 위안이 될까요.”

 

중세 유럽에는 도시마다 이런 수로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가 진행되며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물길이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프라이부르크는 다른 도시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수로가 있는 구도심 구역 전체를 차량 통행금지 구역으로 정했던 것. 저자는 베힐레를 두고 “영혼을 씻어주는 물길”이라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베힐레의 쓸모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식수 공급과 함께 화재 진압 기능을 가졌다고도 한다. 도심의 먼지를 덜어주고 더위를 식혀주는 기능이라든가 빗물을 모으는 용도 등도 거론된다. 누군가는 이 수로의 가치를 몇 억이라는 돈으로 환산해 설명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은 물길의 가치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물길은 도시의 먼지와 함께 사람들의 경계 짓는 마음을 가져간다. 도시는 자연스레 놀이터가 되고 아이들은 도시의 주인이 된다.(36쪽)

 

흥미로운 것은 어느 곳에도 경계나 구역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였다면 ‘미끄럼 주의’, ‘신을 벗고 들어가시오’라는 경고문이나 테두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저자는 “트램이 다니는 선로가 베힐레 바로 옆에 있어도 아무 경계가 없어요. 선도 하나 그어놓지 않고요. 트램이 경적을 울리면 사람들이 그때 비켜요. 사람이 안 비키면 트램은 계속 기다려요. 선로와 트램과 인도 사이에 어떤 경계도 없는 그런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라고 했다. “금지 표시를 붙이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해석이었다.

 

DSC04084.JPG

 

민낯으로 당당한


‘제파크(Seepark)’ 호수공원은 건설회사가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는 곳이었다가 주차장 부지로 방치되었던 곳을 1986년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공원 중앙에는 인공 호수가 있는데 “수심이 깊은 곳은 25미터”까지 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어디에도 ‘수영 금지’ 표시가 없다는 점이다.

 

“오리한테 먹이 주지 말라는 정도만 있고요. 경고판에도 ‘네 수영 실력을 알지’(웃음) 정도로만 쓰여 있는 거예요. 알아서 하라는 거죠. 당연히 이 호수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주변으로는 둔덕이 있고요. 저는 이 공원이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은 포장을 안 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참 열심히 가꾸잖아요. 차가 다니는 길은 당연히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사람이 다니는 길은 보도블럭으로 포장을 하고요. 놀이터는 우레탄으로, 공원은 나무데크로 전부 포장을 해요. 사람이 공원에서 흙을 밟는 일이 없어요. 산책하는 길은 다 포장이 되어 있으니까요. 넓은 공원을 다 포장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요. 어떻게 보면 독일의 이 공원은 정말 싸게 만든 공원이죠. 포장도 하나도 안 하고요.”

 

저자는 “우리가 흙을 밟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태적인 도시에 살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흙에 대한 거부감, 즉 흙이 불편하다거나 흙이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부터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문덴호프’는 안과 밖이 희미한 동물원이다. 동물원이지만 “동물이 전부 멀리에 있는” 동물원이다. “동물들에게 더 넓고 편안한 집을 주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동물원 안에는 역시 놀이터가 여러 개 있다. 한국의 여느 놀이터와는 색채부터가 다르다. 나무인 채, 콘크리트인 채로 마치 “폐허처럼” 보이는 놀이터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이 놀기 시작하면 장소의 빛깔이 변한다. 저자는 이 놀이터들을 하얀 스케치북 같다고 표현했다.

 

“우리의 놀이터, 어떻게 놀 것인지를 다 정해주고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놀이터가 ‘이렇게 놀아라’라고 하는 것 같죠. 그것이 마치 색칠공부 같다면 독일의 놀이터는 그냥 하얀 스케치북 같았어요. 와서 누구든 원하는 방법으로 색칠하고 그림 그릴 수 있는 곳이요. 꼭 놀이터가 아니더라도 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원하는 방식으로 놀 수 있게 해두기도 하고요. 그런 곳들이 동물원 구석구석에 있어요.”

 

엄마도행복한놀이터_본문4.jpg

 

차가 없다면?


‘세계 제일의 생태계획지구’, 프라이부르크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보방(Vauban)’을 수식하는 말이다. 수식에서 볼 수 있듯 이곳은 모든 주택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패시브 하우스’다. 녹지로 조성한 건물의 옥상이 또한 특징적이기도 하다. 보방에 들어선 저자를 사로잡은 것 역시 “엄청나게 거대한 가로수”였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낯선 조합의 도시였어요. 몇 천 가구가 사는 주거지구인데요. 그런 도시 한복판인데 자연 속 같은 느낌을 동시에 주더라고요. 이런 것이 도시에서 가능하구나, 하는 인상을 주는 도시였어요.”

 

개천에서 수영 하는 개,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맨발의 사람, 보방은 여러 가지 놀라운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 도시에는 차가 없다. 도시를 처음 기획할 때 ‘보방 포럼’이라고 하는 주민단체의 대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을 지을 때 주차장 대신 놀이터를 먼저 만들게 해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가 중심에 있는 도시와 사람이 중심에 있는 도시, 그 안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다니다 보면 놀이도로라고 하는 ‘홈 존’을 자주 만나게 돼요. 차량 제한속도는 시속 7킬로미터예요. 걸어가는 게 더 빠른 도로죠. 사람과 같은 속도로 가든지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라는 이야기인 셈이에요. 도로의 주인이 차가 아니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아이가 놀고 있음’이라는 표시를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마음을 도시가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정말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우리가 저출산이라든지 환경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이랄까 지향 같은 것들은 우리가 어린이들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고 하는 방침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2013년 9월 한 달 동안 수원 행궁동 일원을 차 없는 도시로 만든 행사가 열렸다.(중략) 하지만 축제는 축제일 뿐, 축제가 끝난 뒤 다시 찾은 행궁동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 다시 걸으니 차가 얼마나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거리에 차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도 공간의 가치가 달라진다. 보방의 마법은 차가 없는 거리에서 시작되는 게 분명하다.(228-229쪽)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이소영 저/이유진 사진 | 오마이북
독일 남부 작은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즐긴 아주 특별한 ‘놀이터 여행’. 이 책은 아이가 신나서 뛰놀고, 부모가 마음 편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꿈같은 놀이터 이야기다. 초등학생 융, 유치원생 교, 네 살 꼬시, 칠순의 할머니 도족여사, 그리고 두 가족의 엄마와 아빠들이 이 특별한 놀이터의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강욱 “국민의 관심이 검찰을 바꾼다”

$
0
0

지난 7월 13일, 창비 서교사옥에서 『권력과 검찰』출간기념 저자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저자인 최강욱 변호사는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등의 저서와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법조계를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 왔다. 이번에 출간한 『권력과 검찰』은 그동안 검찰개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어떤 방향의 개혁이 옳은지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최근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은 만큼 많은 사람이 강연회에 참석했다.

 

2.jpg


검찰이라는 이름의 환상

 

최강욱 변호사는 다른 곳에서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많이 해드리려 한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검찰에 대한 자조 섞인 말을 이었다.

 

“국민이 검찰에 관심을 두고 알려 한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잖아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검찰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국민이 없어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검찰이 있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이 생기는데(웃음), 그래도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을 좋은 쪽으로 바꿔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국민이 가진 검찰과 권력에 대한 환상을 지적했다. 그 환상이 『권력과 검찰』을 쓰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큰 물의를 일으킨 검사가 고향에 돌아가면 왜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될까? 그 사람이 지역을 위해 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요? 검찰이 괴물로 진화해오면서 쌓아온 여러 현상, 그리고 검사가 가진 지나치게 막강한 권한에 국민이 현혹되고 마취된 거예요. 사람들이 검사를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법률가나 법조인을 신비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검찰개혁이 선거가 있을 때마다 과제가 되고 화두가 되는데, 동력을 얻지 못하고 계속 좌초돼왔단 말이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끼리끼리 작당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그걸 내버려 둔 우리의 책임도 크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이 책 『권력과 검찰』을 쓰게 된 계기였습니다.”

 

검찰개혁, 검찰 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강욱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이 같은 위치에 있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지리적 근접성이 법원과 검찰의 유착을 부추긴다. “어느 나라에나 검찰과 법원은 같이 있을 것 같죠? 아니에요, 한국만 그래요.”

 

야구 경기를 예로 들었다. “심판과 한 팀은 계속 같은 경기에 배정을 받고 상대 팀만 계속 바뀐다면, 그게 공정한가요?” 판사는 검사와 서로 식사를 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변호사와 밥을 먹는 것은 껄끄럽게 생각한다. 형사 재판에서 검사와 피고인, 변호인은 동등한 대상이어야 하는데 현실을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공정한 결과도 중요하나 공정한 과정 역시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국민도 판, 검사 검, 판사 이렇게 합쳐서 얘기하고 검찰과 법원이 떨어져 있으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둘만 붙어있을 이유가 없죠. 시청, 경찰서, 교도소까지 한 군데 몰아놓으면 얼마나 편해요. 교도소는 검찰이랑 같은 법무부 소속이에요. 그런데 그건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당연해. 서울구치소는 과천에 있고 중앙지검은 서초동에 있는 게 너무 당연해. 그런데 검찰과 법원은 한 군데 있지 않으면 이상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저자는 검찰개혁이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법원과 경찰 역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경찰에 대한 신뢰가 낮은데, 수사권을 경찰에 주면 반발이 없을까요?” 그리고 현재 경찰의 가장 큰 문제는 경찰대 출신이 요직을 독점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경찰대학교가 왜 있어야 하는가 생각해 보셔야 해요. 요즘 경찰대가 인기가 좋아요. 왜 그렇죠? 네, 취직 문제 때문에 그렇잖아요. 그리고 경찰대학을 나오면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고 억울한 일 덜 당할 거라는 기대를 해요, 부모님이. 경찰이 힘이 있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장래가 어느 정도 보장이 된다고 생각을 해. 지금 TK 서울대 법대 출신이 검찰에 많긴 하지만 모든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에요. 많아야 중요한 자리의 반 정도지.”

 

“경찰대는 자기들이 대대손손 장악할 수 있어요. 과거에 철도, 세무대학이 있었고 직렬 별 대학이 다 있었어요. 우리나라 특유의 연고 문화 때문에 전부 없어졌어요. 그런데 경찰대학 없애잔 얘기는 안 나와요. 여러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셨어요? 경찰대학이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 경찰이 수준이 낮아서 인권 침해를 하고 불법적으로 수사하니까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래서 경찰대학을 만든 거거든요. 경찰대가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났는데 경찰 수준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나요?”

 

좋은 의도로 만든 제도가 시대가 변해 나쁜 제도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국가라면, 그런 잘못된 제도를 고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덧붙였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 친일파가 경찰을 장악해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 검찰 제도는 배운 사람 모아다가 힘을 실어주면 경찰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설계한 제도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괴물로 망가져 버렸잖아요.”

 

“대법원장에 권한이 집중된 이유는, 과거에 정권이 마음에 안 드는 판사를 솎아내려 하니까 대법원장이 책임지고 막아라, 그래서 몰아준 거예요. 대법원장이 지키면 막을 수 있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제도가 세상이 바뀌고 한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으니까 이상해지는 거예요. 따라서 앞으로 악용을 못 하게 제도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법개혁의 핵심입니다.”

 

관심이 사회를 바꾼다

 

공직자가 막강한 힘을 가질 때,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기웃거린다. 최강욱 변호사는 검찰뿐 아니라 모든 기관이 부패하는 이유는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한이 없으면 부패할 일이 없어요. 자기 일을 하며 인정받으려고 하죠. 기상청 사람이 어떻게 부패를 저지를 수 있을까요? (웃음) 내일 비 안 오는데 장마 온다고 해? 그런데 세무서 직원은 말단이라도 왜 어디 가서 힘주고 다니느냐, 그 사람들은 말단이라도 권한이 많아서 그런 거예요. 그걸 주권자가 알고 통제를 해야 합니다.”

 

부조리한 시스템은 검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사회 곳곳에 퍼진 소위 적폐를 찾아내기 위해 국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적폐를 없애기 위해서 검찰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사례로 검찰을 얘기하지만 그런 구조는 사회 곳곳에 있다. 그걸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 우선 검찰이 시범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면 다른 영역에도 긍정적 영향이 퍼지지 않겠습니까.”

 

“국민이 부조리를 알고 잘못된 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권자가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바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앞으로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겁니다. 『권력과 검찰』과 같은 책을 기반으로 내 주변에는 이런 일이 없는지 되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강욱 변호사는 주권자의 관심을 환기하며 준비한 말을 마쳤다. 이후 청중의 질문이 이어졌다.

 

111.jpg


국민은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데 검사, 법조계에 계신 분들은 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과거 참여정부 시기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봐도 너무 어이없는 짓을 해서 이제 뭐라 명분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조직적으로 움직여 저항하자’ 이런 분위기는 많이 꺾였어요.”

 

“단지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유지 될 수 있을지, (검찰개혁에 대한) 이 기세가. 내심 기세가 꺾이길 바라고 있겠죠. 그러면서 ‘그래도 경찰보다는 (검찰이) 나을 텐데, 수사권을 경찰에 줘서 무슨 호된 일을 당하려고 그런 얘기를 하십니까.’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흘리고 있어요. 그런데 세계 모든 경찰이 하는 일을 대한민국 경찰만 못한다는 건 좀 그렇잖아요? 그건 앞으로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린 문제고. 지금 봐서는 이 상태로 가면 어느 정도 (개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찰개혁에 가장 중요한 자리인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인사에 학자 출신 비고시 출신 교수님이 오르내리는데 검찰개혁에 긍정적이라 보시는지, 참여정부 시절에 비검찰 출신이 그 자리에 갔기 때문에 개혁에 실패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변호사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때(참여 정부시기)는 개혁 의지가 있었고 의지를 구현하기 위한 인사를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강금실 변호사님은 검찰에 대해서 잘 몰랐죠. 조직을 장악하지도 못했고 조직을 장악할 수 있도록 청와대에서 뒷받침하지도 못했어요.”

 

최강욱 변호사는 검찰개혁 관련 인사에 있어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검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 것, 둘째, 검찰과 연이 없는 사람일 것. 이 조건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인사는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앞으로 법무부가 검찰개혁안을 만들 겁니다. 과거에는 법무부가 개혁을 방해하는 주체였어요. 이번에 법무부 장관에 비검찰, 비고시 출신을 내정한 이유는 (법조계와) 인연에서 벗어난 사람이 정말 올바른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에 대해 성원해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검찰개혁에 있어 반대 세력의 방해가 우려됩니다.

 

“헌법재판소가 언제 그렇게 올바른 결정을 많이 내렸습니까? 그 사람들이 박근혜를 파면시킬 거라고 누가 예상을 했습니까? 그런데 탄핵 결정이 난 이유는, ‘만약 이걸 기각시키면 너는 한국에 살 수 없다’, 주권자가 그걸 보여 준 거예요. 그래서 (국민의) 관심과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권이 그 힘을 바탕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면 권력기관은 장악될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는 창피함은 순간이지만 자리는 영원하다는 생각을 한 공무원이 승승장구했어요. 이제 자리는 순간이지만 창피함은 영원하다는 걸 그들에게 각인시켜줘야 합니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민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박수)”

 

 



 

 

권력과 검찰최강욱 저 | 창비
검찰개혁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고, 어떤 개혁이 올바른 개혁인지 살피기 위해 최강욱 변호사가 오랫동안 검찰과 가까운 곳에서, 혹은 검찰조직 안에서 일해온 전문가들과 만났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민근 “책 읽기란 위대한 스승을 만나 치유를 경험하는 일”

$
0
0

마음의일기1.jpg

 

7월 19일 수요일, 혜화동 로터리 골목길의 아담한 책방 ‘마음책방 서가는’에서 『마음의일기』의 저자 박민근 작가를 초대하여 독서치료 강연을 열었다. 박민근 작가는 최근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52가지 질문과 치유적 글쓰기 방향을 제시한 『마음의일기』를 출간하였다. 박민근 작가는 현재 독서치료연구소를 운영하며 독서치료에 관한 책을 쓰고 독서치료 강연을 진행한다.

 

박민근 작가는 먼저 우울과 불안을 유발하는 감정불능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감정불능의 원인, ‘애착’

 

“생각할 줄 아는 고등동물은 애착 본능이 충족되어야만 감정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통 애착이 영유아 시기에 형성된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애착을 형성하려면 청소년기까지 꾸준하게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박민근 작가는 감정 불능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불안정한 애착을 제시했다. 애착이란 “한 개인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강한 감정적 유대관계”를 말한다. 그 중 특별한 사람에게 느끼는 사랑의 유대인 ‘정서적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 감정 불능 상태가 나타난다. 감정 불능 상태는 우울과 불안 등 부정적 감정을 유발한다.

 

“과거 집단양육의 시기에는 모두가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애착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핵가족이 형성되면서 엄마-아빠-아이의 삼각형으로 가족-양육관계가 축소되었고, 가족 간의 애착 관계가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일차적으로 가족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감정 불능 문제가 가족과의 애착 관계에서 비롯된다. 박민근 작가는 “한국사회는 애착이 잘 형성되지 못하는 곳”이라고 말하며 특히 ‘아빠애착’에 주목한다.

 

“한국사회는 애착이 잘 형성되지 못하는 곳인데, 특히 아빠 애착이 부족합니다. 심리학에서는 대부분 엄마 애착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한편, 아빠 애착은 잘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계를 위한 바깥 생활로 아빠가 부재하여 불안정한 애착이 형성되는 경우가 80%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아빠 애착을 잘 형성한 아이들은 사회성, 학습능력 등의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좋았습니다. 아빠와의 관계는 사회로 나가는 첫 번째 징검다리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와 가정을 돌보는 어머니라는 전형적인 가족 형태에서는 불안정한 아빠 애착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아버지가 매우 엄격한 성격이거나 가정에서 폭력을 가하는 경우 애착이 형성되지 않는다. 상담을 진행하면 많은 내담자가 아버지와의 관계 문제를 호소하고, 아버지와의 불안정한 애착으로 심리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선천적인 성격와 행복공식

 

“성격을 이해하려는 분들께 자주 추천해 드리는 책이 브라이언 리틀의 『성격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빅5성격유형이론을 제시합니다. 이 이론에서는 성격을 신경성, 외향성, 성실성, 체험성, 경험성, 개방성이라는 다섯 가지 척도로 파악합니다. 다섯 가지 요소는 개인의 행복, 건강, 종교, 정체성, 인간관계, 직업, 직업만족도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민근 작가는 『성격의탄생』을 같이 소개하며 “뇌과학적으로 봤을 때 성격의 상당 부분은 유전적”이며, “선천적 기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간단하게 빅5성격유형을 진단검사를 진행하였고, 성격유형 중 외향성과 신경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5가지 요소 중에 행복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외향성과 신경성입니다. 신경성이란 자극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외향성이 낮고 신경성이 높은 사람은 외부자극에 민감하고 안으로 침잠하는 성향을 보여줍니다. 이런 분들이 부정적 감정에 빠져 심리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애착 문제를 보이는 많은 분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와 같은 선천적 성격 문제와 애착 문제에 트라우마적 경험이 겹치게 되면 자기 파괴적인 경향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천적 기질인 성격을 바꾸기란 어렵다. 오히려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들(직업, 취미, 생활방식 등)을 다스려 마음의 안정에 다가가야 한다. 박민근 작가는 두 가지 행복공식을 제시하며 성격유형에 맞는 행복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1.PNG

 

“현대사회는 더 가지려고 애쓰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행복해지려면 가진 것을 더 늘리는 방법이 굉장히 어렵고, 바라는 것을 줄여야 합니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인 지표는 계속 나아지고 있죠. 왜냐하면, 돈을 많이 벌수록 자기 삶의 질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일할수록 돈은 더 벌지만, 삶의 질은 계속해서 낮아집니다.”

 

‘가진 것’을 늘리기 어려운 한국사회에서는 더 가지려고 노력할수록 삶의 질을 포기하게 된다. 박민근 작가는 ‘행복공식 2’을 제시하며 단지 더 많이 얻는 것보다는 일과 삶의 균형, 현실과 욕망의 간격을 줄이는 방향을 고민할 것을 권했다.

 

 

2.PNG


 *S: 유전적 특성, 고정값(선천적)
 *C: 돈, 결혼, 사회생활, 부정적 경험 (후천적)
 *V: 과거에 대한 만족도, 미래에 대한 낙관, 현재의 행복. (스스로 판단하는 요소)


“유전적 특성(S)이라는 행복의 고정값이 있지만 자발적 통제요소(V)를 변화시켜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옥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포로수용소에 갇혀 아내와 주변 사람이 죽는 절망적인 상황을 겪었음에도 결국 삶의 평정심을 얻은 사람입니다. 자발적으로 행복해지려면 주어진 조건과 상황(S, C)을 낙관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행복에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난 삶을 해석하는 관점이 ‘자발적 통제요소’의 핵심이다. 박민근 작가는 이 관점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철학치료와 독서치료를 제시한다.

 

삶의 철학을 만드는 책 읽기의 힘


“현대 사회에서 책을 대하는 자세,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읽으며 편안한 마음을 얻고는 했는데, 이제는 정보나 기술 등의 정보를 얻으려고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진짜 이유는 치유의 효과를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 치유의 효과를 경험하기 책을 읽어야 합니다. 또한, 책 읽기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민감한 부분과 불안한 감정을 책 속의 인물들로부터 깨닫고 보충의 욕구를 얻게 됩니다. 이 보충 또한 책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20세기 동안 심리치료 기술은 정말 많이 발달했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철학의 부재 탓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철학이 형이상학적 영역에 갇혀 죽어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 안에서 삶의 가치나 의미 문제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마음의일기2.jpg

 

우리에게는 치유서와 독서치료가 필요하다


“한국 심리상담이라 하면 밀실에서 상담가와 내담자가 앉아서 이야기를 1시간 나누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형태는 나쁘게 말하면 플라시보 이상 기대하기 쉽지 않은 방법입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한 방식으로 영국에서는 반드시 책을 권합니다. 단지 한 시간 동안 하는 이야기로는 부족하므로 다음 상담까지 읽을 책을 권유합니다. 영국에서는 독서를 치료에 활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정책에서 제시합니다. 상황에 맞는 치유서를 알맞게 권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치유서 분류가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어쩌다가 읽었는데 이 책은 좀 치유가 되는 것 같아, 라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독서치료전문가들이 700권이 넘는 책들을 정리해 놓아서 일반인과 상담자가 치유서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심리치료사나 상담가와 함께 1시간 동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만으로는 치료의 효과가 부족하다. 그래서 박민근 작가는 독서치료 문화와 정책이 발달한 영국의 예시를 들며 심리상담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야 한다고 말하며 ‘자조독서모임’과 ‘글쓰기 요법’을 소개했다.

 

‘자조독서모임’과 ‘글쓰기 요법’


“자조독서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는 영국에서는 많은 도서관에서 쉽게 자조독서모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조독서모임은 뭔가 특별하게 정해진 주제가 없습니다. 각자의 심리문제를 안고 선정된 치유서들을 읽습니다. 같이 독서를 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서치료사가 정기적으로 치유의 방향을 잡아줍니다. 이는 영국에 정착된 자조독서모임의 형태이고, 한국에 필요한 모델입니다.”

 

또한 박민근 작가는 심리문제를 안고 있는 주변인과 검증된 치유서로 독서모임을 가지면 어느 정도 치유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경험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 비합리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신념을 갖게 되면 심리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이 경험으로 얻는 신념을 긍정적으로 논박해야 합니다. 역량 있는 심리상담가, 심리치료사는 환자가 역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수용하도록 논박하는 사람입니다. 안전하고 합당한 논박은 마음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다줍니다.”

 

‘글쓰기 치료’란 자신의 과거 경험을 상담자와 함께 긍정적으로 논박하는 치료방법이다. 먼저 불행한 과거사와 그로 인해 생긴 불합리한 신념, 그리고 결과를 적는다. 이 과정에서 사건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긍정적으로 하면서 이 사건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파악해 사건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아무리 나쁜 일을 겪었다고 해도 긍정적인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스실에서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었더라도, 이 시기를 지나오면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게 되었다는 식의 건강한 과거의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부정적 기억을 떠올리는 반추를 멈춰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카타르시스 요법은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인해 정화이론의 이미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부정적 상황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이를 극복하는 것이 치료의 이미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심리치료 방법은 내담자들을 더 망가뜨리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부정적 기억을 휘저어 상처를 강화하거나 심리문제를 고착화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정적 기억에 몰두하게 만들어 반추를 확대시킬 수 있습니다.”


“반추를 멈춰야 합니다. 반추는 전두엽의 기능을 약화시켜 뇌를 우울증에 걸린 상태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전두엽의 기능을 다시 높이려면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통찰해야 합니다. 반추를 하루에 얼마나 하고 있는지 반추일기를 통해 파악하고 줄여나가거나, 긍정적인 기억을 축복일기, 감사일기에 쓰면 반추를 멈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 시간 이상 반추를 하고 있다면 병적인 상태”라고 말하며 반추일기, 감사일기를 반복하다 보면 하루 반추 시간을 15분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작가 역시 오랜 시간 반추일기를 써오며 현재는 “하루에 10분도 반추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민근 작가가 추천하는 치유서


마지막으로 치유의 효과가 있는 책을 몇 권 소개하였다. 치유서의 분야로 일반 치유서 철학적 치유서, 문학적 치유서, 마음챙김명상 치유서, 그리고 긍정심리치료 치유서를 소개하였다.


일반 치유서란 치유적 기능을 심리치료 서적을 포함한 넓은 분야의 서적을 의미한다. 『아직도 가야할 길』 시리즈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권했다. 철학적 치유서와 문학적 치유서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길러주는 책이다. 철학적 치유서로는 『우울할 땐 니체』, 『비참할 땐 스피노자』를, 문학적 치유서로는 『빨간머리 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예로 들었다.


마음챙김명상 치유서란 불교에서 기원한 명상요법으로 치유 효과를 주는 책으로 『마음챙김명상 멘토링』을, 긍정과 행복의 길을 직접적으로 분석하고 제시하는 긍정심리치료 치유서로는 『행복의가설』을 제시했다.


 

 

마음의 일기박민근 저 | 생각속의집
이 책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속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기책이다. 저자 박민근 문학치료사는 “오랫동안 방치되거나 억제된 감정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속 깊이 쌓여서 더 큰 심리적?신체적 고통을 불러온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 보편적 휴머니티로 그려낸 5.18의 광주

$
0
0

지난 7월 18일, 롯데시네마 합정에서 영화 <택시운전사>스페셜 GV가 열렸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분)이 큰돈을 받기로 하고 독일기자 위르겐 한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데리고 광주로 들어가 5.18 민주화 운동을 목격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가 상영된 후,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진행 아래 황석영 작가와 <택시운전사>의 연출을 맡은 장훈 감독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택시운전사>이야기뿐 아니라 황석영 작가의 개인적 경험, 한국 현대사 전반에 걸친 이야기 역시 오갔다.

 

image1.jpeg

 

황석영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객관적으로 영화를 보지 않을까 했는데, 굉장히 감동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외부자의 시선을 따라 광주를 묘사했기 때문에 크게 감동했다고 밝혔다.

 

“이전에 광주를 다룬 영화들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었는데 이 영화는 국외자의 시선을 통해 보편적 휴머니티 보여줬어요. 그래서 저도 많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훈 감독 역시 외부인의 시선을 중심으로 사건을 묘사한 점이 다른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와 차이라고 밝혔다.

 

황석영 작가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언급하며 광주항쟁이 시대와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이야기는 힌츠페터 기자가 직접 겪은 실화잖아요. 광주에서 보낸 며칠이 그의 평생을 결정했어요. 당시 광주에 있었던 외신기자 중에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이 독일 외신기자의 경우에는 광주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식이 깊었던 모양입니다. 죽을 때 5.18묘지에 묻어달라고 유언했을 정도니까요. 따라서 광주항쟁은 지역과 시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휴머니티와 관련된 중대한 문제이면서 소중히 간직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어느 한 시점에만 있었던 불빛이 아니라요.”

 

image2.jpeg

 

장훈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츠페터 기자를 만난 뒷이야기를 전했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2015년 겨울에 힌츠페터 씨를 만나 뵈었습니다. 구체적인 줄거리를 말씀드리니 아주 좋아하시고 응원해주셨어요. 실제와 달리 극적으로 구성된 부분에 대해서도 이해해주시기도 했고요.”

 

힌츠페터 기자에게 주인공 만섭의 실제 모델인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에 대해서도 물어봤지만 정보를 많이 얻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힌츠페터 씨와 김사복 씨가 1박 2일간 같이 다녔는데 그분이 기억하시는 건 제한적인 정보뿐이었어요.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느낌이었고, 군인이 광주 접근을 통제하는데 샛길을 잘 찾아서 가는 점으로 보아 기지가 있으셨던 분이었던 것 같다.’ 힌츠페터 씨가 기억하는 건 그 정도였어요. 두 분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으셨다고 합니다. 사담을 나눌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주인공 만섭의 심리 변화가 아주 근사하게 그려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광주항쟁의 역사적 사실을 적절하게 묘사하면서 주안점은 택시운전사 만섭, 그리고 그의 심리 반전에 두었어요. 영화 초반에 주인공은 시사 상식, 정치의식이 없는 소시민이었거든요. 그런 인물이 인간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아주 근사하게 그렸습니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송강호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마치 현실에서 튀어나온 인물 같았어요. 송강호 씨가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잘 연기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로 비유하자면, 그리움을 묘사할 때 작가가 직접 나와서 ‘아! 그립다.’라고 아우성치는 게 아니라 그리운 상황을 잔잔하게 묘사한 느낌의 연기였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영화 후반부의 자동차 추격 장면이 약간 쑥스러웠다고 말하며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 장면 역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에 총성이 울리기 시작할 때, 광주의 운수 노동자가 무등 경기장에 집결했어요. 수백 대의 버스와 택시가 광주 금남로로 몰려들어 죽고 체포되면서 계엄군을 밀어붙였죠. 그로 인해 군대는 도청에서 철수하게 됐어요. 그런 면에서 충분히 타당성 있는 장면이고, 광주 택시운전사의 서울 택시운전사에 대한 인정,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한 장면이었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최초의 종합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준비하며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광주에서 서울에 올라갔을 때 문인들이 광주항쟁에 대해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고 내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래서 광주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1984년 9월에 『장길산』을 완성하고 본격적으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광주항쟁 직후부터 팀을 짜서 어느 정도 준비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85년 5월 18일까지 이 작업을 마쳐야 한다’라고 해서 『장길산』 마케팅도 내버려 두고 이 작업을 했죠.”

 

최근 자전 『수인』을 펴내 광주에서 출간기념회를 가진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작업이 끝나 85년 3월에 원고 뭉치를 가지고 서울로 떠났어요. 그 후 여러 일을 겪으면서 30여 년간 공식적으로 광주를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7월 7일인가요? 광주에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전면증보판과 『수인』출판기념회를 해 방문을 했습니다. 감개가 무량하더라고요. ‘작가로서 중요한 시기를 여기에 바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mage3.jpeg

 

이다혜 기자는 <택시운전사>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아주 멋지게 그려냈다는 말과 함께 행사를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장훈 감독과 황석영 작가에게 끝인사를 부탁했다.

 

장훈 : 영화를 준비하며 직접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많은 간접적인 자료를 찾아봤는데요. 오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대표 저자이신 황석영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뜻깊고 좋았습니다.

 

황석영 : 다시 영화에 대해 칭찬을 하고 싶어요.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정치적 신념이 있거나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단지 함께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소시민 내지는 서민이었죠. 그래서 <택시운전사>가 더 큰 힘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정치세력이나 특정 일파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영화여서 아주 좋았어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이재의, 전용호 공저 /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편 | 창비
5?18의 진실에 목말라하던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며 ‘지하 베스트셀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여 읽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32년 만에 전면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동진 “책을 숭배하지 말아요”

$
0
0

전체-3.jpg

 

평론가 이동진의 ‘명예의 전당’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새로운 책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이하 『닥끌오재』)을 출간했다. 소문난 애서가이자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진행하며 독서의 기쁨을 전파하고 있는 그는 이번 책을 통해 책을 읽고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공개했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 가장 좋아하는 독서 장소,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 책 읽기의 비법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직접 읽은 책 가운데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500권의 추천서 목록도 실려 있다.

 

이 책에서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책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로 바꾸어서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전하려고 합니다. 결국 저의 독서의 역사는 바로 그렇게 책을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즐기면서 사랑하게 된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6쪽)

 

지난 12일 저녁, 한남동에 위치한 블루스퀘어에서 『닥끌오재』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개그우먼 박지선과 함께한 이 날의 행사는 책에 관한 유쾌한 수다로 채워졌다.

 

박지선 : 1만 7천 권의 책을 갖고 계시잖아요. 책을 일일이 세어보신 거예요?


이동진 : 읽었거나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해도 다 기억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래서 엑셀 파일로 책 목록을 만들어놨어요. 책뿐만 아니라 DVD, 블루레이, 비디오, 음반 등도 리스트에 적어놔요.

 

박지선 :책이 워낙 많아서 다 보관하시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동진 :친척집에 보관하고 있는 책들도 있고요. 집에는 이중으로 책장을 짜서 넣어놨어요. 책마다 사이즈가 다르니까 단의 높이를 달리해서, 천장까지 높이를 맞춰서 만들었어요.

 

박지선 :지금은 책을 어떻게 배열해 놓으셨어요?


이동진 :예전에 학교 다닐 때는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 분류체계를 외울 정도였어요. 그런데 제 분류 방식과는 맞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세운 기준에 따라서 책장을 나눠놨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15명 작가의 책은 따로 ‘명예의 전당’ 같은 걸 만들어서 꽂아놨어요. 눈높이에 맞춰서,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자리에 모아놓은 거죠. 그곳에 있는 책들은 가끔씩 바꾸기도 해요.

 

박지선 :‘명예의 전당’에 김중혁 작가님 책도 있나요(웃음)?


이동진 :이런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 꽂아놨어요(웃음).

 

박지선 :이번 책에서 스스로를 “실패한 독서가”라고 하셨어요.


이동진 :책을 많이 사고 읽은 많은 독서 실패도 많이 했죠. 기본적으로 저는 독서에 성공이나 실패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대부분 책을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실패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책을 50쪽만 읽었다고 해서 독서에 실패한 건 아닌 것 같아요. 50쪽만큼 성공한 거죠.

 

박지선 :저는 책을 읽을 때 메모를 하거나 책장을 접지 않거든요. 오늘 가져온 책(『닥끌오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덱스로 표시만 해놔요. 그런데 평론가님께서는 책을 함부로 대하라고 하셨더라고요.


이동진 :책을 읽다가 메모를 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페이지를 찢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읽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연애도 그렇잖아요. 상대를 너무 이상화하면 결말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면 기억에 더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사고가 확장되기도 하죠.

 

박지선 :지금까지 쓰신 책 중에서 ‘이건 제일 잘 썼다’고 생각하시는 책은 무엇인가요?


이동진 :조금 다른 의미에서 잘 썼다고 할 수 있는 책이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인 것 같아요. 그 책은 판매량이 저조했기 때문에 아픈 손가락이기도 한데요(웃음). 그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국 영화사에 미미한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 책을 쓰면서 한 명의 감독을 열 시간, 서른 시간씩 인터뷰한 적도 있거든요. 박찬욱 감독의 경우에는 서른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각 작품 별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나중에 누군가 영화사를 연구할 때 사료로써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동진-4.jpg


책과 영화, 반복해서 보는 일은 거의 없어요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던 두 사람의 ‘책 수다’는 독자들의 참여로 더 풍성해졌다. 즉석에서 묻고 답하는 책 이야기가 펼쳐진 것이다.

 

Q.『닥끌오재』에서 500권의 책을 추천해주신 부분이 좋았습니다. 분류 방법이 탁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노하우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분류의 대원칙이 있다면 소설과 비소설을 나눈 거예요. 외국 소설과 한국 소설을 나누고, 마찬가지로 외국 시와 한국 시도 나눴어요. 어떻게 보면 저희 집 서가의 분류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저희 집 책장은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코너를 만들어 놨어요. 시간에 관한 주제, 고통에 관한 주제를 다룬 책들을 한 데 모아둔 거죠.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서로 다른 학문분야라고 해도요. 책에 실린 목록의 분류 기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통적인 책의 분류 방식과 실제 읽었을 때의 느낌은 다를 수 있잖아요.

 

거실 이외의 공간에도 작은 서가들을 만들어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A. 모든 책을 완벽하게 분류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고요. 분류하려는 노력은 하죠. 책을 분류하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 아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저는 병렬 독서법으로 책을 읽다 보니까 여기저기에 책이 있어요. 작은 공간 박스 가은 걸 활용해서 꽂아두고요. 기본적으로 공간이 협소해서 책장을 이중으로 직접 짰어요.

 

Q. 애정하시는 서점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A. 서점을 일부러 다양하게 이용해요. 인터넷 서점도 이용하지만, 십여 년 전부터 다니던 헌책방도 이용하고요. 오프라인 서점도 찾아가요.

 

Q. 『무진기행』을 필사하셨다고요. 영화의 경우에도 여러 번 보신 작품이 있나요?


A. 책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도 반복해서 보는 일은 거의 없어요. 특히 개봉작은 한 번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특정 영화를 좋아해서 반복적으로 보는 일은 없고요. 제일 많이 본 영화는 5번쯤 본 것 같아요. <원더풀 라이프> 같은 경우가 그랬는데, 그것도 너무 좋아해서 본 게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반복해서 봤던 거예요.

 

Q. 한 권의 책을 오랫동안 읽으면 흐름이 끊길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A. 상대적으로 책 읽는 기간이 긴 건 비소설이에요. 『닥끌오재』에서도 순서대로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요. 소설과 비소설의 경우는 다른 것 같아요. 비소설은 몇 년에 걸쳐서 읽어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생활의 역사』 같은 경우는 거의 7년째 읽고 있는데, 읽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앞 내용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상관없고요. 그리고 저는 기억날 건 기억난다는 주의이기도 해요.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저 | 예담
1만 7천 권의 책을 갖고 있는 장서가이자 책 읽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설파하는 못 말리는 애서가 이동진의 독서법을 담은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진영, 최영건 “사랑을 믿고 싶어요”

$
0
0

출판사제공2.jpg

왼쪽 최영건, 오른쪽 최진영

 

지난 7월 25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최진영x최영건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최영건 작가는 지난 4월 첫 장편 소설인 『공기 도미노』를, 최진영 작가는 지난 6월에 2년 만에 장편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를 펴냈다. 이날 강연은 ‘우리가 믿는 감정들’이란 주제로 허희 평론가가 사회를 맡아 진행하였다. 허희 평론가는 두 작가의 근황을 물으며 시작했다.

 

허희:두 분께서 올해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최영건 작가님은 동인문학상 후보에도 오르셔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후보에 오르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최영건:그럴 리는 없고요. 이 질문도 뭐라고 답하든 다 예상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좋습니다. 굉장히 좋고요. (웃음) 굉장히 좋고 기쁘고 감사하고 불안하고, 불안은 언제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 때문에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희:최진영 작가님은 최영건 작가님에 비하면 책을 많이 내셨잖아요. 책을 내고 어떻게 지내셨나요?


최진영:이 책의 실질적인 마감이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이었어요. 그때 저는 얘랑 처음으로 한 번 헤어졌어요. 그런데 작품 선공개가 있어서 3월과 5월에 마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못 헤어지고 6개월 동안 만나고 있어요. 책이 나왔으니 이런 행사들이 끝나면 정말 헤어지겠지요.


허희: 단독 북토크는 아니고 함께하는 북토크입니다. 이 제안을 들으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최영건: 솔직히 말해서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비교당할 것 같고, 앉아계신 모든 분이 최진영 선생님 팬일 것 같고…… 하지만 제가 또 그걸 거부할 배짱은 없어서, 얌전히 순종했습니다.


최진영: 제가 평소에 생각이란 걸 안 해요. 그냥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게 99%거든요. 이런 북토크를 할 거라고 해서 ‘네, 그런가요’하고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는 심지어 책이 나왔다고 할 때다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때가 많아서요.

 

부탁과 명령 사이, 복자와 연주

 

허희:먼저 『공기 도미노』인물들에 대해 여쭤보려고 해요. 많은 분이 지적하고 있지만, 인물들이 다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연결되어 있죠. 그런 부분이 『공기 도미노』라는 표제로 함축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최영건:원래 좀 인물이 많이 나오는 걸 좋아하는 편인 거 같아요. 이런 취향이 생긴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저는 인물보다는 인물이 아닌 흐름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흐름을 그리는데 필요했던 게 인물이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인물을 가볍게 여기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인물 하나하나를 생동감 있게 그리겠다는 욕망과 동시에 흐름을 그리겠다는 욕망에서 인물들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최진영:저 질문해도 되나요? 그러면 가장 먼저 만들어낸 인물이 누구인가요?


최영건: 그게 제가 방금 드린 답변이랑 관련이 될 것 같은데, 어떤 인물 하나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여러 인물들이 동시에 만들어내는 흐름에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흐름이지, 개인은 아니었습니다.


허희: 30대의 연주라는 인물, 그녀의 할머니인 복자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겠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가 1장의 연주가 할머니의 명령으로 현석이라는 인물의 집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가족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연주는 안절부절못하면서 그곳에서 앉아 있고, 그런 불안한 상황이 1장에서 그려집니다.


연주라는 인물이 좀 더 적극적인 인물이었다면 그 불편한 장소에서 나올 수 있었는데 그걸 묵묵히 참아냅니다. 연주라는 캐릭터가 조금 답답했고, ‘어째서 할머니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왜 마치 할머니라는 절대적인 인물에 의해 규정되는 인물처럼 그려지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영건: 할머니의 명령이란 단어가 쓰셨는데, 사실은 그건 부탁이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부탁과 명령이 서로 비슷해지기 너무 쉬운 것 같아요. 부탁이 명령처럼 다가오거나 부탁의 방식이 명령이 되기도 너무 쉽죠. 연주는 누군가에게 명령이라는 느낌을 줄 만큼 강하게 자기 의사를 관철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 인물이에요. 연주와 다르게 자기 의사를 관철하는 할머니와 살고 있어서, 혹은 연주가 원래 그런 인물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죠. 연주의 성격에 대해 인과관계를 뚜렷하게 설명하는 것은 제가 이 소설을 쓴 방식과 위배되는 것 같아요.


연주가 답답한 사람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복자 이상으로 굉장히 완고하고 자기 생각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자기 것을 훼손당하지 않으려고 해요. 연주는 어떤 상황 속에서 작은 침해들을 받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기 태도를 크게 바꾼 적이 없죠. 자기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변형된다는 것이고 그거야말로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종류의 훼손이라고 생각 해요. 연주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끝까지 완고하게 그걸 지키다가 자기 것을 바꿔야 하는 최후의 순간, 불안,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때야 바뀌거나 끝장이 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런 인물 같아요. 근데 거기서 끝장이 나버리는 거죠.


허희:피상적으로는 연주가 가장 많이 희생하다가 안타깝게 세상과 절연한 인물로 보이기도 하는데, ‘연주가 가장 완고한 인물이다’는 작가님의 의견을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는 작가님이 말씀한 ‘흐름’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도미노는 한 번 앞에서 힘을 가하면 다채로운 무늬를 형성하잖아요. 게다가 마지막에는 멀리서 보았을 때 새로운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어냅니다. 『공기 도미노』라는 작품 역시 아주 작은 힘에 일어난 파장 때문에 여러 변형이 생기고 계속 변해가는 과정이 일어나요. 이 과정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등장인물의 행동들이 빚어내는 모습을 보며 『공기 도미노』라는 제목이 절묘하다고 생각했어요.

 

북토크.JPG

 

극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사랑, 도리와 지나

 

허희:『해가 지는 곳으로』의 두 인물, 도리와 지나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도리는 자기 동생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인물이죠. 작은 주머니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면 맹렬한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외롭게 지내는 이 소녀가 지나에게는 따뜻하게 마음을 열어요. 저는 그게 지나라는 인물이 가진 특이한 매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건지라는 외톨이 소년도 지나에 의해서 같이 탑차를 타고 러시아로 오게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지나의 매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리와 지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최진영: 쓸 때는 잘 몰라요. 쓸 때는 쓰고 싶은 대로 쓰는데 이렇게 해석을 해주시면 아 맞네, 하기도 해요. (웃음) 지나는 그런 매력이 있네, 하고. 일단 쓸 때는 도리와 지나의 관계를 그렇게 정하고 시작을 했어요.


우리가 살다 보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잖아요. 쓰다 보니 지나가 그렇게 그려진 것 같아요. 모든 사람에게 내 마음을 오픈하지 않지만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도 되겠다 싶은 사람은 있잖아요. 그런 극한 상황에서 지나가 그런 인물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일단 두 사람(지나와 도리)이 사랑을 해야 또 이야기가 진행이 되니까. (웃음)


허희: 두 사람이 사랑을 해야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런 면에서 건지가 안타깝기도 해요. 이 소년이 좀 극성맞은 캐릭터면 약간 좀 나쁘게 변할 수도 있는데, 지나와 도리와의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이거든요. 건지를 보면 이 소설에서 나쁜 캐릭터, 악인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나오긴 하지만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선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여요.


최진영: 작정하고 그렇게 썼어요.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에도 독한 인물은 있었지만 마음이 악한 인물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현실의 사랑에는 많은 부분이 있고, 어떤 사랑은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하기도 하고 나쁜 점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주요 인물들의 사랑을 통해 좋은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허희: 작가님은 독한 캐릭터를 말씀하셨는데, 작가님이 오히려 독한 마음으로 캐릭터를 극한 상황에 몰아넣어 좋은 이야기를 쓰신 것 같습니다. (웃음) 그래서 그곳에서 피어난 사랑이 더 극적으로 보입니다.

 

재난보다 더 재난 같은 일상


허희: 이 작품에서는 ‘재난 이전의 상황이 더 재난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던 류와 단, 그리고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건지의 삶을 보면 오히려 재난 이전 상황이 더 끔찍하기도 합니다. 작가님도 일부러 이 점을 강조하신 건가요?


최진영:처음에 소설을 구상할 때는 단순하게 두 젊은 여자가 끊임없이 달려나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러시아가 들어왔고, 여기에 재난이 더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지금의 설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난 상황에 대한 묘사는 최대한 배제하고 원래 말하려던 ‘사랑’에 집중하여 하고 싶은 말을 주로 썼어요. 그래도 소설에 비추어 현재의 우리 삶은 어떤가 고민해주시고 주목해주셔서 감사해요. (웃음)


허희:이 소설을 보면 재난이 일어나서 행복한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지라는 인물이 학교에 안 가도 되고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불행하다는 말을 했을 때 무릎을 탁 쳤거든요.


최진영: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아무렇지 않게 ‘전쟁이라도 나면 좋겠다’ 라고 해맑게 이야기해요. 그게 농담처럼 안 들렸어요. 심지어 대학생 때도 전쟁이라도 나면 좋겠다, 세상 망하면 좋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런 걸 보면서 많은 걸 느껴서 이런 글이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자유라는 착각에 빠지다, 문과 성준


허희: 『공기 도미노』에 나오는 인물들은 도미노가 넘어가듯 연쇄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가는데요. 이 연쇄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가 바로 2장에 나오는 문과 성준입니다. 『공기 도미노』의 인물들이 상황 탓이든 성격 탓이든 자기 내부에 갇혀 있는 느낌을 준다면, 이 둘은 그렇지 않습니다. 카페에서 창문을 넘어 탈출하는 장면에서 이 둘이 유일하게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는 인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작가님께서는 이를 완전한 탈출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이라 서술하시는데요.


오늘 그는 연주 혹은 다른 누군가를 좀 더 불행하게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한편으로 그건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달아났고 자유롭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공기 도미노』, 74쪽


이렇게 착각이라는 말을 넣어 완벽한 탈출이 아님을 꼬집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캐릭터들이 『공기 도미노』에서 중요한 인물로 보입니다.


최영건: 가장 자유로운 순간에도 전혀 자유롭지 않은 감정이나 상태, 즉 부자유가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물을 마시면서 갈증이 해소된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물잔을 던져 깨버리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욕망이 조금은, 조금은 공존한다고 항상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자유롭다는 착각’이라 쓴 건 어떤 상태가 자유라는 규정이 착각이라는 말로 표현 될 만한, 아주 옳지는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유롭다는 착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많은 분이 도미노가 넘어가듯 흐름이 연결되는 소설이라고 읽어주셨는데요. 사실 제 의도는 과연 어떤 인과나 흐름 자체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었어요. 이 의문을 담기 위해 작위적이거나 인과가 허술해 보이는 부분도 있어요. 문과 성준이 갑자기 등장하여 홀연히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특별해 보일 수도 있는데요. 이는 『공기 도미노』가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 같은 흐름으로 연결되는가?’라는 의문 자체를 표현하고 있고, 문과 성준이 이를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부분 인물이 자신에게 닥쳐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들을 반복하고, 그 선택들이 조금씩 어긋나 비극적인 결말을 불러오기도 해요. 그러나 문과 성준은 사실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자기에게 주어진 것 이상을 침범하는 행위에서 출발한 인물이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른 인물과 다르게 (인과에서) 발을 빼고 도망가는 모습으로 비친 것 같아요.


우리도 타인에게 손을 내밀거나 나쁜 짓을 하면서 자기 자리를 이탈하는 행동을 해요. 사실 거기서 빠져나오는 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쉽다고 생각해요. 원래 자기 자리도 아니었고. 그래서 문과 성준이 더 빠져나오기 쉬웠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저에게 중요해요


나는 서두르는 쪽이었다. 먹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구석에 숨었다. 데울 수 없으면 그냥 먹었다. 최대한 빨리 먹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허기를 잠시라도 지워 버리는 것. 내가 먹는 이유는 그뿐이었다. 지나는 다른 이유를 생각했다.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이번이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르잖아. 그럼 감자 한 알을 먹더라도 제대로 먹고 싶어지니까.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다면,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중략)


지나를 닮고 싶었다.
지나처럼 먹고 마시고 걸으려고 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눈앞의 것을 최대한 보고 느끼고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지나가 아니고, 지나는 고유하고, 우리는 달랐다.
『해가 지는 곳으로』, 54-55쪽

 

허희: “나는 지나가 아니고, 지나는 고유하고, 우리는 달랐다”라는 부분을 ‘그렇기 때문에 지나를 사랑할 수박에 없었다’고 읽었어요. 작가님은 『구의 증명』에서도 그러셨듯이, 『해가 지는 곳으로』에서 사랑에 대해 많이 강조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진영:사랑이 저에게 중요해요. 어느 순간부터 이제 쓰고 싶은 걸 쓰자는 생각을 했어요. 이전에 쓰기 싫은 내용을 억지로 쓴 적은 없지만, 사랑이야기가 워낙 흔한 소재라서 오히려 꺼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꺼리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 흔하고, 촌스럽고, 가볍다는 편견에 휘둘릴 필요가 있을까? 나에게 이건 정말 중요한 가치이고 이걸 쓰면 진심으로 만족해하며 쓸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해서 『해가 지는 곳으로』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요.


허희:작가님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범주가 굉장히 넓어 보여요. 단순히 타인에 대한 애정이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다채로운 감정이 보이는데요. 류와 단이라는 인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얘기하는데 작가님은 어떤 인터뷰에서 그것마저도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의 관계가 사랑이 되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최진영: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친구들의 힘든 얘기를 듣다 보면 ‘그렇지만 사랑하잖아’라는 생각을 해요. 생활적인 필요와 바쁨 속에서 지내며 서로에게 무심해진다고 해서, 이들의 사랑이 열정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의 범주에 벗어난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범주 안에서는 그마저도 사랑이거든요. 사랑이 아니면 그들의 불평불만도 생겨나지 않않아요.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어요.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면서 ‘너무 그렇지는 않아’하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느낌 같아요.


허희:『공기 도미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혐오’라는 감정입니다. 자기 혐오, 혹은 타인에 대한 혐오요. 소현과 원균은 사이가 나쁘죠. 원균이 바람이 피웠고, 그 사실을 소현이 눈치 채서 이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혐오라는 키워드로 『공기 도미노』을 읽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영건: 어떻게 얽어주셔도 감사하지만, 혐오라고 하면 조금 무서워요. 내가 그런 무서운 감정에 대한 책을 썼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혐오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섭기는 하지만 제가 소설에 혐오라는 말을 너무 많이 써놨기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허희:그런데 그 무서운 감정을 소설에 쓰셨잖아요. 어떤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을 통해 발현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무서움을 무릅쓰고 쓰셨던 근원적인 이유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최영건:근원적일 것도 없이, 이 세상에 혐오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혐오라는 단어에 빠져 있거나 제 속에 혐오가 가득한 건 아니고요. (웃음) 소설에서 일상적인 행위나 감정에서 서서히 고조되는 과정을 그리다 보니 혐오라는 감정이 유독 두드러지기도 했어요. 또 강한 의지로 상황을 끌고 나가는 모습을 그리려다 보니 강한 의지들이 서로 부딪칠 때 생기는 충돌에서 자연스럽게 혐오가 두드러져 보인 것 같습니다.

 

낭독.JPG

 

최진영 작가의 ‘악인’과 『공기 도미노』의 ‘사랑’


허희: 최진영 작가님과 아까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그렇다면 혐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혐오라는 감정을 두드러지게 찾아볼 수는 없거든요. 『해가 지는 곳으로』에 나오는 악인도 상황에 의해 그렇게 되어버린 사람들로 보여서 악인이라 느끼고 혐오감을 느끼기는 좀 어려웠어요. 작가님은 이 혐오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최진영:오로지 나쁜 사람은 없고, 악인에게도 나빠질 무언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전 소설에서도 누가 나를 얼마나 괴롭게 하던 그에게는 그의 사정이 있다는 식으로 썼어요. 하지만 나를 나쁘게 대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지는 않죠. 그렇지만 그가 순수하게 악인이라서 그런 건 아니라는 분명한 생각이 저에겐 있어요.


제가 순수한 악인을 그리지 않는 이유는 제가 쓰기 힘들기 때문이에요. 저는 쓰기 힘들면 쓰지 않아요.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쓰고 싶지 않은 것을 작품을 위해 쓴다고 감정을 혹사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독자분들이 읽어주시겠지, 하고 넘어가 버려요. (최영건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무서우니까요.


허희: 『공기 도미노』에서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연주와 그녀의 남자친구인 경식은 서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복자와 현석도 마찬가지죠. 최영건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이들의 사랑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최영건:사랑은 관계의 일종이에요. 이들은 관계를, 서로 섹스를 하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공기 도미노』에서는 최진영 선생님 소설에 나오는 정신적인 결합,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생성된 관계를 맺는 인물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연주와 경식은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이상하고 달콤한 같은 게 결여된 관계 같은 걸 하고 있죠.


현석과 복자는 조금 달라서 말하기 더 어렵네요. 최진영 선생님이 쓰신 형태는 아니더라도 사실 다 사랑이라고 생각은 해요. 사랑도 관계의 하나이지만 동시에 사랑은 다양한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태라고도 생각해요.


최진영: 사실 그것도 사랑은 사랑이죠. 오히려 여기(『해가 지는 곳으로』)에 나오는 사랑들이 훨씬 더 보기 힘들죠.

 

최진영x최영건 작가가 믿는 감정들


허희:오늘 북토크의 주제가 “우리가 믿는 감정들”입니다. 사실 감정은 ‘느낀다’로 표현하지 ‘믿는다’고 말하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편집자분께선 ‘우리가 믿는 감정들’로 두 작가님의 작품을 묶을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두 작가님은 어떤 감정을 느낀다기보다 믿고 싶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최진영: 사랑을 믿고 싶죠.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중 제일은 사랑이니까요. (웃음) 사랑이 있으면 믿음과 소망이 생긴다고 봐요.


사랑은 굉장히 불투명하고, ‘그런 건 없어’라고 하면 없어지는 감정이죠. 사랑을 분해하면 지배욕, 소유욕, 성욕, 그런 것들로 나뉘는데, 여기에 예쁜 이름을 붙이면 그게 사랑이죠. 그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 젊은 두 남녀의 사랑도 다른 이름을 붙여버리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랑이라고 하면 약간 꺼림칙해도 사랑으로 보입니다.


사랑이라는 게 믿어야 생기는, 그만큼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살아가면서 어떤 감정 하나를 믿어야 한다면 사랑을 믿고 싶어요. 사랑을 부정하는 순간이 최대한 늦게 오면 좋겠어요.


최영건:최진영 선생님 소설을 읽으면서 저랑 사랑에 대해 그리는 방식이 너무 달라서 어려웠어요. 이런 믿음,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정말 좋아! 라고 생각하며 읽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언젠가 부정하는 순간이 온다고 말씀하시니까 조금 섭섭하네요.


최진영: 언젠가 이 세상은 망하고 인간은 사라질 거라 생각해요. 인류가 신도 아니고, 언제까지고 이 지구에 남아 있겠어요. 언젠가 망하더라도, 우리가 조금 노력을 해서 천천히 망해갔으면, 언젠가 죽을 거지만 조금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이 모든 감정에 대해 내가 나를 배신하는 순간도 올 거에요. ‘너 바보 같이 그때 왜 그런 걸 믿었니’ 라고 미래의 제가 저를 지적하는 순간이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지금은 그렇게 믿고 싶어요.


최영건:『공기 도미노』에서 ‘어떤 인과나 흐름이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썼지만, 그런 것이 있다고 믿고 싶어요. 그러니까 현실에서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여러 가지 것들을 다 알고 싶고, 믿고 싶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공기 도미노 최영건 저 | 민음사
『공기 도미노』는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계층, 서로 다른 성별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불화와 반목을 세밀화처럼 근접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작품이다.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저 | 민음사
타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모든 감정이 죽어 버렸다고 생각한 세계에 나직하게 울리는 사랑의 전조. 재앙의 한복판에서도 꺼지지 않는 두 여자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선희 "격변의 시대, 세 명의 여자"

$
0
0

KakaoTalk_20170803_042550237.jpg

 

조선희가 책을 냈다. 그것도 장장 두 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이다. 언론인이나 공직자로서의 조선희는 두말할 필요 없지만, 작가로 따지면 무명이나 다름없기에 까다로운 독자라면 읽기 전부터 소설의 완성도를 의심해볼 터. 그런데 출간 직후부터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 ‘시대의 역작’부터 ‘그녀는 미쳤다’까지. 조선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 『세 여자』는 출간한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벌써 3쇄 준비에 돌입해 있다.

 

7월 26일 홍대입구에 위치한 ‘동교동 청년문화공간 JU 씨어터’에서 『세 여자』북토크가 열렸다. 북토크는 일종의 좌담회 형식이었는데, 조선희 작가를 비롯해 유정아 아나운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이준식 근현대사 기념관장 총 네 명의 인원이 참석했다. 유정아 아나운서가 사회자, 서명숙 이사장과 이준식 근현대사 기념관장이 패널을 맡았다.
 
10년 동안 끌어안고 쓴 작품이에요

 

유정아: 사실 조선희 작가께서는 작가라는 이름은 아직은 조금 어색하실 텐데요. 전직 언론인이시기도 했고, 서울문화재단 같이 여러 공직을 나기도 하셨죠. 『세 여자』출간 이후에 지금 반응이 너무나 뜨겁잖아요. 지금 어떤 기분이신가요?

 

조선희:“그녀는 미쳤다.” 이런 막말들을 하시던데(웃음). 어쨌든 저로서는 이 작품이 10년 동안 혼자 끌어안고 쓴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사람들하고 얘기를 같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요. 예전에 사람들이 소설 쓰고 있다고 그러면 뭐에 대해 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면 “세 여잔데, 허정숙하고 조세죽 이런 사람에 관한 얘기야.”라고 대답하고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난 후 대체로 허정숙을 허영숙으로 착각해요.

 

유정아: 이광수씨 부인이시죠.

 

조선희: 그런 반응이 나왔으니. 저 혼자 굉장히 쓸쓸해하고 그랬죠. 그런데 책이 출간된 이후엔 사람들이 세 여자의 얘기를 거의 뭐 동창들 얘기하듯이 하더라고요. “조세죽이가 그 때 말이야” 하면서요. 그런 말들을 들으면, 저로서는 말하자면 벙어리 냉가슴 앓다가 말문이 트였다고 할까요. 그런 즐거움이 있죠.

『세 여자』, 다들 어떻게 읽으셨어요?


유정아:서명숙 선생님은 고대 76학번이시고, 조선희 작가님보다 2년 선배입니다. 얼마 전에 『영초언니』라는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하셨죠. 7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던 여성들의 따뜻한 우애와 굳은 의지를 읽어보실 수 있는 글을 쓰셨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떠셨어요? 『영초언니』가 출간되고, 한두 달 간격으로 『세 여자』가 나왔죠?

 

서명숙:제가 굉장히 격한 어조의 추천문을 썼어요. 책을 읽고 나서 너무 잘 써서 꽤 놀랐어요. 기자 출신이고, 중편소설도 냈었고 그래서 어느 정도 쓰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조선희 씨에 대한 우리 서클에서의 평가는 정경부인이거든요. 별명이 그랬어요. 그래서 ‘소설가가 되기에는 너무 점잖은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죠. 소설을 써도 아주 지독하게 즐기는 소설은 못 쓸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글 보고 “미안하다 얘야.”(웃음)라고 하게 된 거예요. 너무 몰입도 높은 소설을 썼어요.


제가 쓴 『영초언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게, 그건 내가 직접 겪었고 만났고 체험했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 친구는 몇 십 년 전 식민지 시대라는 본인이 겪어보지 못한 시절의 이야기를 쓴 거예요. 소설의 공간적 배경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질오르다까지 여러 지역을 넘나들었거든요. 주세죽이 크질오르다에서 유형생활을 하는 장면에서는 굉장히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었어요. 그걸 보고 조선희 씨에게 진짜로 작가라는 칭호를, 그것도 굉장한 작가라는 칭호를 붙여줘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정아:이준식 선생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역사학자로서 시대소설을 읽으신 소감이 어떻게 되세요? 굉장히 궁금합니다.

 

이준식: 일단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저는 이른바 운동사를 전공했는데, 운동사를 전공하면서 만나보고 싶었던 분들이 많거든요. 이 소설에는 그런 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상상했던 모습과 백 퍼센트 똑같은 건 아닌데, 그래도 팔십에서 구십 퍼센트 정도 비슷해서 거기에 놀랐습니다. 언제 이렇게 일일이 자료를 찾고, 또 그걸 소설에 담아냈을까 감탄했죠.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945년 8월 15일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고 서로 건드리질 않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이전 공부하는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이후를, 1945년 8월 15일 이후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이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1945년 8월 15일을 넘나들 뿐만 아니라 공간까지도 넘나듭니다. 역사학자들이 논문이나 저서를 통해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렇게 문학이 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세 여자』가 소설로 엮이기까지


유정아:『세 여자』표지에 한 장의 사진이 담겨 있는데요. <신여성> 1925년 10월호에 실린 사진이죠. 가운데가 주세죽, 오른쪽이 허정숙, 왼쪽이 고명자입니다. 작가는 이 사진에서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는데요. 이 사진을 언제, 어떻게 보시게 되셨고, 여기서 어떻게 영감을 얻으셨는지 궁금해요.

 

조선희: 이 사진은 주세죽의 딸인 비비안나가 챙긴 주세죽의 유품 가운데 하나에요. 1991년에 한소수교가 되면서 비비안나가 처음으로 한국을 오게 되고, 당시에 이복동생인 원경스님한테 전달한 사진이죠. 이후 학계에 쫙 퍼져서 주세죽 관련 자료나 박헌영 관련 자료에 자주 등장하는 사진이에요. 사진 속 세 여자의 이미지가 저한테는 영감을 불러일으켰어요. 1920년대 당시는 식민시대여서 아주 암울한 분위기였는데 이 사진의 여성들은 뜻밖에도 굉장히 산뜻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 이 지옥 같은 시절이 이 사람들에겐 인생의 전환점, 일종의 봄날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서부터 소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정아:중간 중간 자료를 찾으면서 난관에 봉착하셨을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조선희: 네. 제가 기자 출신이다 보니까요. 일단 취재를 열심히 하거든요. 그리고 자료도 열심히 모아요.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자료들을 연대순으로 쭉 늘어놓은 것이 초고였어요. 그걸 용감하게도 제 남편한테도 보여주고 선배한테도 보여줬는데 다들 암울한 표정을 지었죠. “이게 소설이냐.” 그랬는데. 그때부터 한 6년에 걸쳐서 글을 여덟 번쯤 다시 썼어요. 공간이 들어가고, 인물들의 숨결이 들어갔죠. 여덟 번쯤 다시 썼을 때야 사람이 좀 사람 같아지고요.

 

유정아:암울했던 표정들도 조금씩 밝아지던가요? (웃음)

 

조선희: 마지막 원고를 그분들에게 보여드렸는데, 그제야 이제는 책으로 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시더라고요.

 

유정아:책의 구성을 고민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1920년 상해에서 스무 살 무렵의 유학생들이 만나는 시절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장은 1956년 평양에서 끝이 나죠. 에필로그에서는 91년 평양까지를 다루지만, 본격적인 이야기의 끝은 56년 평양인데 그 시기와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셨나요?
 
조선희: 자료를 소설로 구성하고자 했을 때 주인공들의 행동반경, 인생행로를 다 담아야 하니까 이야기가 점점 방대해지더라고요. 일단 1920년 무렵에 이 사람들이 막 공산주의 활동을 시작을 했기 때문에 그 시기를 시작점으로 삼았어요. 50년대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은 단순히 주인공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이 그 무렵 세상을 떠났기 때문은 아니에요. 사실 이야기를 쓰다가 세 사람의 인생행로와 함께 한국 공산주의의 흥망성쇄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1955년에 김일성이 주체사상이라는 말을 꺼냈고, 56년에 연안파가 숙청당하거든요. 그 이후 한국의 공산주의는 종료됐다고 봐서 56년 무렵에서 이 소설을 끝냈죠. 그렇게 끝내고 나니까 상쾌한 기분이 들었어요.

 

역사적 사실에 상상이 더해지다

 

유정아:“작가가 허정숙에게 가장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라는 말이 있었는데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허정숙이 가장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인물이고 또 오래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또 어쩌면 작가께서 “다들 날 정경부인이라고 그랬지 내가 아닌 걸 보여줄 테야.”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요(웃음). 사실 저는 주세죽과 허정숙에 비해서 한 일이 없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고명자도 작가가 굉장히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세 명의 여인 중에 가장 감정이입 한 인물은 누구인가요?

 

조선희: 저는 사고를 치면 수습하기가 좀 귀찮아서 사고를 안 치고 살아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 소설에서 세 명의 여성에 대해서 쓸 때 상당부분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아요. 이 분들은 정말 호쾌하거든요. 자기가 뜻하는 대로 사신 분들이고요. 물론 운명에 휘둘리기도 했지만요. 그래서 글을 쓸 때 굉장히 짜릿짜릿해 하면서 썼어요. 세 여자 중에 저와 백 퍼센트 맞는 인물은 없었던 것 같아요. 허정숙이 중심인물이 된 건 가장 길게 살았고, 자료가 가장 많은 분이기 때문이에요. 또 허헌을 비롯해서 허정숙 주변에 작품의 줄기를 이룰 수 있는 인물들이 많았죠. 그렇지만 허정숙은 너무나 센 여자에요. 정말 요즘 사회에도 그렇게 센 여자는 정말 드물어요.

 

유정아 :세 번까지는 봤어요. 그런데 다섯 번은 정말 이 시대에도 드문 일이 아닌가 해요(웃음).

 

조선희:그렇죠. 다섯 번 결혼을 했죠. 그래서 허정숙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벽이 있었고, 비판적 지지를 하기도 했어요. “주세죽에게 가장 감정이입이 잘 됐다.” 이런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조세죽이 가장 극명하게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잖아요. 그것도 요즘 사회에선 있을 수도 없는, 상식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비극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감정이입을 해서 주세죽의 인생행로,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어요. 그런데 저는 주세죽에게 도무지 다가갈 수 없는 벽을 느꼈어요. 절세미인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인물들을 보면 뜻밖에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개척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개척하기 전에 남자들이 찍거든요. 조세죽은 박헌영 김단야의 부인이 되어서 그 두 사람에게 휘둘리는 인생을 살았고, 그 결과 굉장히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어요. 제가 소설 말미에 ‘간택하는 여자와 간택 당하는 여자’라는 표현을 썼지만 너무 절세미인이다 보니까 그 주세죽도 자기 인생을 살기가 참 어려웠던 거예요.

 

유정아:글의 구성이 인물이 어떤 역에 도달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 시대에 대한 저자의 통찰 같은 것들이 적혀있고, 다음에는 자유로운 대화체의 이야기들이 등장하죠. 어떻게 이렇게 내밀하고 즐거운 대화가 나올 수 있었는가 궁금했고, 대사를 쓸 때는 작가 본인도 얼마나 쾌감이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동시에 대화도 픽션인지, 사실과 상상의 조합이 어느 정도의 비율인지 궁금했어요.

 

조선희: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세 여자이지만 동시에 역사다’ 또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노력했다.’라는 내용을 썼어요. 드러나 있는 역사적인 기록 바깥으로 상상력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도록 자제했는데, 그 중에서도 대화는 90퍼센트가 픽션이죠. 역사기록에 대체로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만 사적인 대화들은 안 남아있거든요. 사실 그런 대화를 쓸 때가 작가로선 제일 재밌죠.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언은 기록이 남아있어요. 예를 들면 소설 속에 여운형이 반탁운동이 막 한반도를 휩쓸 때,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를 이렇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 한반도가 분할돼서 60년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대목이 있어요. 이기형 선생 같은 분들이 여운형 선생 옆에 있다가 기록한 부분이에요.


그런 기록들은 제가 대화로 가지고 왔는데 그 외는 다 제가 지어낸 거예요. 역사소설이 재미있는 게,  우리는 후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그야말로 전지적 시점에서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당대의 사람들은 모르는 거죠. 이를테면 연안파 사람들이 모여서 “김정일 쟤 까불까불해가지고 나중에 인간구실 하겠어? 개인숭배, 가족숭배 하다가 나중에 진짜 정일이 쟤한테 권력 물려주자고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얘기를 하고. 우리는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고 3대까지 내려왔다는 결과를 다 알잖아요. 그런 결과를 전제하기 때문에 대화 가지고 얼마든지 재미난 부분을 만들 수 있었어요. 당시 사람들의 착각, 당시 사람들의 잘못된 예측 이런 것들을 쓸 때 제가 어떤 신적인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짜릿짜릿했죠.

 

KakaoTalk_20170803_042551578.jpg

 

『세 여자』, 여성을 말하다


이준식: 제가 조선희 작가님께 좀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드릴까요. 책에 ‘간택’이라는 표현을 썼고, 혁명의 시대에 세 명의 뛰어난 여성이 남성들에 의해서 운명이 막 휘둘리는 것처럼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그랬을까 생각합니다. 주세죽은 3일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본인의 의지로 상해를 갔어요. 상해를 가겠다는 건 결국 사상범이 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진데, 가겠다는 결정 자체가 본인의 적극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상해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박헌영이라는 남성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고 그 때문에 혁명가가 된 게 아니라, 간 것 자체가 해방을 위해 투신하고자 하는 조세죽의 적극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시대가 조세죽을 허락했다면 조세죽이 훨씬 더 큰 역할을 부여 받았을 텐데, 당시 시대가 조세죽에게 큰 역할을 부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치 조세죽의 운명이 박헌영과 김단야에 의해 결정된 것처럼 보였던 것은 아닐까요?

 

유정아:아주 중요한 얘기를 해주셨고요. 잠깐 사회자가 개입하자면 놀러 간 걸로는 안 나오죠. 음악공부 하러 갔죠. 이것도 놀러 간 건가요? 역사공부를 하러 간 게 아니면 놀러 간걸로 칩시다(웃음). 절세미인에 대해 본인의 편견이 있지 않았나 답변 하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조선희:조세죽은 그야말로 자신의 도움으로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자신은 역할을 다 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어요. 그러니까 조세죽은 자기 남편을 보필하는 걸 자신의 혁명이라고 받아들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세죽이 처음 상해를 갔을 때는 독립운동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음악선생이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이후에 박헌영과 허정숙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는데 사실 바뀐다는 것도 여러 가지 옵션 중에서 자신이 그걸 선택한 거죠. 박헌영이라는 남자를 선택하고 사상모임을 선택하고 아지트 키퍼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선택했어요. 그렇지만 허정숙하고 비교하면, 허정숙은 남이 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거든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죠. 두 사람의 다른 캐릭터가 두 사람의 인생을 달라지게 했다는 걸 ‘간택한 사람과 간택당한 사람의 차이 아니겠는가.’라고 간명하게 요약해봤어요.

 

유정아:소설 속에 여성주의 시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립니다만, 제목 자체가 『세 여자』이고요. 이 소설은 남성 독립운동가 그리고 그 주변부로서의 여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세 여자를 소설 전면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이 책의 기본적인 시각을 알 수 있죠. 주세죽과 허정숙의 대화였다고 기억하는데 밥하고 빨래하는 것을 하려고 우리가 혁명을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죠. ‘남자들은 자본론이 아니라 사서삼경을 읽고 혁명을 하는 것 같다’는 대목도 나오고요.

 

조선희: 사실 이 소설을 쓰면서 답답했던 부분이 있어요. 세 여자는 당시로 보면 정말 혁명적인 캐릭터들이죠. 부모 말도 안 듣고, 유학 가는 건 자기 멋대로 선택하고, 가부장제 사회를 거부하려 하고. 그런데 지금 우리 기준으로 보면 그 세 여자 중에서 요즘 기준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허정숙 정도인 것 같아요. 나머지 여자들의 인생은 어쨌든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거 같고요. 그래서 소설에 대해 설명할 때는 여성 혁명가들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그런 면에선 참 마음이 아프죠. 여성 혁명가이지만 삶의 주체성을 충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는 한계에서 딜레마를 느꼈어요. 그런 답답함이 허정숙의 대사를 통해서 많이 드러났던 거죠.

 

서명숙: 그렇지만 『세 여자』는 그 자체로 분명히 의미 있어요. 시대별로 남녀의 차별을 극복해내려고 하고, 그런 사회를 바꾸려 하는 여성들이 존재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현 시대에 여성이 겪는 불합리한 상황은 좀 더 나아졌죠. 그러나 진전된 듯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이 있어요. 현 시대 여성들은 여혐에 노출되고, 지하철에서 나오다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죽기도 하죠.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세 여자처럼, 이전 시대에 존재했던 용감한 여성들의 족보를 가르쳐주고, 현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걸 자각하게 하고, 또 시대를 넘어 여성들이 연대하는 행동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세 여자』, 역사를 말하다


유정아: 저는 사람의 역사 인식이라는 게 어떻게 형성되는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그 동기가 사람의 성장환경에 있는지, 또 누군가와의 만남에 있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조선희:글쎄요. 제가 78년에 대학에 입학했거든요. 그러니까 7말 8초에 입학을 한 세대인데 그때는 학교에서 정말 역사책 많이 읽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태정태세문단세 이러다가 대학 와서 역사책들을 접하면서 역사적인 사실 자체 때문에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저희 세대는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문제의식과 발언하고자 하는 욕구를 공유하는 세대인 것 같아요. 그에 반해, 제 딸들은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했던 세대에요. 교육제도의 희생양들인데 본인이 희생자라는 걸 모르더라고요.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결핍감을 느끼지 않아요. 그래서 아직도 제 딸은 제 책을 안 읽고 있어요(웃음). 또 제가 어느 날 EBS 프로를 보고 있는데 MC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1930년대, 그러니까 조선시대죠?” 이렇게 얘기하는데 제가 너무 깜짝 놀랐어요. 저희 세대는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의견들을 달리하지만 이 세대는 아예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런 세대에게 어떻게 역사책을 읽힐 것인가 고민해보자면, 제 책 같은 것도 하나의 교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쉽게 썼으니까. 좀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요. 한번 기대해봅니다.

 

작가 조선희, 『세 여자』를 통해 말하다


유정아: 조선희 작가께서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이 결국엔 어떤 생각에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조선희:일단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인생에 대해서 깊게 이해해주길 바랐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학교 다닐 때 1945년 이후 해방공간과 한국 전쟁을 이렇게 배웠어요. “우리나라가 분단된 것은 약소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대국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분단된 거다.” 그러나 제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나중에 미국과 소련이 분단을 해소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제시했을 때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건 한국의 정치가들이거든요. 지금도 대중들이 그런 패러다임들을 받아들이긴 하죠. “우리는 약소국이고 강대국이 우리를 이리저리 몰고 갔어.”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패배주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래서는 우리의 역사가 불안한 역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해방공간과 분단의 결과들이 매일매일 그대로 악몽으로 돌아오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패배주의나 피해의식을 버리고 좀 더 객관적으로 역사를 대하려 할 때 배울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좌담이 끝난 뒤, 독자들이 책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 여자』 집필 의도를 궁금해 하는 질문이 다수였고, 그에 대한 조선희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간혹 책에 등장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독자도 있었다.

 

조선희 선생님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고요. 이준식 선생님께는 이루크츠크파하고 상해공산당, 둘의 이름이 붙여진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주장하는 바에 있어 다른 점이 무엇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선희:질문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역사 전문가가 아닙니다. 상식과 소설을 쓰면서 스스로 공부한 것에 입각해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만월에 초심을 안다는 말을 해요. 19세기 말부터 일제가 우리나라에 와서 철도도 놓고 고속도로도 놓으면서 한국사회가 근대화되는 명시적인 기점이 되기는 했는데, 3-40년 후를 보면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다 드러나거든요. 저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군국주의화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을 굉장히 열심히 쓴 편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이전에 이미 설계한 아시아 전략에 입각해서 조선 반도를 어떤 식으로 군사기지화 했는지 또 사람들을 어떻게 동원했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썼죠. 그래서 누군가 문제제기를 한다면 저는 “작품으로 말한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준식: 1919년 이전에 러시아에서 한인사회당이라는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 출범하는데요. 그 한인 사회당이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그 중 두 개의 당이 있는데 똑같이 고려공산당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하나는 러시아 땅인 이루크츠크에서 설립이 되었기 때문에 이루크츠크파 공산당이라고 하고요. 또 다른 하나는 상해에서 출범했기 때문에 상해파 고려공산당이라고 불렀죠. 이루크츠크파는 러시아를 본거지로 하기 때문에 당원 중 러시아에 이미 이주한 지 오래된 사람이 많았고, 따라서 그들은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원 이름을 보면 조선식 이름보다는 러시아식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해파에 비해 공산주의 이론적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공산주의 이론대로 계급해방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면 상해파는 강제병합을 전후로 해서 해외로 망명한 정치적 망명자들을 중심으로 출범했습니다. 따라서 이루크츠크파 보다는 민족해방을 더 중시했고요.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에게 1차적인 과제는 계급혁명이 아니라 민족혁명과 독립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루크츠크파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을 거부하고, 상해파는 임시정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입장을 택했습니다.

 

『세 여자』 속 그들의 얘기가 우리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명쾌하게 밝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공산주의 혁명에 나섰던 여성의 이야기를 하신 건가요?

 

조선희: 왜 이 시점에 이 소설인가. 첫 번째 답변을 얘기하자면, 우리는 분단의 악몽이 일상 속에 수시로 틈입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이 시대의 정체를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그를 위해선 역사를 알아야 하죠. 특히 해방공간, 6.25라는 근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왜 이 시점에 공산주의를 다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인데요. 우리 세대의 정신의 뿌리를 명쾌히 밝혀보자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서명숙 씨가 쓴 『영초언니』는 민주화 운동 얘기잖아요. 70년대의 화두는 민주화였는데 거기에도 마르크시즘 같은 것들이 막 섞여 있었거든요. 90년대 즈음 되면 공산국가 다 무너진 다음인데도 구호나 조직 활동 속에 그런 성향이 있었어요. 우리 세대가 전부 사회적인 좌표와 대안운동의 좌표가 두루뭉술한 시대를 살았던 거 같아요. 그냥 민주화 운동은 조금 나이브한 거고, 체제변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 조금 더 진보적이고 공부를 더 많이 한 것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단 말이죠. 우리시대의 정신적인 트라우마이기도 한데, 그것의 뿌리를 명확하게 밝히고 싶었어요. 공산주의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다 쓰고 싶어서 작가의 말에 ‘전 지구적인 규모의 이데올로기 투쟁으로서 공산주의라는 것은 20세기에 종료가 됐다. 그리고 21세기에는 그것이 하나의 가치관이나 태도 철학 정책으로 남아있다.’라고 썼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종북, 좌빨, 빨갱이 라고 지칭을 하고 배척을 하고 또 응징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가 시대착오적인 태도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공산당선언』을 교과서 안에 인용하고 그걸 읽으면서 공산주의의 장단점이나 노동조합의 뿌리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비로소 우리사회가 트라우마를 졸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 여자 1 조선희 저 | 한겨레출판
작가는 지금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그 딜레마가 근본적으로 분단과 전쟁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해방공간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바라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렘브란트가 거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
0
0

 

20170808_190209.jpg

 

10월 초, 한울출판사에서 미술 분야 책을 출간한다. 제목은 『내밀한 미술사: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읽기』. 네덜란드 미술사라는 장르가 꽤나 생소한데다가 현재 그것을 다룬 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상당히 눈길을 끈다. 게다가 그 미술사의 내밀한 부분까지 알려준다니 금상첨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술애호가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다분한 책이다. 곧 출간될 책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 한울출판사에서 주관하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미술>강좌에 대한 관심 또한 뜨거웠다.

 

지난 8일, 홍대 입구에 위치한 ‘경의선 책거리 공간산책’에서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미술>강좌가 열렸다. 강연은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렘브란트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 네덜란드 교육진흥원 원장을 겸하고 있다는 양정윤 미술사가는 『내밀한 미술사』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 소개시켜드릴 책, 『내밀한 미술사』는 세계일보에서 칼럼을 의뢰 받아 3년 전부터 한 편 씩 연재하던 것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원래는 조금 더 일찍 연재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 어두웠던 터라 몇 달 후에 연재를 하게 됐어요. 책은 10월 달에 출판될 예정인데요. 한울에서는 첫 번째 칼럼이 나왔을 때 바로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칼럼을 쓰면서도 언젠가는 책으로 만들어지겠구나 생각을 하긴 했죠. 띄엄띄엄 쓴 것도 있긴 하지만요(웃음). 기분이 좋네요. 대중들 앞에서 얘기할 기회가 빈번히 있긴 하지만, 제 이야기만을 가지고 얘기하게 된 건 몇 달 안됐거든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해요. 오늘 여러분께서 듣고자 하는 내용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요.”

 

본래 미술사를 공부했던 그녀지만 처음부터 네덜란드 미술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녀가 네덜란드 미술사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면모가 있었다.

 

 “일본에서 미술사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 일본은 17세기 미술사에 관한 전시회가 많이 열리는데, 특히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처럼 대표적인 미술관들의 순회 전시가 굉장히 많이 열렸어요. 그런데 한 전시회에서 당첨이 되면 네덜란드나 벨기에, 파리 그 세 곳의 미술관을 돌 수 있는 경품이 걸린 거예요. 제 동생이 거기에 당첨이 됐어요. 그때 같이 전시회를 갔죠.


스승이 네덜란드 미술사를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던 분이셨어요. 저도 그 영향을 받아서 네덜란드 미술에 관심이 있긴 했는데 2000년, 처음 밀레니엄이 시작된 그 해에 정말 네덜란드에 가게 된 거에요. 그땐 인터넷도 없어서 어떤 작품을 보고 싶은지 열심히 도서관에 가서 찾았어요. 당시 제가 관심이 갔던 화가가 헤리트 다우였어요. 헤리트 다우라는 사람은 렘브란트가 독립된 아티스트로서 처음 제자를 받았을 때 그 첫 번째 제자로 들어왔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화집 같은 것을 뒤지면서 이 사람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을 다 썼어요. 루브르의 몇 번 방을 가면 된다. 암스테르담 미술관의 어디로 가면 된다. 그런 식으로요.


그런데 막상 네덜란드에 가니까 제가 가는 미술관마다 이 사람 작품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이상하다. 나는 이 사람 작품을 보고서 졸업 논문을 쓰려고 했는데 작품을 못 보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터벅터벅 걸었어요.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체류했던 마지막 날,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호이스라는 유명한 왕립 미술관을 갔어요. 그런데 세상에 거기에 제가 찾던 작품이 다 있는 거예요. 400년 만에 처음으로 이 사람의 첫 전시가 열렸던 거죠. 그랬기 때문에 다른 미술관에 이 사람 작품이 없었던 거고요. 그래서 그때 당첨된 그룹끼리 버스 하나를 빌려서 다녔는데, 저랑 제 동생만 거기서 나와서 하루 종일 이 미술관에 있었어요. 그렇게 네덜란드 미술사를 하게 되었죠.”

 

뒤이어 양정윤 미술사가는 오늘 강연에서는 17세기만을 다루려 한다고 설명했다. 미술작품의 명성은 당대 사람들의 평가를 뛰어넘어서 화가가 죽은 이후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 터.  그녀는 네덜란드 황금시대 3대 거장인 렘브란트, 베르메르, 프란스 할스가 왜 오늘날에 와서 3대 거장이 되었는지 그 답을 본인의 책에서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가장 첫 번째로 다룬 작품은 렘브란트의 <야경>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야경>에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정체성, 자부심, 과감함, 시민사회의 미덕 같은 것이 전부 응축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걸작을 완성했음에도 그 이후 렘브란트는 인생의 내리막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렘브란트가 이 작품을 그리고 나서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렘브란트의 거만함이 극치에 달했거든요. 렘브란트가 점점 예술적 자아에 눈을 뜨면서 그림을 의뢰한 사람들의 말을 다 무시하기 시작한 거예요.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위해서. 저희처럼 돈이 없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거금을 들여 그 작품을 의뢰한 사람은 너무 화가 났겠죠.”

 

20170808_194718.jpg

 

그녀는 렘브란트의 <야경>과 관련해 암스테르담 박물관이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올해 암스테르담 박물관에서 <야경>과 관련해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이곳이 10년이 넘도록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4년 전 쯤 재개관을 했는데 천만 명 입장객을 기념해 이벤트를 연 거예요. 천만 번째 입장객에게 렘브란트의 <야경> 앞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는 권한을 준거죠. 입장객이 하룻밤을 잘 수 있게 <야경> 앞에 침대를 두고, 그에게 미슐랭 3스타 음식과 샴페인을 제공했어요. 당첨되신 분은 시골에 있는 어느 학교의 선생님인데 미술관에 학생들을 데리고 왔다가 천만번 째 방문객이 되었죠. 이게 6월 달에 있었던 일이에요. 굉장히 특이한 사건이었죠.”

 

그러나 널리 알려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의 <야경>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야경>은 열여섯 명 정도의 시민 경비단 멤버들이 함께 돈을 모아 단체 초상화를 의뢰해서 그리게 된 작품이에요. 여기 앞에 보면 대장님도 계시고, 부대장님도 계시죠. 여기 눈 아래까지만 나온 사람들도 시민 경비단의 한 멤버였어요. 시민 경비단은 ‘우리가 사는 고장을 우리 손으로 지킨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향토예비군 같은 거였어요. 또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죠. 그러니까 시민 경비단은 남자들이 모여서 대포도 한잔 하고, 총기 같은 것도 연습해보고,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얘기도 하는 그런 단체였어요. 얼마 전에 나왔던 논문에 의하면 일단 그림 속 인물들의 이름은 다 알고요. 그런데 한 가지, 그림 속 인물들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가 밝혀지지 않았어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장면인지. 다른 단체 초상화 같은 경우엔 실내에서 연회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건 분명히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그래서 이전엔 사람들이 무대인가. 연극 같은 것을 하는 것인가 추측했어요.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그 추측이 달라졌어요. 옛날엔 이런 단체들이 퍼레이드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서 그냥 행진이 아니라 알레고리 같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다 멈추거나 과장된 포즈를 취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퍼포먼스 비슷한 것을 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하는 거죠.”

 

그렇다면 <야경>이라는 걸작을 그려낸 렘브란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렘브란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성격이 좋았을 것 같지는 않고, 결단이 빨랐던 거 같아요. 좀 마이웨이 스타일이었고요. 남들이 가야한다는 코스 있잖아요. 유명한 화가가 되려면 이탈리아를 가야 한다고 할 때도 이 사람은 그 코스를 가지 않아요. 렘브란트는 이미 20대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냈어요. 자기 고향 친구랑 일찌감치 미술 수업을 받아요. 수업을 받다가 암스테르담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죠. 그래서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했던 피터 라스트만이 자신의 아틀리에를 오픈했을 때 렘브란트는 그곳으로 갔어요. 가서 제자로 지내면서 한 1년 반 안에 과정을 끝내요.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와서 친구랑 화방을 만드는 거죠. 그런데 렘브란트는 그것도 곧 접었어요. 돈이 모이는 암스테르담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 당시에 돈과 지식과 정보와 새로운 시스템들이 짧은 시간 안에 모이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루벤스 같은 화가가 되기 위해선 이탈리아로 가야한다고 자극을 했지만 렘브란트는 끝까지 안 갔어요. 그까짓 이탈리아의 유명한 페인팅들은 판화로도 다 볼 수 있고, 나는 그런 거 안가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했죠. 대신 암스테르담에서 새롭게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업을 펼치고자 했어요.”

 

렘브란트의 자신감은 그가 사용한 서명에서도 드러난다. 렘브란트의 본명은 렘브란트 하멜스 존 판 레인. 그는 왜 서명에 성이 아닌 이름을 사용했을까.

 

“렘브란트는 퍼스트 네임이에요. 여러분들 퍼스트 네임으로 불린 사람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아요. 교황들이 그렇게 불려요. 그리고 라파엘로가 자기 자신을 그렇게 불렀고요. 그리고 나폴레옹 정도. 이 사람의 본명은 렘브란트 하멜스 존 판 레인이에요. 패밀리 네임이 레인에요. 그런데 본인이 렘브란트라는 이름으로 사인을 했어요. 자기 브랜드화를 너무 잘한 거예요. 다른 사람 같은 경우는 보통 RVR처럼 이니셜으로 썼을텐데, 이 사람은 초기부터 렘브란트라고 서명했어요. 아마도 라파엘로가 자신을 퍼스트 네임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고서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에는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고 했다. 그리고 렘브란트의 그림에도 그런 부분이 분명 존재했다. 그의 자신감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야경> 을 보면 대장이 손을 내놓고 있죠? 옆에서 보면 이 손 길이가 그대로 나타나지만 정면에서 볼 때는 이렇게 짧아져야 해요. 쇼트닝이라고 하죠. 당시엔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적용하기 힘들었던 기법이었어요. 또 렘브란트는 이미 1640년대 이후에 촘촘히 세밀하게 그리는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확 살아있는 느낌이 들게 했거든요. 한 두 번의 붓질만 가지고 그런 느낌을 나게 한 거죠. 렘브란트는 빛의 마술사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삼손과 데릴라> 같은 경우 그림이 장막 안쪽의 어둠의 세계와 장막 바깥쪽의 빛의 세계로 나뉘어요. 바깥쪽은 마치 적군을 어두움에 처하게 하고서 광명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죠. 데릴라의 심리나 그림 내의 스토리를 색 대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렘브란트의 예술적 감각이 타고난 재능 덕이라고 얘기하긴 이르다. 그는 상당한 노력파였다.

 

“이건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이에요. 렘브란트는 정물을 그린다거나 풍경을 그리기도 했지만 역사화로 유명해요. 초기에 렘브란트는 초상화로 인기를 얻었어요. 그렇지만 뛰어난 역사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죠. 여기 있는 이 자화상들도 실은 자화상 그 자체라기보다는 역사화 속 인물들의 표정을 그리기 위한 연습의 일환이었어요. 인물의 표정이나 제스처를 연구하기 위해 제자들을 성경 속 인물로 변장시키고 그 모습을 그리는 것도 자주 했죠.”

 

세계대전 당시에도 렘브란트의 그림은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20세기 초반 독일 연구자들이 렘브란트를 연구하면서 렘브란트의 화풍이 찬사를 받았다.

 

“세계대전 당시에도 렘브란트의 페인팅은 중요했어요. 20세기 초반에는 독일연구자들이 렘브란트를 많이 연구했어요. 게르만민족의 위대한 정신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렘브란트는 그 전에는 인기가 없었어요. 19세기 말부터 민족주의가 부흥을 하면서 갑자기 투박한 렘브란트의 화풍이 찬사를 받게 됐죠. 그런데 그 이후에 네덜란드 학자들도 그 가치를 조명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후 렘브란트의 <야경>은 아주 중요한 그림이 되었죠. 그런데 세계대전이 일어났어요. 미술관에 그림을 그대로 두면 폭격을 맞기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그림을 대피시키려고 했죠.”
 
렘브란트의 <야경>은 전쟁 이외에도 두 번이나 테러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림이었다.

 

“물론 지금은 수복이 되었지만, 전에 염산으로 테러를 당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가해자들을 보면 이 그림이 싫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너무 좋아서 미쳐서 그러는 거예요. 작품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너무 감정적으로 되기 때문에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작품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렘브란트의 작품이라는 거예요.”

 

뒤이어 <얀 식스의 초상>이라는 그림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얀 식스 11대가 얀 식스 1대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채 살고 있다고 했다. 렘브란트의 그림, 그것도 자신과 매우 닮은 초상화를 매번 마주하며 사는 건 무슨 느낌일까.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작품이 전 세계의 초상화 중에 가장 멋있는 초상화인 것 같아요. 얀 식스는 렘브란트보다는 훨씬 어린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암스테르담의 시장이 되기도 해요. 렘브란트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도 이 사람이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그림 속 얀 식스가 1대에요. 아직까지 얀 식스 11대가 살고 있어요. 이 집안에 모든 남자는 얀 식스라는 이름을 그대로 계승해요. 11대 얀 식스는 저보다 조금 젊은데 이 사람은 아티스트 관련 일을 해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렘브란트가 그린 자기 1대 할아버지 그림을 아직까지 집에 걸고 사는 사람이에요. 너무 신기하죠. 저는 이 사람이 정말 궁금했어요. 이 사람 아버지는 상당히 무뚝뚝하고 절대 그림 안 빌려주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한 인터뷰도 책에 실었어요. 같은 이름의 얀 식스가 사는 곳은 어떨까라는 내용인데. 이 사람이 되게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상자 안에 보물과 같은 천이 있어요. 만약에 세상에 천을 공개하게 되면 이 안에 있는 천의 수명은 짧아지겠죠. 그런데 과연 이 천을 안에 가둬두는 게 좋은 걸까요? 천을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 얘기가 참 인상 깊었어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남궁인 “불시에 닥쳐오는 다양한 죽음을 쓰고 싶었다”

$
0
0

 

출판사제공1.jpg

 

비가 지독하게 쏟아지는 8월의 여름밤, ‘글 쓰는 의사’ 남궁인과 가수 요조가 만났다. 지난 10일 목요일 저녁, 홍대 레드빅스페이스에서 ‘남궁인x요조, 지독한 여름밤의 북토크’가 열렸다. 응급의학과 의사인 남궁인은 만약은 없다』에 이어 『지독한 하루』에서도 응급실에서 마주한 가혹한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간절한 의사의 이야기를 써냈다.

 

만약은 없다』에서 하지 못한 응급실 이야기를 담다, 『지독한 하루』

 

요조: 처음 『지독한 하루』를 읽었을 때 만약은 없다』에서 이어지는 시리즈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 시리즈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올까, 하는 기대도 생겼어요. 앞으로도 비슷한 책을 낼 의향이 있으신가요?

 

남궁인:만약은 없다』를 쓴 후에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작년부터 하지 못한 이야기와 사회적인 이야기를 더 써서 이번에 『지독한 하루』라는 책을 냈어요. 하지만 이젠 응급실 이야기를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직업이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이다 보니 그럼 계속 응급실 이야기만 써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실은 3년간 응급실이 아닌 소방본부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지난 5월부터 응급실에서 의료행위를 다시 시작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실제로 숭고한 일이지만 너무 미화한 건 아닐까, 내가 주인공인 영웅담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응급실이라는 공간이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은 곳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했어요. 그래서 근무를 하면서 인상 깊은 환자의 사연을 비밀 파일로 저장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제 안에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어요. 당장 내년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쓰지 않을까 싶어요. 더 지독한 거로. (웃음)


요조: 『지독한 하루』라는 제목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남궁인: 원고를 읽어보니 한 편 한 편이 하루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그 하루가 쉬는 날과는 완전히 다른 하루이고, 예전부터 좋아했던 ‘지독하다’이 분위기에 어울려서 『지독한 하루』라는 제목을 지었어요.

 

의사의 하루, 혹은 작가의 하루


요조:책도 두 권을 내셨고, 싸이월드에도 써놓은 글이 상당하다고 하셨어요. 의사로 바쁘게 지내시면서 그 많은 글을 언제 다 쓰시나요?


남궁인:알랭 드 보통은 글을 쓰려면 글을 쓰는 시간만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생각하는 시간도 글 쓰는 시간에 포함돼요. 생각 자체가 글이 되게 하려고 노력해요. 일상에서 벌어진 일이나 대화를 글로 쓰려고 생각해요. 이 생각들이 기승전결을 갖춘 글이 되면 그때부터 써요. 일하는 시간을 빼면 종일 쓰고 있는 셈이에요.


게다가 지금은 생각만 해서는 안 돼요. 어제 추천사와 피키캐스트 마감이 있었고, 내일도 문예지 마감이 있고, 주말에는 책 원고 마감이 있어요. 그 후엔 도 스토리 펀딩 1화 마감이...... 요새는 남는 시간에는 무조건 써요.


요조: 하루가 온전히 글을 쓰기 위한 준비과정, 혹은 글을 쓰는 과정이네요. 의사의 삶을 사시면서 동시에 작가의 삶을 살고 계시네요. 의사의 직분을 가지고 종일 작가의 정체성을 예리하게 유지하시는 게 대단하세요. 남다른 시간 배분의 노하우나 고도의 집중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남궁인:의외로 많이 물어보시는 이야기인데, 그렇지도 않아요. (웃음) 다만 저는 시간 낭비하는 걸 싫어해요. 영화도 영감을 주지 않을 것 같으면 보지 않고, TV는 일절 보지 않아요. 항상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생각할 뿐이지, 시간 관리를 하려고 칼같이 시간을 재진 않아요.

 

출판사제공2.jpg

 

극적이고 ‘지독한’ 묘사


요조:모든 챕터가 영화나 드라마 같아요. 스토리가 버라이어티하고 극적이기도 하지만, 묘사를 진짜 지독하게 하셨어요. 이렇게까지 써야 할까, 싶은 지독한 묘사나 도가 지나쳤다고 느낀 부분을 읽었을 때는 힘들었어요. 잠시 한 부분을 낭독해드릴게요.

 

지그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을 놓고, 일단 두꺼운 실에 매달린 바늘이 살갗을 뚫고 나왔다. 바늘을 뽑아 반대 모서리를 꿰뚫고, 그 위에 학생 때 배운 어설픈 매듭을 지었다. 딱 한 땀만 꿰매진 두피는 양쪽이 간신히 붙어 있는 위태로운 느낌이었다. 그 사이로 아직 하얀 두개골이 훤하게 보였다. - 72쪽

 

남궁인: 사실 산문을 쓰기 전에 운문을 썼는데, ‘인턴 첫날의 일기’는 제가 짧은 산문시로 써놨어요. 인턴 첫날, 딱 1시간 동안 겪은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새벽 3~4시에 일이 끝나고 6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마치 전쟁노트처럼 그 시를 적었어요.


그 시를 다시 읽으니까,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하고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제가 받은 첫 환자였고, 아직 경험 많은 의사가 아닌 일반인에 가까운 상태였어요. 그래서 더 기괴하게 보일 수 있고, 그걸 표현하는 묘사를 써보고 싶었어요.


요조:다른 챕터도 묘사가 세밀하고 극적이어서 작가가 경험한 일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강박적인 욕심이 느껴져요. 에둘러서 말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는 글에서 강한 뚝심같은 게 느껴져요.


남궁인:원래는 시로 쓰려 했는데, 시로 쓰면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요. 시를 읽어줘도 “그게 어쨌다는 거야?”라고 말해요. 산문으로 쓰면서 세밀한 묘사에 집중하면서 독자를 현실에 끌어당기는 데 신경 썼어요.


요조:글에 대한 동경이나 쓰고 싶다는 열망이 처음엔 운문에서 비롯되었나요?


남궁인:제가 자주 쓰고 좋아하는 말이 ‘글로 전해지는 감정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인데, 늘 시를 읽으며 느꼈어요. 시라는 짧은 글이 저를 울려버릴 수 있는 감정을 가졌다는 게 대단하고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저는 운문에 재능이 없더라고요. 10년 이상 그걸 확인하다 산문을 쓰는 작가가 되었어요. 그래도 시를 쓸 때의 버릇이나 표현이 많이 남아 있어요.

 

사회적인 목소리를 담은 『지독한 하루』


요조:만약은 없다』에서는 환자를 상대하는 의사 개인의 고충이 담겨 있었다면, 『지독한 하루』에는 사회적인 이야기가 많아요. 아동폭력과 응급실 폭력, 소방관의 처우에 관한 이야기들을 쓰셨는데, 사회적인 이야기를 쓰신 계기가 있나요?


남궁인:만약은 없다』에서는 저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울한 의사가 쓴 우울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썼는데, 『지독한 하루』에서는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사람들이 제 글을 많이 읽었으니까 이 영향력으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활동을 고민했어요.


소방본부에서 일하는 동안 알게 된 소방관의 처우에 관한 이야기, 응급실에서 경험한 폭력, 그리고 아동폭력으로 다친 환자의 이야기를 적었어요. 실제 응급실에 온 환자의 현장감 있는 이야기에 사회적인 이야기를 덧붙였을 때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썼어요.


요조:책에 쓰신 사회적인 이야기, 그중 아동폭력 이야기에 피드백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남궁인:이 자리에 오기 전에 빈곤 아동을 돕는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단체에서 함께 할 활동을 제안해주셔서 흔쾌히 수락하고 일정을 논의하고 왔어요. 저는 그저 글 쓰는 자아를 가진 평범한 의사인데, 이런 단체와 뜻있는 행사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뭉클했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하루’


요조:『지독한 하루』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챕터가 있으신가요?


남궁인:방충망에서 아이들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1미터의 경계’라는 챕터가 있어요. 유독 힘들게 쓴 챕터인데, 제가 직접 치료한 환자는 아니고 보고로 들었던 이야기를 썼어요.


감정을 갖추는 데만 2주가 걸렸어요. 그걸 쓰려고 방충망이 찢어지고 떨어지는 아이를 상상하고, 떨어져서 살아난 아이와 엄마에게 감정 이입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2주가 지난 뒤 글을 쓰는데, 엄마 대사를 쓰면서 한 단어를 쓸 때마다 한 번씩 울었어요. 너무 이입을 심하게 해서...... 내가 엄마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먼저 벽을 막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직접 보지 않고 이입을 하고 만들어내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더 기억에 남았어요.


그다음이 ‘산 채로 불탄 일곱 명의 사내’라는 챕터인데, 이건 제가 직접 본 사건이에요. 당시 집중 치료실에 불탄 환자 세 명이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검댕을 뒤집어쓰며 환자를 치료했던 일을 복기하려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이 챕터도 2~3주 내내 저를 그 공간에 다시 두려고 노력했어요. 그때로 돌아가 다시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더 힘들었어요.


요조:욕심나는 챕터가 너무 많았는데 어렵게 하나를 골랐어요. 「라포를 형성한다는 것」이라는 챕터인데, 여기서 라포가 무슨 말인가요?


남궁인:환자를 진료하는데 가장 중요한 거예요. 환자와 의사 사이의 유대감을 뜻하는 의학 용어입니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 믿음을 갖는 것을 라포를 형성한다고 해요. 의사마다 라포를 형성하는 법이 달라요. 「라포를 형성한다는 것」은 제가 라포를 형성하는 법을 글로 쓴 부분이에요.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 누워 있는 환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일단 환자 가까이에서 눈빛을 교환하고 나면, 그 환자가 오래 기다린 탓에 힘겨워하고 있다거나, 뒤늦게 나타난 내게 억하심정을 호소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습관처럼 환자에게 다가가 이마에 깊게 푹, 손바닥을 얹는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교수님처럼. 그러면 환자의 이마에서 온기가 느껴지고, 방금까지 다급했던 땀내와 열기가 훅 밀어닥친다.” -  67쪽

 

요조:선생님은 이마에 손을 대는, 살과 살을 맞대는 행위로 라포를 형성하고 계세요. 이 챕터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허은실 시인의 「이마」라는 시가 생각이 났어요. 이마에 손을 얹는 일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시거든요.


남궁인:이마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요. 제가 만약은 없다』를 내고 작년에도 이 자리에서 질문을 받고 있었어요. 어느 분께서 환자랑 교감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예전에 교수님이 이마에 손을 대시는 걸 보고 저도 이마에 손을 댄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면 환자 분들이 화를 못 내요. (웃음) 이마에 손을 대는 순간 정말 따뜻한 마음이 들거든요.

 

성탄절의 특별한 비감(悲感)


특별한 날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모두가 행복을 느끼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다가오자 세상에서 자신만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주받을 감정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오른 제 우울의 무게를 이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의 마음을 그렇게 헤아려보더라도, 그 일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었다. -  237쪽


남궁인:성탄절 날 제 앞에 가스 폭발로 타버린 사람의 형체가 실려 왔어요. 20대 중반 분이신데, 자기 집을 폭파해서 다 태워버리고 죽은 거예요. 부모님은 옆에서 곡을 하시고......
저한테 온 건 말 못 하는 시체인데 이 사람이 이 일을 결행하기까지 어떤 사유의 과정을 거쳤을까, 어떤 심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고민하면서 이입하게 되었어요. 저도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의 기억 때문에 청년의 이야기에 공감했어요. 스스로 읽고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낭독하게 되었어요.


요조:저는 그 챕터를 읽으면서 응급실 생활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만 상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힘들겠지만,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흥이 요구되는 시기인 성탄절이나 연초에는 특별히 더 큰 비감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혹시 성탄절 날 일을 하지 않고, 24~25일을 쉴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남궁인:얼마 전에 제 생일이었는데, 일부러 그날 당직을 넣어달라고 했어요. 뭐할지 고민되잖아요. 그런 성격이라. 하...... 크리스마스 이브랑 당일을 다 쉬라고요? (웃음) 그럼 글을 쓸 거 같아요. 그런 날만 쓸 수 있는 글이 있거든요. 군중의 쓸쓸함을 이야기하면 좋은 표현이 나올 거에요. 혼자 함정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네요.


요조:다음은 어떤 책을 써낼 예정이신가요?


남궁인:요조 씨랑 시리즈로 집필할 책이에요.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은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가볍게 쓰고 있어요. 1월부터 6월까지 총 180편이에요. 요조 씨 책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제 책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출판사제공4.jpg

 

북토크, 독자들의 질문


선생님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의사가 되시고 그 생각이 바뀌셨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만약은 없다』『지독한 하루』를 썼어요. 의대생이 되기 전에는 죽음과 그 옆에서 통곡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병원에서 처음으로 그 장면을 봤을 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세상이 있구나, 하고. 죽음을 간신히 지켜만 보다가 응급실에 갔을 땐 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엔 이렇게 불안하고 아픈 사람들이 있구나. 죽음과 아픔이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이렇게나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본 죽음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이런 세계가 있다고 알리고 싶었어요. 이런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며 불시에 닥쳐오는 다양한 죽음을 쓰고 싶었어요.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입니다. 지난 학기에 해부학실습을 하고 나서 굉장히 심란했어요. 한 학기가 지나고 나서야 조금 무뎌졌고, 무뎌지는 과정이 저를 보호하는 방어기제라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작가로서 응급실에서 일어난 일을 계속 되새기시며 글을 쓰세요. 그 일이 힘들지 않으신가요?


의사로 살면서 많은 환자를 봤고, 보고 있어요. 치료는 대체로 교과서대로 되지 않아요. 결국 응용해서 현실에 적용해야 되는데, 그 과정에서 환자가 많이 죽어요. 환자가 죽는다는 건 누군가가 제 책임으로 죽은 거예요. 환자가 도착한 때부터 죽음까지 한순간이라도 잘못 판단하지 않았는지 이 잡듯이 기억을 뒤져요. 실수가 하나라도 나오면 이게 정말 오래 가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가 갑자기 울기도 해요. 그렇게 새겨두면 나중에 실수하지 않아요. 본능적으로 다른 행동을 해요. 요새는 환자가 죽었을 때 돌이켜보면 ‘아,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라는 결론이 많이 나와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너무 힘들어요.


결국 제가 힘들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복기하는 습관이에요. 그래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노트에 일일이 실수를 가감 없이 적어둔 게 많아요. 안 적고는 견디지 못해서. 이렇게 스스로 괜찮아지려는 마음이 글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독한 하루 남궁인 저 | 문학동네
그의 하루는 지독하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가 지독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를 다시 삶의 영역으로 돌이켜야 하는 긴박한 과제가 지독하며,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떠나버린 환자와 이별하고 또 이별해야만 하는 일이 지독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민규 “그래도 서울의 아파트를 사야 한다”

$
0
0

지난 11일, 을지로 페럼 타워 페럼 홀에서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의 김민규 저자 강연회가 열렸다. 김민규 저자는 평범한 30대 월급쟁이다. 동시에 ‘구피생이’라는 닉네임으로 부동산 관련 블로그와 원하는 아파트를 찾아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부동산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런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담아 내놓은 책이 지난 7월 출간된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다.

 

image1.jpg

 

페럼 홀을 가득 채운 채 김민규 저자는 사람들이 가진 부동산에 대한 편견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주제에 들어갔다.


1. 인구 감소로 집값이 내려갈 것이다.
2. 7억 이상의 아파트 신규 분양가격은 과열된 것이다.
3. 역삼동 집값이 공덕동 집값보다 당연히 비쌀 것이다.
4. 낡을수록 아파트 가격은 내려갈 것이다.
5. 평당 4400만 원의 집값은 투기의 산물이다.

 

“여러분은 이 명제들이 몇 개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세요? 전부? 아니면 2, 3개? 제 생각에는 모두 틀린 말입니다. 날로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공덕동 집값이 역삼동 집값보다 비쌀 수도 있고 아파트가 낡았다고 꼭 가격이 내려가지도 않습니다. 7억 이상의 신규 분양가격, 평당 4400만 원의 집값이 시장 질서를 따르는 정상적인 현상일 수 있습니다.”

 

김민규 저자는 이 편견들이 왜 잘못되었는지 강연을 통해 알려드리겠다며 인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인구부터 짧게 말씀드릴게요. 0~20세 인구가 15년 사이에 1300만 명에서 1000만 명으로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주택시장에는 아직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습니다. 평균수명의 증가로 30~65세 인구는 500만 명이 늘어났거든요. 그래서 총인구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한집에 3.2명이 살았는데 지금은 2.4명이 삽니다. 자연스럽게 집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죠. 마지막으로, 한 사람 주거면적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욕구하는 바가 점점 커지는 거죠. 물론 언젠가는 인구가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현재, 그리고 당분간은 주택이 부족 할 수밖에 없어요.”

 

이어 저자는 마포구를 시작으로 서울 각 지역 아파트 가격 그래프를 제시했다. 가격대는 지역별로 다르게 형성되어 있었지만, 공통으로 유사한 경향이 드러났다. 연식이 오래될수록, 입지가 좋을수록 아파트 가격이 높았고 그 가격의 격차는 규칙적으로 나타났다. 김민규 저자는 아파트 가격이 단순 투기 때문에 휘둘렸다면 이런 일정한 경향성이 나타나기는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이런데도 가격이 단순히 거품이고 투기에 의한 장난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신축 아파트와 오래된 아파트 가격이 같다고 하면 다들 신축 아파트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10년 안에 지은 신축 아파트는 서울에 30만 개예요. 경쟁이 문제라는 거죠. 투기가 문제가 아니라.

 

7억이라는 가격을 생각해 보죠. 예를 들어 제가 가진 아파트가 6억이라고 칩시다. 거기에 5년 살면서 1억을 모았어요. 그럼 7억짜리 아파트 갈 수 있죠. 돈을 열심히 모으고 가진 순 자산으로 집을 살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집을 팔아서 집을 삽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집값이 형성되어 왔고 이미 공고한 매트릭스를 짜고 있습니다.”

 

image2.jpg

 

또한, 최근 정부가 발표한 8ㆍ2 부동산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봅시다. 20대 중후반 사회 초년생이 5년 동안 돈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배우자까지 해서 1억 5천만 원 ~ 2억 원 정도 모았다고 치죠. 그리고 지금은 돈이 없지만, 담보대출 내서 3.5-4억 집을 하나 마련해서 맞벌이로 생활을 시작할 수 있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죠. 계속 그렇게 돈을 모으고 이사하다 보면 비싸고 좋은 집에 살 날이 오겠죠. 한 20년 열심히 일하다 보면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이 뭐죠? 이제 연봉 6천 정도 맞벌이는 실수요자로 안 보겠다, 이겁니다. 그리고 LTV/DTI를 40%로 묶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예로 든 청년은 4억짜리 집 못 사게 되었어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전세자금대출 내서 4억 5천 전세 들어갔어요. 내지는 대출 없이 전ㆍ월세 들어갔어요. 이대로 몇 년 지난다고 칩시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전세, 월세만 올라가죠. 그럼 그동안 집값은 가만히 있을까요? 이 사람이 집값의 사다리가 움직이는 걸 따라갈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울 내 대출은 이제 40%로 묶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놓은 대책이 다주택자를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게끔 유도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월세 인상률을 5%로 묶겠다, 이거죠. 이 대안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제 전세 구하기도 힘들겠다’ 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제 전세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죠. 그런데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규제는 대책에 하나도 안 들어있어요. 그럼 다들 전세를 구하러 가겠죠.

 

그럼 이제 좋은 지역에 전세를 구하려면 번호표를 뽑아야겠죠.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은데 가격은 거기서 거기니까요. 아니면 전세청약제도라도 만들어야 할지도 몰라요. 모든 정책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5년만 버티자.’인 것 같아요. 과연 이런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문제 지적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많은 분이 물어보세요. 이건 제 생각입니다. 30년을 바라보는 수많은 아파트를 재건축해야죠. 지금 재건축 못 하는 이유는 하나에요. ‘재건축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이 돈을 착복하지 않을까? 조합원들이 엄청난 이득을 챙길까 보지 않을까?’ 이런 걱정 때문이죠.

 

그럼 재건축을 하되, 규칙을 잘 정하면 돼요. 재건축 사업이 일어나도록 유도를 하되 이익을 적정하게 제한하는 거죠. 그리고 35층 규제를 풀어서 50층까지 올리면 물량이 수요에 맞게 공급이 될 거에요. ‘너희 이득 봐라.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만. 대신에 거기서 나오는 물량은 일반 분양을 한다. 그리고 그 분양가는 우리가 시장 가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묶을게.’ 정부에서 이렇게 정해버리는 거죠. 그게 한두 군데만 해서는 의미가 없어요. 재건축으로 인한 물량들이 몇만 가구 들어온다는 확신이 부동산 시장에 돌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비싼 아파트들도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하겠죠. 그런데 정부가 약간 겁을 내는 거 같습니다. 재건축을 허용해버리는 순간 통제를 못 한다는 걱정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8?2 대책을 내놓아서 묶어버리는 방향으로 결정한 거죠.”

 

정부의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여전히 서울에 집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표를 봤을 때 저평가된 아파트를 찾기는 정말 어려울 겁니다. 말씀드린 대로 가격이 이미 치밀하게 구성돼 있거든요. 그런데도 틈새가 벌어져 있는 곳이 가끔 있어요. 그런 걸 잘 주시하셔야겠죠.

 

대출규제가 돼서 서울에 집 사는 건 이제 다 끝난 것 아니냐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작년 LTV 평균이 50.5%였습니다. 이번에 40%로 묶였죠. 그러니까 대부분 평균적으로는 10% 정도만 잘린 셈입니다. 서울에 아파트를 갖는 게 어려웠고, 앞으로 조금 더 어려워지겠지만, 지금이라도 가지도록 해보시면 가능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8ㆍ2 대책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대변이라도 하듯, 강연이 끝난 후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정부의 정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서민들은 그 정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

image3.jpg

 

기사를 보면 8ㆍ2 대책 이후에 정부와 시장이 대치하는 국면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로 정부가 보유세를 인상할 거라고 하는데 그런 정책이 시행 가능하다고 보시는지, 그리고 정책이 시행되면 2주택 이상 가진 사람에 큰 부담이 될지 궁금합니다.

 

“보유세에 대해선 정부가 굉장히 신중하게 보고 있거든요. 증세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참여정부 때 너무 역풍을 맞은 경험이 있어서요. 아마 이렇게 갈 확률이 높죠. ‘1가구 2주택자는 올리지 않겠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역풍이 감당이 안 되거든요. 보유세 자체가 부담이 크진 않지만, 너무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증세가 돼요. 그렇다고 1가구 2주택자를 제외한 다주택자에 대한 증세도 어려워요. 여러 해 동안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를 등록하면 종부세 합산을 배제해주겠다고 공언을 해둔 상태거든요. 정책의 연속성 측면에서 번복하기는 어렵죠.”

 

“정리하자면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증세는 대단히 어려워 보이고, 임대사업자에게 종부세를 부과하는 건 시장에 잘못된 충격을 줄 가능성이 너무 커 보입니다. 그리고 보유세 자체가 높지 않아 단위 보유세를 올리는 건 실질적 충격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내년 4월까지 다주택자들에게 사는 집이 아니면 팔라고 유도하는데, 저자분께서는 급매가 실제로 출현할 거라고 보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분명 매물이 나오긴 할 겁니다. 실수요자에게 그게 어느 정도의 기회는 되겠죠. 그런데 최근에 부동산 시장을 보다 보면, 전체 시장 대세보다 지역 내 미시적인 상황이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예측이 어렵죠.”

 

“매물이 나올지 안 나올지, 얼마에 나올지는 신도 모르죠. 질문자께서 관심이 있는 지역이 있으시면 시야를 좁혀보시고 계속 주시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매물이 나오면 직접 가서 확인하시고 잡아야 할 기회인지 아닌지 잘 판단해보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를 사고 싶어서 둘러보고 있는데요. 교통이 좋은 지역인데 오래된 아파트, 교통이 좋지 않은데 신축아파트가 매물로 있는데 어느 쪽이 좋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저자님의 책을 보고 점수를 매겨봤는데 두 아파트가 비슷하게 나왔어요. 이 경우에 제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사람마다 다르죠. 미국에서 과거부터 부동산 가격을 일반화해서 측정하려는 연구가 있긴 했습니다. 저도 연구를 참고해서 연도별 데이터로 분석하려고 시도해 본 적도 있고요. 그게 일반론으로 정리가 됐으면 전 아마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겠죠. (웃음)”

 

“사람마다 상황이 너무 다르고, 질문자분이 필요로 하는 조건이 있으실 거에요. 안심하셔도 될 점은, 그 가격이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닐 거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미 계산을 치밀하게 해서 책정된 가격일 테니까요. 그 점에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국, 내게 중요한 조건이 아이 교육인지, 교통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타협할 수 있는 조건과 아닌 것을 정리한 다음 조금 더 마음이 가는 쪽으로 고르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직장인이신데 어떻게 부동산에 대해 깊게 분석을 하고 사이트도 운영하는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쑥스럽네요.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어릴 때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부동산에 눈을 띄워주신 부모님,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제 아내의 지지와 지원 덕이었습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매년 부동산 가격을 적어두면 후에 좋은 자산이 되지 않을까?’ 그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운이 잘 맞아서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네요.”

 

정부가 공급 대책도 내놓을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서울 시내는 말씀대로 어려워 보이는데 어떤 식의 공급이 이루어질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부는 민간임대시장을 활성화하려고 합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정부는 개개인이 집을 가지는 순간 집이 욕망의 도구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거대 기업이나 자본에 집의 소유를 맡겨두는 식으로 프레임을 재편하기를 원하고 있고요.”
 
“지금 말씀드린 첫 번째 대책은 실질적인 공급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번째, 실질적인 공급은 공공임대주택을 통해서 하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1년에 17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지금 동탄 신도시 물량 남아돈다는 게 12만 호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17만 호씩 5년을 한다고요? 어디에 할까요? 저는 그 복안을 보고 싶어요. 그게 과연 우리가 얘기하는 아파트일까요?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주택 식의 공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정부의 속내는 제 생각에 ‘경기도로 나가’입니다. 저는 실질적인 아파트 공급 대책은 없다고 보입니다.”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김민규(구피생이) 저 | 위즈덤하우스
저자는 아파트의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들, 즉 직장까지의 접근성, 연식, 지형, 학군, 생활환경, 단지 규모, 아파트 브랜드, 발전 가능성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아파트 가치를 스스로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늘한여름밤 “우리는 여전히 같이 헤매고 있습니다”

$
0
0

 때때로 폭우가 내리던 지난 6일, 신촌 기차역이 내려다보이는 ‘카페 파스텔’에서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저자인 서늘한여름밤 작가와 함께 하는 ‘어차피 여름밤 북토크’가 열렸다. 28살 봄,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들어간 대형 병원을 100일 만에 그만둔 서늘한여름밤 작가는 이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블로그에 올린 그림일기는 SNS를 중심으로 퍼졌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지난 5월 말, 300여 편의 그림일기 중 50편을 선별해 출간한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에는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서늘한여름밤 작가와 함께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을 진행하는 블블이 사회자였기 때문일까. 북토크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연신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서늘한 여름밤에 데자와를 마시는 것을 좋아해 필명을 서늘한여름밤으로 정했다는 유쾌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photo 1.jpg

 

그림일기가 책으로 나오기까지

 

책의 목차를 시간순이 아니라 ‘버리다’, ‘느끼다’, ‘자란다’로 따로 나눈 기준이 있나요?

 

시간순이 완전히 다른 건 아니고 비슷한 시기에 묶여 있어요. 아무래도 첫 책이고 에세이다 보니 성장의 서사를 느낄 수 있도록 편집자님께서 작업해주셨어요. 보고 감탄했어요.

 

목차 중 ‘자란다’만 현재진행형인데 이것도 편집자님께서 작업하신 건가요? 작가님께서 ‘자란다’는 것에 ‘잘한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건 아닌가요?


편집자님께서 작업하셨는데요. (웃음) 지금까지 계속 자란다는 느낌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을 냄으로써 고민이 끝났다는 게 아니라 이만큼 자랐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편집자님께서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제목을 지으셨던 같아요. 그리고 뭐, 나이 서른에 책까지 냈으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책에 꼭 싣고 싶었는데 지면상 못 실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철벽 치는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http://blog.naver.com/leeojsh/220824185477)가 있어요. 항상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블블님을 만난 후 왜 그들이 철벽을 치는지 깨닫고 그린 건데 그걸 실었으면 저랑 다른 성격을 가진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었을 거예요. 그밖에도 페미니즘이나 LGBT 관련 이슈도 책의 전체적 느낌상 빠져서 아쉬웠는데 서로의 다름을 이야기하는 「네가 어떤 모습이라 해도」가 실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어쩌면 이 책을 대표하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은데, 「이제야 좋아하게 됐어」가 가장 애착이 가요. 그리면서 많이 울었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제가 어리고 미숙하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러다가 그림일기를 그린 지 1년 정도 됐을 때, 나의 어린 시절이 여전히 내게 좋은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걸 떠올리게 됐어요. 모험도 좋아하고 활달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그때 문득 “아, 이제야 진짜 예전의 나를 미워하지 않고 좋아하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림일기가 결국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그린 것이기 때문에 힘든 시기가 지나기 전까지는 계속 보게 되는데 역대 최고라고 생각해요. (웃음) 감동적이죠.

 

그럼 ‘이건 좀 별로였다’ 싶은 에피소드도 있나요?


지금까지 그런 건 없었어요. 다른 편들에 비해 반응이 안 좋았던 것은 있지만 후회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반응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작가님은 둥둥 떠다니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잘 포착하시는데, 어떤 경위로 영감을 받았나요? 혹은 그릴 내용이 떠올랐을 때 하는 행동이 있으신가요?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한 시기에 상담도 받게 되었어요. 그때 상담 선생님께 제가 감정을 잘 못 느낀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림일기를 그리다 보면 글로 쓸 때는 몰랐던 순간의 표정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슬프지 않다가도 캐릭터가 우는 걸 그리면서 갑자기 눈물이 터지기도 해요. 그런 걸 2년 넘게 하다 보니 제가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많이 연습하게 됐어요. 그릴 내용이 떠오르면 반짝이는 마음들을 바로 핸드폰에 메모해놔요. 그리고 그 감정이 어땠는지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제 생각과 마음에 대해 좀 더 곱씹어보고 질문을 하는 과정에 있어요.

 

사실, 모른 척하거나 외면한 채로 지나가면 흘러가잖아요. 그걸 포착해서 그림을 그리려면 그 사실과 대면해야 하는데, 힘들지 않나요?


쉽지는 않아요. 얘기해야 하는데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면 오히려 그걸 더 끄집어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왜 이렇게 도망치고 싶지?’라는 생각 때문에요. 도망치면 벗어나는 게 아니라 계속 쌓이다가 방심하는 순간에 나를 덮쳐요. 그래서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집안일처럼 마음을 챙기는 것도 틈틈이 하려고 노력하죠. 너무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생각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살다가 소진되었다는 걸 깨닫고 퇴사를 결정하기도 했고.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리고 독자분들과 이야기하려고 해요. 저는 오늘 고민했던 걸 그때그때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주로 SNS를 통해 소통하시잖아요. 좋은 점도 있지만,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점에서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욕하면 안 되겠죠? (웃음) 사실 지금 맞고소가 진행되고 있을 만큼 힘든 점이 많아요. 작은 공격이라도 당하면 마음의 문을 닫고 싶어져요. 그런데도 저를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분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도 저를 위해 와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마음의 문을 닫으면 이런 마음마저 볼 수 없게 되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인데도 마음을 나누는 그 작은 노력까지도 볼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저는 상처를 입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달겠지만, 그것 때문에 마음을 닫고 싶지는 않아요.

 

photo 2.jpg

 

길을 잃고 외로운 건 나 혼자가 아니야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기 ‘작게 반짝이며 살아가자’며 예쁜 마음, 못난 마음 전부 꺼내어 보여주는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이 있다.”라는 오지은 님의 추천사가 생각나요. 이런저런 일로 걱정이 되어서 먼저 연락하면 늘 괜찮다고 이야기하시는 편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특별히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저도 많이 불안해해요. 그런데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제게 엄청 용기가 돼요. 제가 가진 용기보다 더 크게 보일 수 있는 건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용기를 품앗이해주셨기 때문인 거죠. 그런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은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어 그림일기를 그린다고 하셨는데, 주변 인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가감 없이 그리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책이 출간됐을 때, “너희 부모님 괜찮으셔?”라는 반응이 가장 먼저 나왔어요. 사실 저희 부모님이 제 블로그 애독자예요. 저는 부모님께 제가 느꼈던 걸 감정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그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걸 부모님께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부모님께서 제 그림일기를 보고 우시기도 하고 반성하셨대요. 또 책이 나왔을 때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다만 딸 책이라고는 말씀 못 하시고 조카가 책 냈다고 둘러대세요. (웃음)

 

남편분의 반응은 어떤가요?


남편은 자기가 나온 에피소드가 제일 재밌다고 이야기해요. 귀엽죠. (웃음) 사실 의도적으로라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그리려고 노력해요. 저는 자랄 때 좋은 커플의 이야기를 많이 못 들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좋은 사람들은 굳이 자신이 좋은 걸 이야기하지 않은 거였어요. 그냥 자기가 좋고, 남이 보기엔 자랑하는 것 같으니까. 그러다 보니 저는 연애나 사랑에 대한 생각의 폭이 매우 좁았어요. 좋은 이야기를 통해서 좋은 연애와 결혼도 있고 그건 그 누구의 삶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동생분의 반응은요?


동생은 제가 많이 사랑해요. (웃음) 동생이 정말 많은 용기를 줬어요. 동생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자기 인생 행복하게 당당하게 잘살고 있어요.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을 때 큰 용기가 됐어요. 고등학교 그만둔 애도 잘사는데 내가 석사까지 나와서 못 살겠냐,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웃음) 내 바로 옆에 남들과 다르게 잘사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정말로 칭찬이에요. 그리고 백수 시절, 동생이 제 멘토였어요. 삶의 태도를 많이 배웠죠.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게 힘들지 몰라도 그것 때문에 주눅 들거나 잘못했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동생을 통해서 알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다양성에 대해 열려 있는 태도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림일기의 매력은 익살스러운 동시에 마음을 건드린다는 것 같아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이야기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어렵진 않나요?


사실 두 가지를 만족하는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아요. (웃음) 이런 말 하면 좀 웃기지만 제가 유머러스한 편이에요. 친구들한테 말하듯이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제 말투가 나와서 재밌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동은 받으시는 분도 있지만, 아닌 분도 있어요. 사실 좀 셀프랄까.

 

따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에필로그에도 있지만, 제가 이 책을 낼 때 가장 감사한 사람들이 누군가 생각해봤어요. 남편이나 친구한테도 고마웠지만, 저랑 이야기 나눠주신 분들이 제일 감사했어요. 그래서 저는 ‘얼굴 모를 당신’에게 가장 큰 감사를 드린다고 썼는데요. SNS는 혼자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일기를 쓰고 싶었다면 일기장에만 썼을 텐데 저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제가 느끼고 생각했던 걸 같이 공감해주고 이야기해주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제 그림일기를 보고 좋아해 주셨거나 같이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특별한 감정이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소통하실 예정이신가요?


얼마 전에 ‘에브리마인드’라는 상담센터를 개설했어요. 블로그를 통해 꾸준하게 받는 질문은 ‘심리상담을 어디에서 받아야 하나요?’라는 거였어요. 저도 심리 상담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공부도 했지만 섣불리 추천하기에는 불안함이 있었죠. 그래서 제 가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심리상담센터를 개설하는데 이르렀어요. 저는 심리 상담을 제외한 기획, 마케팅, 영업 등을 할 예정이에요. (웃음)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심리 상담을 친절하게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관련된 책도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에요.

 

블로그도 계속할 예정이고 그림일기도 최소한 1년은 더 그리겠죠. 처음 목표가 3년이었는데 지금 2년 조금 넘었거든요. 일단 3년을 채우고 생각하려고 해요. 지금처럼 주되게 그릴 순 없겠죠. 제가 블로거다 보니 몇 년씩 구독하는 블로그가 있어요. 그런 블로그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까, 생각했더니 조금 스산해졌어요. 그래서 저도 갑자기 사라지지 말고 길고 가늘게 오래도록 인터넷 지인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photo 3.jpg

 

“작가님은 작은 기적을 일으키고 있어요”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 속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북토크 시작 전 미리 적어 낸 포스트잇에 적힌 궁금즘뿐만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들으며 생긴 질문, 나아가 팟캐스트를 통해 심리상담의 벽을 낮춰 자신과 지인에게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고백까지 자유롭게 오고 갔다.

 

직장을 그만두셨을 때 등을 떠밀어준 계기, 혹은 순간이 있으셨나요? 그리고 퇴사를 가장 주저하게 만든 말은 무엇이었나요?


퇴사를 결정한 계기는 정말 작았어요. 회사에서 연락처 주소록을 돌리는데 다시 해오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니까 선배가 명조체가 아닌 고딕체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제가 속한 곳이 정말 그런 분위기였어요. 선배의 선호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 하룻밤 내내 고민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이야기했더니 그때부터 계속 면담을 하게 됐죠. ‘너 왜 그러냐’, ‘세상은 다 이런 거다’라는 식의. 그래서 그림에 그린 것처럼 토하듯이 그만뒀어요.
 
저를 제일 힘들게 한 건 ‘오해’라는 말이었어요. “네가 지금 뭔가 잘못 느끼고, 오해하고 있어.”라는 말이요. 오해라는 말은 ‘어, 내가 정말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내가 틀린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느끼는 것에는 맞고 틀리는 게 없잖아요, 적어도 저한테는. 그런데 그 말이 마음에 많이 남아 있어서 ‘저 사람에게는 틀릴 수 있지만, 나한테는 맞는 거야’라는 생각을 정립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상처를 받고 늘 제가 배려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어요. 마음을 다치면서 최선을 다해도 괜찮을까요?


최선을 다한다는 건 자기 마음을 많이 건다는 거죠. 그런데 항상 괜찮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원래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취약해지니까요. 그래서 그 선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운동할 때도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고통이 있고 근육이 잘못되는 고통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내가 지금 피폐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섬세하게 잘 구분하면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비하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은 상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면 나의 고집이 꺾인다거나 작은 오해로 인한 상처는 얼마든지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관계에 있어 자신의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 상처를 감당하되 상처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걸 내가 감당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거죠.

 

책을 출판한다는 건 연재하는 것과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 어떤 느낌이세요?


아직도 떨려서 책을 완독하지 못했어요. 갑자기 수정하고 싶은 게 보이면 어떡해요. 그래서 안 읽고 있어요. (웃음) 책으로 엮여서 나오니까 엄청 떨리고 부담돼요. 이게 과연 잘 팔릴까?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분이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조금은 안정된 상태로 매일 순위를 확인해요. 평가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죠.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가 아니라 폐렴이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문가들이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이야기하는 건, 그만큼 쉽게 올 수 있다는 의미이지 쉽게 나을 수 있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해요. 사실 우울증은 내버려 두면 폐렴 이상으로 인생을 황폐하게 만들어요. 우리나라는 우울증은 많은데 치료는 거의 받지 않아요. 또한 전문가는 치료뿐만 아니라 진단을 위해서도 존재해요. 항상 충치가 있어야 치과를 가는 건 아니잖아요? 충치가 생기기 전에 예방 차원으로 가는 것처럼 심리상담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힘들 때 심리 상담을 찾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어떻게든 직장을 다녀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그 과정에서도 분명 배우는 게 많아요. 힘든 시간 속에서 자기를 지켜가는 연습을 매일 하는 거니까요. 그게 자기를 갉아먹는 수준이 아니라면 자신을 엄청나게 성장시키고 여러모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떠나는 것도 떠나는 대로, 남아 있는 것도 남아 있는 대로 배우는 게 있어요. 제 친구들은 퇴사를 안 했는데 저와 배우는 내용이 다를 뿐이지 배움 자체는 정말 많아요. 그래서 그 시간을 단순히 소진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의미를 찾아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북토크를 마치기 전, 한 독자가 손을 들었다. 부산에서 북토크를 위해 올라왔다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팟캐스트를 친구와 같이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우울증을 가볍게 여겼던 친구였는데 우울증이 폐렴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걸 보고 작가님이 큰 변화를 일으켰구나, 생각했어요. 상담에 회의적이었던 다른 친구도 제가 상담을 통해 나아지는 걸 보면서 상담을 받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 기적에 작가님과 팟캐스트의 힘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늘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서늘한여름밤 저 | 예담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는 서늘한여름밤의 그림일기 중에서도 현실적이지만 따뜻한 에피소드 50여 편을 선별하여, 바쁘게 살아가느라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과 응원을 전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고영성 “아이와 함께 시를 낭독하세요”

$
0
0

1.jpg

 

독서 교육의 핵심은 부모가 독서하는 것

 

지난 10일, ‘예스24 여름방학 특강’이 시작됐다. 올해로 14회를 맞은 ‘예스24 어린이 독후감 대회’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특강은 어린이를 위한 세 번의 강연으로 구성되어 9월 2일까지 진행된다. ‘삶을 바꾸는 아이들의 독서’라는 주제로 열린 첫 번째 강연은 『우리아이 낭독혁명』의 고영성 작가와 함께했다. 독서 전문가이자 사회과학/인문 전문 작가로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부모공부』, 『완벽한 공부법』등을 집필한 그는 이번 강연을 통해 ‘독서 교육법’,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인공지능 시대, 우리 아이들이 갖춰야 할 능력’ 등을 설명했다.

 

“자녀의 독서량, 독서력은 부모의 독서량, 독서력과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독서 교육의 핵심은 부모님이 독서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작가는 통계 자료를 하나 보여줬다. 그가 제시한 ‘문화체육관광부 201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연간 독서량은 78.4권에 이르지만 이후 점차 감소하여 20세 무렵에는 15권 이하로 떨어진다. 19~29세가 1년 동안 읽는 책은 13.5권, 30~39세의 경우 12.5권에 불과하다. 40세 이상의 독서량은 더 적은 것이 현실이다.

 

“부모는 독서를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는 책을 많이 읽게 한다는 거죠. 아이가 긍정적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 공부나 독서를 하게 되면, 나중에도 스스로 할 확률이 높아요. 반대로 부정적 감정이 쌓이면 외부적 조건이 없을 때 스스로 할 확률이 떨어집니다. 이게 ‘감정 기반 학습’인데요. 그만큼 아이가 어떤 마음 상태에서 독서를 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요.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신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는 독서를 하라고 말하고 있어요. 부모가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는 독서가 중요한 삶의 양식이라는 걸 느끼기 쉽지 않죠.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거나 독서 습관을 가지기도 어렵고요.”

 

‘우리 아이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요?’ 많은 부모들이 고영성 작가에게 묻는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직업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작가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 아이가 갖춰야 할 능력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습능력, 창의성, 친 AI, 공감능력을 갖추면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도 잘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언가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중요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이미 알고 있는 지식보다 ‘새로운 정보를 빨리 알고자 하는 능력’ 자체가 더 중요한 거예요. 학습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진 거죠.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문해력’이 필요해요. 글을 읽고 이해하고 평가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해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학습능력이 높을 수밖에 없거든요. 지식의 95% 이상은 텍스트이고, 학습을 한다는 건 글을 읽는 거니까요.”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부모 또한 열린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AI를 비롯한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개방적인 마음을 가질 때 아이에게 ‘친 AI’ 성향을 키워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지 자신의 분야에 AI 기술을 접목시켜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능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예요. 첫 번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공감을 받아야 하고요. 두 번째로는 다양한 사람과 만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문학, 소설을 많이 읽는 거예요. 소설 속에는 인물들 사이의 다양한 갈등이 있잖아요. 마음의 충돌이 일어나는 거죠. 아이들은 소설에 심취하면서 각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게 돼요.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간접 경험하게 되고, 마음 이론이 성장하게 됩니다.”

 

3.jpg


독서가 밥 먹여줍니다!


고영성 작가는 철학적, 생존적, 금전적 측면에서 독서가 유익하다고 이야기했다.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으로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독서가 밥 먹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독서량과 수능점수’, ‘독서량과 소득’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중고등학생 4천명을 연구 조사했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아이와 11권 이상 읽은 아이는 수능 언어의 표준점수가 약 20점 차이가 났어요. 물론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수능점수가 높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모든 시험은 다 텍스트잖아요. 문해력이라는 체력이 높은 아이가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어요. 문해력이 높으면 글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능력이 좋으니까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통계를 내기 위해서 연봉 별로 순위를 매겨보면,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이 높은 연봉의 직장에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독서는 밥 먹여준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강연은 ‘독서 교육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독서 교육을 할 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환경설정”이라고 말하며 “거실에서 TV를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다. TV 대신 책으로 거실을 채워, 집에 들어왔을 때 도서관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는 “TV를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 안방으로 옮겨놓아야” 한다고 말하며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스마트폰 사용에 관해 이야기하며 “아이들에게 영상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다큐멘터리나 교육적인 영상을 함께 보는 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만 2세 이상일 경우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만 2세 이하에게 영상을 많이 보여주면 언어 발달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고영성 작가는 “웬만하면 만 2세 이하에게는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게 좋다. 하루 한 시간 정도는 크게 상관없다. 3~4시간씩 보여줄 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보는 순간 일시적으로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며 “독서 후에 영상을 시청해야 한다. 영상을 보고 나서 독서를 하면 효율이 떨어진다”고 조언했다.

 

“우리 나이로 6세 이하의 아이들을 ‘예비 독서가’라고 해요. 스티븐 핑커가 말하길 “소리에 관한 한 아이들은 선이 이미 연결된 상태이다. 문자는 조심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다”라고 했는데,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듣는 데는 천재이지만 읽는 데는 바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조기 한글 교육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게 더 비효율적입니다. 한글을 많이 알려주기보다 책을 읽어주는 게 훨씬 좋아요. 일찍 책을 읽어주는 게 중요하지만, 억지로 하지는 마세요. 독서에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해주는 게 중요해요.”

 

이 날 강연에서는 ‘연령별 독서 교육법’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만 나이가 아닌 우리 나이를 기준으로 6세 이하는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게 효율적이다. 7~8세 무렵에는 문자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개인차가 있지만, 7세부터 문자를 인지하고 소화할 수 있는 뇌 발달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까닭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을 일컬어 작가는 ‘초보 독서가’라 명명했다.

 

“7~8세 시기에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데요. 여기에 더해서 한글 교육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 만약 유치원,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다면 가르쳐주실 필요가 있겠죠. 하지만 아이가 교육기관에서 한글을 배운다면 그것만 따라가게 해주시면 됩니다. 중요한 건, 이 시기에 책 읽어주는 걸 멈추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전히 책을 읽어주셔야 하고, 읽어주시는 책의 레벨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셔야 합니다.”

 

4.jpg


아이와 함께 시를 낭독하세요


‘해독하는 독서가’라 불리는 8~11세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를 매칭시키는 것”이다. 고영성 작가에 따르면 “문자와 소리를 빨리 매칭시키는 아이가 나중에 독서를 잘할 수 있다”고 한다.

 

“문자와 소리를 빨리 매칭시키려면 자신이 발음하는 걸 귀로 잘 들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묵독이 아니라 낭독을 많이 해야 돼요. 묵독을 하기 시작하면 계속 잘못된 음가로 글을 보게 되거든요. 나중에 발음을 고치기는 하겠지만 그 과정이 늦어지죠. 그리고 낭독을 통해서 문자와 소리를 빨리 매칭한 아이일수록 묵독도 더 잘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는 낭독을 많이 시키는 게 좋습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낭독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고영성 작가가 제시한 것은 ‘시 낭독’이다. 짧은 한국시를 골라 일주일에 한 작품씩 아이와 함께 낭독하는 것을 권한다.

 

“독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게도 문턱을 낮춰서 (독서에) 진입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짧은 시’를 낭독하게 하는 거예요. 시를 읽으면서 잘못된 음가를 교정해 줄 수 있고, 하나의 시를 일주일 동안 반복해서 낭독하면 자연스럽게 올바른 음가를 터득하게 돼요. 소리와 글자를 빨리 매칭시킬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시는 은유 덩어리잖아요. 시를 통해서 (단어의) 사전 의미 너머를 볼 수 있는 거예요. 은유를 많이 접하고, 많이 구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생각의 깊이가 깊어질 수밖에 없죠.”

 

11세 이상의 아이에게는 책 읽기를 ‘경험하게’ 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아이가 읽은 책과 호기심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책을 읽은 후에 실제로 해볼 수 있는 일들을 경험하게 도와주는 것이 좋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고영성 작가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지’ 물었다. 지나친 학업 부담으로 행복도가 낮은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지금 이 아이가 행복한가’를 한 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아이에게 하는 말, 행동, 생각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루 한 번이라도 ‘아이가 행복한가’ 하고 자문하면서 양육하고 교육하게 된다면,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한 가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아이 낭독혁명 고영성, 김선 공저 | 스마트북스
『우리아이 낭독혁명』은 우리 아이들의 독서교육 및 학습전략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성우 시인 “글은 말로 그리는 그림, 마음을 눈에 보이게 말하자”

$
0
0

 

DSC04441.jpg

 

“엄마, 이건 뭐야?”
“아빠, 저건 뭐야?”

 

말문 트인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다. 그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보다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내기 마련. 『아홉 살 마음 사전』은 ‘다행스럽다’, ‘용감하다’, ‘철렁하다’, ‘고맙다’처럼 마음을 표현하는 말 80개를 사전 형식으로 담아냈다. 그 말에 해당하는 상황을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보여주어 말의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이것은 박성우 시인이 자신의 자녀와 마음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실제 시인의 자녀가 아홉 살일 때 마음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쓰기 시작했던 것. 『아홉 살 마음 사전』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눈에 보이게” 쓴 책으로 마음에 관한 말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의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지난 8월 12일, 화창한 토요일에 예스24 여름방학 특강 2강 ‘어린이를 위한 감정표현사전’이 열렸다. 박성우 시인의 이번 특강은 『아홉 살 마음 사전』의 사용법과 자녀와의 의사소통에 관한 시인의 말을 서두에 전하고, 특강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마음 표현하기 실습과 발표를 이어 진행했다.

 

DSC04477.jpg

 

조금 더 귀 담아 들어볼 것


『아홉 살 마음 사전』은 제 딸과 같이 썼어요. 딸이 아홉 살이 되던 때에 썼는데요. 이때가 되면 마음에 대해 많이 물어보죠. 그 전에는 보는 대로 물어보고요. “아빠, 이건 뭐야? 저건 뭐야?”(웃음)하면서요. 그런데 마음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하면 설명하기가 무척 힘들어요.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설명하려니까 말이에요. 국어사전 뜻풀이를 읽어줘도 사실 몰라요. 그래서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눈에 보이게 써주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쓴 책이 『아홉 살 마음 사전』입니다.”

 

박성우 시인은 아이들과 대화를 잘하고, 마음을 잘 나누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했다. 아이를 온전한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해주기, ‘그냥’이라는 말로 넘어가지 않기, 구체적으로 표현하도록 하기, 자연과 친하게 해주기 등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자녀와 대화를 하려고 애썼더니 자녀의 표현력도 크게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

 

“한 아이가 ‘비는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라고 표현을 해요. 이슬비겠죠. 왔다 간지도 모르게 살짝 온 거죠. ‘비는 피아노의 높은 음’이라면 어떨까요. 아주 경쾌한, 힘 좋게 오는 비겠고요. ‘그냥’이라는 말로 넘어가지 않고, 이야기를 할 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게 하다보면 아이들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저도 아이의 말을 받아 쓴 것만으로 동시집을 두 권이나 냈어요.(웃음)”

 

요건 찔레고 조건 아카시아야.
잘 봐, 꽃은 예쁘지만 가시가 있지?

아빠 근데, 찔레랑 아카시아는
이름에도 가시가 있는 것 같아.
(「가시」전문, 『우리 집 한 바퀴』, 10쪽) 

 

모든 아이들이 놀라운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다만 시인은 그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동시를 써낸 것뿐이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리지 말고 조금 더 귀 담아 들어볼 것을 당부했다. 특히 아이가 떼를 쓸 때 아이의 말에 더 귀 기울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떼를 쓰거나 짜증을 낼 때는 대부분 아프거나 몸이 안 좋을 때예요. 그걸 표현하는 건데 어른들은 혼을 내죠. 짜증을 낼 때 더 사랑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딸아이에게 한 가지 잘못을 해서 지금까지도 구박을 받는 일이 있어요. 아이가 여섯 살 때 과자를 혼자 먹기에 엄마와 나눠 먹으라고 했는데 끝까지 혼자 먹는 거예요. 과자를 얼마나 안 사줬으면 그랬겠어요. 그걸 모르고 장롱 보고 서 있으라고 했죠. 그 얘기를 지금도 해요. “아빠가 그때 나 농 쳐다보라고 했잖아.”라고요. 지금도 그 얘기만 하면 꼼짝 못합니다.”

 

매일같이 신나는 일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시인은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아빠 산책’을 했다. 이 시간은 그야말로 서로의 마음을 산책하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시인은 산책 시간을 아이에게 꾸준히 말 걸고,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시간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엉뚱하게 대답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것을 존중하고, 귀하게 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상상력이 멋지구나, 라면서 계속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며 상상력 실습을 시작했다.

 

DSC04496.jpg

 

글은 말로 그리는 그림


“주입식 교육이 이런 거죠. ‘쟁반 같은 달’ 같은 것만 계속 알려줘요. 달에 대한 상상력이 없어지게 돼요. 달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굉장히 멋진 말을 많이 하거든요. 이제 달을 보면 이것 같다, 고 하는 걸 적어보겠습니다. 달은 둥글죠? 둥근 것 아무거나 생각해보세요. 종이에 적어볼 거예요. 그림을 그려도 좋아요.”

 

같은 달을 두고도 어린이들의 표현은 각기 달랐다. 튜브, 바퀴, 단추, 강아지 코, 달고나, 지구, 블랙홀, 달팽이, 수박 등이 등장했다. 여기에 조금만 이야기를 덧붙이면 그대로 시가 될 듯했다.

 

“환한 색의 튜브를 그렸어요. 달 튜브를 타고 밤하늘을 난다고 생각하면 참 기분이 좋아지죠. 아이들의 상상력이 정말 놀랍습니다.”

 

달 표현하기를 마친 후 박성우 시인은 ‘고맙다’와 ‘미안하다’라는 말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 표현해보기 실습을 이어 진행했다. 시인은 “구체적으로” 써보라는 주문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글은 말로 그리는 그림. 마음을 눈에 보이게 말하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나도 빌려줄게.”
짝꿍이 지우개를 빌려줄 때 드는 마음.

더러운 손톱을 단정하게 깎아 준 아빠에게
뽀뽀를 해 주고 싶은 마음.

누나가 만들기 숙제를 도와줄 때 드는 마음.
(『아홉 살 마음 사전』, 11쪽 ‘고맙다’ 부분)

 

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사전을 찾아본들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시인은 이때 예가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말의 의미를 금방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어떤 감정이 생길 때 아이들에게 그것을 표현하게 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핵심은 소통이다. 시인은 “시간이 될 때 자녀와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를 골라서 같이 마음 사전을 써볼 것”을 제안하는 것으로 이날 특강을 마무리했다.

 


 

 

아홉 살 마음 사전 이수연 저 | 북로그컴퍼니
구체적이고 실감 나는 그림과 친절한 설명을 통해 다양한 감정 표현을 익힘으로써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은 물론, 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돕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언어와 복종을 넘어

$
0
0

 

image1.jpeg

 

 

지난 8월 20일, 서교동에 위치한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신간 『기호와 기계』서평회가 열렸다. 이탈리아 출신 철학자인 랏자라또는 1980년 프랑스로 망명해 『부채인간』, 『사건의 정치』 등의 저서를 펴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서평회는 『기호와 기계』번역을 맡은 심성보 역자의 사회 아래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이준형,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 운영자 정한별, 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 오영진 세 사람의 발표로 시작했다. 본격적인 서평에 앞서 역자는 『기호와 기계』가 어떤 책인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기호와 기계』는 원래 단행본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랏자라또가 프랑스 사회의 사건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적은 모음글입니다. 저자가 워낙 다양한 분야, 다양한 사건과 이론을 다루기 때문에 책을 단순화해서 소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요약해 보자면, 『기호와 기계』는 크게 두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나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고요. 다른 하나는 비판이론가, 넓게 보면 좌파 이론가에 대한 비판입니다. 지젝, 버틀러, 바디우, 랑시에르와 같은 이론가들이죠. 국내에서는 이들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거의 없었기에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심성보 역자는 서평문을 발표해줄 세 사람을 소개했다. 그리고 첫 발표자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의 이준영이 나섰다. 그는 기표적 기호계와 비기표적 기호계를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해 나갔다.

 

이준영 :기표적 기호계는 알튀세르가 말하는 호명의 방식을 통한 복종으로 주체화가 이루어집니다. 반면 기계적 배치로 이루어지는 비기표적 기호계의 작동을 저자는 예속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예속이란 의식을 거친 명령이 아닌, 기계 일부처럼 배치되어 흐름 속에서 지배하는 기제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저자는 비판이론가들이 상정하고 있는 언어의 근원적인 위치를 비판합니다. 언어 이외에 비기표적 기호계의 예속적 효과 역시 주체성 생산에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말하면서요.

 

랏자라또는 비판이론이 복종적 주체화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을 전복하고 예속적 과정들, 실존적 과정들을 들추어내고 그에 대한 분석을 요청했습니다. TV와 영화를 예로 들며 TV는 담론적이고 언어적이라면, 영화는 실존적인 매체에 가깝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은 여전히 책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어적인 것, 의식을 거치는 것이 아닌 다른 기호가 있다는 지적을 여전히 책과 언어, 그러니까 기표적 기호계를 통해 표현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술과 같은 다른 분야와 조응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발표자는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의 운영자이자 카이스트 대학원 박사과정의 정한별이었다. 그는 주로 과학과 관련해 저자의 서술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image2.jpeg

 

정한별 : 랏자라또가 비기표적 기호계 얘기를 하면서 과학을 많이 예시로 듭니다. 저는 이런 예시가 적절치 않은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언어를 비기표적 기호계로 본다는 것은, ‘과학의 모든 이론은 합의다.’라는 가정이 깔려있거든요. 예를 들어, ‘힘’이라는 개념은 실재하는 것이 아닌데 과학자들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합의를 해서 F=ma라는 공식을 만든 것이다, 라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실체가 없는데 과학자들이 자연으로부터 언어, 혹은 개념을 잡아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과학을 비기표적 기호계로서만 바라본다는 것은 과학자의 주체성을 과학으로부터 분리해내는 행위와 다를 게 없어요. 기계와 기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그 속성을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랏자라또가 차용해온 멈포드의 ‘기계’는 단순히 수사적 개념으로의 기계가 아니라 물리적 실체로서의 존재이기도 하거든요. 저자의 기계와 기술에 대한 사유가 산업시대에서 멈춰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마지막 서평자는 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인 오영진 평론가였다. 그는 먼저 저자가 사용한 ‘기계’라는 용어에 관해 설명했다.

 

image3.jpeg

 

오영진 : 먼저 환기를 드리고 싶은 것은, 저자가 말하는 ‘기계’는 흔히 말하는 기계적이라는 표현과는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계라는 것은 기계들(machines)입니다. 기계와 기계의 환경, 그리고 환경의 흐름까지도 통칭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상 쓰는 기계적이라는 말과는 오히려 반대죠. 기계의 생명력을 설명하는 단어에 가까워요.

 

우리는 기계적 환경에 예속되어 전 지구적 에너지와 정보의 흐름을 매개하는 주체성을 획득합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주체성은 전 지구적 대량생산의 산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기계와 예속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기호와 기계』는 푸코의 장치론에 대한 랏자라또의 보강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속을 통한 새로운 주체성의 가능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언어는 고유성과 잉여성이 존재하지만, 언어는 잔여물을 남기지 않는다.

 

오영진 :콜 센터 통화를 생각해 보세요. 직원은 로봇처럼 매뉴얼화된 친절한 인격을 연기할 뿐이죠. 언어의 맛을 느낄 수 없는 비인간적인 대화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비인간성은 저주이면서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잉여성이 없기 때문에 나는 더 매끄러운 존재가 될 수 있어요. 매끄러운 주체성을 가진 나는 뜬금없는 것들과도 접속할 수 있거든요. 저자가 말하는 비기표적인 행위의 가능성은 무수한 많은 접속의 가능성과 그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탈구해내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분의 휴식을 가진 뒤, 서평 발표자들과 청중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소규모 서평회였기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랏자라또가 모순된 두 생각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철학에는 구성주의적 관점, 실재론적 관점이 있다고 보면 랏자라또는 과학의 관념, 이론이 합의에 따라 도출되었다는 점에서 주로 구성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에서 활용하는 다이어그램, 수식 등을 비기표적인 기호계로 본다는 점에서는 실재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즉, 과학 자체에 대해서는 구성주의적 관점을 가지면서도 가따리의 기호계 논의로 들어오면서 과학의 도구를 비기표적 기호로 대응시켜 논리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둘 중 하나의 관점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방식을 취하는 것이 실제 과학에 가까운지 정한별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정한별:상충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과학과 기계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가 하는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영진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매끄러운 인간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약간 이해가 돼요. 숫자라는 것이 가장 매끄러운 것 중 하나잖아요. 그런 걸 강조하는 서술을 하려다 보니 그런 모순이 발생한 것 같아요.

 

저로서도 한쪽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쁘게 말하면 취사선택이지만, 양쪽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디까지 실재론적 입장이고 구성주의적 입장인지 선을 그어줬으면 좋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성보: 제가 약간 보충을 하자면, 질문자께서는 구성론은 기표적인 것, 실재론은 비기표적인 것으로 생각하신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저자의 의도와 약간 다른 것 같아요. 분석적으로는 구분이 되지만 현실에서는 기표적 기호, 비기표적 기호계가 혼합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거든요.

 

저자가 사용한 복종, 예속이라는 표현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갔다.

 

오영진:최근에 박경근이라는 분의 1.6초라는 설치미술 작품을 보았습니다. 기계 공정을 1.6초 단축했을 때 기계의 모습을 담은 영상 작품인데요. 회사가 이런 결정을 하니, 공장 노동자들은 난리가 났죠. 그만큼 노동자들이 힘들어지는 것이니까요. 마치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처럼요.  이 예술가가 현장에 가서 그 모습을 보았는데, 오히려 기계는 너무 경쾌하고 신났다는 느낌을 받은 거예요. 현장에서는 너무 비인간적이고 복종의 문제가 생겼지만 말입니다.

 

공장주와 직원의 관계는 복종이에요. 복종하느냐, 마느냐 혹은 어떤 식으로 복종하느냐의 문제죠. 그런데 우리가 이 사이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기계 자체의 경쾌함입니다. 회사가 1.6초를 왜 단축했을까요? 우리의 수많은 욕망 때문이죠. 사람들의 무의식적이고 네트워크화된 욕망이 그 공정을 당기게 만든 거죠. 그런데 이 이미지를 예술가가 찍어서 재배치하니 부정적인 속성이 사라지고 생기가 가득해졌거든요. 예속, 비인간적인 것의 가능성이 이런 거로 생각해요.

 

이준형:복종은 의식적이고, 주체에 작용하고 이데올로기적인 거라고 얘기한다면 예속은 기계적 배치를 통한 자연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영진:다른 예가 하나 떠오르는데, 박정희 시기에 학생들이 체벌을 당해가면서 교양 교육을 받았잖아요? 이 교육이 시간이 지난 뒤에 80년대 수많은 운동권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결국, 그 토대는 억압당하면서 교양 교육을 받은 효과에서 나온 거거든요. 때려가면서 복종시켰는데 스스로 예속화할 줄은 몰랐던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복종과 예속의 관계를 끊임없이 경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준형 선생님께서 새로운 매체를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배치할 수 있다면 운동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자본이 만들어 놓은 틀을 극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스럽습니다.

 

이준형:음악을 예로 들자면, 음악은 단순히 회사나 가수의 소유가 아니죠. 팬들이 다른 식으로 충분히 전유할 수 있어요. 패러디, 팬픽과 같은 방법으로요. 이런 것은 산업이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죠. 산업에만 기대기보다는 대중의 능동적 활용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자본에 의해 점유가 덜 된 분야들, AR 혹은 VR과 같은 새로운 분야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영진:아티스트에게만 그런 걸 기대해서는 안 되죠. 이화여대 학생들이 경찰 앞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것과 같은 일이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심성보:이화여대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것은 기존의 운동권에는 낯설죠. 전혀 다른 감응이니까요. 그런 식으로 매체가 운동을 이끌어나가고 창조할 수 있어요. 그리고 랏자라또는 자본이 모든 것을 장악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본이 모든 것을 포섭할 수는 없고,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아래쪽에서는 다른 움직임이 있다는 거죠.


 

 

기호와 기계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저 / 신병현, 심성보 공역 | 갈무리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당신과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

$
0
0

 

_15A7434.jpg

 

8월 22일, 지겹도록 내리던 장맛비가 그치고 햇살이 투명한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북적거리는 홍대 어딘가에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CY시어터에서 열린 예스24 여름 문학학교 1강을 듣기 위해서다.


‘지금, 소설을 읽는 이유’라는 주제로 소설가 김금희, 임현, 손보미가 이야기를 나누고, 문학평론가 허희가 사회를 맡았다. 행사에 참여한 소설가들은 모두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행사는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면 차례로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_15A7410.jpg


우연히, 또 충동적으로


허희:다들 요즘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김금희:제발트의 『현기증』이라는 책이요.


임현:엠마누엘 카레르의 『러시아 소설』. 어딜 가나 제가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작가입니다. 기본적으로 르포르타주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손보미: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추천해 드립니다. 독자의 흥미를 끌고 끝까지 유지하는 힘이 대단해요.

 

_15A7626.jpg


허희:공통적으로 외국 작가를 추천해 주셨네요. (웃음) 혹시 한국 문학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임현:이승우 작가님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김금희:예전에 어떤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받아서 대답했더니, “너는 여성작가들만 좋아하네?”라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생각해보니 90년대에 주로 활동하신 여성작가님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은희경, 신경숙, 권여선, 하성란 작가님 등등이요.


손보미:개인적으로 편혜영 작가님을 좋아하고요, 최인호 님의 『술꾼』은 지금 읽어도 참 세련됐다고 느껴져서 추천합니다.


허희:읽을 소설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김금희:주로 서점에 가서 우연히, 또 충동적으로 선택하는 것 같아요. 주위에서 추천 받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손보미:시리즈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쭉 읽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들을 읽어요. 어떨 때는 제목만 보고 끌리는 책을 고르는데 그 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기억에 남네요.

 

_15A7463.jpg


임현:저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이 사람이 궁금하다, 맘에 든다 싶으면 어떤 책을 좋아하냐고 물어봐요.


허희:그렇다면 싫어하는 소설은요?


임현: 1/3 이상 읽었는데도 예상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책은 중도에 덮는 편입니다.


손보미:저는 간단해요. 재미없는 책이요. (웃음)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들어도 싫어합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거지만 야한 장면이 나오는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김금희:느낌표가 많은 책을 싫어해요. 말 그대로 문장부호 느낌표요. 뭔가 이야기의 템포가 너무 빠르다거나, 제가 따라가기 벅찬 속도면 잘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허희:대답만 들어도 세 분의 소설이 가진 특성이 잘 드러나네요. 손보미 작가님의 소설은 말 그대로 재미있고, 김금희 작가님의 소설은 고요하지만 그 안에서 인물의 내면적 풍랑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리고 임현 작가님의 소설은 지루함과 거리가 멀죠.

 

_15A7549.jpg

 

외부의 억압을 뛰어넘는 이야기의 힘


허희:오늘의 주제와 맞닿은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작가님들이 소설을 읽고,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답변 부탁드립니다.


임현:사람 개개인이 가진 감정을 더욱 계발시키고,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김금희:제가 얼마 전에 친구들과 쿠바 여행을 다녀왔어요. 쿠바는 억압이 심한 나라여서 인터넷도 특정 장소에서만 이용할 수 있을 정도예요. 그 나라만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모두가 집 밖에 나와있다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이야기하길 참 좋아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희가 택시를 잡고 있으면, 반경 50m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문이 쫙 나요. (웃음) 모두 같은 마음으로 저희를 도와주려고 하죠. 저는 이게 서로에게 관심이 많다는 증거라고 느꼈어요. 소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외부의 억압, 현실적 제약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이야기의 힘이 있어요. 소설은 허구지만 그 안의 진실로 인해 함께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손보미:어떻게 보면 소설을 읽는 것만큼 시간 낭비인 일이 없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시간 낭비가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허희:정성 어린 답변 감사합니다. 이제 독자 분들이 남겨주신 질문을 받을 차례인데요, 첫 번째 질문입니다. ‘글쓰기가 밥벌이가 되나요? 그리고 젊은작가상 상금은 어떻게 쓰셨나요?’


김금희:먼저 상금은요, 저도 그렇고 제 주위를 보면 대부분 빚 갚는 데 많이 씁니다. 어느 모임에서 김영하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나요. “점~점 나아집니다!” 라고 호탕하게 말씀하셨어요. 생활이 점점 나아지는 건 사실이에요


손보미:저와 같은 나이인 친구들, 직장인과 비교해 보면 사실 택도 없죠. 내가 회사에 들어갔다면 지금쯤 대리는 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해요. (웃음) 상금은 어떻게 썼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네요. 돈 쓰는 게 다 그렇잖아요?


임현:사실 글 쓸 때 돈 생각하면 쓸 수가 없어요. 자꾸 딴 생각으로 빠지고, 집중이 안됩니다. 상금은 마침 이사를 갈 때라 보증금에 보탰습니다.

 

_15A7683.jpg


허희:마지막으로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김금희:소설가를 지망한다는 건, 공적인 영역에 자기 목소릴 내고 싶다는 뜻일 거예요. 요즘은 매체가 발달되어 있어서 소설 쓰기는 취미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간단히 생각해 ‘언제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들어주지?’라는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소설도 결국은 들어주고,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요. 진실된 목소리로 내 자세를 낮추어 얘기할 때 사람들이 집중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공간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설가를 지망하거나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신중한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아 대답해주신 덕분에 집에 돌아가는 길이 아주 충만한 시간이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준, 김민정 “시는 내가 가진 감정을 솔직하게 적는 것”

$
0
0

_15A8242.jpg

 

지난 8월 24일, 홍대입구역에 있는 CY씨어터에서 ‘예스24 문학학교’ 2강이 진행됐다. 김금희, 임현, 손보미 소설가와 함께 한 1강 “지금, 소설을 읽는 이유”에 이어 박준, 김민정 시인이 진행을 맡아 “시인의 삶, 삶 속의 시”라는 주제로 2시간을 가득 채웠다. 총 3강으로 구성된 ‘예스24 문학학교’의 마지막은 조남주 소설가와 노회찬 의원이 “우리네 삶을 그린 소설 읽기”의 제목으로 독자를 만났다.

 

최근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발표해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이어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는 박준 시인과 문학동네, 난다 편집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의 김민정 시인은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롭고 유쾌한 두 시인의 만담을 통해 문학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_15A8322.jpg

 

시를 쓰기까지 ‘나’의 유년시절

 

박준 :유년을 들여다보면 뭐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하는 게 없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개 키우는 걸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굉장히 공부를 잘해야 하더라고요. 다만 저는 온통 개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찬 일기를 매일 썼어요. 처음에는 관찰 일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픽션을 가미해서 소설도, 산문도, 시도 아닌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대학에 가기 위해 기르던 개를 분양 보내고 나니 일기에 더 쓸 게 없어 제 하루를 쓰기 시작했어요. 대부분 후회와 자기 살생에 관한 감정이었는데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때 썼던 게 물론 시는 아니에요. 저는 문학의 첫 번째 이유가 내가 가진 감정을 솔직하게 적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보편적으로 아름답게 적는 건 그 다음이죠. 지금에서야 저는 일기에 제 감정을 쓰면서 문학의 첫 수업을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요.

 

김민정 :박준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단히 많은 부분이 저랑 반대예요. 저는 오감으로 시를 쓰는 편인데 제 시에는 죽은 개에 대한 이미지가 많아요. 아주 어렸을 때, 그슬린 채로 팔다리가 잘리고 이를 악문 개가 던져져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저희 집은 개를 키웠는데 ‘아,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뭔가를 빤히 쳐다보고 관찰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저희 동네에 매일 술에 취해서 아내를 패는 떡집 아저씨가 있었어요. 그것도 밖에 나와서 가래떡으로. 저는 그걸 보면서 ‘왜 저걸 맞고 있어야 하지?’ ‘왜 아무도 말리지 않지?’ ‘왜 다음 날 저 아줌마는 저 아저씨 밥을 해주고 있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거죠.


그리고 어릴 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일에 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초등학교 때까지 육상을 했는데, 그리피스 조이너라고 지금도 깨지지 않는 100m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나왔어요. 그 여자가 뛰는 걸 보자마자 ‘이거 백날 해도 안 되겠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아는 건 되게 슬픈 일이에요.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발레도 해보자마자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내가 안 되는 걸 하나씩 빠르게 지우니까 하고 싶은 게 몇 개 안 남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는 그림 보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그리는 건 죽을 만큼 싫어했어요. 제가 보는 만큼 잘 못 그리는데 그걸 인정하기가 싫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도저히 그리지 못해서 백지를 냈는데 반항하는 거로 오해해서 선생님이 스케치북으로 때렸어요. 그때 스케치북 스프링에 머리가 꼈는데 그게 너무 치욕스러웠어요. 그때 내가 자의식이 강하다는 걸 깨달았고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이상한 눈 하나가 뾰족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지금까지도 국어사전을 많이 보라고 얘기해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려주거든요. 저는 우리말로 된 야한 것, 의성어나 의태어, 잘 안 쓰는데 매력적인 단어에 형광펜을 그었는데 제 친구들은 각각 물리학에 관련된 것이나, 한자에 줄을 긋더라고요. 자신이 표시한 걸 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어요. 전 종이나 질감, 읽는 걸 좋아하니까 이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점을 보고 오셨는데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셔서 문창과에 진학했죠. (웃음) 원래 문인은 벌어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뒤이어 김민정 시인은 박준 시인과 자신의 공통점이 삶에서 경험한 어떤 장면에 대한 섬세한 기억력에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준 시인은 대학 시절의 기억을 언급하며 김민정 시인과 달리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늦게 알았다고 고백했다.

 

_15A8443.jpg

 

창작의 경험, 자만심과 굴욕의 공존

 

박준 :저도 할 줄 아는 게 노트를 채우는 것뿐이니까 글과 관련된 학교에 갔고, 어쩌다 보니 시를 읽고 합평하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어요. 덕분에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게 됐는데 너무 어려운 거예요. 모르는 단어가 없는데 문단 단위, 나아가 한 편의 시가 이해가 안 가는 게 왠지 수상했어요. 그때 갑자기 시 동아리 선배들이 대단하게 보였어요. 추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처음 본 거죠. 문학의 숲 안으로 한 발자국 다가가는 과정이었어요.


그때부터 바보처럼 ‘이거 나도 쓰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황태, 동태, 먹태 같은 시를 하루에 열 개도 넘게 써서 신춘문예에 도전했는데 6년을 떨어졌죠. 저는 그때 제가 시를 가장 잘 쓴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자만심을 갖고 있었던 거죠. 일반적으로 자만심은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처음 무엇을 시작하거나 노력할 때, 서둘러 피드백이 오지 않는 일을 할 때는 중요해요. 자만심마저 없으면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없으니까요. 근데 자만심만 있으면 안 돼요. 때로 가장 냉철한 비평가가 내면에 있어야 해요. 객관성이 필요한 거죠. 그렇다고 또 너무 비평만 하면 글을 쓸 수 없어요. 그러니까 자만심 혹은 자아존중감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객관성이에요. 저는 그게 25살에 습작할 때에나 왔는데 제 습작 과정은 비평가를 내 안에 들이면서 한 단계 발전한 것 같아요. 반반씩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김민정 :처음에 소설을 쓰려고 대학에 갔어요. 첫 과제가 ‘가족’에 관한 시를 쓰는 게 과제였는데 친구들이 쓴 걸 보니까 제 과제는 시를 쓰려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학교를 자퇴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강의실을 나오는데 선배로부터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받았어요. 바로 펼쳐봤는데 하나도 모르겠어서 고민하다가 매일 점심을 굶고 한 권의 시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산 시집들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면 뿌듯했어요. 그때 저는 인천 출신 시인이 쓴 시집을 주로 샀어요. 나랑 같은 동네를 살았던 사람이면 그 시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장석남 시집에서 제가 아는 음반 가게를 배경으로 한 시를 발견한 거예요. 내용은 몰라도, 이해는 못 해도 한 편의 시가 그림처럼 다가올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왜 좋은지 모르는데 그 자체로 예쁘고 재미있는 것. 그렇게 하나둘 발견하기 시작하니까 재밌었어요. 그냥 책 자체가 좋았던 거죠.


그렇게 시집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최승자 시인의 시 속에서 ‘못 잊어, 개새끼’라는 구절을 발견했어요. 순간, ‘시에 이런 걸 써도 돼?’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 슬프고 이런 걸 갖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자연이 들어가는 시 같은 걸 쓰기 싫었던 이유를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내 마음대로 시를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가식을 벗고 마음대로 쓰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부담을 버리니까 몸에서 막 글이 나왔어요. 그렇게 수업시간에 냈더니 교수님이 3000원 주시면서 네 시는 시가 아니니까 버리고 밥이나 사 먹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왜 시가 아닌지는 알려주지 않으면서 안된다고만 하는지 몰랐죠.

 

김민정 시인은 IMF 가 터질 무렵 잡지사에 취직했다. 적성이나 회사의 거리를 계산한 겨를 없이 다니면서 ‘세상에서 가장 자신감이 없었고 바닥에 눌어붙은 밥풀’ 같았다고 회상한다. 그러다 우연히 정채봉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시를 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김민정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느닷없이 대학생 때 썼던 시에 대한 기억이나 욕구가 떠올랐어요. 출퇴근하면서 과거에 썼던 시를 출력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아직 자신이 없었어요. 하루는 동생과 같이 지하철을 탈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동생이 “손 안 치워, 씨발!” 욕을 하는 거예요. 근데 욕을 하니까 갑자기 동생 주변에 공간이 생겼어요. 그때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소리를 질러야 알아듣는구나, 라는 걸 알았어요. 그 이후로 막 쓰기 시작해서 신춘문예에 낸 거죠. 그렇게 24살에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하게 됐고 그제야 시를 공부하고 닥치는 대로 시를 읽었어요.

 

‘개성 없음’을 개성으로

 

이어서 김민정 시인의 낭독이 이어졌다. 김민정 시인은 시를 쓸 때 마음대로 단어를 써도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길 바란다며 자신의 시 ‘젖이라는 이름의 좆’을 낭독했다. 박준 시인은 김민정 시인만의 개성을 강조하며 본인이 고민했던 ‘개성 없음’에 대한 일화를 들려줬다.

 

박준 :습작을 할 때 제 시에 개성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저처럼 개성이 없던 친구 둘과 함께 각자 개성을 만들어 오기로 했죠. 한 친구는 불행하게 살다 간 음악가에 대해 시를 쓰겠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집시들을 동경해서 그들의 사유를 공부하겠다고 한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 개성을 못 찾았어요. 두 명의 친구는 그 이후로 굉장히 시가 좋아졌어요. 저는 개성 없음을 개성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의 개성을 내세울 게 아니라 나와 타인이 쓰는 일상어를 시로 옮겨 써보자는 데에 생각이 미친 거죠. 무수히 많은 시인이 이런 방법을 썼죠. 하지만 이건 따라 쓰는 게 아니에요. 내가 놓인 삶의 위치와 정서가 다르니까 모두가 다 새로운 게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박준 시인 역시 자신의 시 ‘가을의 말’을 낭독했다. 일상에 널려있는 타인의 말을 그대로 옮겨온 박준 시인의 시는 그가 얼마나 섬세하게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시인에게 묻다

 

정말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고 생각하세요?

 

박준 : 있죠. (웃음) 예전에 취재차 놀이공원에 갔어요. 미아보호소의 풍경을 써야 했거든요. 재미있는 게 4살 이하의 어린이들은 울면서 들어와요. 근데 5살, 6살 그 이상이 되면 울지 않아요. 울먹거리면서 들어와서 꿋꿋하게 부모님 이름과 연락처를 말해요. 그렇게 연락을 취해서 부모님이 오면 그제야 울어요. 그게 너무 슬펐어요. 어느 순간에 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울지 않는 게 슬펐어요. 울면 물론 달라지는 게 조금씩 있죠. (웃음)

 

제목은 어떻게 지으시나요?

 

김민정 :사실 저는 제목 짓고 싶어서 글 쓰고 책 만드는 사람이에요. 이름을 짓는 게 재밌어요. 서점 가서 노는 걸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서점에서 직원한테 책 위치를 물어보지 말라고 그래요. 가서 책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책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과 책의 모양을 다 경험할 수 있는데 직원에게 부탁하면 다른 책을 볼 여력이 없어지잖아요. 한 가지 조언해드리자면, 제목을 들었을 때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말이 나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예요. 주로 욕조에서, 그러니까 원고를 읽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작업해요. 이번 박준 시인의 산문집도 그 과정에서 좀 더 빨리 출간하게 되었고요.

 

박준 :저는 언덕에 관해서 쓰면 언덕이고, 파주에서 쓰면 파주예요. 이번 산문집도 김민정 시인에게 제시했던 제목은 ‘박준 산문집’이었어요. (웃음)

 

시란 무엇인가요? 결국, 좋은 시란 무엇인가요?

 

박준 :문학은 첫 번째로 내가 가진 감정을 언어로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아요. 잘 쓰냐, 못 쓰냐는 두 번째의 문제고 첫 번째의 문제는 쓰냐, 안 쓰냐인 거죠.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쓰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일이 나에게 되돌아와요. 내가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지고 있다는 게 쓰기의 영역이고요. 얼마나 보편적으로 아름답게 쓰느냐는 작가나 시인의 영역이죠. 이것에 이르면 정의가 달라지죠. 누구는 메타포라고 하고, 누구는 이야기라고 하고, 누구는 상징이라고 하고, 이미지나 언어라고 하고. 시에 대한 정의가 다 맞지만 다만, 시는 글인 동시에 말이잖아요. 친밀한 관계에서만 나눌 수 있는 쓸데없는 말들이 있는데 좋은 시란 그런 말 안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김민정 :제 세 번째 시집의 제목으로 시의 정의를 내린 것 같아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무용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의미한 일이잖아요? 있다가 없어질 건데, 살다가 죽을 건데 살잖아요. 너무 열심히 살아요, 남을 죽여가면서 너무 열심히. 무의미한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그 일이 저한테는 시 같더라고요. 세 번째 시집 제목을 그렇게 정했던 것도 7년 동안 놓았던 시를 엮으면서 ‘시도 삶과 똑같구나’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지옥의 섬, 군함도의 진실

$
0
0

20170826_180631.jpg

 

지난 8월 26일, 충정로역에 있는 벙커1에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특강이 진행됐다. 최근 뜨거운 이슈로 주목을 받는 군함도와 관련해 지난 3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발간했다. 생각정원에서 출간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 유족, 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으로, 총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한 “하나의 민족운동사” 같은 책이다.


광복절을 맞아 기획된 이번 특강은 ‘군함도의 진실’과 ‘역사 적폐를 말한다’라는 주제로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승은 책임연구원과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이 강연을 맡았다. 1부의 진행을 맡은 김승은 책임연구원은 2년 전 일본의 군함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언급하며 말문을 열었다.

 

20170826_164759.jpg

 

지옥섬, 군함도의 진실

 

“군함도가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일본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시설을 등재할 때 군함도를 포함한 거죠. 흔히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하면 문화재나 역사 유적을 생각하는데 산업혁명 유산시설은 산업혁명과 관련된 산업시설을 새롭게 유산으로 지정하는 거예요. 세계문화유산 내에 기록유산과 함께 새롭게 생긴 하위 범주인 거죠. 주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등재되었는데 일본이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시설로 지정됐다는 건 아시아 최초로 유일하게 산업혁명에 성공한 나라가 일본이라는 걸 알리는 거죠. 특히 군함도는 일본의 산업혁명이 얼마나 화려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뽑혀요.”


김승은 책임연구원은 일본이 전체 8개 지역에 23개의 시설이 세계산업유산으로 등재됐다며 비판해야 할 점을 차례로 설명했다. 하나의 산업유산이라는 제목으로 한반도보다 넓은 지역의 다양한 시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이상하며 그 시설들을 메이지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녀는 무엇보다 아시아를 침략해 강제 노동을 시킨 대가로 성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인 강제노동과 관련된 5개의 시설은 모두 중공업에 속하며 그 시설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했다는 것이다. 또한, 메이지 시대는 일본이 아시아 침략전쟁을 통해 근대적 개혁과 산업화에 성공했던 시기로, 그 시대의 중공업 시설들은 일본이 산업혁명이 아니라 대외적 침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나가사키 조선소는 미쓰비시 회사의 소유입니다. 미쓰비시는 지금도 일본 자위대 군함의 30%를 만들어요.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일본이 주변 나라를 침략할 수 있도록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기업인데 그게 세계 문화유산이 된 거나 마찬가지죠. 미쓰비시는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보상은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 기업이에요. 미쓰비시가 소유했던 다카시마 탄광도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유산 시설로 등재되었고요.”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 탄광은 1910년 이전에는 건물이 없었다. 최고의 기술력이 응집되었던 화려한 하시마 섬은 1916년 이후의 모습이었다.


“메이지 시대는 1912년이니까 일본이 주장하는 산업혁명 유산에 포함돼서는 안 되는 거죠. 미쓰이 미이케 탄광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통해 재벌이 된 기업의 소유에요. 미쓰이 탄광은 러일 전쟁 때 노동력이 모자라자 전용 감옥을 만들었고 정부를 통해 죄수를 동원해 탄광을 운영해요. 이후 죄수들이 값싼 식민지 조선인으로 대체됩니다. 마지막으로 야하타 제철소는 일본 정부가 청일전쟁 결과로 받은 배상금으로 설립해요. 일본이 전쟁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근본적으로 메이지 시대의 성장은 침략 전쟁 없이 설명할 수 없어요. 일본의 침략 전쟁이 주변 아시아를 어떻게 파괴했는데 그 역사가 담기지 않고서는 안 되는 거죠.”


강제 노동과 관련된 시설에 대한 설명을 마친 김승은 책임연구원은 정한론의 핵심적 근거를 제공한 정치사상가 요시다 쇼인의 개인 학당인 ‘쇼카손주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쇼카손주큐’에서 사상을 실현하고자 성장한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나 강화도 침략을 주도한 기도 다카요시 같은 사람이에요. 문제는 이 시설도 세계문화유산이에요. 일본의 아시아 침략 사상이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인류가 잘못한 과거를 반성하고 반복하지 말자고 유네스코를 만들었는데 그 정신에 어긋나는 거죠. 아우슈비츠는 70년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어요. 산업혁명시설이 아니라 부끄러운 인류의 역사라는 것에 가치를 둔 거죠. 그런데 일본은 침략의 역사를 숨기고 산업혁명의 아름다운 면만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일본은 메이지 시대의 전쟁이 침략 전쟁이 아니라 방어 전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유네스코에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을 조건부 등재로 결정했다. 이 시설들을 통해 역사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때만 등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17년 12월 1일까지 그 해석 전략을 제출하게 되어 있다. 뒤이어 그녀는 현재 일본 정부의 행태를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지금 하시마섬에 대한 증언을 수집하고 있어요. 하시마는 지옥섬이 아니라고 하는 내용의 증언이죠. 동경의 수재가 다 모인 곳이었으니까 편안하고 높은 보수로 직장생활을 한 사람도 있었겠죠? 그들에게 미담을 수집하는 거예요. 배고픈 조선인 노동자를 위해 따뜻하게 밥을 해줬던 일본인 식당 같은 미담이요. 역사를 아름답고 이상하게 미화하려고 시도하는 거죠.”


나아가 김승은 책임연구원은 군함도, 즉 하시마섬에 집중했다. 남북길이 480m, 동서길이 160m, 둘레 1.2km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 하시마. 그곳은 어떻게 지옥섬이 되었을까.


“하시마섬에 탄이 발견되면서 작업장으로 주목을 받았는데요. 미쓰비시가 일본 정부로부터 하시마섬과 함께 죄수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인계받았고 그걸 조선인 노동자에게 적용하게 되는 거죠. 미쓰비시는 그 비결로 모집이나 알선을 하게 되고 대규모로 조선인을 동원하는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조선인의 강제 연행과 강제 노동이 이렇게 가능해진 거죠. 일찍부터 죄수를 이용해서 탄을 캐니까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지옥 섬이라는 인상이 있었어요. 미쓰비시 소유 이후 하시마가 점점 커져서 1916년에 아파트를 짓게 됩니다. 지상의 환경 좋은 곳에는 일본인 엘리트가 살지만, 빛도 안 들고 습기가 가득한 지하에는 조선인 노동자가 살게 돼요. 목욕탕, 위안소로 활용되었던 식당, 병원, 학교, 신사까지 하시마섬은 초록이 보이지 않는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어요. 지하에는 1000m까지 갱이 있었고 그곳엔 조선인이 갔어요. 마찬가지로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지옥도였던 거예요.”


또한, 그녀는 조선인들이 군함도까지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대규모로 조선인이 동원된 건 1937년 중일전쟁 이후예요. 1939년부터는 모집의 방식으로 조선인을 모으고 그다음부터는 관이 알선해요. 할당량이 주어진 거예요. 일본인의 증언으로 마을마다 40~50명씩 할당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죠. 일본은 징용령에 의한 징용이 1944년부터라고 하는데 저희는 1939년부터 강제동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모집 단위에서부터 조선인들에게 사기를 쳤다던가 강제적 폭행의 연행 과정이 있었다는 증언이 매우 많기 때문이에요. 또한, 노동자로서 근무 조건을 선택하거나 그만둔다는 게 불가능했어요. 이런 강제 노동이 모집 단위부터 징용 단위까지 관철되어 있었던 거예요. 또 모든 시기에 대우나 노동의 조건, 임금에서 인종 차별이 있었어요. 당시 증언에 의하면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은 하시마섬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고요. 증언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지만, 총체적 인원 같은 정보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일본 정부나 미쓰비시가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다만 1943년에서 1945년 사이에 500명에서 800명까지 간 것 같다고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시마섬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노동 상황은 어땠을까. 조선인의 숙소는 최하층에 있었는데 가장 악취가 심하고 습한 최악의 환경이었다. 제공되는 식사는 늘 부족했으며, 그마저도 중간관리자가 착취해갔다.


“힘들고 배고프다고 하면 일본인 관리자가 욕을 했고 밤마다 아픈 사람들의 신음이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특히 막장에 조선인들이 많았는데 그곳은 높이가 50~60cm밖에 안 돼서 누워서 탄을 캐야 했대요. 바닷물이 늘 떨어져 피부가 짓누르고 감기와 폐렴에 걸렸는데도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화장실이 없어서 지하수는 늘 오염된 상태였어요. 그런데도 목을 축일 수 있는 건 지하수밖에 없고. 지하는 40도의 고온이었는데도 조선인들은 작업을 늦출 수 없었어요. 3교대 8시간 근무가 43년에 2교대 12시간 근무로 바뀝니다. 할당량을 채우기 전까지는 지상으로 갈 수 없었어요. 말 그대로 극한의 감옥이었던 거예요. 일본인과의 인종 차별도 심했습니다. 100%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해요. 모든 탄광이 똑같은 조건은 아니었기 때문에 월급을 받거나 고향에서 편지나 송금을 받은 사람도 있어요. 다양한 양상이 있었지만, 그 모든 현장은 강제 노동이고 강제 연행이었어요.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폭에서 강제 노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끔찍한 노동환경에 대한 설명에 이어 그녀는 하시마는 죽어서야 벗어날 수 있는 섬이었다고 덧붙였다. 초기에 치료했으면 살 수 있었을 사람이 사망자가 되었다. 살기 위해 탈출을 시도했지만 중간에 익사하거나 실패해 비참하게 끝났다.


“겨우 육지에 닿아도 다시 끌려와 공개적인 장소에서 타이어로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맞았어요. 다른 노동자들이 그걸 보고 탈출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거죠. 1925년부터 1945년까지 약 123명의 조선인이 죽었는데 그중 절반이 병사고 나머지 절반은 사고사에요. 이 사고사에는 고문으로 죽은 사람도 있었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이 정보도 일본의 시민단체가 겨우 찾아낸 단편적인 사실이고요. 일본인의 경우에는 자살률이 높았는데요. 이는 좋은 대우를 받았던 사람도 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든 곳이었다는 얘기죠. 지옥 같은 군함도에서 죽은 후에도 조선인의 유골은 버려지고 방치되었습니다. 1978년에 폐광된 하시마에 있던 유골은 다카시마로 옮겨지는데 다카시마가 1988년에 폐광됩니다. 그리고 그 유골들의 행방은 찾을 수 없게 됐어요. 행방불명이 된 거죠.”

 

20170826_151820.jpg

 

우리 시대의 ‘역사 적폐’

 

김승은 책임연구원은 마지막으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건립 예정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을 홍보한 뒤, 군함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하며 80여 분의 강연을 끝마쳤다. 그리고 잠시 후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이 2부 강의를 위해 무대 위에 올랐다.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알기 쉬운 예를 들며 우리 시대의 ‘역사 적폐’가 무엇인지, 진보-보수-수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 뿌리 박혀 있는 적폐 세력을 뜯어내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먼저 어떤 세력이 적폐인지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그러려면 진보, 보수, 수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게 필요합니다. 보수는 과거가 아니고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것, 앞으로도 이어가야 한다는 거예요. 진보는 이대로는 못한다,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근데 진보에는 두 종류의 진보가 있습니다. 급진 진보와 온건 진보. 부분적으로 바꾸면 온건 진보, 근본적으로 바꾸면 급진 진보예요. 보수와 진보는 각각 자신의 도덕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의 진보가 문제가 뭐냐면 새로운 도덕을 가져왔을 때 보수는 더 도덕적이지 않다고 믿는 게 오해에요. 오히려 보수는 합의를 봐온 도덕이지만 진보의 도덕은 낯선 경우가 많아요. 이게 오해라는 거죠. 그러니까 진보와 보수는 누가 더 도덕적이냐 물을 수 없어요. 다만 누가 더 도덕적이려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제삼자의 마음을 획득할 수 있는 거죠.”


보수와 진보의 개념에 관해 설명한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수구에 대한 설명에 앞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진보와 보수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한국 사회에는 진보와 보수를 나눌 기준이 거의 없어요.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건 헌법이죠. 그중에서도 헌법 전체를 기본적으로 규정짓는 하나의 가치관이 헌법 전문입니다. 1948년 제헌헌법이 만들어졌을 때 생겼죠. 헌법 전문에 따르면 자주, 민주, 평화가 헌법의 3대 정신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은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죠. 독립 국가여도 독재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은 민주 가치에서 독립과 평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거죠. 2조부터 130조까지 헌법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권리고요. 민주는 진보가 아니라 보수의 가치에요. 이걸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정상 사회가 아니라는 거죠. 1919년 4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헌법인 임시헌장이 만들어졌어요. 임시헌장의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함’이에요. 100년 된 가치라는 거예요. 작년 촛불 혁명은 민주공화국 수호였던 거고요. 온건 진보는 민주를 유지하기 위해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거고, 급진 진보는 자본주의하에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으니 체제를 바꾸자는 거예요.”


현재의 시선을 유지하는 보수, 거기에서 평등과 삶의 조건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온건 진보, 체제를 바꿔서 혁명해야 한다는 급진 진보. 그렇다면 수구는 뭘까. 헌법 파괴 세력이 수구라고 그는 주장했다.


“헌법으로 따지면 보수는 현존하는 헌법 1조의 기본가치 지지 또는 유지이고 온건 진보는 헌법 1조의 내용 확장 또는 개선, 급진진보는 근본 체제의 전환 추구에요. 수구는 헌법 1조 부정 또는 과거 회귀죠. 과거가 뭐냐, 헌법 1조를 부정하는 시대를 의미하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장면 총리,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수구 세력에 가까워요. 그럼 왜 그들이 무려 68년 4개월 중 57년 8개월동안 대한민국을 점령했을까요? 6ㆍ25 전쟁 때문이에요. 민족 최대의 비극인 6ㆍ25 전쟁이 수구에게는 최고의 축복이 된 거죠. 끔찍한 경험을 한 6ㆍ25 세대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요. 6?25 전쟁을 경험한 아기부터 노인까지 다 6ㆍ25 세대죠. 그 공포를 우리가 인정해줘야 해요. 수구는 그 공포를 이용해요. 선거 때마다 공포를 유발하는 거죠. 전쟁보다는 차라리 독재가 낫다고 생각하게끔 말이죠.”


나아가 그는 대한민국의 수구 세력을 정의하고 더 이상 수구가 유지되지 못한 이유를 차례대로 설명했다.


“첫 번째가 6ㆍ15 선언이에요.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 남한의 대통령이 최초로 북한에 간 거예요. 지금 세대들은 반공이나 복수가 아니라 악수를 봤어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에요.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때는 남북의 교류까지 있었어요. 수구 세력은 이걸 보고 6ㆍ25 세대에게 지금 세대가 종북이 되고 있다고 이야기해요. 두 번째는 2008년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에요.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다고 이야기한 것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한 거죠. 이 분노가 폭발한 건 중학생들과 유모차 부대가 거리로 나오면서부터였어요. 중학생들이 ‘살려주세요’, ‘미국소가 싫어요’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와요. 수구는 이걸 보고 또다시 6ㆍ25 세대에게 지금 세대가 반미라고 이야기해요. 지금 세대의 부모는 빨갱이고 학교는 이미 전교조가 장악했고 국가는 지난 10년 때문에 좌경화가 됐다고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6ㆍ25 세대가 군복을 입고 나오기 시작한 게 태극기 부대의 시초에요.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의 핵심은 수구가 처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세력이 탄생했다는 거예요. 국민의 의무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를 요구하는 세대가 탄생한 거예요.”

 

마지막으로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오늘날 수구의 뿌리가 독재가 아니라 친일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국정 교과서와 건국절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연을 마쳤다.

 

“새로운 세대가 수구 세력의 뿌리가 친일파고 한국 해방 후에 민간인 학살의 주범이라는걸, 온갖 범죄의 주동자였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수구에게 미래가 없어진 거죠. 그러니까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가게 되는 거예요. 더 이상 젊은 세대에게 표를 못 받으니까 국정 교과서를 통해서 세뇌시키려고 한 겁니다. 그러고 나서 한국사를 수능 필수로, 취업 시장의 필수로 두는 거예요. 이게 역사 쿠데타고, 건국절 논란으로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역사 적폐의 뿌리는 친일에서 시작해서 친미로, 독재로 이어져요. 나아가 반공과 냉전으로 무장해서 헌법을 파괴해왔어요. 이들의 총체적 바이러스가 역사 적폐에요. 촛불 이후 5년은 수구 일제 청소기라고 잡아서 그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저 | 생각정원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남주 “세상이 얼마나 여성을 지워왔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
0
0

지난 8월 29일 저녁, 홍대 레드빅스페이스에서 ‘예스24 문학학교’의 마지막 강의가 열렸다.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와 ‘82년생 김지영 홍보대사’로 불리는 노회찬 의원이 만나 ‘우리네 삶을 그린 소설 읽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남주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으로 예스24 독자가 뽑은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선정되고 ‘2017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여성차별의 메커니즘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사회학적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으며 20만 부 이상 판매된 『82년생 김지영』의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가 사회를 맡아 책에 담긴 여성차별 이야기와 82년생 김지영 씨의 삶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_15A9171.jpg

 

“진짜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

 

박혜진:많은 독자가 두 분의 만남을 기대하셨습니다. 조남주 작가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셨나요?

 

조남주:오늘 노회찬 의원님을 처음 뵀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여러모로 노회찬 의원님께 감사한 게 있어서 감사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는데, (웃음) 오늘 마침 기회가 되어서 인사를 드릴 수 있었고요. 저에게는 오늘은 고맙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는 자리가 될 거 같습니다.

 

노회찬:소설을 올해 1월에 읽었습니다. 감동도 컸지만 내용에 충격을 받아서 SNS에 표지 사진을 올리고 짧게 소감을 올렸습니다. ‘올해 3권의 소설책을 읽는다면 그중에 한 권은 반드시 이 책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나라가 조금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라고 썼어요. 그런데 이 책 읽는 사람이 갑자기 많아져서 (웃음) 저는 그게 제일 기쁩니다. 좋은 책을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드리겠습니다.

 

박혜진:많은 분이 『82년생 김지영』을 추천하시고 기사에도 자주 언급되면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특히 노회찬 의원님이 5월 19일 청와대 오찬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문재인 대통령께 선물하신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요. 왜 『82년생 김지영』을 선물을 하셨는지, 그때 대통령님의 반응은 어땠는지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노회찬:당일 아침에 김정숙 여사님께서 맛있는 점심을 준비한다고 들어서 빈손으로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사회문제를 바꾸는 구체적인 실천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저보다 많은 권력과 능력을 갖춘 분께 선물하려고 고민 없이 이 책을 꺼내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세요’라고 써서 오찬에 가져갔습니다. 김정숙 여사님이 ‘우리 부부는 선물 받은 책은 꼭 읽습니다’라고 말씀하셨으니, 대통령께서도 읽은 책이 되었네요.

 

박혜진:『82년생 김지영』은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보편적으로 겪는 일상을 시기별로 보여줍니다. 특별한 캐릭터나 사건이 없지만 책을 덮고 나면 오히려 특별하지 않았던 것이 특별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구성이 어떤 고민에서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조남주:소설은 보통 독특한 인물이 나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대신 안겨주는 이야기가 많죠.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에서는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상적인 일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사람의 삶을 평균으로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연령대, 혹은 비슷한 시기를 산 여성이라면 ‘어, 나도 겪어봤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제가 2015년에 막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한창 여성혐오적인 콘텐츠가 많이 나왔어요. 저에게도 미디어, 영화나 문학작품, 인터넷 등에서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 굉장히 소비 지향적이고 감정적으로 비틀리고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21세기 초반을 살았던 여성의 모습으로 기록되진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진짜 대한민국 여성은 이런 삶을 살았고, 이런 고민을 했고, 이런 상황에 부딪혔다는 걸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_15A9340.jpg

 

여성사의 질곡을 경험하는 ‘82년생’과 가장 평범한 이름 ‘김지영’


박혜진: 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82년생 김지영』. 이 책을 보면 어떻게 붙여진 제목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데요. ‘82년생’과 고유명사인 ‘김지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조남주: 주인공은 우리 여성사와 삶의 부분 부분이 맞물리는 세대의 여성으로 정했어요. 먼저 1980년대에는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초음파로 아이의 성별을 미리 알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인구가 너무 많아져 산아제한 정책을 펼쳐 낙태 수술을 눈감아주었어요. 그래서 1980년대 내내 여아가 계속 낙태되면서 성비 그래프가 쭉쭉 올라가요.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했던 시기예요.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아이들은 고등학생 때 IMF가 터져요. 안 좋은 경제 상황이 본인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쳐요. 그리고 서른 즈음에 만약 엄마가 된다면, 2012년부터 무상보육 정책이 시행돼요. 그때부터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엄마 역할을 안 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질곡의 세월을 다 경험할 수 있는 세대예요.


지영이란 이름은 80년대 전후에 여아에게 가장 많이 붙인 이름이라고 해요. 세대별로 많이 붙여지는 한자가 있어요. 이걸 보면 그 시기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덕목을 알 수 있어요. 1940년대에는 순할 ‘순’, 1950년대에는 맑을 ‘숙’, 1960-70년대는 ‘진선미’였어요.


1980년대는 알 지와 지혜로울 ‘지’가 많이 쓰여요. 예전엔 착하고 맑고 참하고 아름다운 게 여성의 미덕이었다면 1980년대에는 지성을 추구하는 게 여성의 미덕이 된 거죠. 여아를 낙태하고 남아를 선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도 지성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하며 사회생활을 할 평등한 기회를 준다고 말하는 상반된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도적인 기반은 마련되어 내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것 같진 않은데, 여전히 관습적으로 불합리한 상황을 겪는 간극의 세대인 1982년생으로 설정하였고, 이름은 김지영이라고 붙였습니다.

 

박혜진:단권의 책에 이렇게 많은 여성 등장인물이 이름을 가진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영화로 치면 행인1, 행인2 같은 사람들도 모두 이름이 있고, 남성은 제법 등장하지만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실제 여성의 삶과는 동떨어진 설정인데, 이런 설정은 어떤 의도에서 나온 건가요?

 

조남주:성평등을 가늠하는 지수인 ‘벡델테스트’란 게 있어요. 세 가지 기준이 있는데, 첫 번째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하는가?’ 두 번째는 ‘그 둘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세 번째는 ‘그 대화 내용이 남성에 관한 내용이 아닌 다른 내용인가?’에요. 굉장히 낮은 기준의 테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작년 우리나라 흥행성적 10위 내의 영화 중에 이를 통과한 영화가 절반을 넘지 못해요. 심지어 얼마 전 개봉해 성범죄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논란이 된 영화는 남자 배우는 이름을 주고, 여자 배우는 ‘여자시체1’로 해두었다가 나중에 ‘여자’로 바꿨어요. 여전히 영화 안에서 이름을 가진 여성이 늘지 않은 거죠.


세상이 여성의 이름을 얼마나 지웠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벡델테스트’를 남자를 기준으로 적용했을 때 충족하지 않는 소설을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남성 인물의 이름이 모두 있었는데 수정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제외하고 모두 이름을 지웠어요. 그런데 제가 엄마하고 할머니는 엄마, 할머니라고 썼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부르는 게 편했나 봐요. 실제로 엄마나 할머니가 되면 여자는 자기 이름을 많이 잃어요. ‘누구 엄마’라고 부르는 경우가 제일 많거든요. 두 분 모두 그 시대에 많이 붙였던 한자를 넣어서 어머니는 오미숙, 할머니는 고순분으로 지었어요. 그리고 작은 배역을 가진 여성이라도 되도록 이름을 붙이려고 노력했어요.

 

_15A9288.jpg

 

‘남성이 읽어야 한다’는 목소리

 

박혜진:현실과 역전된 구성이 남성 중심의 서사를 풍자하고 여성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기존과 다르게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인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 책을 읽은 여성 독자는 하나같이 ‘이 책은 남성이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노회찬 의원님은 50대 남성으로서 『82년생 김지영』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노회찬: 처음 읽었을 때 ‘이 책이야말로 남자들이 많이 읽어야 한다’고 당연히 느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생전 처음 듣는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성평등 문제를 계속 강하게 주장하고 대안과 정책을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나는 좀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책에 몰입해서 당사자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니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남자가 최고의 스펙인 대한민국의 많은 제도, 문화, 관습을 깨기 위해서라도,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야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혜진:82년생 김지영』에는 여성에게 익숙한 에피소드도 있고,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도 담겨 있어요. 김지영 씨가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어떻게 선정하셨나요?

 

조남주:한창 『82년생 김지영』을 쓰던 2015년 즈음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시고 본인이 겪은 불평등한 대우를 발언하고 쓰는 여성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SNS나 블로그, 취준생 카페, 고등학생 카페, 엄마 카페 같은 곳에 경험을 이야기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서 주로 그걸 읽었어요. 그 중에 ‘아, 나도 그랬지. 많이 들어봤지.’라고 느끼는 특별하지 않은 사례를 취합했어요. 그리고 어쨌든 김지영 씨가 일생을 서른 몇 살까지 살아가야 하니까 너무 극단적인 상황이 나오면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어서, 만약에 있을지 모를 남성 독자분의 거부감을 덜기 위해서 ‘이건 명백하게 범죄다.’라는 에피소드는 되도록 제외했어요.


어떻게 보면 김지영씨는 운이 되게 좋아요. 주변에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도 정말 많은데, 김지영 씨는 심각한 성범죄나 폭력을 당한 적은 없어요. 그런 심각한 상황은 수정할 때 좀 덜어냈어요. 그래서 사실 굉장히 운이 좋은 평범한 여성의 삶이 된 것 같아요.

 

박혜진:김지영 씨가 겪는 에피소드가 청소년기에 받는 관습적인 성차별, 대학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적 대상화, 그리고 결혼 후에 부딪히는 출산과 육아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보여주는데요. 이런 이슈 중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노회찬:저출산 문제가 우리 사회의 정말 큰 문제입니다. 생산가능 인구가 올해부터 계속 줄어들고, 일을 할 수 있는 제한연령도 2살 늘어납니다. 그래서 애를 낳으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수십 조가 넘는 돈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애 안 낳게 생겼어요. 여성이 육아를 일방적으로 책임지거나 육아로 인해 직장을 잃고 경력이 단절되는 상황이에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하나의 생명을 낳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조금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조남주:이런 출산율로는 지구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해요. 매우 심각한 일이고 저는 대한민국을 매우 사랑하지만 이런 나라라면 없어진들 할 말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해요. 저출산 문제는 사실 아이가 나오는 출산의 장면에 초점을 맞추면 해결할 수 없어요. 이미 아이를 낳을 여성이 젠더사이드(산아제한 정책과 남아 선호로 인한 1980년대 영아 살해와 유기, 여아 낙태 등을 말한다.)로 많이 줄어든 상황이에요. 출산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의 문제를 좀 더 고민해야 실마리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자 노동”을 하는 전업주부를 비추다

 

박혜진:지금까지 소설 속에서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되었어요.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처럼 그림자 노동을 하는 가정주부의 삶을 전면적으로 소설화해서 논쟁적으로 쓴 책은 드물다고 생각하는데요. 가정주부를 소재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남주: 김지영 씨가 만약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이야깃거리는 더 많았을 거예요. 아이를 데리고 쩔쩔매며 출근하고 육아 문제로 남편과 싸우고, 그런 문제는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지만 TV 드라마나 책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내용이에요.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 어려운 여건이 문제라는 것도 다 알고 계세요.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사는 여성의 삶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요. 결혼한 여성 중 60% 정도가 경제활동을 해요. 이 안에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이 포함되니까 자신을 전업주부로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될 거예요. 세상에 직업은 정말 다양하고 사람마다 재능도 관심사도 다른데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성별의 절반이 자발적으로 한 직업을 선택한다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이 선택에는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사회적인 혹은 경제적인 압박도 있을 거예요.


본인의 재능과 흥미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전업주부가 많기 때문에 전업주부에 관해 쓰고 싶었어요. 전업주부는 집안을 가꾸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 노동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장되곤 해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집에서 논다, 쉰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임금으로 환원되지 않아서 노동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거든요. 전업주부가 한 명의 노동자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임금도, 휴식도, 휴가도 전혀 없고 승진할 일도 없는 가장 열악한 노동자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박혜진: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의 이야기가 여성의 이야기 중에서 미묘하게 소외되었어요. 그걸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게 만든 기폭제가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점은 바로 ‘맘충’의 이야기에요. 김지영 씨가 이상 증상을 보이는 이유도 거슬러 올라가면 맘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인 거 같아요. 다른 인터뷰에서 작가님께서 그 단어를 실제로 들어보셨다고 하는데, 그 경말의 단어가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조남주:맘충이란 말은 저에게 한 걸 들어본 건 아니고, 직접 말로 내뱉는 사람을 봤어요. 맘충은 아니더라도 ‘집에서 놀면서 시간 많잖아’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요. 맘충이란 말은 인터넷 기사에서 처음 봤어요. ‘이런 식의 표현까지 있다’는 기사였는데, 거기에 ‘애 엄마들 정말 개념 없다’ ‘그럴 만 하니까 그렇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어요. 그 댓글을 보고 나니까 아이 엄마, 주부가 들어간 기사를 읽기가 두려워질 정도로 충격이었어요. 맘충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 ‘그건 민폐를 끼치는 엄마한테만 하는 말이지’라고 말하는데 그 용어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계속 행동에 제약을 받아요. 사실 누구에게도 타인을 ‘이 사람은 사람, 이 사람은 벌레’라고 구분할 권리는 없어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를 내가 구분하고 평가하겠다는 자체가 비하와 멸시의 시선이에요. ‘그건 일부 얘기야. 그건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얘기야’라는 전제부터 지웠으면 좋겠어요.

 

_15A9376.jpg

 

끝나지 않는 현실, ‘김지영 씨’의 삶

 

박혜진: 이 소설의 결말은 뚜렷하지 않고 열린 결말에 가깝습니다. 김지영 씨를 치료하는 의사는 산후 우울증과 육아 우울증이 혼합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이야기하지만, 작가님은 김지영 씨의 병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후 김지영 씨의 삶에 관해서도 쓰지 않으셨고요. 김지영 씨의 이후의 삶이 궁금합니다.

 

조남주:김지영 씨가 치료를 받아서, 혹은 이 일을 계기로 증상을 떨치고 일어난다고 쓰면 전체 흐름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가상의 인물이지만 김지영 씨에게 애정도 있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을 드러낸 이 책에서 주인공이 현실을 잘 극복해낸다면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민하는 여성에게 좌절감을 드릴 것 같았어요. 사실 김지영 씨가 멀쩡한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어서 일부러 계획했다는 결말도 생각했는데, (웃음) 이 소설에는 이 결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김지영 씨는 정말 현실적으로 그린 인물이라 정말 안쓰럽고 죄책감도 많이 느꼈어요. 어디 아픈 사람을 혼자 두고 문 닫고 나온 느낌. 소설은 끝났지만 제가 느낀 죄책감은 잊지 않고 항상 생각하며 쓸 거예요.

 

노회찬:결말이 어떤 면에서는 어정쩡하지만, 그래야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덮을 때 가슴이 막 답답하고 먹먹했어요. 우리 현실이 그러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말에 김지영 씨가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비약이고 그것은 이후의 과제에요. 억지로 비극적으로 만드는 결말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결말을 읽으며 소설은 끝났지만, 현실은 계속된다고 느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저 | 민음사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Viewing all 3283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