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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채널예스 :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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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달 “무엇이 마음을 무겁게 했는지 직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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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따스한 봄이 찾아온 4월 3일 저녁, 강남 토즈 타워에서 심리학자 마음달의 미술치료 원데이 클래스가 열렸다. 열 명 정도의 수강생이 모이자 박수와 함께 심리학자 마음달이 등장했다.

 

"상담한지 13년 차가 된 마음달 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상담실에 오기까지 굉장히 어려워해요.  3~4년이 걸리시더라고요. 상담하고 싶으신 분들, 자기 마음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나라도 내 편이 되어야 한다』를 펴내게 되었어요. 자기 사랑에 서툰 이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동시에 마음의 치유를 통해 뜨거운 심장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마음달은 어떻게 오시게 되었냐는 질문으로 본격적으로 수강생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수강생 1 :  그 동안 스스로 많은 것을 부과하는 편이었어요. 책 제목을 보고 나 스스로 치유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 같아 참여했어요.


수강생 2 : 저는 심리학을 배우고 싶었던 참에, 일일 클래스가 열린다는 소식에 심리치료를 배워보고자 왔어요.


수강생 3 :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번에 학급 부적응자를 맡게 되었어요. 학생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활동을 알자 신청했어요.


마음달 : 저도 소년원 학생들을 3년간 지도한 경험이 있어서 선생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수강생 4 : 저도 제목이 눈에 띄어서 신청하게 되었어요. 근무 환경이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위축되고 자신감 없는 성격이라 왔어요.


마음달 : 우리나라에는 내향적인 사람이 많아서 관계 중심적으로 살아가죠. 그래서 나만 기죽어 보이고, 내향적이고, 상대방은 자신 있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하죠.


수강생 5 : 왜 제가 내 편이 아닌가에 대해 알고 싶어서 신청했습니다.


수강생 6 : 책 제목이 최근에 강하게 생각했던 내용이라 관심이 생기던 차에, 작가님이 브런치에 쓰신 글이 재미있기도 해서 왔어요.


수강생 7 : 저는 요즘 자존감이 낮아져서 상담을 받으려 했어요. 특히 미술을 이용해 치료하는 것에 매료돼서 왔어요.


마음달 : 아직도 상당한 사람이 심리치료에 겁을 내고, 자신을 오픈하는 것을 두려워해요. 또 미술 치료나 심리상담을 개인적으로 하면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집단으로 하면 괜찮아하더라고요.


수강생 8 : 저는 상담사가 꿈인데, 미술 치료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해본 적이 없어서 좀 더 알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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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고 감정을 이야기하다


수강생들의 원데이 클래스 참여 이유에 관해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진 뒤, 그림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림에 대해 묻자, 수강생들은 ‘그로테스크하다’, ‘어두운 느낌이다’, ‘피카소 그림 같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람은 누워서 힘들어하고, 말은 울부짖고 있어요.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감정을 많이 실어요. 실제로 이 그림은 피카소가 스페인 대전 때 히틀러가 사람들을 죽인 걸 보고 분노해서 그린 거예요. 이처럼 그림 속에는 개인의 성향, 감정이 들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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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뒤생의 샘이에요. 변기에 샘이라고 적어뒀는데, 사실은 변기이죠. 이처럼 대다수가 내면에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어요. 개인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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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달 : 이 그림은 어떤가요?


수강생 1 : 몽환적이에요

 

수강생 2 : 표정이 슬퍼 보여요.


마음달 : 색이 어떤가요? 화사하고 꽃을 들고 있죠. 실제로 샤갈이 결혼하기 열흘 전에 그린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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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카드’와 ‘내 마음의 정원’으로 자신을 직시하다

 

본격적인 미술치료에 앞서 감정 카드로 참석자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자기 감정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일은 자신의 현재 감정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다. 감정 카드 60개를 놓고 마음달의 말에 따라 수강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감정 카드 중에서 자신의 감정을 담고 있는 카드를 고르고, 그 이유에 대해 말했다.


"감정카드를 골라보니까 어떠세요? 한국인의 70~80%가 발표 불안이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낯을 가린대요. 그래서 우린 감정들을 직시하면서 현재 나의 감정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해요. 왜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럽고, 어깨가 무거운지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통찰하다 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어요.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찾으면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도 찾을 수 있죠."


감정 카드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직시한 뒤, 그 현재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찰흙을 통해 ‘내 마음의 정원’을 만들어보는 활동이 이어졌다.


"이제 찰흙을 가지고 내 마음의 정원에 무엇이 있는지 자유롭게 만들어볼게요. ‘내 마음의 정원’은 현재 내 마음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에요. 처음엔 찰흙을 만져도 보고 뜯어도 보면서 촉감을 느껴보세요. 포일로 사람이나 동물도 만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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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달 : 내 마음의 정원을 만들면서 다른 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같이 같이 얘기해 볼게요.


수강생 1 : 원래는 벚꽃을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잘 안돼서 리본이라도 만들었어요.


수강생 2 : 여기가 제 주거지이고, 이 밖이 바깥으로 나가는 세상, 다이내믹함이에요. 다양한 사람과 놀고 싶기도 하고, 바깥세상엔 아름다운 것도 많지만 저 혼자만 있을 수 있는 조용한 공간도 필요한 걸 나타냈어요.


수강생 3 : 저는 두 개씩 짝지어 있는 걸 좋아해서 전부 두 개씩 만들었어요. 다리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어요.


수강생 4 : 건물주가 되는 저의 꿈을 상징화시켜서 표현해보려 했어요.


수강생 5 :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에 동물 위에 사람을 앉혀 보았어요.

 
수강생 6 : 이건 대표님과 회의를 하고 나서의 저의 머리를 형상화해 봤어요. 어떤 의미일지는 다들 알 거라 생각해요. (웃음)


마음달 : 이제 내 마음의 정원을 만들면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해볼까요? 미술 치료는 뭔가를 만들기보다 하는 과정에서의 마음가짐, 정신적 해소가 중요해요. 여러분은 처음엔 머뭇거리다 각자의 것에 몰입하셨고, 자기 자리에서 절대 이동하지 않고 만드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수강생 1 : 오랜만에 찰흙을 만진다는 자체가 어릴 때를 생각하게 되어서 찡했어요. 처음엔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다 보니까 틀이 잡히는 과정이 뿌듯했어요.


마음달 : 어떤 일이든 계획한 대로 나오기보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내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에요.


수강생 2 : 복잡한 세상에서 그래도 나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왔는데, 내 마음의 정원을 만들면서 위로를 받은 느낌이에요. 내 마음을 구체화해서 표현하면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수강생 3 : 처음에는 뭘 만들어야 할지 몰랐는데, 나뭇가지로 주위를 막는 제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이 닫혀 있나 싶었어요.


수강생 4 : 바위를 만들면서 제 마음을 조금 알게 된 거 같아요. 마음을 표현하는데 바위가 제일 먼저 생각난 걸 보고 제 마음속엔 무거운거 밖에 없는 거 같다는 생각에 암울했어요.


마음달 : 돌이나 바위도 프로이트 책을 보면 ‘변하지 않는 자신’ 등 의미하는 바가 다 있어요. 마음이 답답할 땐 그 마음을 먼저 바라보는 게 가장 중요해요. 흔히 현상을 해결하려고만 하는데, 뭐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는지 무거운 나를 직시하는 게 중요해요.


수강생 5 :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쉽게 꽃을 만들어보았어요.


마음달 : 감정 카드를 뽑을 때 불안해하다가 굉장히 크게 꽃을 만든 걸 보니, 내면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라도 내 편이 되어야 한다마음달 저 | 카멜북스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마음의 성장통을 겪는다. 이 책은 심리학자 마음달의 효과 빠른 심리 처방전으로, 어쩌면 지금! 당신을 위한 이야기다. 아직 마음이 단단히 여물지 않았음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 어른인 당신. 이제는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내일의 나를 응원할 때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엄혜숙 “어른과 아이가 같이 볼 수 있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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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어린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걸요

 

사노 요코 작가의 그림책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번역을 맡은 엄혜숙 아동문학가는 영면에 든 작가를 대신해 독자들과 만났다. 지난 3월 27일, 혜화동에 위치한 서점 ‘마음책방 서가는’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두껍아 두껍아』, 『세탁소 아저씨의 꿈』등의 어린이책을 집필하기도 한 엄혜숙 작가는 독자들과 함께 사노 요코의 그림책을 읽으며 동화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는 사노 요코 특유의 독특한 발상과 절묘한 유머가 돋보이는 그림책으로 전 세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5살 고양이와 함께 사는 98살의 할머니는 “나는 할머니인 걸”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는다. 할머니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건 어울리지 않고, 할머니이기 때문에 케이크를 잘 굽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99번째 생일을 맞게 된 할머니는 고양이의 실수로 5개의 양초만이 꽂힌 생일 케이크를 받게 되고, 5살 아이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데도 안 하는 일들이 많잖아요. 나이 때문에, 무엇 때문에, 안 하는 거라고 핑계를 대면서 약간 위안을 삼죠.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그런 마음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번역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가두고 있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노 요코는 ‘작가의 말’을 통해 할머니들은 “가장 많이 어린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고 했다. 이에 답하듯 엄혜숙 작가는 ‘옮긴이의 말’에서 “나이보다는 스스로를 가두는 마음이 더 문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는 어린이 그림책이지만 할머니의 이야기잖아요. 그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사노 요코는 ‘할머니야말로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요즘에는 그림책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아졌어요. 영역도 굉장히 넓어졌고요. 그러면서 어른을 위한 책들도 가능해지는 것 같은데요. 어른만을 위한 책보다 더 좋은 건 어른과 아이가 같이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는 아이대로 즐거울 수 있고, 어른은 어른대로 즐거울 수 있는 책인 거죠. 같은 책이지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그림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에서 시작된 ‘어른들의 그림책 읽기’는 『100만 번 산 고양이』로 이어졌다.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일본 그림책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100만 번 죽고 다시 살아난 고양이가 자유로운 몸이 된 후 사랑을 하게 되고, 그 대상이 죽음을 맞자 다시는 살아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그게 완벽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이 자유롭게 된 상태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거죠. 이 이야기는 좁게 보면 사랑에 대한 것일 수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동양에서 이야기하는 인연이나 업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완벽한 삶을 살았더니 더 이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죠.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처럼 『100만 번 산 고양이』에서도 매일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새로운 삶의 계기를 갖게 돼요. 사노 요코의 이야기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 인생의 그림책을 꼽는다면…


엄혜숙 작가는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처럼 할머니가 등장하는 그림책으로 시모나 치라올로의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를, 그리고 최근 재밌게 읽은 그림책으로 댄 야카리노의 『나는 이야기입니다』를 소개했다. 자신이 번역한 다수의 작품 중에서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가 쓰고 만화가 초 신타가 그린 『나』, 『너』, 『기분』을 함께 읽는 시간도 마련했다.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에는 할머니와 손녀가 등장하는데요. 할머니는 자신의 주름살에 모든 기억이 담겨있다고 이야기해요. 그때그때의 추억들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최근에는 『나는 이야기입니다』라는 그림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이야기가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이에요. 이야기의 역사, 책의 역사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나』『너』는 관계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기분』은 마음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에요.”

 

강연이 끝난 후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됐다. ‘내 인생의 그림책’을 꼽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엄혜숙 작가는 『인어공주』부터 『강아지똥』까지, 깊이 각인된 작품들을 떠올렸다.

 

“저는 그림책을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니라서, 내 인생의 책을 말한다면 그림책보다는 동화책이 될 것 같아요. 보고 울었던 책이라면 내 인생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플란다스의 개』『인어공주』,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보면서 울었던 것 같아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지금도 다시 읽고 싶은 작품 중에 하나예요. 어렸을 때 읽은 이야기 중에서 또 기억에 남는 건 『집 없는 아이』예요. 제가 제일 부러워했던 아이였어요(웃음). 학교도 안 다니고, 매일 동물들하고 여기저기 다니잖아요. 어른이 돼서 보니까 참 어려운 삶인데, 어렸을 때는 단조로운 걸 싫어했기 때문에 굉장히 부러워했어요(웃음). 제가 왜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는지 생각해 보면,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된 후에 그림책을 보게 됐다는 작가는 ‘가장 의미 있는 그림책’과 ‘최근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그림책’에 대해 덧붙였다.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에서 시작된 이 날의 이야기는 다시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로 돌아와 끝을 맺게 됐다.

 

“저한테 가장 의미 있는 그림책은 『깃털없는 기러기 보르카』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처음으로 번역했던 책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기도 하고, 그 인연으로 존 버닝햄의 『나의 그림책 이야기』를 번역하게 됐거든요. 좋아하는 그림책이 너무 많아서 내 인생의 그림책으로 한 권만 꼽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현재로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작품은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예요. 일로써 번역을 하기는 했지만, 워낙 사노 요코를 좋아해서 에세이를 다 찾아서 읽을 정도거든요. 게다가 주제가 현실의 나를 뛰어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사노 요코 글그림/엄혜숙 역 | 상상스쿨
“나는 할머니인걸!”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할머니. 그렇지만 할머니의 99번째 생일날, 고양이가 사 온 양초는 겨우 5개. 5살이 되어 버린 할머니는 다음 날부터 5살답게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3인의 미술사학자와 함께하는 아트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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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저녁 7시, 산울림 소극장에서 『게이트웨이 미술사』출간 기념 아트 토크 ‘미술이 있는 밤’이 열렸다. 산울림 극장은 새내기 시절 동기와 <고도를 기다리며>를 꿈꾸듯 봤던 추억이 있는 장소다. 대학로 연극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에게 또 다른 연극 세계를 알게 해준 ‘게이트웨이’ 같은 역할을 해준 게 산울림극장이었다. 이 날은 연극 무대가 배우들이 아닌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강은주 이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그리고 이연식 미술사가의 릴레이 강연으로 채워졌다. 산울림극장에서 또 하나의 ‘게이트웨이’가 추가되는 날이었다.

 

미술사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떠올릴 것이다. 이 책은 1950년 영국에서 초판이 나온 이후 미술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여전히 훌륭한 미술 입문서로 남아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굳건히 버티고 있는 미술사 책이 존재하며, 매체가 영상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게이트웨이 미술사』가 출간됐다. 21세기 독자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을 장착하여, 미술로 들어가는 문을 크게 미술의 요소와 원리, 매체, 역사, 그리고 주제로 나눴다. 이 네 개의 문을 열어줄 첫 번째 강연자는 이주은 건국대 문화컨텐츠학과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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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예술을 예술로 느끼는가

 

"우린 왜 예술을 예술로 느낄까요? 너무 엉뚱한 질문인가요? 우리 근사한 거 보면 ‘와, 이거 예술이네’ 이러잖아요. 또 형편없는 거 보면 ‘이것도 예술이야?’ 이러고요. 이런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하는 데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거예요. 자 그럼 그림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왜 예술을 예술로 느끼는지 살펴보도록 할게요. 약간 실망하셨을 수도 있어요. 첫 번째 그림은 ‘쿠푸 왕의 대 피라미드’에요. 식상하실 수도 있는데, 게이트웨이라는 말 때문에 가져왔어요. 이 그림에는 안 나와 있지만 피라미드 앞에 보면 항상 스핑크스가 있죠. 스핑크스가 사실은 관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요. 스핑크스의 질문에 대한 정답을 다 맞히면 영원의 세계로 넘어가는 게이트웨이가 열리거든요. 그러나 대부분 그것을 못 맞추고 스핑크스 앞에서 돌아가게 되죠. 우린 이 큰 관문을 열어야 합니다."

 

피라미드에는 평균 2.5톤의 돌덩이가 230만 개 들어가 있다. 높이만 봐도 146m 가량이 된다. 굉장히 크고, 압도적인 데서 오는 경외감은 피라미드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다. 피라미드 안에는 인테리어 공간이 있기 때문에 건축물로 분류가 된다. 건축과 조각은 똑같은 입체지만, 건축은 공간감 조각은 양감이 두드러진 것으로 구별을 한다. 물론 요즘에는 다양한 형태들의 예술작품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 구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레이철 화이트리드의 조각 ‘집’과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라는 건축과 조각에 대한 구분의 예외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연자가 이어서 보여준 사진은 ‘올메크족의 거대 두상’ 이었다.

 

"펑퍼짐한 코, 두툼한 입술. 미남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올메크족은 기원전 2500년경부터 서기 400년까지 멕시코 만 연안에서 살았다고 하는데요. 높이는 1.5미터에서 3.6미터에 이르고, 무게는 각각 6톤에서 25톤 사이에요. 결국 이건 어떤 위대한 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크고 단단한, 움직이지 않고 끝까지 나를 지켜보는 얼굴은 위대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규모를 키운다는 건 중요하다는 걸 말해요. 규모에 얽혀 있는 문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다르게, 성냥을 사람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놓은 조형물이 있어요. 그럼 이 성냥이 굉장히 중요한 걸까요? 요즘엔 거의 쓰지도 않고, 흔하고 가치가 없는 거죠. 이런 것의 규모를 키워놓은 것은 역설을 보여주기 위한 예술가의 의도라고 볼 수 있죠."

 

잠볼로냐의 ‘사비니 부족여인의 강간’은 앞에서 살펴본 정적인 조형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세 사람이 꼬여 복합적인 방향성을 나타냄으로써 아주 역동적이고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어서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서 선을 이용해 시선을 모아주는 방식,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3등 선실’에서는 선을 통한 화면 구성에 대한 해석을 읽어낼 수 있었다.

 

"계속 선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니까 이번에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해요. 점도 노란 색과 푸른 색 계통이 왔다 갔다 하면서, 대조적인 색깔을 이용합니다. 아주 가까이에서 그림을 보면 노랑, 주황, 빨강 점들이 이어져 있어요. 사실 이렇게 점을 통해서 색을 섞어 나가는 이 방식을 사실 색보단 빛의 방식이라 할 수 있어요. 빛은 스펙트럼 효과가 있잖아요. 이런 빛의 효과는 알갱이들이 가진 색을 살리면서, 우리 눈에서는 그것을 섞인 색으로 보게 만듭니다. 우리 눈은 어떤 색들을 일일이 파악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성향이 있거든요."

 

따뜻한 색의 계열은 봄에 느끼는 기분 좋음, 푸른 계열은 평온하면서도 우울한 느낌이 든다. 이 두 가지 톤을 쓴 이유는 곡예사들의 서커스가 겉으로는 화려하고 신기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이들의 삶에는 우울한 면이 있을 거라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다. 색은 언제나 이렇게 뉘앙스, 기분 이런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

 

"색 하면 역시 마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세라가 점을 혼합하는 방식을 섰다면, 마티스는면을 잘라서 붙임으로써 면으로 바로 색과 색을 대비시키는 거예요. 아주 뚜렷하게 대비시키는 거죠. 이 사람 야수파인데 색을 아주 강렬하고 때로는 도발적으로 썼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마티스가 드로잉하는 방식인데요. 마티스는 한 번에 아우트라인을 그리는 방식을 썼는데, 가위로 종이를 오리는 방식과 거의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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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든 관점을 가져라

 

강은주 교수가 이어받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이야기했다. 강은주 교수는 먼저 『게이트웨이 미술사』의 8가지 대표작품을 제시하며, 여성 작가가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몇 개인지 관객들에게 물었다. 함께 간 서포터즈 김준호 마케터는 ‘잘 모르겠지만 의도상 하나도 없지 않을까’라고 답했지만 땡! 여성 작가의 작품은 두 개였다. 피라미드와 석상은 누가 만들었는지도 잘 모르니, 여섯 작품 중에 두 작품이나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강연자는 왜 ‘두 작품밖에’가 아닌 ‘두 작품이나’라고 강조했을까?


"앞서 사회자께서 『게이트웨이 미술사』를 앞으로 중요한 책으로 많이들 읽으시겠지만, 지금까지는 곰브리치와 잰슨의 『서양미술사』가 대표 미술서라고 말씀하셨죠. 이 두 책의 초판본이 1950년과 1962년에 나와요. 그런데 이 두 책의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여성 작품도 다루지 않았어요. 이것이 개정판을 거치면서 비로소 몇 명의 여성 작가가 비로소 언급이 되고 있다는 거죠. 이게 미술사의 현실이에요. 반면 이번에 나온 『게이트웨이 미술사』에서는 대표 작품 중 여성 작품이 두 개라는 게 아주 놀라웠던 거죠. 지금까지 많은 미술 서적이 여성 작가에 대해 언급 안 해왔다는 거죠. 그러니 우리는 미술작품 감상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여성 작가들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과 그런 의미에서 그 동안 미술사 속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았던 위대한 여성 작가들 중 한 작가인 젠틀레스키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자 해요."

 

젠틀레스키는 바로크 작가로 구분되며, 대부분의 학자들이 1593년경에는 태어났을 거라고 추정한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그녀는 화가인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젠틀레스키는 아버지 공방에서 많은 작품을 그리게 되는데요. 이 작품은 비교적 후반부의 작품으로서 그녀가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얼마나 뚜렷이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과거 대부분 화가들의 자화상을 보면, 캔버스를 앞에 세운 채 팔레트를 들고, 얼굴은 관람객을 향하고 있어요. 나 화가야, 하고 보여주는 거죠. 하지만 젠틀렌스키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관심 없어요. 그림 그리는 데 몰두하느라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하죠.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이 열정적인 예술가라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서 강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젠틀렌스키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바로크 거장인 카라바조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당시 바로크 미술계에서 독특한 자유주의 양식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극적인 빛의 효과를 통해서 화면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할 줄 알았던 작가다. 이 날은 젠틀레스키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라는 작품을 살펴봤다. 유디트는 아시리아의 침략으로부터 마을을 구하기 위해 적장을 유혹해서 죽인 여성 영웅이다.

 

"유디트의 살해 장면은 당시 바로크 화가들에게는 좋은 주제가 됐습니다. 젠틀레스키와 카라바조의 작품을 비교해 볼까요? 젠틀레스키의 작품 속 여인들은 상황에 굉장히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카라바조의 작품 속에는 너무나 청초하고 연약한 표정을 지으며 살인을 망설이는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죠.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젠틀레스키는 이 주제로 평생에 걸쳐 무려 일곱 작품을 남기는데요. 그녀는 아버지 공방에서 일하던 시기, 아버지 친구이자 자신에겐 스승 겸 동료 화가였던 타시라는 화가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죠. 이 사건으로 공개 재판이 오가는 가운데 그녀는 굉장히 정신적 충격과 상처를 받습니다. 즉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라는 주제를 통해서 남성에 대한 적대감, 복수심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겁니다.


저는 젠틀레스키에게 강인한 여성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부도덕하고 옳지 못한 일을 행하는 남성을 벌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바란 것 같아요. 그러한 역할 모델로 자신의 이미지를 유디트에 투영한 것으로 해석 가능한 거죠.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앞서 봤던 자화상의 얼굴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디뜨 얼굴의 유사성을 이야기하거든요."

 

강연자는 이어서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하녀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젠틀레스키 작품에서는 하녀가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카라바조 그림에서는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관람객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유디트를 우아하거나, 정숙하거나, 관능적이게 묘사한 다른 남성 작가들과의 작품 비교를 통해서 젠틀레스키가 그린 유디트의 강인함을 증명했다.

 

"과거부터 미술사에서 젠더라는 문제를 두 가지 방향에서 논의해 왔어요. 1970년 이후 린다 로클린이 ‘왜 위대한 여성 작가는 없어’라는 질문을 던진 이후에 ‘화가로서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논의를 해왔고요. 두 번째는 ‘미술 작품 속에서 제한된 남성과 여성 이미지의 성적 차이’에 대한 논의입니다. 젠틀레스키의 작품을 통해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이런 것들이에요. 우선,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남성 작가들이 보여주지 않는 특징들을 분명히 의미 있게 다시 봐야 한다는 거예요. 또한, 남성 작가들이 남녀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우리에게 시각적 유형화를 강요하지 않는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젠틀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명화라는 작품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녀가 여성으로서 느껴야 했던 부당함과 여성 영웅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여성 화가였지만 전업 화가로서 성공하고자 했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읽어낼 수 있다. 강은주 교수는 이러한 특별한 관점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미술사를 이해하는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라는 것을 언급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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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통해 역사를 본다는 것

 

세 번째로 이연식 교수는 어두운 이야기를 꺼내야겠다고 서두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이연식입니다. 앞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참한 얘기를 많이 해줬는데, 저는 어두운 기운을 뿜으면서 정신 없는 소리를 해야 하는 판이네요. 먼저 이집트인들의 그림을 살펴볼까요? 이집트인들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무덤에 남아 있는 이를 위한 그림입니다. 얼굴은 측면인데 몸은 정면인 사람들, 이집트인들이 사람을 묘사하는 아주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을 못 그리는 것이었을까요? 무덤의 주인공은 이집트 사람들의 법칙에 따라 그려졌지만, 나머지 새, 식물, 물고기 등은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는 거죠. 하지만 사람을 그릴 땐 법칙을 따라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 이유는 이집트인들은 무덤에 사람을 불완전한 상태로 그리면 무덤의 주인 역시 불완전한 상태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팔다리 다 보여야 하고, 몸이 온전한 상태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만큼 이미지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자의 서’는 이집트 문자를 해석할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작품 중 하나다. 그러나 문자도 적혀 있지 않는 그림 같은 경우는 직관적으로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해석을 할 수가 없다. 과거 예술가들은 세계의 질서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는 상상을 더해야만 한다. 즉 어떤 이미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내용’이 먼저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도 마찬가지다. 그림 속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덜했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나온 그림은 앞서 잠깐 살펴봤던 고야의 ‘1908년 5월 3일’이었다.

 

"1808년 5월 2일 폭동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인들은 5월 3일 큰 처형을 합니다. 고야는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이 어마어마한 학살과 전투를 적나라하게 묘사했습니다. 이런 그림들 때문에 우리는 고야를 애국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런 그림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실은 굉장히 부조리하고, 혼란스럽고, 잔인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아요.


고야를 비롯해 스페인 작품에 영향을 받은 작가 중 마네가 있습니다. 마네는 스페인 작품이 너무나 스타일리쉬하다고 생각했어요. 곧바로 흉내를 냈죠. 스페인 사람들이 검정색 옷을 차려 입는 방식을 그대로 배워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회화라는 게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입체감, 공간감이 잘 드러나고 볼륨감이 있어야 했는데 마네 그림을 보면 볼륨감이 없죠. 너무나 단순하지만 대담하고 아름답습니다."

 

마네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일본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프랑스 화가들의 마음 끌었던 건 일본 화가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센스였다. 빈센트 반 고흐가 얼마나 일본판화를 정신 없이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반 고흐의 친구였던 탕기라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다. 반 고흐는 일본 판화에서의 독특한 구도, 강렬한 색채에 감명을 받았다. 초반에는 원래 있는 밑그림을 고스란히 베꼈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점점 반 고흐 나름대로 이것을 해석해낸다.

 

"19세기 유럽 그림에 나타난 변화를 살펴보면, 화가들이 추구했던 것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정교하고 입체감 있게 그리는 게 가장 좋은 미술의 조건이었다면, 점점 대담하고 단순한 색채가 훌륭한 미술의 조건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한 발짝만 더 디디면 마티스죠. 이젠 자기 부인의 얼굴 한복판에다가 얼룩을 그려놓을 수 있는 배짱이 생깁니다. 마티스의 후기 작품을 보면 더 이상 어떤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색채가 소리를 내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리듬감 넘치는 춤을 그림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주죠.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더 화려한 색감 보여줍니다. 결론은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라는 겁니다."


 

 

게이트웨이 미술사데브라 J. 드위트,랠프 M. 라만,M. 캐스린 실즈 공저/조주연,남선우,성지은,김영범 공역 | 이봄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현대적 감각으로 미술을 전해야 한다는, 기존의 방식에 대한 고려 없이 전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된 이 책은 따라서 차별화에 대한 강박이나 설익은 시도의 결과물이 아닌 온전히 21세기 독자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을 장착한, 미술 세계로의 수월한 진입을 돕는 의미 있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명수, 정혜신 “자기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공감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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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홍대 레드빅 스페이스에서 심리기획자 이명수의 『내 마음이 지옥일 때』출간 기념 ‘마음지옥 탈출토크’가 열렸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는 무릎 꿇게 하는 현실에서 ‘나’를 지켜주는 치유의 시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날 사회자로는 책의 영감자인 거리의 의사 정혜신 박사가 나섰다.

 

정혜신 :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오실 때 어떤 마음으로 오셨을까, 많은 생각이 들어요. 오늘 나누는 대화와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이 치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궁금한 것, 떠오르는 생각들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그만큼 나갈 때 얻어가는 것이 있을 거예요.

 

이 날 열린 북토크는 여느 행사와 달리 독자들과의 소통이 주를 이루었다. 사전에 독자들이 자신이 겪고 있는 지옥에 대해 이야기했고, 정혜신 박사가 사연을 읽고 대화를 나누었다. 독자들은 다른 사람의 사연을 듣고 마이크를 잡아 위로를 건네기도 했고, 자신의 고민으로 강연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정혜신 : 이 책은 정말 독특해요. 앞부분에 열여섯 가지 지옥의 상황이 나와 있어요. 도입 글은 직설적이고 강력하지만, 뒤에는 치유의 시가 담겨있어요. 뜨거운 얼음과 같은 느낌이에요. 왜 이런 책을 기획하게 되셨나요?

 

이명수 : 덴마크 사람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걱정거리가 뭐예요?’라고 물으니 고민을 하더라고요.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말도 못하죠. 너무 많으니까요. 이 책은 마음이 지옥에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시가 소개되어있어요. 시가 들어있는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탁기나 텔레비전을 살 때 주는 매뉴얼처럼요. 그래서 제가 시에 덧붙이는 글에는 문학적인 문장을 가능한 많이 제외했어요.


제목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마음이 ‘천당’일 때도 아니고 ‘지옥’일 때잖아요. 살기도 어려운데 이 책을 들고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됐고요. 좋은 것만 보고 살아도 힘든 생활인데. 제가 세월호 유가족과 상담을 하고 있어요. 희생학생 엄마들이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해요. 저는 “OO엄마, 그 고통 안 끝나.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고통이야.”라고 대답해요. 그러면 엄마들이 고맙다고 말을 해요. 자신의 고통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이해해주는 것이니까요. 악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사람들 마음에 크든 작든 지옥이 있어요. 그래서 제목을 보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명수와 정혜신은 세월호가 침몰한 후 안산에 ‘이웃’이라는 치유공간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봉사자와 함께 세월호 유가족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일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명수 :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뿐만 아니라 쌍용차 사건, 재난 현장에서 많은 활동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심리적 지도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제 방식대로 이 책에서 그 지도를 제시했어요. 제 멘토인 정혜신 박사의 말을 충분히 듣고요.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이 달라요. 똑같은 일을 두고 어떤 사람은 ‘저것 가지고 힘들어?’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저런 일을 겪고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남의 고통을 들을 때 수학적인 계산을 하지 마세요. 고통은 주관적인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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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후 독자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독자들에게는 네가지 팻말이 주어졌다. 그 팻말에는 각각 ‘나도 그런 적 있어요’, ‘안아주고 싶어요’, ‘나는 화가 나요’, ‘당신이 옳습니다’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정혜신이 독자들의 사연을 낭독한 후, 독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같은 팻말을 올렸다. 무대와 독자의 자리에서 대화가 오갔다.

 

“나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와 헤어진 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그동안 온전히 제 자신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추스렸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는 순간 다시 무너졌어요. 현재 취준생인지라 이런 일로 마음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더 힘이 듭니다.”

 

정혜신 박사가 첫 번째 사연을 읽은 후, 독자들이 팻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적 있어요’ 팻말을 든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공감하고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혜신 : 그 상황에서 바로 슬픔을 막을 수 없어요. 하지만 그 힘든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마음껏 슬퍼해야 되고, 분노해야 해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이, ‘취준생’이라는 단어예요. 취준생은 슬퍼하면 안 되나요? 슬픈 일을 겪다가 마음만 먹으면 ‘취준생 모드’로 변환이 되나요? 그렇다면 사람이 아니에요. 안 되는 것이 정상인 거예요. 고통에는 유효기간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세 달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십 년일 수도 있어요. 사람마다 다 달라요.

 

요즘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삼 년이나 됐으니까 그만하라고 하는데, 그건 잔인한 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무지한 말이기도 해요. 아빠들은 아직 슬퍼하는 것을 시작하지도 못했어요. 엄마들이 울고, 굶고, 쓰러지니까요. 술만 먹고 일만 하면서 눈물을 흘리지도 못한 아빠들이 많아요. 아빠들 치유는 5년, 10년이 되어야 시작할 수 있어요.

 

이명수 :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것 때문에 더 고통스럽죠. 쌍용차 사건 같은 경우는 8년 째 이어지고 있어요. 해고된 노동자들이 ‘이렇게 오래갈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했다.’라는 말을 해요. 슬픔을 판단하고, 규정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슬퍼할 ‘자격’이라는 것은 없어요.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분노하면 지옥에서 나올 수 있는 시간이 대폭 줄여져요.

 

첫 번째 사연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후, 이명수는 이근배의 「살다가보면」이라는 시를 소개했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에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시다.

 

이명수 : 정혜신 씨와 저는 집단 상담을 많이 다녔어요. 지금까지 500번 쯤 참관한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분이 있었는데, 제 또래였어요. 맥을 놓는 듯이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 제가 벼락같은 고통에 마주해서 넘어졌는데, 일어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계속 이렇게 주저앉아 죽을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시더라고요. 정혜신 박사가 그때 이렇게 말했어요. ‘원래 걸었던 사람 아니냐. 피곤해서 그랬든지, 다리가 부러졌든지, 이유가 있어서 넘어진 거다. 왜 조급하게 일어나려고 하냐.’라고요. 우리가 넘어지면 빨리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때 못 일어나는 것은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에요. 잠시 엎드려서, 가만히 있으면 회복할 수 있어요. 저도 그 말을 들으면서 위안을 많이 얻었어요.


저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약한 존재인 것도 받아들여야 해요. 저는 나이가 잘 드는 법 중 하나는 ‘순응’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기억력이 정말 좋았어요. 사람 얼굴, 이름, 시도 800편 정도 다 외웠어요. 지금은 한 편밖에 못 외우는데요.(웃음) 저는 이렇게 나이 먹는 것, 다 받아들여요. 처음엔 저항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정혜신 : 자기를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받은 고통을 공감해주는 것이에요. 그러면 지옥에서 빨리 나올 수 있어요. 남을 공감해주지 못할 수는 있지만, 나 자신한테는 그러면 안 되는 거죠. ‘강한 인간’이라는 것은 없어요. 인간은 원래 강하지 않아요. 누구나 고통 받는 것이 당연한데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나도 나에게 공감하지 못하니까 지옥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에요.

 

 “대학 졸업 16년, 쉼 없이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잠시 멈춘 상황이고요. 내 마음 속에서도, 바깥 상황도 불안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불분명한데 하기 싫은 일은 선명합니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물음표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지옥입니다.”

 

이어 정혜신 박사는 두 번째 사연을 읽었다. 독자들은 팻말을 들었고,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했다. 정혜신은 “사람이 힘들 때 조언이나 충고를 듣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조언보다는 사연을 들으면서 느낀 것을 말해달라고 권했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불분명한 사람, 한 직종에 오랜 시간 일하다가 해고를 당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갔다.

 

정혜신 :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똑같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예요. 자신을 탓하면 안돼요.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어릴 적부터 그것에 답을 내놓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 질문을 처음 듣는 때가 20대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아야 할 것은 너무 많아요. 요리사가 되고 싶은 아이가 있어요. 그것은 단순히 요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에요.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아이일 것이에요. 또 상담을 하는데 어떤 아이는 영화를 하고 싶대요. ‘너는 그럼 감독, 배우, 연출 중에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거야?’라고 묻고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아이였어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법관이야? 경찰관이야?’라고 묻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는 안돼요.

 

이명수 : 우리가 옷을 살 때 색다른 옷을 사려고 해도 사고 보면 늘 집에 있는 옷과 비슷한 패턴, 색상이죠. 심리검사도 마찬가지예요. 세월이 많이 흘러도 비슷하게 나와요. 그것이 바로 ‘나’인 거예요. 제가 이제 60살인데요. 책의 서문에 썼듯이 저는 심리적 금수저예요. 저는 걱정이 없어요.


첫째 아이가 일 년 동안 영화를 하더니 적성이 아닌 것 같대요. 그러더니 남을 기쁘게 해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마술과 마사지를 배웠어요. 근데 또 마사지도 2년 하다가 안 하더라고요. 그럴 때 ‘왜 나는 하는 일마다 이 모양일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게 ‘나’인 것을 받아들이세요. ‘이게 아니었구나. 다른 것을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그렇게 60년을 살았어요. 괜찮아요. 지금부터 다시 하면 되고, 아니면 마는 것이에요.

 

정혜신 : 70살에 하고 싶은 것을 찾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먹고 살긴 해야하니까, 이것저것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자신을 생채기 내면 안돼요. 그것만이 중요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은 줄 알았는데, 20년이 지나서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자신을 비난하고 짓밟으면 안돼요.


사회가 정해준 규정들이 있어요. 장남이란, 학생이란, 20대에는, 30대에는, 부모는, 이런 규정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은 모두 편견이고, 사람에게 심리적 폭력이며 족쇄예요. 우리가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지옥에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예요.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책이나 부모님, 선생님이 들어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음은 오로지 ‘나’예요. 내가 내 마음을 지지해줘야 해요. 너무 힘든 상황에 놓여있어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세요. 내 감정, 내 마음은 내 것이니까요.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지옥에서 빨리 나올 수 있어요.


 

 

내 마음이 지옥일 때이명수 저 | 해냄
‘마음 지옥 탈출 가이드’임을 표방하는 이 책에서 답답한 고통의 미로를 빠져나가기 위한 핵심 열쇠는 바로 ‘시(詩)’이다. 오랫동안 수만 편의 시를 읽어온 저자는 특히 ‘내마음보고서’ ‘내마음워크숍’ ‘힐링Talk’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야말로 공감과 통찰, 눈물과 아름다움으로 아픈 마음을 다독이는 ‘부작용 없는 치유제’임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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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프로불편러는 꼭 필요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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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제목이자 이 책의 부제는 세상에 틀린 불편함은 없다거나, 나쁜 불편함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이 비록 최종적으로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 난다 할지라도, 무시하고 공론장 안에서 배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상식처럼 통용되는 어떤 표현이나 담론, 관습에 대해 누군가 불편함을 느낄 때 그 불편함에 대해서 성의 있게 논의하지 않으면 그것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따져볼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 위근우, 『프로불편러 일기』중에서

 

지난 5일 마포구 카페 비플러스에서는 위근우 작가의 『프로불편러 일기』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월간잉여>의 편집장이었던 최서윤 작가가 함께 했다. 스스로를 ‘프로불편러’로 자처한 두 사람은 관객들과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불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중은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으로 몰고 있지만, 오히려 이는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대중의 잘못이라는 것. 작가는 개인이 느끼는 불편은 타인이 느끼지 못한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하며, 그러한 개인을 과도하게 예민한 인간을 뜻하는 ‘프로불편러’로 몰고 가는 사회적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작가의 말에 청중들은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행사에 모인 이는 모두 ‘불편’이라는 소재에 관심과 공감을 가진 이인만큼 그들은 작가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이들은 모두 하나의 ‘프로불편러’로서 사회의 편견과 그 해결 방법을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청중의 뜨거운 관심 속에 곧 두 작가의 대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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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X 최서윤 대담

 

최서윤: 오늘 우리 사회에서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는 부정적 뉘앙스로 불리고, 많은 이가 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프로불편러로서 작가님이 경험하신 편견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위근우: 가끔 사람들이 쟤(위근우)는 왜 이렇게 예민하지,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억울하긴 하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에요. 제가 실제로 예민한 성격인 건 맞으니까. (웃음) 다만 제가 모든 이야기를 여성 혐오적 맥락에서 해석한다는 의견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아요. 작년에 한 스타가 욱일기 사진을 올려 비난을 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당시 많은 사람이 (사건 자체를 논하지 않고) 그 스타가 명품 백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 비난을 했어요. 개인이 잘못한 것과 별개의 문제를, 그것도 명품 백과 관련해 갑작스레 비난을 퍼붓는 것은 분명 여성 혐오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일이었죠. 그래서 그에 대한 발언을 했는데 (모든 일을 여성 혐오와 연관시킨다는) 그 같은 반응이 나와 무척 놀랐습니다. 제가 모든 일을 여성 혐오와 연관시켜 말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와 관련되지 않은 일을 찾기가 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최서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논리적인 글을 썼는데, 오히려 그 같은 (논점에서 벗어난) 반응을 받으면 무력감이 굉장히 클 것 같아요. 설득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대할 땐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근우: 기자로서 논증이라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실제로 논증이라는 게 사람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이에요. 과연 논증을 통해 실제로 사람을 바꿀 수 있느냐는 거죠.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어떤 문제에 대해 성실히 답해서 한 명의 사람이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무척 많거든요. 이를테면 SNS에서 말싸움을 할 경우, 많은 이가 상대방의 논리를 최대한 피하면서 대화를 끝까지 이어가면 승리한다고 믿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런 상대를 만나면 좌절스럽지만, 그럼에도 제가 논증을 포기하지 않는 건 대화를 보는 제삼자가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당장 이 사람이 설득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대화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제 생각이 더 논리적으로 옳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거죠. 그런 과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었다면, 제 글에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이것과 별개로 저 스스로도 논증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논증만 하기보단, 미문을 통해 마음을 흔들 수 있을 때도 많거든요. 상대를 설득할 때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논증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표현을 논증과 적절히 합쳐 활용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최서윤: 저는 스스로 아마추어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한 조직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창작 방식을 통해 제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아마추어의 정체성을 가진 제가 처음으로 프로로 인정받은 건, ‘프로불편러’로 불렸을 때였어요. (웃음) 이렇게 쉽게 프로가 될 수 있다니, 기분이 좋았던 한편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과연 나는 프로불편러가 될 자격이 있으며, 프로불편러란 무엇일까.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성실한 논증과 감정을 자극하는 미문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프로불편러는 이 두 가지를 갈고닦는 사람일까요?

 

위근우: 프로불편러가 되는데 별도의 자격은 없습니다. (웃음) 프로불편러라는 말은 애초에 다른 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문제의식을 지적한 사람에 대한 멸칭으로 시작된 말이니까요. 저널리즘, 즉 지금껏 제가 누군가를 비판하려 했던 작업 역시 넓게 봤을 때 프로불편러라고 볼 수 있겠죠. 사회의 부정적 시선과 상관없이, 저는 이 같은 프로불편러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사회에서 비판자는 굉장히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거든요. 그 역할을 최서윤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프로’로 부르는 능동적 자세로 수행한다면 정말 긍정적인 일이겠죠. 너무 큰 의미나 의무를 둘 필요는 없겠지만, 그에 따라 자신을 맞춰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불편함이 용인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불편함은 내가 잘못 생각해서 (또는 편견으로) 일어난 것일 수도 있죠. 불편함을 대할 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하다는 느낌만을 가진 채 생각을 멈추는 것도 위험한 일이에요. 개인은 왜 자신이 그 같은 불편함을 느꼈는지 생각해보고, 자신의 불편함이 온당하다는 결론이 나면 상대방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적극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정리된 생각을 상대방에게 직접 얘기할지는, 또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겠죠. 서로 서있는 자리가 다르고,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다른 법이니까요.

 

최서윤: 문제를 직감하는 순간 개인에게는 크게 두 개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직접 말하거나, 안 하고 참는 거죠. 후자의 경우 상대방과 마찰을 겪을 일은 피할 수 있겠지만, 문제가 야기된 ‘구조’ 자체를 깰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위근우: 작가님 말처럼 전자의 경우는 일상을 살아갈 힘은 얻을 수 있어도 (일상의) 구조를 깨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를 택한다고 해서, 과연 개인이 구조를 바꿀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거든요. 이 같은 싸움을 견딜 수 있는 개인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사적인 곳’에서는 굳이 싸울 필요 없다는 겁니다. 사회적 자아로서 우리에게는 이미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부분이 많이 있거든요. 이 피할 수 없는 고리를 인내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만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사적인 시간을 기울여가며, 얼마 없는 인내심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죠. 그보다 사적인 시간에는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며 일상을 살아갈 힘을 키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최서윤: 친구가 얼마 없어서인지 작가님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웃음) 그렇다면 사적 영역이 아닌, 이를테면 조직의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하죠. 생계를 위해 계속 조직에 머물러야만 하는 사람(군대의 이등병과 같은)이 지속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는 매일 인내심을 잃는 셈인데, 이 경우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위근우: 그 경우는 개인에게 조언을 해주기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해요. ‘구조’ 문제는 개인의 선택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이도 자유롭게 참가해 의견을 펼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등병이 됐든, 후배가 됐든 내가 겪은 불편함,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없거든요.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자신의 주장을 과격하게 드러낸 것 역시 (차근차근 말할 수 있는) 이 같은 공론장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공론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외부적 전제가 선결되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토론에 대한 규범적인 기대, 자유주의적인 정치문화, 민주적인 갈등 해소 절차가 그것이죠. 가령 간단히 군대라는 곳을 보아도, 그곳은 결코 민주적인 갈등 해소 절차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이 절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그 과정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강제력이 필요하죠. 이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 즉 군대, 후배, 여성 문제 등에 대해서 개인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개인으로서는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어려운 만큼, 저를 포함한 언론 종사자들은 (공론장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이 문제에 대해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한 번 밝히지만 구조 차원의 문제는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는 개인을 쉽게 비판하거나 지적하도록 강요하긴 어렵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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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설득이 통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그 대상이 느끼기엔 폭력적 방식일지라도 조직적인 싸움, 힘이 필요한 거군요. 방금 전 말씀하셨던 일상에서의 ‘힘’을 채워놔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근우: 사적인 시간에 원하는 일만 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의무를 위한 관계를 굳이 유지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저도 친구는 얼마 없거든요. (웃음) 편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은 세 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서윤: 그렇군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본인이 ‘노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위근우: 재미(잼)란 건 다양한 것이기 때문에 저도 재미있는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사회적인 재미와 제가 생각하는 재미는 다를 수 있겠죠. 재미란 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지만, ‘노잼’은 확실히 쓸데없이 진지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긴 하네요. 만약 노잼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면 저도 노잼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떳떳하지만요.

 

최서윤: 본인이 생각하는 재미의 의미가 다른 이와 다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재미는 무엇인가요?

 

위근우: 일단 불편한 건 재미없어요. 불편한 걸 보고 웃고 싶진 않으니까요. 윤리적인 게 충족되어 있지 않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아요. 예전엔 분명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라는 게 있었어요. 강용석씨의 <고소한 19> 같은 프로그램은 저도 참 재밌게 봤었거든요. 불편하긴 하지만 웃기긴 하다고 생각했었죠. 마찬가지로 웹툰 <마음의 소리>도 제가 참 좋아하는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이런 것들을 다시 보면 (마음에) 걸리는 게 많더라고요.

 

최서윤: 혼자 있을 땐 재미있게 보시다가 남들이 보면 다른 태도를 취하시는 건가요?

 

위근우: 선한 마음의 눈치를 본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작품을 볼 때면 웃으면서도 마냥 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에는 옳지 않은 소리를 하면서도 재미있는 작품이 참 많잖아요. 그런 작품을 보고 웃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거에요. 당장 그것을 보고 웃음을 멈추기 어렵다면, 웃더라도 어떤 부분이 확실히 잘못됐다는 사실만큼은 인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사실을 인식하고도 (작품이 재미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신다면, 작품을 올바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단순히 문제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 시진 마시고요.

 

최서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문득 질문이 하나 더 생각납니다. 작품에 대해 비평하는 사람들을 창작에 ‘기생’하는 존재로 여기며, 재미나 아름다움을 알면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창작자들이 간혹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온 태도일 텐데요, 작가님은 비평가로서 그런 창작자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위근우: 자연이라는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 과학이 필요하듯,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비평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어요. 비평이 과학만큼의 권위를 가질 순 없겠지만, 어떤 작품도 해석을 거치지 않고 존재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텍스트도 해석에 기생하는 셈이죠. 세상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비평가의 존재 의무는 그에 대한 좀 더 성실한 해석을 제공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실한 해석을 제공하는 게 창작물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역시 비평가로서 많은 작품에 비판을 가한 바가 있습니다. 제가 그 작품들을 비판한 건 단순히 그 작품이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미 있는 피드백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창작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피드백을 줄 수 있어 좋은 거고, 설령 그들이 설득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을 보는 제 3자에게 문제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거겠죠.

 

최서윤: 작가님 본인의 높은 안목 때문에 작품에 너무 많은 비판을 가하시는 건 아닌가요?

 

위근우: 제 안목은 절대 높지 않고요. (웃음) 한 작품을 비판할 때 제가 갖출 수 있는 최대의 예의는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한 근거를 들어 말하는 거예요. 작품을 비판할 때 창작자의 기분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최서윤: 작가님은 기자로서 경력을 쌓으셨는데, 혹시 기자를 꿈꾸는 이에게 조언을 줄 수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나요?

 

위근우: 이런 질문을 들을 때가 가장 답하기 난감합니다. 제가 기자가 되기까지는 굉장한 운이 작용했거든요. 지금의 여러분과 제가 기자가 되려고 했을 때의 토대가 다르기도 하고요. 제가 졸업을 앞두고 구인사이트를 뒤졌을 때 미디어파트에 있던 일자리 개수와, 지금의 개수는 많은 차이가 있겠죠. 조언으로서는 별 가치가 없겠지만 제가 기자로서 취직하게 된 얘기를 해드릴게요. 제가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대학교 4학년 때였어요. 군대를 전역하고 한 사이트에 리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매달 우수 리뷰에 당선돼 책을 살 수 있는 포인트를 받을 수 있었죠.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쓴 후에는 골프잡지에서 첫 취직을 할 수 있었고, 그 뒤로 다른 회사에 이직했는데 그 회사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두 번째 회사가 망하기 전에 <매거진t>에서 연 공모전에 당선됐는데, 회사에서 제 글을 좋아해 기고할 기회가 생겼고, 나중엔 일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됐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기자 생활을 하게 되었죠. 지금 돌이켜 봐도 운이 무척 좋았네요. 글을 잘 쓰는 비법 같은 건 없지만, 본인이 공모(취직)하려는 대회가 있다면 전 회의 수상작을 보는 것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전 수상작을 보고 매체가 좋아하는 문장 구성, 패턴 등을 파악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프로불편러 일기위근우 저 | 한울
여성혐오와 일상의 폭력이 난무하고 “여전히 전근대적인 정치의식이 지배력을 발휘하고 반지성적 선동이 소위 정치적 진보 진영 안에서도 등장”하는 지금 이곳이 불편하지 않은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필연적인 프로불편러”여야 한다고 말하는 웹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가 섬세하고 치열하게 3년 반 동안 써온 글 85개를 선별하여 『프로불편러 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명섭 “일제강점기에도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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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서울도 없었을 것

 

역사 추리소설 『적패』, 좀비를 소재로 한 논픽션 『좀비 제너레이션』, 역사 인문서 『조선의 명탐정들』, 장편 창작동화 『사라진 조우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작가 정명섭이 새로운 소설 『별세계 사건부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이하 『별세계 사건부』)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총독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해 낸 정명섭 소설가는 독자들을 위해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정명섭 작가와 함께하는 경성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들과의 만남을 준비한 것이다.

 

지난 14일 저녁 서울 시민청에서 독자들과 만난 작가는 한양에서 경성, 현재의 서울로 이어지는 역사를 설명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오래된 그림과 지도, 사진 등 다양한 자료들이 이곳의 과거와 현재를 증언하고 있었다. 정명섭 작가는 “600년이 넘는 서울의 역사에서 경성이라고 불린 시기는 35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경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서울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조선시대의 한양은 경복궁과 육조 거리, 운종가(종로)를 중심으로 한 작은 규모의 도시였지만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도시가 확장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본인들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처음 한양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곳이 (서울) 남쪽이었거든요. 북쪽은 이미 조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남산에는 딸깍발이들이 살았습니다. 나막신을 신고 다니는 가난한 선비들이 살았던 동네였죠. 그런데 이 자리에 일본인들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도시가 확 바뀝니다.”

 

경성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거점 도시”로써 변화하기 시작했다. 거주 인구가 빠르게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풍경 역시 달라졌다.

 

“조선시대에 용산은 빈 땅이었어요. 범람이 너무 자주 됐거든요. 그런데 청일 전쟁 때 청나라군이 주둔한 것을 시작으로 군대가 주둔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군인들, 군인 가족, 관계자 등이 모이면서 일종의 도시가 형성됐어요. 그게 바로 신용산 일대입니다. 여기에서 일직선으로 올라가면 남대문에 있었던 경성역이 나오고요. 조금 더 올라가면 지금의 시민청인 경성부청이 나옵니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조선총독부가 있었고요. 남북으로 길게 길을 낸 거예요. 언제 군사적인 출동을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군대가 최대한 빨리 이동할 수 있게 일직선으로 길을 만들어 놓은 거죠.”

 

도시의 좌우 축선 역시 달라졌다. 창경궁과 종묘를 가르는 ‘율곡로’라는 이름의 길이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다. 조선총독부가 남산에서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청계천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거주지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기능했다. 대부분은 청계천 남쪽에 일본인이, 북쪽에는 조선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경계는 조선총독부가 새로 건설되면서 더욱 희미해졌다.

 

“조선총독부 공사가 1916년에 시작됐습니다. 명분은 북쪽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곳에 총독부를 크게 지어놓으면 조선 사람이 어디를 지나가더라도 보게 되어있거든요. 실제로는 ‘너희들의 주인은 우리야’라는 걸 강력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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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만 있었을까?


조선총독부는 10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바로 그 시점에서 『별세계 사건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낙성식을 얼마 앞두고 조선총독부 안에서 조선인 건축사의 시신이 발견된다.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대(大)’자 형태로 흩뿌려진 모습이었다. 총독부는 조선인들을 자극하게 될까 우려하며 사건을 조용히 수습하려 하고, 육당 최남선은 통속잡지 ‘별세계’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류경호에게 사건 조사를 부탁한다.

 

류경호는 일본의 게이오 대학을 졸업한 수재로, 비상한 두뇌와 남다른 관찰력을 발휘하며 진실에 다가간다. 정명섭 작가는 그가 “자신과 독자 대다수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태백산맥』의 김범우처럼 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떠나거나 총독부에서 일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당시 지식인의 상황과 고뇌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대에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만 있었던 것처럼 오해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비상도 계속되면 비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일제강점기 시대에 경성에서는 수많은 변화들이 일어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나름의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 중에 하나가 『별세계 사건부』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조선총독부는 1926년 4월에 완공된 뒤 10월 1일에 문을 열었다. 첫 날에만 15만 명이 찾아와 구경했을 만큼 건물 내부는 최첨단 시설로 채워져 있었다. 같은 날, 항일정신을 담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개봉됐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조선총독부의 개방과 영화 <아리랑>의 개봉, 두 개의 상징적인 사건이 같이 일어났어요. 물론 조선총독부가 개방되는 날짜에 영화 개봉일을 맞춘 겁니다. 그 날 사람들이 많이 몰려올 줄 알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총독부에서 영화가 상영됐던 종로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거든요. 총독부를 구경했던 15만 명 가운데에는 (그 날) 나운규의 <아리랑>을 봤던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때 당사자가 느꼈을 복잡 미묘한 감정은, 저는 절대로 책으로 옮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는 가장 매력적으로 담고 싶은 시기이기도 해요. 아마 그걸 찾는 여행을 계속 할 것 같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정명섭 작가는 독자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별세계 사건부』의 집필 과정과 함께,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고민과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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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는 얼마 만에 쓰셨는지, 퇴고하시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초고는 굉장히 빨리 쓰는 편입니다. 『별세계 사건부』같은 경우는 분량이 꽤 많지만, 초고는 2달 조금 넘게 걸렸습니다. 대신에 준비하는 시간, 자료를 보는 시간이 아주 많았죠. 퇴고하는 시간도 굉장히 많았고요. 퇴고는 제가 끝을 내는 게 아니라, 출판사에서 이만하면 됐다고 하실 때까지 계속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재미없을까 봐 불안할 때는 없으세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제가 쓴 이야기가 재미없을까 봐 불안하면 계속 글을 씁니다. 언젠가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겠죠(웃음). 재밌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써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역사와 추리를 결합해 흥미로운 작품을 집필하셨는데요. 작품의 소재는 어디에서 얻으시는지, 역사적 사실과 배경에 대한 확인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실록을 찾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같은 자료들은 요즘은 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어요. 참고로 제가 기다리고 있는 건 ‘승정원일기’인데요. 앞부분은 임진왜란 때 타버렸고, 남은 부분은 ‘조선왕조실록’의 14배 정도 되는 분량이라고 합니다. 저는 실록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재밌는 주제들을 발견하고요. 실록을 보기 전과 후의 작품이 뚜렷하게 차이가 납니다. 항상 작가는 신비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비밀은 실록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실록을 보고 주제를 찾으면 그 다음에는 논문을 봅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집필하셨는데요. 그 시대에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저도 조금 궁금하기는 한데요. 일종의 트렌드 같은 겁니다. 조선시대를 어느 정도 파고들다 보니까 다음에는 어떤 시대를 다뤄볼까 생각하게 됐는데요. 고려시대라든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에는 조금 애매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말로 넘어가기 시작하니까 일제강점기에 주목하게 됐고 ‘이 시대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그러면서 자료를 보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일제강점기에 대한 작품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1945년 해방 이후의 시기예요. 1947~1948년이 굉장한 혼란기였거든요. 혼란하면서도 재밌는 시대였는데, 그때를 한 번 다뤄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별세계 사건부정명섭 저 | 시공사
장르문학계에서는 드물게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명섭 작가는 자신의 시작점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장르소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오랜 준비 끝에 장편소설 『별세계 사건부: 조선총독부 토막살인』을 출간, 작가로서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혜리 “일기는 서랍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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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자, 글 읽는 여자

 

<씨네21>의 김혜리 기자가 새로운 영화 에세이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를 출간했다. 『영화를 멈추다』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이번 책에는 2014년부터 올해 1월까지 <씨네21>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에 연재됐던 글들이 담겼다. 40편에 이르는 ‘영화 일기’는 관람 날짜를 기준으로 열두 달 목차로 재편되어 있다.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켜 온 예리하고도 따스한 시선, 정갈한 문체는 어김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난 23일 저녁, 신촌역 인근의 작은 카페에서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의 출간을 기념하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김혜리 기자가 최다은 SBS PD, 배우 임수정과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의 공개방송이 진행된 것이다. 이 날은 촬영으로 인해 자리를 비운 배우 임수정을 제외한 두 사람, 김혜리 기자와 최다은 PD가 독자들을 맞았다. 1부에서는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에 대해, 이어진 2부에서는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김혜리 기자는 “글 쓰는 여자, 글 읽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번 책과 교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했다”며 영화 <디 아워스>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이 영화는 만나 적 없는 인간들의 커넥션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도 만나지 못한 채로 진행자와 청취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닿지 않는데 닿아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서 선택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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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작품이에요. 각본과 각색은 데이비드 헤어라는 작가가 썼는데요. 마이클 커닝햄의 『디 아워스 The Hours』라는 소설이 원작입니다. 이 작품의 한국 번역 제목은 『세월』이에요. 원작 소설 자체가 또 다른 작품에 대한 변주의 성격을 보이는데요. 구조는 버지니아 울프의 『더 이얼스 The Years』에서, 내용의 모티프는 『댈러웨이 부인』에서 가져왔어요. 『더 이얼스 the years』의 한국 번역 제목도 똑같이 『세월』이고요. 마이클 커닝햄의 『디 아워스』는 현대의 변주와도 같은 소설입니다. 그것을 영화로 옮긴 것이 오늘 이야기할 영화 <디 아워스>예요.”

 

영화 <디 아워스>는 세 여성의 결정적인 하루를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의 첫 줄을 쓰는 1923년의 어느 날, 그리고 1951년에 그 소설을 읽는 가정주부 로라의 하루, 마지막으로 2001년의 뉴욕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클라리사의 일상을 오고 가면서 비춘다. 세 여성은 『댈러웨이 부인』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댈러웨이 부인』을 로라가 읽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인간은 다 고독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예술이 커넥션을 만들어줌으로써 위안을 받기도 하고, 굳이 누구랑 연결된다는 의식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각자 고독하고 고통을 통해서 서로 느슨하게 줄이 그어져 있다는 섭리나 질서 같은 걸 <디 아워스>가 보여줘요. 그것이 아마 제가 이 영화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던 제일 큰 이유인 것 같고요. 또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걸 어디에 갇혀있는 걸로 보지 않고, 시간을 넘어서 유동적으로 흘러 다니고 다른 사람과 합쳐지고 확장하는 걸로 바라보는데요. 그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늘 나오는 표현인 것 같아요.”

 

함께 공개방송을 진행한 최다은 PD는 영화에 삽입된 필립 글래스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필립 글래스는 미니멀리즘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선율성을 배제하고 적은 음의 요소를 가지고 반복함으로써 표현하는 음악을 선보인다. 최다은 PD는 “<디 아워스>이후에도 필립 글래스가 영화 음악을 만들거나 기존 음악이 영화에 쓰이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시너지가 난 작품은 흔치 않았다. 지금도 필립 글래스 하면 거론되는 작품이 <디 아워스>다”라고 말했다. “필립 글래스 음악의 미묘한 변화가 어떻게 장면과 맞물렸는지 보는 것도 아주 큰 재미”가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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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서랍 같아요

 

2부 시간은 김혜리 기자의 낭독으로 시작됐다. 저자는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의 서문 일부와 ‘삶을 지어올린 곳’이라는 제목의 글을 낭독했다.

 

주시하지 않으면 영화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본 것을 적어두지 않으면 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는 두려움은 2010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씨네21>에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한 동력이었다. ‘김혜리의 영화 일기’가 아니라 볼썽사납게 소유격이 두 개가 들어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여야 한다고 고집부린 까닭은 이 저널의 제1저자는 내가 아니라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의 일기’를 쓰는 나는 다만 매일 영화가 보여준 것을 적어두는 속기사였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10쪽)

 

낭독이 끝나자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서문에 “영영 셋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하나 그리고 둘, 다시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하나 그리고 둘 A One & A Two>은 제가 굉장히 사랑하는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요. 가끔 글을 쓴 때 뜬금없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러면 글에 한 번 넣어 봐요. 어떨 때는 ‘제법 어울리는 걸’ 할 때가 있죠.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일기라는 게 종합으로 나아가지는 않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버지니아 울프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서랍 같아요. 생각날 때마다 뭔가를 써서 던져 넣는 거예요. 그 다음에 기도하는 거죠. 자기들끼리 의미를 만들어 놓게 해달라고요. 정반합에서 셋은 합을 가정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물론 셋이 나오면 굉장히 기쁜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고 계속 써나간다는 의미로 썼던 것 같아요.

 

저희는 킬링 타임으로 영화를 볼 때가 있는데, 기자님은 매번 적으시면서 보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자님께서 킬링 타임을 위해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김병옥 감독님 시트콤을 봐요(웃음). 요즘 새벽에 케이블채널에서 밤새 해주는데, 보고 있으면 정말 저 오붓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거침없이 하이킥> 시리즈를 보고 또 다음 작품을 기다리던 때가 그리워요. 그런데 시트콤을 보면서도 적기는 해요(웃음). 김병옥 감독님은 제가 몇 차례 기획 기사도 썼고 ‘언젠가 인터뷰를 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약간 작품 활동을 멈추고 계셔서 재방송을 보면서 적지는 않아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감명 깊은 대사, 인상 깊은 장면들을 메모하는데요. 글씨를 못 알아보게 쓸 때도 있어요. 기자님은 어떻게 메모하시는지 노하우를 알고 싶습니다.


글씨를 못 알아보고 겹쳐 쓰는 건 저도 똑같고요. 그래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서(正書)를 해야 돼요. 그런데 오래 하다 보면 적당히 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종이에 세로로 선을 긋거나 접어서 중간 선을 만들어요. 그래서 되도록 안 겹치게 쓰려고 하는데요. 늘 써 놓은 걸 보면 엉망이에요. 제일 난감한 게 볼펜 잉크가 떨어졌을 때예요. 어둠 속에서는 볼펜이 안 나오는 게 안 보이잖아요. 예전에는 자국만 남아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 위에 연필을 칠했죠(좌중 웃음). 아주 드물게 친구나 엄마랑 영화를 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조금 미안하기는 해요. 같이 갔는데 혼자 다른 생각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요.

 

글을 쓰실 때 적확한 단어를 고르려고 사전이나 검색 어플을 이용하시나요?


검색 어플이 뭔지는 잘 모르겠고요. 저는 사전을 정말 좋아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의 종류가 사전이라서 어떤 물욕이 있어요. 사전이 있으면 마음이 놓여요. 물론 일을 할 때 단어를 확인하는 실용적인 용도도 있고요. 제가 언어를 굉장히 어눌하고 불확실하게 쓰기 때문에 이 세계를 단어로 정리해 놓은 책이 옆에 있으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요. 헌책방 가서 제일 많이 사는 게 사전이에요. 요즘 사전이 많이 안 만들어지는데 헌책방에 가면 많거든요. ‘외국어 사전’도 있지만 ‘소설어 사전’ 같은 것도 있고요.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 사전’도 있어요. 그림 사전도 굉장히 좋아해서 ‘세계만물그림사전’도 가지고 있어요. 또 좋아하는 사전이 ‘징후 사전’이에요. 몸의 통증이나 역기능을 용어를 풀어놓은 거예요. 그 사전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어떤 인물이 보이고 있는 행동을 찾아보면, 사전에 답이 있지는 않지만, 뭔가 생각을 우회시키면서 덜 진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거든요.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김혜리 저 | 어크로스
영화의 밀도와 미덕을 지적이고 시적인 자세로 이야기해온 씨네21 김혜리 기자.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그녀가 간직한 영화 일기장을 공개한다. 2008년 『영화를 멈추다』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영화 에세이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에는 김혜리가 통과한 ‘영화의 모든 계절’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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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저출산 문제, 어린이를 최우선에 두면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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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체성을 가지고 쓴 책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의 저자 이소영은 자신의 책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동문학가이자 놀이터디자이너 편해문의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놀이와 놀이터에서 배운다’고 한 말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말이었다. 엄마 정체성을 가진 입장이 본 놀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과연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곳이었을까. 저자는 2016년 여름, 독일의 대표적인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 독일 남서부 스위스 국경에 가까운 도시)로 떠났다. 목적은 놀이터 탐방이었다. 저자를 중심으로 저자의 가족(남편과 딸 두 명), 저자의 어머니, 저자의 동생 가족(동생과 남편, 아들 한 명) 모두 여덟 명의 대인원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과 함께 구글 어스로 프라이부르크를 살펴보았다. 화면을 본 아이들은 외쳤다. “와, 초록색이다!”

 

“프라이부르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아니지만 사실 유럽에서는 꽤 유명한 관광도시예요. 구도심 부분에 중세 시가지가 2km 정도 복원이 되어 있고요. 거기에 있는 대성당에서 소시지빵을 먹는 게 관광객의 주요한 일과입니다.(웃음)”

 

후설(Edmund Husserl),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등의 철학자가 수학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가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진 이 도시는 무엇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생태도시다. 1992년 독일의 환경수도로 선정, 전체 고용인구의 3퍼센트인 1만여 명이 재생에너지, 태양전지 등 환경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도 굉장히 커서 학생 수가 2만여 명 정도가 돼요. 학생과 교직원, 관련 연구기관 종사자와 환경 산업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22만여 명의 인구 중 4만여 명 정도가 굉장히 젊고 진보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시 전체가 아주 개방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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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없는

 

“도시의 다채로운 표정을 만드는 것이 바닥을 흐르는 수로예요. ‘베힐레’라고 부르는데요. 이 물길을 따라 쭉 걸어갈 수도 있어요. 딱히 지도가 없어도 물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심 산책을 하며 즐길 수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그곳에서 잘 놀았어요. 만약 이 수로가 우리가 아는 어떤 도시, 서울이나 뉴욕, 파리 등의 한복판에 있다고 상상해보시면 어떨까 해요. 언제든지 신발을 벗고 발을 담글 수 있는 차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면 그게 얼마나 마음과 몸에 위안이 될까요.”

 

중세 유럽에는 도시마다 이런 수로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가 진행되며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물길이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프라이부르크는 다른 도시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수로가 있는 구도심 구역 전체를 차량 통행금지 구역으로 정했던 것. 저자는 베힐레를 두고 “영혼을 씻어주는 물길”이라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베힐레의 쓸모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식수 공급과 함께 화재 진압 기능을 가졌다고도 한다. 도심의 먼지를 덜어주고 더위를 식혀주는 기능이라든가 빗물을 모으는 용도 등도 거론된다. 누군가는 이 수로의 가치를 몇 억이라는 돈으로 환산해 설명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은 물길의 가치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물길은 도시의 먼지와 함께 사람들의 경계 짓는 마음을 가져간다. 도시는 자연스레 놀이터가 되고 아이들은 도시의 주인이 된다.(36쪽)

 

흥미로운 것은 어느 곳에도 경계나 구역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였다면 ‘미끄럼 주의’, ‘신을 벗고 들어가시오’라는 경고문이나 테두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저자는 “트램이 다니는 선로가 베힐레 바로 옆에 있어도 아무 경계가 없어요. 선도 하나 그어놓지 않고요. 트램이 경적을 울리면 사람들이 그때 비켜요. 사람이 안 비키면 트램은 계속 기다려요. 선로와 트램과 인도 사이에 어떤 경계도 없는 그런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라고 했다. “금지 표시를 붙이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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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으로 당당한


‘제파크(Seepark)’ 호수공원은 건설회사가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는 곳이었다가 주차장 부지로 방치되었던 곳을 1986년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공원 중앙에는 인공 호수가 있는데 “수심이 깊은 곳은 25미터”까지 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어디에도 ‘수영 금지’ 표시가 없다는 점이다.

 

“오리한테 먹이 주지 말라는 정도만 있고요. 경고판에도 ‘네 수영 실력을 알지’(웃음) 정도로만 쓰여 있는 거예요. 알아서 하라는 거죠. 당연히 이 호수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주변으로는 둔덕이 있고요. 저는 이 공원이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은 포장을 안 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참 열심히 가꾸잖아요. 차가 다니는 길은 당연히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사람이 다니는 길은 보도블럭으로 포장을 하고요. 놀이터는 우레탄으로, 공원은 나무데크로 전부 포장을 해요. 사람이 공원에서 흙을 밟는 일이 없어요. 산책하는 길은 다 포장이 되어 있으니까요. 넓은 공원을 다 포장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요. 어떻게 보면 독일의 이 공원은 정말 싸게 만든 공원이죠. 포장도 하나도 안 하고요.”

 

저자는 “우리가 흙을 밟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태적인 도시에 살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흙에 대한 거부감, 즉 흙이 불편하다거나 흙이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부터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문덴호프’는 안과 밖이 희미한 동물원이다. 동물원이지만 “동물이 전부 멀리에 있는” 동물원이다. “동물들에게 더 넓고 편안한 집을 주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동물원 안에는 역시 놀이터가 여러 개 있다. 한국의 여느 놀이터와는 색채부터가 다르다. 나무인 채, 콘크리트인 채로 마치 “폐허처럼” 보이는 놀이터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이 놀기 시작하면 장소의 빛깔이 변한다. 저자는 이 놀이터들을 하얀 스케치북 같다고 표현했다.

 

“우리의 놀이터, 어떻게 놀 것인지를 다 정해주고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놀이터가 ‘이렇게 놀아라’라고 하는 것 같죠. 그것이 마치 색칠공부 같다면 독일의 놀이터는 그냥 하얀 스케치북 같았어요. 와서 누구든 원하는 방법으로 색칠하고 그림 그릴 수 있는 곳이요. 꼭 놀이터가 아니더라도 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원하는 방식으로 놀 수 있게 해두기도 하고요. 그런 곳들이 동물원 구석구석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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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없다면?


‘세계 제일의 생태계획지구’, 프라이부르크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보방(Vauban)’을 수식하는 말이다. 수식에서 볼 수 있듯 이곳은 모든 주택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패시브 하우스’다. 녹지로 조성한 건물의 옥상이 또한 특징적이기도 하다. 보방에 들어선 저자를 사로잡은 것 역시 “엄청나게 거대한 가로수”였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낯선 조합의 도시였어요. 몇 천 가구가 사는 주거지구인데요. 그런 도시 한복판인데 자연 속 같은 느낌을 동시에 주더라고요. 이런 것이 도시에서 가능하구나, 하는 인상을 주는 도시였어요.”

 

개천에서 수영 하는 개,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맨발의 사람, 보방은 여러 가지 놀라운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 도시에는 차가 없다. 도시를 처음 기획할 때 ‘보방 포럼’이라고 하는 주민단체의 대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을 지을 때 주차장 대신 놀이터를 먼저 만들게 해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가 중심에 있는 도시와 사람이 중심에 있는 도시, 그 안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다니다 보면 놀이도로라고 하는 ‘홈 존’을 자주 만나게 돼요. 차량 제한속도는 시속 7킬로미터예요. 걸어가는 게 더 빠른 도로죠. 사람과 같은 속도로 가든지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라는 이야기인 셈이에요. 도로의 주인이 차가 아니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아이가 놀고 있음’이라는 표시를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마음을 도시가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정말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우리가 저출산이라든지 환경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이랄까 지향 같은 것들은 우리가 어린이들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고 하는 방침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2013년 9월 한 달 동안 수원 행궁동 일원을 차 없는 도시로 만든 행사가 열렸다.(중략) 하지만 축제는 축제일 뿐, 축제가 끝난 뒤 다시 찾은 행궁동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 다시 걸으니 차가 얼마나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거리에 차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도 공간의 가치가 달라진다. 보방의 마법은 차가 없는 거리에서 시작되는 게 분명하다.(228-229쪽)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이소영 저/이유진 사진 | 오마이북
독일 남부 작은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즐긴 아주 특별한 ‘놀이터 여행’. 이 책은 아이가 신나서 뛰놀고, 부모가 마음 편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꿈같은 놀이터 이야기다. 초등학생 융, 유치원생 교, 네 살 꼬시, 칠순의 할머니 도족여사, 그리고 두 가족의 엄마와 아빠들이 이 특별한 놀이터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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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정원』 출간 후 긴 여행 다녀온 조병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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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이, 광화문에서의 그 치열했던 겨울이 조금씩 물러가고, 꽃 피고 연초록 잎들 쏙쏙 돋아나는 봄이 왔다. 작년 가을, 8년 만에 선보인 에세이 『기쁨의 정원』출간 후 에너지 충전을 하러 긴 여행을 떠난 조병준 작가도 봄과 함께 돌아왔다.

 

자기 정원에서 “기쁨의 씨앗 몰래 훔쳐가라고, 기꺼이 눈감아 주겠다”고 책에 그렇게 써놓고선 독자들이 씨앗 하나 제대로 훔치기도 전에 떠났던 그가 세계 곳곳 신들의 정원에서, 사람의 마을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 기쁨의 씨앗을 묻혀왔다며, 그 싱싱함을 나누기 위해 “옵빠가 돌아왔다”는 재미난 제목으로 봄밤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4월 27일,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난 ‘옵빠’는 하얀 셔츠 위에 초록 카디건을 상큼하게 입고 있었다. “여행에서 갓 돌아와 싱싱하기 그지없는 옵빠의 기운을 받아가라”는 행사 안내장의 카피와, 주최측인 샨티출판사에서 준비한 준카스(조병준 작가의 얼굴과 JOON-CCHUS’D 글자를 새겨 넣어 만든 박카스)를 의식한 듯 무척이나 싱싱해 보이는(?) 차림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흰 셔츠 중앙, 가슴 한복판에 노란 리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늘 가방에 달고 다녔다는 노란 리본을 오늘 이렇게 가슴에 옮겨 달았다며, “여행자로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 동안에도 광화문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지켜준 친구들, 이웃들, 여러분께 많이 고맙다”고 인사한 뒤, 이번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조병준 작가는 “여행지에서라면 언제고 있을 법한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의 만남처럼 오늘 이 자리가 조금은 낯설지만 금세 친해질 수 있는 여행자들의 만남 같았으면 좋겠다”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준카스’를 손에 들거나 이미 마신 사람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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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이야기를 줍고, 그것을 나누는 일이 나의 생업

 

왜 그렇게 자꾸 떠나시는 거예요?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떠날 때 편도로 표를 끊게 됐어요. 돌아올 때를 정하지 않고 떠나는 거죠. 좀 비장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더 이상 두려울 것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말예요. 예전에 ‘플로피 디스크’를 쓰던 시절엔 미발표된 시나 글들을 담아 친한 친구에게 건네고 떠나곤 했어요. 이번에도 블로그 비밀번호를 편집자 후배에게 알려주고 떠났네요.(웃음)


그러면서도 왜 자꾸 짐을 꾸리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내 안의 절대 명령 같은 것? 그에 따라서 짐을 싸는 것 같아요. 이젠 더 이상 젊은 시절의 여행처럼 흥미진진하지도 않은데 매번 떠나고 싶어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나 굉장한 구경거리에 끌렸다면 이제는 일하는 사람들, 그 나라 사람들의 일상에 시선이 머물게 돼요. 힘겹게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산다는 건 업보임에 틀림없지만, 삶의 중력이 꼭 그렇게 무겁고 힘겹기만 한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가끔은 쳇바퀴에서 내려와 도토리를 먹으며 쉬는 다람쥐처럼 나에게 여행은 그런 거예요. 길 위에서 함께 공명하고 이야기를 모으고, 아니 줍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기쁜 이야기든 슬픈 이야기든 그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구르다가 되살아나는 것을 글로, 또 이야기로 사람들과 나눕니다. 그것이 나의 생업이기도 하고요. 내 안에서 굴린 그 이야기들이 시련을 이겨낸 진주처럼 되어서, 다른 사람의 삶에 무늬를 그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한 지점에서 울림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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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첫 도착지는 어디였나요?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베트남 다낭이에요. 예전에 독자로 인연을 맺었던 친구가 베트남 현지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데 초대를 해줬어요. 햇살과 바람이 정말 좋은 곳이에요. 길게 이어진 바닷가를 걷는 즐거움을 맛봤네요. 옛 건물이 철거되고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고급 리조트를 보니 ‘여행이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파괴하는 건 아닌지, 물론 내가 고급 리조트를 이용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거기에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럼에도 블로그에 웃는 얼굴을 올렸더니 어느 이웃이 “여행자의 웃음=화안보시和顔布施, 고맙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아주셨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웃는 얼굴도 보시가 되는구나’ 생각하며 위로했죠.


혼자 다니면 내 웃는 얼굴을 찍을 수 없죠. 대신에 터벅터벅 걸으며 길에서 건져 올린 화안들, 부드럽고 온화하여 기쁜 빛이 도는 얼굴들을 찍고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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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 같은데, 사진 속 봉사하는 백발노인은 어떤 분인지요?

 

요즘 캘커타에는 젊은이들도 많이 와서 봉사하지만 은퇴자도 눈에 많이 띕니다. 사진 속(왼쪽) 노인은, 독일 베를린에 사는 80대 초반의 전직 개신교 목사예요. 10년 전부터 해마다 방문해서 병자들의 식사를 돕고 마사지를 해줘요. 밥을 먹이고 밥을 받아먹는 사랑…… 그이들이 캘커타의 나날들을 빛나고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제가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갈 때 친구가 봉투 하나를 줬어요. 봉투 안엔 “자신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봉사자들을 위해 써달라”는 쪽지와 함께 돈이 들어 있었어요. 새해 첫날 마더 테레사의 집 봉사자들을 불러 그 돈으로 닭볶음탕 파티를 했죠. 그 자리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친구도 함께했어요.(오른쪽 사진) 처음 캘커타를 방문했을 때 제 나이가 37살이었고, 그녀는 42살이었는데, 환갑이 넘은 그녀를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다시 만난 거예요. 그녀는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다시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어떤 힘든 시간들을 보냈는지 알기 때문에 많은 말들이 필요 없었죠.

 

여행자가 현지인들과 거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현지 언어를 쓰는 거겠죠. 하지만 유창한 말이 아니어도 돼요. 그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만으로도 괜찮아요. 그리고 웃는 얼굴이 중요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준 놀라운 선물 중 하나가 웃음이잖아요? 웃음으로 많은 것이 해결되는 걸 참 많이 봤어요. 그렇게 경계가 풀리고, 서로 암묵적으로 용인된 상황이라면 가벼운 스킨십도 거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되죠. 손을 잡거나 어깨를 감싸거나 가벼운 포옹 같은 거요.

 

사진을 들고 있는 젊은 엄마의 사진은 어떤 사연이 담긴 건지 궁금합니다.

 

오래된 약속을 이번 여행에서 지켰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이었던 저에게 오렌지와 바나나, 짜이와 미소를 건네준 네팔의 산골 마을 두와코트 사람들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제가 이곳을 다녀온 뒤로 네팔 대지진이 있었고, 그 뒤로 제 자신에게, 한국의 지인들에게도 약속했습니다. 그렇잖아도 허약한 삶이 지진으로 무참하게 흔들려버린 그 깊은 산골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노라고.


사진전을 열어 사진을 팔고 엽서를 판 몇백만 원의 수익금으로는 한 마을을 돕기엔 턱없이 모자랐지만, 그래도 담요와 옷가지, 책가방, 기초 의약품, 그리고 학교의 장학기금 종자돈을 들고 이번에 간 거예요. 그 볼품없는 선물에도 마을 사람들은 아름다운 웃음으로 답례해 주었습니다. 담요 하나씩 들고 가는 모습도 사진에 담았네요. 제 독자분들, 블로그 이웃들, 친구들의 도움을 이렇게 전달하고 왔습니다.(박수)


3년 전 갓난아기를 안고 제 사진 속 모델이 되어주었던 새댁에게도 이번에 그의 사진을 전해줄 수 있었어요. 아무리 힘들고 고난으로 가득하더라도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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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걷고 또 걷는 것은 여행이나 삶이나 매한가지
 

손에 든 ‘준카스(박카스)’를 다들 마시고, 이야기가 점점 무르익어 갈 즈음…… 이번엔 그렇다! 다른 ‘준카스(JOON-CASS)’가 등장했다. 여행지라면, 게스트하우스 옥상이라면, 여러 사람과의 만남이 있는 자리라면 충분히 등장해 줄 만한 소품이다. 시원하게 ‘히야시’ 된 맥주 한 캔씩을 마시며, 이번엔 조 작가가 다른 젊은 여행자 한 명을 소개했다. SNS상에서 ‘해적왕’이라는 닉네임으로 제법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이수현 씨였다. 그녀는 PCT(Pacific Crest Trail, 미국 서부 태평양 산맥에 걸쳐 있는 약 4,300km의 하이킹 코스로,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종단하는 미국 3대 장거리 트레일 중 한 곳)를 완주하고 858일간의 세계여행 방랑을 끝내고 돌아온 도보 여행자이다.

 

수현 씨는 왜 여행을 하나요? (조병준이 묻고 이수현이 답하다)

 

여행을 하다 보니 왜 떠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되는데, 처음엔 뭔가 멋진 이유를 만들어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놀고 먹고 자고…… 그런 것들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제가 잘하고, 재미있어하는 거, 그게 여행이었어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이 대답을 듣곤 좀 실망하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저의 온전한 대답이에요.

 

여행의 즐거움이라면 어떤 게 있나요? (조병준이 묻고 이수현이 답하다)


여행의 즐거움은 나라, 성별, 나이…… 이런 것들을 금세 뛰어넘고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것, 그거 같아요. PCT는 거의 6개월 동안 산을 넘어야 하는 험한 길이에요. 하이커 커뮤니티 2016년 기준으로 20명 정도의 한국인이 완주했다고 하더라고요. 전 세계적으로 5천 명이 도전했고, 그중 20~30퍼센트 정도만 완주에 성공했다고 해요. 예상할 수 없는 모험으로 가득한 길이라 여행자가 서로 돕지 않으면 혼자서 끝까지 갈 수 없어요. 마음을 열고 하나되는 즐거움은 여행자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벅찬 감정입니다.

 

작은 체구로, 여자 혼자서 그 먼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걱정이 많았을 것 같은데……


네. 당연히 그러셨지요. 그런데 이제는 믿어주세요. 또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신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지금은 효도하는 마음으로 남은 대학 생활 1년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 먼 길을 걸으면서 이것으로 이제 여행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오늘 조병준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할지 생각하고 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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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젊은 여행자와 머리 희끗한 오십대 여행자. 그들은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다. 조 작가는 말한다. “유목민의 세상이 다시 돌아온 듯해요. 저는 그런 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인연들이 이렇게 저렇게 이어지는 것이 참 좋아요. 여행에서 짧게 공유했던 시공간의 기억으로 다시 만나게 되면 힘을 받거든요.”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20년 만에 다시 만난 외국인 친구나, 여행중 만났던 수현 씨를 강연장으로 초대한 것이나, 독자로 만났다가 여행 가이드가 되어 초대를 해준 베트남의 젊은 친구나, 네팔의 시골 마을에서 만난 말도 통하지 않던 젊은 새댁을 다시 담요 들고 찾아가 만난 일 등을 보면 인연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조병준이라는 사람이고 말이다.

 

『기쁨의 정원』 12쪽 셋째 줄, “사랑이 너무 지독해지면 그땐 사람도 고개 돌려야 하는 법인데, 그것도 모르고 끝까지 사랑을 향해 뻣뻣이 고개 쳐들고 살았구나, 그러니 사랑에 데고 말지.” 버젓이 써놓은 걸 보면 이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역마살처럼 조병준 작가는 또 데여서 아파하더라도 자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인연을 이어가는 재주’를 버릴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이 조병준이라는 사람을 작가로, 이야기꾼으로, 이야기를 줍고 나누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베트남 가이드의 모습으로, 네팔 시골 마을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으로, 20년 만에 다시 캘커타를 찾은 예순이 넘은 여인의 모습으로, 초대해 응해 강연장에 나와준 젊은 여행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으러 온 청중의 모습으로 저마다 가깝게 혹은 조금 덜 가깝게 서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지 않은가.


조병준 작가는 마지막 사진 한 컷을 띄우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요즘에는 책 쓰기와 여행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해요. 치앙마이에서 젊은 스님이 바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뷰파인더에 담았는데요, 절로 돌아가시는 길일까요? 그날 ‘절로 가는 먼 길’이라는 단상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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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차피 누구에게나 구도의 길이라면
우리는 모두 절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겠지요.
여행이나 삶이나 뭐 오십보 백보,
그저 걷고 또 걷는 건 매한가지.
여행도, 삶도 책 쓰기와 비슷하구나, 싶었습니다.
내 여행의 책, 내 삶의 책은 지금 어느만큼 쓰여졌나 뒤적여보았습니다.
마지막 장까지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구나,
또 그런 답이 나온 건 사족입니다.
가다 보면 언젠가는 절을 만나겠지요.

 

“‘절’은 목적지를 표현한 거예요. 사람마다 가슴에 품은 ‘절’이 있을 겁니다. 물론 누군가는 자기 절이 무엇인지 모르는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지만요. 그러나 삶이 어차피 누구에게나 구도의 길이라면 우리는 모두 절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어느만큼 왔나, 혹은 어느만큼 쓰였나 뒤적여보지 않아도, 가다 보면 언젠가는 절을 만날 거예요.”

 

‘절을’ 만날 거라는 말이 각자의 ‘저’(나)를 만나게 될 거라는 말처럼 들렸다. 여행도 삶도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일 것이니 그 말도 틀리진 않으리라.

 

행사 마무리 멘트와 함께 준비해 온 갖가지 종류의 씨앗을 사람들과 나눠가졌다. “인생이 딴지를 걸 땐 꽃을 심어보라”는, “사람은 밥심으로도 살지만 꽃심으로 살지 않는가”라는 『기쁨의 정원』카피가 떠올랐다. 모두가 ‘저’를 만나러 가는 그 길, 걷고 또 걸어야 할 그 길을 가는 동안 딴지의 순간들도 만날 것이고, 밥심 꽃심 다 떨어져 지치는 날도 있겠지만, 그럴 때 ‘준카스’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와 웃음이,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이 한 송이 꽃처럼 기억 속에서 피어났으면 싶었다.


 

 

기쁨의 정원 조병준 저 | 샨티
시인이자 사진작가 그리고 여행자이기도 한 조병준이 8년 만에 내는 에세이집. 이번 책에서 그는 고달프고 힘들고 아프고 그래서 슬프고 화도 나는 ‘불친절한’ 인생의 시간들을 견디며 살게 해준, 꽃과 풀과 나무들이 건네준 위로와 기쁨의 이야기, 또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풀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윤후 시인과 노키드 만화가가 만든 ‘만화시편’ 『구체적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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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만화가의 공동작업으로 완성된 ‘만화시편’ 『구체적 소년』출간을 기념한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지난 4월 26일 합정 카페 파스텔에서 진행되었다. 행사의 사회는 웹툰 <숏컷>의 작가 이슬아가 맡아 미리 접수한 독자의 질문과 사회자의 질문으로 행사를 구성했다. 시인 서윤후와 만화가 노키드는 비교적 낯선 작업을 하면서 갖게 된 새로운 상상력과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솔직하고 편안하게 말을 전했다.

 

먼저 두 작가에게 만화시편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노키드 만화가는 “시집을 읽으니 너무 좋더라”며 “소년시대에 받아들이는 여러 감정을 선명하게 캐치한 부분이 와닿았다”고 시를 만났던 첫 느낌에 대해 말했다. 한편 서윤후 시인은 “제안 전화를 받은 날은 예비군 훈련장에 있던 날이라 총 쏘는 일만 아니면 뭐든지 재미있을 거라고 느낄 때였다(웃음)”면서 “처음에는 서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며 솔직한 감상을 전했다. “시는 시 나름이 가진, 만화는 만화 나름이 가진 본질이 있기 때문에 둘이 합쳐졌을 때는 훼손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인데, 더 많은 곳에 시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노키드 작가님의 만화가 온도감이 있는 작품이라 서로 나쁠 것이 없겠다, 라는 ‘영(0)’의 상태에서 시작을 했다.”라는 이야기였다.

 

이슬아 작가는 이어 두 사람의 소년기에 대해 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유년기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 같다”며 “지금 내가 아는 그 사람보다 작고 연약할 때를 상상하다보면 어쩐지 감동적이다”라고 질문의 의도를 전하기도 했다.


노키드 만화가는 먼저 “어릴 때는 <원피스>라는 만화를 되게 좋아했다. 열혈과 뜨거운 우정, 그런 것들이 온몸에 타오르는 느낌이었다.(웃음) 그때가 정말로 내 소년시대, 유년기가 아니었다 싶다.”고 답했다. 서윤후 시인은 “어렸을 때 항상 뭔가를 꾹꾹 참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뭔가를 요구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 또 외로움이 좀 많았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시계를 몰래 앞으로 돌려놓고 거짓말하는 유년을 보냈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즈음 시를 쓰면서 내 목소리를 내는 법을 처음 배운 것 같다.”며 자신의 소년기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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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매력은 엇갈림


이슬아: 시의 문장과 디테일을 만화가는 어떻게 채웠는지 너무 궁금했다. 보니까 사이사이 대사가 꽤 많다. 노키드 작가가 대사를 넣을 때 마음이 무척 궁금했다. 어려웠을 것 같은데.

 

노키드: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서윤후 시인을 만나고 시를 읽은 다음 캐릭터를 만들었다. 주인공은 다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외롭고, 말 잘 듣고, 숨기는 게 많지만 말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 그런 동생을 기본으로 했다. 「희디 흰」의 주인공이 가장 마음에 들고,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서윤후: 내 시를 통과하면서 하게 되는 대화들이 있기 때문에 무척 새로웠다.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대사들이 하나하나 재미있게 느껴졌다. 가령 「희디 흰」에는 시골집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를 쓸 때는 굉장히 도시적인 아이를 상상하면서 썼기 때문에 정말 낯설었다. 이렇게도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들이 많았다. 만약 시를 쓸 때 원했던 대로 그림을 그려주셨다면 만족하고 말았을 텐데 엇갈리는 부분에서 재미와 시너지가 생겼던 것 같다.

 

이 우물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지킬 필요가 없다

 

길어 올린 것이 너무 많아 마을은 자꾸 어둠
얼굴 없이 얼굴을 부르는 이름들 사이
나는 우물을 지킨다

 

빠져 죽은 구두가 떠오른다 벗겨 주세요 이 젖은 발들로부터
도망가게 해 주세요
(「우물관리인」 중 일부, 『구체적 소년』 190쪽)

 

이슬아: 시 전문과 만화 원문 외에도 시인이 만화가에게 주는 코멘트가 달려있다. 어떤 것은 시보다 코멘트가 더 좋을 때도 있었다.


노키드: 좀 더 자세한 코멘트를 바랐다.(웃음) 최대한 굴절 없이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코멘트는 정제된 것이다.


서윤후: 노키드 작가님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작품마다 글을 써서 보냈다. 편집자 분이 그 글을 같이 실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읽으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웃음) 그런 부분은 좀 삭제했다. 사실 내가 내 시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시집에 실리지 못하고 버려졌던 작품들도 있었는데 그 작품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마음으로 더 애틋하게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이슬아: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는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


노키드: 작가 외에도 누구나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어떤 방법이든 찾아서 그것을 자기 이야기로 표현하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수준이 어떻든지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긍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면 그게 좋은 작품이 아닐까. 그래서 이슬아 작가님의 <숏컷>을 좋아한다.(웃음)

 

서윤후: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머릿속이 하얗다. 시집을 내보니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작품이 사랑 받기도 하고, 정말 좋아하는 작품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낀다. 결국 제가 좋으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방식에 있어서는 너무 솔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 이야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같다.

 

파도의 디저트가 되네 하나밖에 모르는 맛으로 사탕처럼 둥글게 앉아 녹아 가는 연인들
철썩이는 파도가 핥아 가네
발가락부터 녹으며 조금씩 둘레를 잃어 가는 사랑이여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던 연인들이 전투적으로 질투하고 비로소 세계는 달콤해지고 온화해지네
(「사탕과 해변의 맛」 중 일부, 『구체적 소년』 78쪽)

 

이슬아: 「사탕과 해변의 맛」의 “전투적으로 질투하고”라는 부분이 재미있다. 질투에 관해 묻고 싶다. 최근 어떤 질투를 했나.


노키드: 질투를 열등감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이 포함되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질투라는 단어가 어렵다. 최근 가장 질투하는 대상은 아들이다.(웃음) 아들이 아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것이 질투라면 질투랄까.


서윤후: 최근 <프로듀스 101>을 보는데 거기 나오는 친구들이 모두 멋있고, 재능이 뛰어나더라. 그런데 거기서 질투가 난 것은 그 친구들이 아니라 가수 보아였다.(웃음)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질투가 났다.

 

이슬아: 만화는 각각의 장면이 만나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되는 장르라 생각한다. 반면 시는 글이 흐르는 순서대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장르는 아닌 것 같다. 그런 둘의 만남은 공통 요소를 찾는 것이 난점이자 핵심이었을 텐데. 이 작업으로 부각시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나.


서윤후: 예술의 매력, 특히 협업하는 예술의 매력은 엇갈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시를 내가 상상한 그대로 그려달라고 한 적도 없고, 그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노키드 작가님과 제가 많이 엇갈리는 편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엇갈리지 않아서, 생각했던 그대로 나온 부분에서는 오히려 민망하더라. 혼자서 생각하던 것을 들킨 느낌이랄까. 둘 다 좋았다.


노키드: 공감한다. 텍스트를 읽었을 때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텍스트가 좋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다. 텍스트가 워낙 좋았다. 서윤후 시인이 만화 그리는 내내 별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 점이 제일 좋았다. 그냥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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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묻고, 작가가 답하다


시를 그대로 그림으로 그린 작업을 예상했는데 말풍선이 따로 있어서 놀랐다. 작업하면서 고려한 사항이 있나?


노키드: 저도 그런 작업일 거라고 예상을 했었다. 텍스트를 그림으로 옮기는 것만으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인, 편집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만화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림만 그리는 것은 삽화일 뿐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주셨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만들었던 거다.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서 한 것도 있고, 상상을 덧붙여서 한 경우도 있다. 그렇게 탄생했다.

 

작업하면서 떠올린 사람이 있었나? 혹은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 


서윤후: 시집을 내고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내 시집을 읽어줘야 할 사람들이 내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그랬다. 속상한 마음이 컸다. 이후 여행산문집도 내고 앤솔로지도 내면서 시와 다른 방식으로 이해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만화책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조금 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직 반응을 살피지는 못했다.(웃음) 작업을 하다보면 분명히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가족일 수도, 시를 같이 쓰는 동료일 수도, 친구일 수도, 제 자신일 수도 있다. 여기 실린 스무 편의 시는 내가 떠나온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낯설게 되어버린 과거의 나를 많이 곱씹으며 작업을 했다.


노키드: 그냥 그림으로 번역을 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을 굴절 없이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엇갈림에 대해 말을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무엇이었나? 


서윤후: 「무사히」라는 작품은 되게 아픈 작품이다. 무사하지 못했던 저의 한 시절과 사건을 떠올리며 쓴 작품이라 이 작품이 그림이 된다는 것 자체가 생생한 느낌이었다. 이것이 실재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것의 느낌을 받았다.

 

가장 어긋남이 없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


서윤후: 교정을 보면서 사진을 계속 찍은 게 있다. 그 중 하나가 「독거청년」이라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어긋남 없이,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나왔던 것 같다. 제가 그 작품에 가장 애정을 많이 갖고 있고, 가장 많은 설계도를 그렸던 작품이기 때문에 그 작품이 이미지로 구현될 때는 작가님이 조금 더 이해를 하고 그리셨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 소년서윤후 글, 노키드 그림 | 네오카툰
이 책에는 서윤후 시인의 첫 시집에 수록된 시 10편과 미수록 시 10편을 담았다. 각각의 편은 [만화]―[시 전문]―[시인의 코멘터리]로 구성되어 있다. 한 수 한 수 읽고, 보고, 느끼고, 사색하시기를 바라며 책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치덕후’ 이동형 “한국 정치, 이기는 사람이 다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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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작해 누적 다운로드 횟수 2억 회를 기록한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이동형 작가는 그러나 <이이제이>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아직 많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승호 작가와 세 번의 긴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결과 한 권의 책 『우리가 무관심할 때 괴물은 깨어난다』가 태어났다. 이동형 작가의 말은 명쾌하다. 지승호 작가의 질문은 날카롭다. 이 둘이 오랫동안 나눈 이야기는 위기감과 책임감에 많은 부분 중심을 두고 있다. 책의 제목이 가리키듯 이들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높아진 관심이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결국 한 곳으로 모인다. ‘우리가 무관심할 때 괴물은 깨어난다.’


지난 4월 27일, 『우리가 무관심할 때 괴물은 깨어난다』의 출간을 기념해 두 저자와의 만남이 열렸다. 현재 이동형 작가와 함께 팟캐스트 <수다맨들>을 진행하고 있는 배우 남태우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대선 직전에 진행된 자리였던 만큼 무엇보다 예측과 기대가 많이 이야기됐다. 각 당의 대선 후보를 점검하는 한편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을 바라보는 두 작가의 흥미로운 시선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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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와 정치 DNA

 

먼저 안철수. 2012년, ‘안철수 현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안철수 현상이 몰락한 이유와 그때가 지금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누었다. 이동형 작가는 “안철수가 왜 부상했는지부터 봐야 할 것 같다. 정치 바깥에 있었으니 부상한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정치인은 국민이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직업군이다. 정치 신뢰지수가 높으면 정치권 바깥에 있는 사람은 뜰 수가 없다. 그래서 안철수가 ‘메시아’처럼 부상한 거다. 안철수 이후 등장한 메시아가 반기문이었다.”라며 “거품이 정치권 안으로 들어오면서 빠져버렸다.”고 보았다.

 

“우리 국민에게도 과거에는 대통령 한 명 혹은 위대한 지도자 한 명이 대한민국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메시아론’이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SNS 발달, 뉴미디어 발달, 직접적인 정치, 이런 게 강해지며 더 이상 메시아론이 먹히지 않는다. 정당 안에 사람들이 들어와야 정당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지, 사람 한 명으로는 못 바꾼다는 걸 국민들도 깨닫게 됐다.”

 

지승호 작가는 “선거란 유권자의 마음의 빚을 인출하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그에게 표를 주는 건데 그 과정에서 마음의 빚을 느낄 때마다 실수를 한 부분이 있다.”고 안철수에 대해 평가했다.

 

한편 이동형 작가는 한국 정치를 “죽고 사는,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all or nothing’, 이기는 사람이 다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정치는 함부로 욕심을 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른바 ‘정치 DNA’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김영삼, 노무현을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승부사적 기질이었잖아요. 그게 계산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계산하면 안 되는 거죠.(중략) YS는 그게 없잖아요. 승부사적 기질로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총독부 건물 해체, 이게 계산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DNA는 좀 타고나야죠. YS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가는 단골 식당의 웨이터가 결혼하는 것도 챙기는 사람이니까. 그게 공부해서 됩니까?(182쪽)

 

사회자는 이어서 유승민과 심상정에 대해 물었다. 건강한 보수와 진보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지승호 작가는 심상정에 대해 대선 완주 후 “진보 쪽에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전망을 했다. 이동형 작가는 유승민에 대해 “대한민국에 건강한 보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바른정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또한 심상정에 대해서 “그만두어야 한다.”며 “그분들이 계속 있는 한 새로운 진보, 열심히 하는 진보 안 떠오른다.”고 말했다.

 

“진보 영역 확장을 위해서다. 민주당도 사람 키우는 면에서는 인색하다. 그래도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나. 그런 모습을 진보 정당에서도 보여줘야 한다고 요청하고 싶다. 진보 정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연 확대이지 않나. 그렇다면 비판할 때 하더라도 연대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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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통령, 이후 한국은?


이동형 작가는 대선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은 “반드시 떨어진다”고 전망했다.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이유는 민주당이 잘한 이유도 있지만 보수당이 너무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말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도 120석을 가져간 집단이다. 저력이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아마 전열을 재정비해서 들어올 거다. 들어올 때는 엄청나게 공격을 할 것이다. ‘여소(與小)’, 힘없는 여당에 대해 공격을 하면 국민들은 돌아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대통령은 어떤 행보를 보여야 할까. 이동형 작가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YS가 역대 대통령 중 최고 지지율을 올렸었다. 90% 대까지 나왔다. 왜일까. 오자마자 매서운 칼을 휘둘렀다. 국민들이 칼 휘두른 것에 왜 박수를 쳤느냐 하면 청산해야 할 것들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 딱 그 시기다. 집권하자마자 정말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계 개편도 필요하다. 그런 모습을 함께 보여주면 지지율을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빠지는 수치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어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많은 지지를 받았던 안희정과 이재명, 박원순 등 인물들의 향후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이동형 작가는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릴 것”이라며 “지금까지 보인 모습을 유지”하길 바란다는 의견을 남겼다.

 

“이들은 큰 인물이다. 이 인물들을 계속 키우면서 또 다른 경쟁자를 발굴해내면 된다. 박주민, 표창원 등도 있지 않나. 표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좋다.”  

 

마지막으로 이동형 작가는 “정치는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외국의 경우에도 40-50대 정치인들이 혁신을 일으킨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당정치에 젊은 분들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판은 그렇지 않다. 새 피를 수혈한다고 하는데 보면 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정치는 늘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만 해야 하나. 아니다. 20대부터 정당에 들어가 해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좋지 않나.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승호 작가는 “대통령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이 된 후 어떻게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지도 중요하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우리가 무관심할 때 괴물은 깨어난다 이동형,지승호 공저 | 이상media
2017년 2월 25일, 팟캐스트 이이제이는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다운로드는 계속된다! 누적 다운로드 횟수는 2억 회를 돌파한 지 오래다. 이이제이가 우리 사회에 미친 파장은 무엇일까? 이이제이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혹은 별 생각 없이 투표장에 갔던 우리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역사의식을 심어줬으며 올바른 판단의 근거를 제시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류지현 "냉장고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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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구 디자인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끔 한 거죠. 이렇게 계속 사람들한테 말을 걸면 사람들이 그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할 테고, 그 안에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5월 17일 저녁 8시, 최인아책방에서 『사람의 부엌북콘서트가 열렸다. 류지현 저자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거점으로 다양한 시도와 작업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 혹은 시각적인 언어나 그래픽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싶어서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디자인 제품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에는 담지 못한 조사 자료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아까울 때가 많았다. 이러한 것들을 모아 책이라는 창작의 형태로 소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좋은 편집자님을 만나 5, 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려 드디어 책이 나왔다. 먼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박나은 바이올리니스트, 고윤진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북콘서트를 연 후 류지현 저자의 강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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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부엌, 사람의 부엌

 

"여러분의 부엌은 '사람의 부엌'인가요? '냉장고의 부엌'인가요? 그렇다면 '사람의 부엌'이란 뭘까요? 제가 생각한 '사람의 부엌'은 프로젝트의 본질이기도 하고, 책의 내용이기도 한데요. 20세기 후반에 기술이 굉장히 빨리 발달이 됐잖아요. 그러면서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 전자제품이 많이 들어왔고, 그것들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삶은 편리해졌죠. 하지만 우리가 자연의 한 존재로서의 리듬으로 살아왔던 방식과는 다르게 전자제품의 리듬으로 삶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전자제품들 중 하나가 냉장고예요. 개인적으로 냉장고를 ‘검은 상자’라고 부르는데요. 그 ‘검은 상자’가 부엌에 들어옴으로 인해서 소비 습관부터 식생활까지 많은 영향을 받게 되죠. 저는 이렇게 기계에 의존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부엌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여기서 ‘나’라는 건 사람이죠. 그래서 제목을 ‘사람의 부엌’으로 지은 거고요. 그렇다면 ‘냉장고의 부엌’으로 살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음식물 쓰레기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 환경 공단에 따르면 한국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중 28.7%가 음식물 쓰레기라고 해요. 이 중 70%가 가정 및 소형 음식점에서 발생하고, 그 음식물 쓰레기 중 약 10%는 건들지도 않은 채 보관만 하다가 버린 것들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반기를 드시는 분들이 계세요. 친환경적으로 사는 건 좋지만 내 삶이 바쁘고, 신경쓸 여력도 없고, 윤리적인 건 선택이라고 생각하신대요. 그러나 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20% 줄일 경우, 냉장고를 3.3개월 동안 쓸 수 있는 전기를 절약할 수 있어요. 39만 가구가 겨울을 날 수 있는 연탄만큼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구요.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파장이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음식물 쓰레기 이상으로 문제가 되는 것 따로 있다. 각각의 채소와 과일이 우리 인간들이 하나하나 다 다른 것처럼 같을 수가 없다. 어떤 채소나 과일은 일정 온도 이하에서 상해를 입게 된다.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감기에 걸리게 되는 건데, 겉으로 봤을 때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속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토마토 같은 경우는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감기에 걸린다. 굳이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냉장고에 넣어둠으로써 에너지를 쓴 후, 쓰레기로 만들어 버린다. 앞뒤가 맞지 않은 것이다.
 
"저의 책 타이틀이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인데요. 분명히 냉장고가 없는 부엌을 찾아다니긴 했어요.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냉장고를 없애자'가 아니라 ‘냉장고를 현명하게 사용하자’거든요. 냉장고에 들어가서 상해를 입게 되거나,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들은 냉장고에 넣지 말자는 거죠. 저도 냉장고가 있습니다. 2인 가족이라 큰 냉장고가 필요없기도 하고, 개인적인 실천으로 작은 냉장고를 쓰고 있는데요. 우유, 고기, 생선 등 이런 것들은 저도 냉장고에 넣고 쓰고요. 그것마저도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냉장고를 버리라는 게 아니에요. 본인들의 노력과 상상력, 관심이 있으면 가능한 실천 방식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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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
 
"지금까지 말씀 드렸던 문제점을 깨닫고,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다녔어요. 책도 보고, 자료도 찾아 보고, 인터뷰도 하고요. 그냥 둘이 앉아서 이야기하다 보면 '나 할머니랑 이런 적 있었는데' 하면서 함께 기억을 찾아가면서 두드려도 보고 그랬죠. 오늘은 특별히 책에 들어 있지 않은 한 농장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에 있는 농장인데요. 농장이면서 관광업도 같이 하는 곳이어서, 본인 농장에서 기르는 식재료를 요리해서 관광객들에게 대접을 하는 곳이었어요. 평범한 시골 농장이었는데요. 약간의 도구들만 바꾸면 한국의 시골과 별반 다를 게 없죠. 가지도 키우고, 고추도 키우고. 뿌리 채소는 물과 함께 보관을 하고 있고, 창고는 빛이 들어가지 않는 곳에 지었죠. 우리나라 농장과 유럽 농장과의 차이점을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가장 큰 차이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건조법이 발달돼 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바닥에 널어놓거나 공중에 널어서 많이들 말리시잖아요. 반명 유럽은 거의 말리지 않을 뿐더러, 그냥 통에 식재료를 넣어서 말리시더라고요. 그런 게 좀 안타까워서 제가 농부 분들께 팁도 알려드리고 했죠."
 
저자는 이 곳만의 독특한 포도 재배 방식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보통 포도를 수평으로 키우는데, 이 곳은 수직으로 키운다. 수평으로 키우는 방식이 햇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서, 당도가 더 높아지긴 하지만 일을 하기엔 매우 힘이 드는 방식이다. 즉 효율성과 수확량이 함께 줄어들게 된다. 수직으로 포도를 재배했을 때는 편하게 선 채로 포도를 수확할 수 있어, 당도가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수확량이 올라간다. 농부 분께서 스스로 효율적인 방식을 개발해 시도를 해봤더니 본인 방식만큼 제대로 된 포도가 나오지 않더라며 자랑하듯이 소개를 해주신 것이다. 이런 지식은 실제로 농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전혀 알 수 없는 지식이기에 저자에게는 매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탈리아의 또 다른 농장에서 발견한 천연냉장고가 있는데요. 제가 발견했을 때 거의 '심봤다'를 외쳤던 겁니다. 삼대가 살고 있는 커다란 농장이었는데요. 농지를 얻으셔서 그 위에 집을 지으셨고, 도랑이 땅 주변으로 돌고 있었어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하면 식재료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도랑 옆에 작은 창고를 지으셨대요. 일반 땅보다 좀 훅 꺼지게 지은 다음에 물과 맞닿아 있는 곳에 구멍을 뚫어서,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온도가 맞춰지는 거죠. 즉 바닥이 항상 젖어 있게 되고, 습기가 증발하면서 공간의 온도도 떨어뜨리고 습도도 더 제공하는 거고요. 이게 그야말로 천연냉장고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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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로부터 식재료를 구하자

 

냉장고 사용 이전의 삶이 궁금해 19세기 한국 고서와 20세기 초 세계 대전 당시의 요리법을 찾아보기도 했다던 저자. 다양한 나라에 사는 할머니들의 살림 노하우와 요리 비법을 담아 놓은 책들도 그녀의 관심거리다. 무엇보다도 여러 농장과 부엌을 직접 방문해 살아 있는 지식과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이러한 지혜와 경험을 모아 부엌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디자인하게 됐다.
 
"먼저 벽에 걸어서 쓰는 나무 선반을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각각의 선반에 해당하는 음식을 보관하는 지식이 담겨 있는데요. 이건 사과와 감자를 보관할 수 있는 선반입니다. 사과에는 에틸렌 가스가 많아서 다른 재료와 함께 보관하면 다른 재료를 빨리 익게 하는데요. 감자와 함께 보관하면 화학작용이 반대로 일어나서 감자에서 흰 싹이 나는 걸 방지한다고 해요. 사과 그림을 그려 넣은 건 식재료가 눈 앞에 보이게 하는 게 제 목표였고, 장식효과도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아래 감자가 그려져 있는 건 서랍이에요. 감자는 어두운 곳에 있어야 하니까, 서랍에 감자를 넣는 거죠. 서랍 위에는 구멍을 뚫어서 사과는 반 정도 아래로, 감자는 반 정도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했고요."
 
또 다른 하나는 뿌리 채소를 보관할 수 있는 선반이다. 하얀 모래가 들어가 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 예를 들어 당근은 재배할 때는 수직으로 키우지만, 냉장고에서는 수평인 상태로 보관한다. 하지만 원래 수직으로 살아온 채소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잃어가면서까지 자신의 몸을 세우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를 더 빨리 소비하게 되고, 더 빨리 늙어 버리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래를 이용해 당근을 세로로 잡아줄 수 있다. 또, 모래는 수분을 빼앗지도 않고 제공하지도 않아서 농작물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수분 함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선반의 앞 면을 다 나무로 할 수 있었는데 일부러 모래가 보이게 유리로 디자인했는데요. 사람들이 이 도구를 보고 '얘는 뭐지? 소금이야? 모래야?'와 같이 궁금증을 가지게 만들면서 이야기거리를 던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육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고요. 나아가 사람들이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 물건에 들어 있는 지식이 퍼져나가는 효과도 생기겠죠. 냉장고가 사실 하나의 도구잖아요. 그 도구가 우리 생활에 들어오게 되고, 아무 생각없이 쓰다 보니 생활습관이 바뀌었고요.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습관이 됐고, 그 습관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다 보니까 현대사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죠. 제가 만드는 물건들이 냉장고처럼 실생활 속으로 들어와서 사람들이 학습을 하고, 습관이 되고, 결국엔 전통이 되기를 바라는 아주 원대한 꿈을 꾸며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외에도 계란과 양배추를 신선하게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선반과 그릇, 양념을 뭉치지 않게 하기 위해 쌀을 이용한 양념통과 같은 작품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자가 디자인한 도구들은 개인 블로그(www.savefoodfromthefridge.com)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영어로 운영해 왔지만『사람의 부엌을 통해 한국 독자들과도 가까워진다면, 한국어로도 블로그를 개설할 계획이다. 이어서 독자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젝트가 신선하면서 건강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도 있을 테고, 실은 제가 아토피가 있어서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결국은 죽을 테고, 다른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서 이 세상에 살아 갈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내 것이 아니고,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내가 태어났을 때만큼은 이 세상을 망치지 말고 최대한 노력을 해서 되돌려주면 좋겠다 싶었죠. 그래서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나 친환경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고요.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 같은 경우는 유학을 처음 갔을 때 친구 네 명과 살았는데 냉장고를 나눠 썼어요. 칸칸마다 주인이 다 달랐죠. 하루는 제가 버섯요리를 하고 싶어서 냉장고를 열었더니 제 껀 없는데, 친구 버섯은 있었어요. 그 버섯을 보니까 오늘이 지나면 상할 것 같았지만 내 것이 아니니까 건들 수 없죠. 그래서 슈퍼에 가서 새로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 친구는 다음 날 상한 버섯을 그대로 버리게 됐어요. 그 이후로 점차 우리가 식재료를 소비하는 습관이 굉장히 잘못됐다고 느꼈고, '정말 이렇게 사는 게 우리가 다일까?' 하고 의심이 든 거죠. 그 후로 사람들이 냉장고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찾아보는 정도에서 시작한 게 이렇게 프로젝트로 발전됐어요. 제가 알아본 것들을 지식으로만 남길 게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도구로 한 번 만들어보자 했던 계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유럽, 남미 쪽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편집장님이 동의를 하시면 아시아 편으로 한 번 진행해볼 생각입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참 좋은 프로젝트이긴 한데, 바쁜 내 삶에 적용하기엔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지금 남편과 함께 스튜디오 운영하고 있는데요. 제가 매일 양배추와 함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매우 바쁜데요(웃음).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저도 많은 고민을 해봤어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늘 보여드린 많은 것들, 책에 나와 있는 많은 것들 중에 하나만 시작해 보시라는 겁니다. 뭔가를 해결해야 할 때, 문제를 너무 큰 범주로 보고 모든 걸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이 안 나와요. 아주 커 보이는 것들도 아주 작은 한 지점에서 시작하면,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 방식이 보이는 거죠. 제가 냉장고를 버리라는 것은 아니니까요. 내가 어느 정도 선까지 이 아이디어를 실천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하나씩 하나씩 확장해가는 과정을 추천드립니다.
 
음식저장 같은 경우는 학문적으로 이미 확립된 분야인데, 연구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겉핥기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저는 '음식 저장'이라기보다 '음식 보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저는 음식저장학을 공부하시는 분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것들인데 세련되게 포장한 건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항상 존재해 왔지만 하찮아 보이는 것들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어요. 일반적인 저장법은 이미 책에 많이 적혀 있고, 연구도 많이 해왔고, 사람들이 관심 있게 많이 보고 하잖아요. 그런데 집에서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었거든요. 예전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이 많이 됐는데,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그러한 지식 전달이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 대안으로 저는 도구 디자인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끔 한 거죠. 이렇게 계속 사람들한테 말을 걸면 사람들이 그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할 테고, 그 안에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의 부엌류지현 저 | 낮은산
유럽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어느 날 “냉장고가 과연 식재료를 가장 건강하게 보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 내자(Save food from the fridge)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지식의 선반(knowledge shelves)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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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김연수 작가가 함께한 ‘5월의 마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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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초록빛 물이 보이는 ‘그 연못가’에 접어들자 마키노는 엇나가는 마음과 불안 때문에 기타 케이스를 잡은 손을 몇 번이나 움켜쥐었다. 주위를 두루 살펴보며 걸어갔다. 연못을 따라 완만하게 굽어든 보도를 빠져나왔을 때 시선 끝 나무 그늘에 벤치 하나가 보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발을 멈췄다. 오후의 햇살이 시간을 때우려는 것처럼 연못 수면에서 장난치는 것을 눈부신 듯 바라보던 한 여자가 천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마티네의 끝에서』, 484쪽)

 

지난 5월 23일, 김연수 작가와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북콘서트가 열렸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마티네의 끝에서』『쇼팽을 즐기다』출간을 기념한 이날 행사에는 김연수 작가가 대담자로, 문학평론가 허희가 진행을, 기타리스트 지욱이 축하공연을 하며 비 내리는 봄밤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와타나베 준이치 문학상을 수상한 『마티네의 끝에서』는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일본에서 15만 부가 넘게 팔리며 작품성과 문학성을 모두 획득했다. 천재 클래식 기타리스트 마키노와 저널리스트 요코, 두 ‘어른’의 사랑 이야기로 음악에 관한 섬세한 이야기 또한 즐길거리. 첫 무대를 꾸민 기타리스트 지욱의 연주 역시 이런 소설 내용과 잘 어울리는 구성이었다.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는 먼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 독자들에게 반가운 선물을 주었다. 이어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즐거운 추억이 되었으면 합니다.”라며 소박한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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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어야 보이는 것들


허희: 두 분의 인연이 꽤 깊다고 들었습니다. 김연수 작가님은 오늘 북콘서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김연수: 인연이 꽤 깊어요. 예전에 제가 행사 사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많은 팬들이 사인을 받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웃음) 지켜본 적이 있었죠. 그때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요. 그 후로 기회가 되면 쭉 만나고 있습니다.


히라노 게이치로: 한국에서 책을 출판하면서 종종 서울에 오게 되는데요. 그때 관계자 분들이 항상 하셨던 말씀이 대담을 한다면 한국에는 김연수 작가뿐이다, 반드시 김연수 작가와 대담을 해야 한다, 였습니다. 김연수 작가님을 만나기 전부터 수수께끼 같은 이분과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실제로 만나니 이야기도 잘 통하고 좋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김연수 작가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원더보이』가 번역 출판되어 읽어봤어요. 책을 읽기 전에도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더 감동스러웠습니다.

 

허희: 『마티네의 끝에서』가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김연수 작가님이 완독하셨다고 해요.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김연수: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님의 책이 굉장히 많습니다. 『일식』부터 이번 『마티네의 끝에서』까지 읽어보면 아주 긴 여정 같은 느낌이 납니다. 『마티네의 끝에서』는 어제 받았는데요. 사실 당황했어요. 두꺼워서요.(웃음) 하루 만에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요. 걱정과 달리 금방 다 읽어버렸습니다.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어요. 아스라한 사랑이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드실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히라노 게이치로: 데뷔 때부터 쭉 돌이켜보면 작품이 굉장히 많이 변했습니다. 십 년, 이십 년에 걸쳐 생각을 하면 그제야 보이는 문제들이 있고, 그때가 돼야 알게 되는 해결책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렇게까지 오래 활동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기쁜 일이고요. 김연수 작가님과 젊은 시절부터 알아온 관계인 만큼 김연수 작가님 또한 이렇게 오래 활동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제게 굉장한 위로가 됩니다.

 

허희: 이 작품이 사랑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직업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마키노가 주인공인 만큼 음악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많이 나오고요. 세계 각국의 치열한 현장을 뛰어다니는 저널리스트 요코의 입을 통해 이천 년 대 여러 세계사적 사건들을 보게 돼요.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사랑과 일이 비등한 균형점을 잡고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히라노 게이치로: 현대를 무대로 한 음악 테마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악기를 다룰지 고민했는데요.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악기를 다루려면 오케스트라가 등장해야 하고, 그러면 제가 쓰려는 이야기를 못 다룰 것 같았어요. 그러던 차에 후쿠다 신이치라는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CD를 듣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감동을 받았고 클래식 기타를 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허희: 김연수 작가님도 음악에 관련된 탐구 등을 생각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님이 천착하는 음악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김연수: 저도 이런 식의 아티스트를 등장시키는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은 있는데요. 아직까지 쓰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와 다른 부분에 접근하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어서요. 그러나 음악은 저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도 음악을 찾아 듣고, 소설에 나온 사람들을 검색해봤어요. 후쿠다 신이치도 나오거든요. 그분의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 좀 더 실감이 나실 것 같고요. 음악가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요. 뭐랄까, 아는 사람에 대해 쓰는 건가 생각할 정도로 너무나 실감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워낙 음악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요. 역시 본인의 관심사를 잘 살려서 좋은 소설을 쓰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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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 『마티네의 끝에서』의 사랑에 대한 김연수 작가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김연수: 책을 읽기 전에는 ‘지금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님이 왜 했을까 싶었어요. 의문은 책을 읽으며 많이 해소가 되었죠. 일하는 사람들의 사랑에 답이 있어요. 오해가 아니더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되게 많잖아요. 20대에는 그게 납득이 안 되는데요. 30대, 40대가 되면 정말 선의로 가득 차 있다고 하더라도 어긋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선의와 선의가 부딪치게 되면 누군가의 선의는 무시당할 수 있잖아요. 이 작품을 처음에는 순애보인 줄 알고 읽었는데 결국 인간의 어떤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마키노는 이 대화를 계속하고 싶었다.
“아니,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음악이 바로 그런 것이죠. 처음에 제시되는 주제의 행방을 마지막까지 지켜봤을 때, 되돌아본 그곳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가. 베토벤의 일기에는 ‘지난밤의 모든 것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한 문장이 있죠.(중략) 인간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뿐이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미래가 과거를 바꾸고 있습니다. 바꿀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고, 바뀌어버린다고도 말할 수 있죠. 과거는 그만큼 섬세하고 감지하기 쉬운 것이 아닌가요?”(『마티네의 끝에서』, 35-36쪽)

 

허희: 『마티네의 끝에서』는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님의 다른 사랑에 관한 소설과 어떤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나요?


히라노 게이치로: 먼저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거든요. 일본에서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있어요. 특히 「달로 간 코미디언」이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굉장히 섬세하셔서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쓰시면 정말 잘 쓰실 것 같아요. 인물들이 무척 매력이 있거든요. 등장인물이 정말 매력적이지 않으면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 갖기 힘들죠. 『마티네의 끝에서』의 주인공은 40대 남녀입니다. 어른이 된 그들의 매력을 생각해보면 연애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가 종사하고 있는 일을 잘 해나가는 면이 정말 매력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사정에 의해 어긋남이 발생하지만 그것을 극복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세계관까지 표현하고자 했고, 그것을 많은 독자 분들이 좋아하신 것 같습니다.

 

허희: 『쇼팽을 즐기다』소개도 부탁드립니다.


히라노 게이치로: 『장송』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2010년은 쇼팽 탄생 150년이 되는 해였어요. 그것을 기념한 다양한 이벤트가 일본에서 많이 열렸는데요. 한 잡지에서 연재 제안을 주셨어요. 사실 『장송』을 쓰기 위해 많은 취재를 했었고, 취재 노트도 남아 있고, 많은 자료가 있었습니다. 소설에 다 담지 못한 것들을 써보자는 생각에 일 년에 걸쳐 연재를 했죠.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이 책을 들고 파리를 가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허희: 김연수 작가님도 혹시 소설 창작노트를 바탕으로 에세이를 써보겠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연수: 지금까지는 없었는데요. 지금 쓰고 있는 소설 때문에 취재한 것이 많아요. 과거의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하고 있거든요. 그것을 가지고 다른 책을 내볼까 생각 중이에요. 아마 나가사키 관광 안내서가 될 가능성이 많은데요.(웃음) 나가사키 지역을 취재한 내용들은 소설에 직접 쓸 수는 없는 것들이어서 말이죠. 지인이 제게 나가사키 홍보대사를 해도 좋겠다고 할 정도로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허희: 프롤로그에 나오는 ‘나’는 누구일까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그들 삶의 궤적에는 화려함과 적막함이 번갈아 나타난다. 환희와 비애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영혼의 호응에는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그러면서도 요즘과는 다른 시대에서는 결코 찾지 못할, 이렇게 말해도 무방하다면,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을 딱하게 여겼고 때로는 약간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한편으로는 동경심을 품었다.(『마티네의 끝에서』, 8-9쪽)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가의 일은 허구 세계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독자의 일은 해석의 자유를 갖는 일이고요. 많은 분들이 여기 등장하는 ‘나’라는 사람이 작가인 저 자신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해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죠. 어쨌든 저는 독해의 가능성에 한정을 두고 싶지 않아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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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묻고, 작가가 답하다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님은 현대 사회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꾸준히 성찰하고, 써오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소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히라노 게이치로: 한 명의 독자인 제게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말씀드리면 그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십 대 때에는 토마스 만, 미시마 유키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만약 이들의 작품이 없었다면 어떻게 십 대를 보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소설이 아니면 해소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몇몇 등장인물은 실제로 현실에서 만난 사람보다 훨씬 더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거든요.


소설가가 된 이후에는 살아간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그것을 독자와 공유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아름다운 연애 이야기를 쓸 때에도 지금 이 세계,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독자분들과 공감해야 해요. 그러지 못하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거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대립과 분단이 항상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가 싶어요.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한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서로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 중에서 소설로 다뤄보고 싶은 사건들이 있으신가요?


김연수: 써보고 싶은 것은 지진 체험 같은 거예요. 몇 번 느껴보기는 했지만 지진을 본격적으로 느껴보진 못했단 말이죠. 그런데 재작년에 잠시 있다가 온 곳이 지진피해를 입었어요. 정말 좋은 곳이었거든요. 평화롭고요. 들판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지진은 상상만 했던 감각인데,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지역이 바뀌어버리는 거죠.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고요. 그 감각을 그때 어렴풋하게나마 느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기회가 닿으면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조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잖아요.


히라노 게이치로: 지금은 전 세계 각국을 봐도 굉장한 내셔널리즘이 만연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정치와 관련해 비판하는 글을 많이 쓰고 있는데요. 동아시아 역사, 근대 이후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면 일본의 한국 침략을 비롯해 아주 어두운 역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어두운 면을 좀 더 써야하지 않을까 하고요. 한편 역사를 더 거슬러 한국과 중국, 일본이 아름다운 시기를 보냈던 시기도 있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일본에는 한국이나 중국의 영향을 받은 아름다운 건물이나 찻잔 등이 많잖아요. 근현대의 역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시기와 그 관계를 그리는 것도 소설가의 일이 아닐까 합니다.

 

어떻게 소설이 만들어지는지 두 작가님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김연수: 소설은 자기의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게 많습니다. 그때 저의 기본적인 태도는 제가 이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예요. 특히 주인공의 경우 사실상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만들어가요. 눈을 그리고, 코를 그리고, 지웠다가 다시 그리는 식이죠. 그렇게 해서 진짜 없던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고요. 없던 사람이 모습을 갖추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희열이 굉장히 큽니다. 취재했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모아 만든 것이겠지만 현재에는 완전히 없는 사람이죠. 이 사람을 독자가 읽고 나름대로 상상한 모습에 대해 듣는 것도 굉장히 좋고요. 소설에 여러 정의가 있지만 저는 소설이란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떤 사람에 대해서 쓰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을 읽을 때 독자의 자세는 소설의 세계에 어느 정도 빠져드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소설가가 등장인물을 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독자는 그것만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독자가 될 거예요. 그러나 적당하게 공백을 둔다면, 채워야 할 구멍을 만들어둔다면 독자는 자신들의 경험을 반영해 읽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한 권의 책을 모두 읽었을 때 독자에 따라 각기 다른 추억이 섞여 각자에 맞는, 모두 다른 소설이 또다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이 영화화되었을 때 별로 만족하지 못하시는 이유도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는 독자가 완벽히 제 소설에 빠져들길 바랐는데 요즘은 독자의 생각과 제 작품이 적당히 섞여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저/양윤옥 역 | arte(아르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이자, 인간 내면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온 히라노 게이치로.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최신작 『마티네의 끝에서』가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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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는 심판이 안 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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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 국민TV 카페 온에어에서 서민 교수의 『서민적 정치』출간 기념 특강이 열렸다. 저자는 기생충학과 교수이자 칼럼니스트로, 『서민의 기생충 열전』, 『서민적 글쓰기』, 『서민적 정치』외에도 여러 권을 집필했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큰 가운데,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민적 정치』가 나오기까지

 

"제가 정치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치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누구나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민적 정치』를 쓰게 됐습니다. 기생충학 교수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기생충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냉대했어요. 여자 분들은 제 얼굴만 보고 화를 내곤 했죠. 이런 이유로 책으로 뜨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정말 많은 책을 말아먹게 되죠. 당분간 책을 그만 쓰기로 마음먹고 울적해하고 있을 때 웅진출판사에서 한 편집자가 찾아왔어요. 기획만 잘하면 괜찮은 책을 쓸 가능성이 있다면서 책을 내자고 했어요. 좋은 기회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그 때는 좌절의 늪이 컸기에 결국 글을 완성하지 못 했죠."
 
그 후로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게 된다. 그동안 <경향신문> 칼럼으로 이름을 알리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지도를 쌓게 된 서민 교수. 이 여세를 몰아 '글을 잘 쓰면, 말도 잘할 것이다'라는 한 PD의 착각 덕분에 <베란다쇼>라는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 마음의 빚을 진 출판사 편집자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그 편집자가 이번엔 출판사까지 차리고, 계약서까지 준비해왔다.  
 
"제가 이번에는 무조건 책을 함께 내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8년 동안 이 분도 많이 변했어요. 저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더라고요. 매주 일정 분량을 써내게 하고, 제때 안 쓰면 불같이 화를 냈어요. 저는 누군가 화를 내면 그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편이고, 화내는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거든요. 제가 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저의 글 분투기를 썼는데, 원고를 꼬박꼬박 보내면서도 이게 과연 남들이 읽을 만한 책이 될 것인가 회의감이 들었어요. 최종적으로 원고를 다 보내고 난 후에 그 분이 편집본이라는 것을 보내왔어요. 그런데 책이 이상하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왜 그런가 봤더니 그 분이 제가 쓴 순서대로 원고를 배열한 게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배열하고 원고를 마음대로 고친 거예요. 여기까진 괜찮아요. 놀라운 건 이거죠. 제가 쓰지도 않은 말을 막 써놓은 거예요. 이 책이 재미있던 비밀이 따로 있었던 거죠.

 

 제가 지금 계약해놓고 안 쓴 게 10권 쯤 되는데요. 대표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어요. 내년에 대선이 있으니 정치 관련 책 하나 쓰자고 하시더라고요. 죄송하지만 밀린 책이 많아서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도 12월까지 원고를 완성하고 2, 3월에 책을 내자고 하시더라고요. 저를 다루는 방법을 여전히 알고 계시라고요. 어쩌다 보니 매주 드리게 됐어요. 그런데 '탄핵'이라는 변수가 생겨요. 원래 제 계획은 4월 즈음에 책이 나오고, 12월에 대선이니 8개월 동안 판매 부수를 올리는 거였는데 대선이 5월로 당겨졌죠. 2주 동안 책을 팔아야 하게 됐습니다. 이 책은 스토리펀딩도 했는데 목표액의 20%밖에 모금이 안 됐어요. 돈이 너무 안 모이여서 제가 집사람 이름으로 10만 원을 몰래 했던 가슴 아픈 사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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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사라진 이유

 

자원 배분의 우선 순위는 무엇에 의해 정해질까? 바로 '정치'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이 통일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하면 다른 분야가 찬밥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웬만큼 먹고 사는 사람들에겐 별 관련이 없을 수 있지만, 못 사는 사람일수록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보통 매스컴에서 정치가들이 선행을 한 것보다는 뇌물수수나 거짓말을 한 게 더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정치를 혐오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죠. 그런데 이게 꼭 정치인만의 문제일까요? 저는 유권자들이 오늘날의 정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정치인의 수준이 낮아서 정치가 후진 게 아니라, 어쩌면 유권자의 수준이 따라오지 못 하기 때문에 정치가 이 모양이라는 거죠. 우리나라 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심판이 안 된다'는 겁니다. 한 정권이 국정운영을 잘못했다면? 정상적인 나라라면 정권이 교체되어야 합니다. 아이슬란드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몰려가서 시위를 했습니다. 결국 총리가 사임을 하고 정권 교체가 됐어요. 심지어 국회의원 29명이 구속됐어요. 나라 살림을 잘하지 못 한 정권은 투표해서 심판을 해요. 우리나라는 IMF 이후에도 어떠한 심판이 없었습니다. 이거 뭔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서민 교수에 의하면 '북한 문제' 역시 심판이 사라진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안보관을 검증하는 키를 항상 보수가 쥐고 있는데, 과연 보수는 정말 안보에 유능한가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심판 기능을 해야 할 국가기관,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뒤늦게 국정농단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 검찰, 이름에 걸맞게 누구보다 세월호사건 당시 눈물을 흘렸어야 하는 엄마부대와 같은 시민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심판이 실종된 또 하나의 이유는 젊은 층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데 있어요. 젊은 층들은 항상 60대에 비해 투표율이 낮았어요. 젊은 층이 정치를 외면하면 투표를 열심히 하는 60대가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거예요. 더 무서운 게 뭐냐면 노년층이 연령대별 인구도 많고, 점점 들어난다는 겁니다. 나이와 투표가 관련이 있는 예로 저희 작은아버지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찍으시던 분이셨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명박, 박근혜를 찍으시더니 이제는 저한테 홍준표 찍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분이 달라진 건 나이밖에 없어요. 젊은층이 유권자 수도 적은데, 투표도 안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우리는 알게 모르게 편향되어 있고, 선동에 취약하다. 권력의 세뇌는 집요하고 은밀하다. 서민 교수는 세계일보에서 정윤회가 사조직을 만들어 국정을 농단한다는 보도를 냈을 때, 국민들은 땅콩 회항 사건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커다란 것을 놓치고 권력이 원하는 대로 엉뚱한 사건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국정 농단이 제대로 밝혀지고 나서야 언론이 돌변을 하죠. 이 때라도 돌변해주는 게 참 고맙더라고요. 특히 그 당시에 조선일보가 각성을 합니다. 언론 권력이 각성한 것이 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걸 말씀드리는 건데요. 조선일보가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해 최초로 보도한 거 아세요? 조선일보는 원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표현을 했던 언론이에요. 판매부수는 올려야 했는지 이렇게라도 비판언론의 지위를 유지하자고 한 거죠.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계기로 최순실을 조사하게 되는데요. 안팎으로 탄압을 받으니까 최순실 조사가 중단됩니다. 어쩌면 최순실 사태가 밝혀지지 않을 뻔 했는데, 한겨레가 뒤를 이어받아서 최순실에 대해 보도를 하기 시작하고요. 이화여대생들이 정유라를 걸고 넘어지다가 최순실이 끝에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JTBC까지 힘을 보태죠. 3년 반 동안 아무 일도 안 하다가 6개월 바짝 일하더니 나라가 바로 서지 않습니까. 언론이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겁니다. 언론사가 제대로만 서면 정말 좋을 텐데. 계속 기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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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위한 우리의 과제
 
"우리나라 최대 문제는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현 정부가 이 문제를 제일 먼저 해결해줬으면 좋겠어요. 나치가 탄생한 것도 독일이 파산 직전에 있었지 않습니까? 경제가 어려울 때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고 그래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외국인이 많이 없으니까 여성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지금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하잖아요. 그 이유가 청년들을 대변할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너무 늙었어요. 우리나라 국회의원 3, 40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젊은 국회의원을 비례대표에 넣어달라 요구를 해야 하는데요. 문제는 젊은이들이 연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금은 직접 모일 필요도 없어요. 인터넷 사이트 만들어놓고 모이면 됩니다. 20대만 한 사이트에 모여도 큰 권력이 되는 거죠. 양들이 왜 죽었죠? 침묵해서예요. 취업의 문을 연대해서 넓혀야지, 혼자 스펙 쌓아서 뚫으려고 해요. 프랑스에서는 정년 연장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어요. 이렇게까지 시위는 못 하더라도, 선거나 투표로 심판하면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일자리 부족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유일하게 해낸 일로 '대학등록금'을 꼽았다. 대학등록금은 지난 10년 동안 오르지 않고 있다. 서민 교수의 월급이 10년 동안 오르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자본주의 반하는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한 게 20대다. 숫자를 믿고, 동료를 믿고, 연대하면 할 수 있다는 사례다. 
 
"연대를 위해서는 우선 스마트폰을 버려야 해요. 대신 종이신문을 보는 것을 추천해요. 종이신문은 1면이 정치 면이니까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종이신문을 안 보니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거죠. 스마트폰으로는 연예 기사만 봐요. '설현, 뒷태까지 완벽' 이런 것만 보는 거죠. 좋은 언론사가 있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게 하나의 방안이에요. 언론사가 삼성을 비판할 수 있으려면 삼성 광고 없이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으로는 대기업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경향신문> 독자가 100만 명만 되더라도 <경향신문>이 자립할 수 있는 구조가 되고, 언론이 좋은 나라를 위해 애쓸 수 있다는 거죠."
 
이어서 서민 교수는 연대를 위한 또 다른 과제로 '독서'를 꼽았다. 책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만들어 주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과 공감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면 세월호 유족들을 그렇게까지 냉대하지는 않았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이게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명확히 말했다. 끝으로 그는 기생충 학자답게 '연가시'를 예로 들며 우리 역시 연대해야 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연가시는 물속에서만 짝짓기와 산란합니다. 연가시들은 수없이 모여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며, 대책을 세웠고 결국 물에 뛰어드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연가시들이 죽었죠. 대한민국 청년의 상황을 연가시와 비교해보면, '연가시보단 좀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봐요. 우리도 연가시가 했던 것처럼 여럿이 모여서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봤으면 합니다."


 

 

서민적 정치서민 저 | 생각정원
촛불 이후, 장미 대선을 앞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는 무엇일까? <경향신문>의 칼럼니스트인 서민 교수는 특유의 반어법과 비틀어 보기를 통해 한국 정치의 민낯을 신랄하게 벗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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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경 “직장생활, 스펙보다 중요한 건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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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태도가 내일의 내 인생이 된다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의 유인경 저자가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로 돌아왔다. 정글 같은 회사에서 30년을 버틴 내공으로 ‘오늘은 서툴러도 내일은 당당하게 일하고 싶은 모든 딸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넸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 ‘태도’의 중요성을 말한다. 업무와 관계를 성패를 가르는 한 끗 차이가 작은 태도에서 판가름 난다는 이야기다. “오늘 나의 태도가 내일의 내 인생이 된다”고 말하는 그녀는 “특히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 좋은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그 어떤 탁월한 스펙이나 자격증보다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1982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해 지난 2016년 정년 퇴임한 유인경 저자는 경향신문의 부국장 겸 선임기자, 시사주간지와 여성지의 편집장을 거치며 누구보다 많은 이들을 만나왔다. 그 결과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 해도 눈물겹게 노력을 한다고 해도 결국 세상과 사람들이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그들의 ‘태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안에는 그녀가 직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좋거나 나쁜 태도의 예들, 태도의 변화를 이끄는 방법들이 담겨있다.

 

태도란 한 개인이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규정짓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다. 친절하고 따뜻한 태도, 자신의 잘못을 금방 알고 사과하는 태도,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 등은 타인에게 잘 보이려는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바로 내가 좋은 인간이 되려는 데 가장 필요한 것, 좋은 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 13쪽)

 

지난 18일 저녁, 출간 기념 강연회를 통해 독자들과 만난 저자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했다.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의 핵심 내용이기도 한 그녀의 메시지는 ‘5S’로 요약된다. Sorry, Simple, Surprise, Sweet, Smile의 다섯 단어는 ‘사과를 두려워하지 마라’, ‘단순해야 버틴다’, ‘감탄을 잘하는 사람이 좋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당신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먼저 미안하다고 재빨리 사과하고(sorry), 이왕이면 단순하게 생각하고(simple), 수시로 감탄사를 연발하고(surprise), 부드러운 말과 따뜻한 태도를 보이고(sweet), 유머 있고 명랑하게 지내라(sweet)는 거예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화도 내지 말고 반항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렇게 살 이유가 없죠. 분노하고 화내야 할 때도 있잖아요. 다만, 그럴 때 조금 더 좋은 태도를 갖춘다면 메시지가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보다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느냐’ 하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관점을 조금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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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지속 가능한 에너지만큼 하면 돼요

 

‘미안해요, 잘못 했어요’ 한 마디면 깔끔하게 마무리될 텐데,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해 일이 점점 커지는 순간이 있다. 잘못했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유인경 저자는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면 자신이 가해자나 죄인이 된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직장생활에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절대 루저가 되는 게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내 그릇이 커지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오히려 재빨리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에게 애정과 신뢰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별의별 사건을 다 겪게 되죠.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단순하게 생각하자는 거예요. 생각이 많은 것과 생각이 깊은 것은 다르거든요. 생각을 많이만 하는 건 별로 도움 될 게 없어요. 스트레스는 남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받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여러분의 평화이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쓸 수 있느냐 하는 거죠. 복잡하고 깊게 생각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잖아요. 그냥 심플하게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는 내 갈 길을 갈 거야’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볼 때는 성공한 사람들이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둔감력도 굉장히 필요해요.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 이 일이 잘 될지, 너무 많이 신경 쓰면 버티기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어떤 일이든 심플하게 생각하셔야 돼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하시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만큼만 잘하시면 돼요.”

 

상대의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거나 작은 일에도 감사를 표현하는 행동은 관계를 매끄럽게 만든다.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주저하게 될 때가 있다. 이에 대해 유인경 저자는 “상대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스스로 인생을 화려하고 풍성하고 밝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작은 일에도 기뻐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다.

 

직장에서 만나는 이들을 향해 따뜻한 말을 건네고 부드러운 태도로 다독여주는 일 역시 필요하다. “따뜻한 말을 해주면 10배, 100배가 돼서 나에게 돌아온다”고 말하는 저자는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조언을 곁들인다. ‘칭찬 시점과 방법’도 그 중 하나다. 

 

칭찬도 타이밍과 노하우가 중요하다. 어떤 일을 잘 수행했을 때 즉시 그 자리에서 칭찬해야 하고, 칭찬받을 것이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한 사람임을 강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칭찬은 독이 되기 쉽다. 가령 부하나 자녀의 행동과 감정을 인정하고 그가 팀이나 가족의 동등한 일원이라는 것, 그 사람의 자리, 영역, 존재감을 존중해줘야 한다. 때론 자녀나 부하를 칭찬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잘못된 칭찬을 할 수 있다. “네가 웬일이냐, 이런 일을 다 하고” “네가 한 일 중엔 제법 잘했네” “오늘은 좀 사람같이 옷을 입었네, 전에 입던 옷들은 다 버려라” 등등은 절대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분노를 자아낸다. 상대를 존중해주지 않는 칭찬은 칭찬이 아니다.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 209쪽)

 

유인경 저자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명랑함과 유머감각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생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웃기게 보느냐 슬프게 보느냐의 차이이다”라면서 “직장생활에 대단한 비극도 없고 굉장한 희극도 없다. 즐겁고 기쁜 부분을 찾는 것도 훈련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 또한 인생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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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눈물과 좌절로 던지지 마라


강연이 끝난 뒤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유인경 저자는 직장 선배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솔직한 경험을 들려줬다.

 

Q.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업무에 욕심을 내면서도 너무 매몰되고 싶지는 않을 때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성격이에요(좌중 웃음). 다른 사람이나 조직의 상사들이 볼 때는 밉겠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참 고맙게 생각해요.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면,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뿐인 것 같아요. 몰입은 하겠지만 어떻게 죽기 살기로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일한다고 하면서 번아웃이 되어버려요. 저는 일하는 시간 외에는 딴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다른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머릿속을 다 일로 채우잖아요. 그런 걸 좀 잊으시고 딴 생각을 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나만의 것, 회사도 뺏어가지 못하는 것, 전쟁이 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 그런 것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생각만 해도 짜릿짜릿해지는 게 있잖아요. 저는 늘 저만의 재미 거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발전적인 것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요. 그게 있었기 때문에 숨 쉴 여유가 늘 있었던 것 같아요.

 

Q. 태도라는 것도 결국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건데요. 자신만의 시간과 감정에 집중하다 보면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태도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주변에 친구들과 사람들이 많으면 그게 곧 재산이라고 하죠. 성격과 사교성이 좋다고 하고요. 저는 많은 모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부럽지는 않아요. 친구가 많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까 가장 절실한 게 마음 맞는 친구들이더라고요. 혼자 있는 게 편한 이유는 상처받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친구를 만나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으니까요. 제 경우는 친구가 저를 다 이해해줘야 된다거나 제 말을 다 들어줘야 된다는 기대감도 없고요. 저를 응원해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요. 그리고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배울 때가 많다고 생각해요. 친구를 만나는 게 배움이고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의미 없이 돈 쓰고 시간 쓴다고 생각하면 만나러 가지 않겠죠. 결국 나를 외롭거나 외롭지 않게 만드는 건 내 태도인 것 같아요.

 

Q.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면 사과하는 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자신이 실수한 것 같지 않은데도 지적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사과할 수 있을까요?


A. 잘못을 뼈저리게 느껴서 사과를 한다기보다는, 관계가 좀 어색하게 됐을 때 ‘잘못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데요. 그것도 훈련이에요. 그리고 사과도 상대의 기분에 맞춰가면서 해야 되는 거죠. 상대는 기분 나빠서 어쩔 줄 모르는데 장난 식으로 가볍게 사과해서는 안 되죠. ‘(문제가) 뭔지는 모르지만 기분 나빴으면 사과할게요’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도 절대 안 되는 거고요. 미안하다는 말은 재빨리, 구체적으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기업이나 연예인의 경우를 봐도 사과를 잘해서 쿨하고 멋지게 일을 매듭지을 때가 많잖아요.

 

Q. 회사 내의 남녀차별이 심한 편입니다. 신문사도 비슷한 상황일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지금의 신문사는 차별이 거의 없어요. 제가 처음 신문사에 들어갈 때는 당연히 있었죠. 여기자도 별로 없었고, 청첩장이 곧 사표이던 시절도 있었어요. 여자라서 피해를 당한다거나, 아이 엄마니까 무시당하는 거라고 불평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남녀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거고, 그건 서서히 이야기를 해주셔야 해요. 노골적으로 ‘우리 회사는 왜 이런 거예요?’라고 해서는 되지 않고요. 의연함이 필요해요. 좀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확실히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회사에 왜 다니는지,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는지, 더 나은 조건의 회사가 있을지, 그런 곳에 가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그런 부분들을 따져봐야죠. 만족하고 자족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에요. 억압받고 억울한데도 회사를 다니실 필요는 하나도 없어요. 다만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준비를 하셔야 된다는 거죠. 사표는 멋진 일이 보일 때 던지는 거지, 눈물과 좌절로 던져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유인경 저 | 위즈덤경향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의 저자이자 30년 직장생활 내공의 멘토 유인경은 이번 책에서 기본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권한다. 직장생활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업무와 관계를 대하는 태도의 한끗 차이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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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 디자인의 핵심은 궁금하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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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시골의 발견』에 이어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가 178가지 정원 이야기를 담은 『정원생활자』로 돌아왔다. 이 책에서는 과학, 철학, 역사와 예술 등 정원 속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저자는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7년간 조경학과 정원 디자인을 공부했다. 지금은 오가든스와 오경아의 정원학교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월 17일, 속초 오경아의 정원학교에서 『정원생활자』출간 기념 가드닝 특강이 열렸다. 이 가드닝 특강은 원래 1박 2일 코스인 유료 특강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무료로 준비했다. 폭염이 이어지고 있던 서울과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정원학교. 이 곳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열 명의 예비 정원생활자들이 모여들었다. 오경아 저자는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정원 이야기로 강의를 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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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정원문화

 

"영국의 코츠월드(Cotswold)라는 곳이 있는데요. 거기에 속한 900년 된 마을에 런던 고가의 아파트보다 비싼 시골집들이 있어요. 정원 문화는 주로 이런 저택이 있는 시골 쪽에서 많이 발달하는데요. 이 문화가 보통 영주들을 통해서 고급스러운 문화로 발전을 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런 봉건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정원문화가 발달하지 못 했다고 보고 있어요."
 
영국 같은 경우 모든 문화와 생활의 중심에 정원이 있다. 저자가 살았던 시골 마을에 슈퍼마켓이 딱 하나 있었는데, 정원 용품과 식물을 파는 가든 센터(Garden Center)가 대형으로 두 개나 있었을 정도다. 슈퍼마켓도 하나 밖에 없는 이 작은 마을에 가든 센터가 두 개나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마을 사람들이 손님을 초대할 때, 집으로 초대하지 않고 가든센터로 데리고 가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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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꾸미기에 앞서

 

"현재 전세계적으로 정원과 관련된 시장 중에 좀 전에 말씀 드렸던 '가든 센터'라는 게 있어요. 이 가든 센터는 슈퍼마켓이랑 똑같이 보면 되는데요. 카트도 똑같이 밀고 다녀요. 가든 센터는 보통 레스토랑, 티룸, 어린이 놀이터 그리고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 곳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게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또 '원예 농가'라는 게 있는데요. 원예 농가의 경우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농장 자체가 투어리즘을 일으키게끔 만들어놓는 거예요. 실제로 식물을 수종 별로 생산해서 판매하는 건 물론이고, 이 곳에서도 역시 레스토랑이나 티룸 그리고 관상적으로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미니가든을 꾸며놓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원예 농가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주로 비닐하우스를 치거나 특정 작물 한두 개만 키우세요. 서양은 수 많은 종을 관상적으로 예쁘게 만들어놓고, 구경하다가 마음에 들면 구매할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의 원예 농가도 이런 식으로 변화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가든 센터와 원예 농가 외에도 '체인스토어(Chain Store)'라는 게 있다. 프랜차이즈 되어 있는 경우인데, 이케아를 예로 들 수 있다. 실제로 이케아는 실내 매장과 정원 매장의 비중이 비슷하다. 초기에 우리나라에도 정원 매장이 큰 비중으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다 조화로 바뀌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정원 문화가 정착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까르푸 같은 대형 슈퍼마켓을 가면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있다. 바로 계산대 옆에 있는 식물 코너다. 우리나라는 보통 생활용품이나 간식거리를 파는 반면, 외국은 식물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주부들이 꽃과 화분을 구입하는 게 슈퍼에서 장을 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판매 역시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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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으로 떠나는 여행

 

"우리가 관광이라고 하면 보통 유적지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맛있는 걸 먹고 오는 게 다잖아요. 실은 유럽의 모든 관광 시스템이 가든 투어예요. 그런데 이 문화가 아직 우리에게 없어요. 제가 가든투어를 인원을 모아서 가본 적이 있었는데, 만족도가 엄청 높아요. 일단 덜 피곤해요. 도착을 해서 정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사이에 극도로 피곤했던 게 풀리는 현상이 생겨요. 일본은 한 2009년부터 정원 관광을 시작했어요. 요즘엔 중국인들까지 합세했는데, 우리나라만 아직 그 범주에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저자는 이어서 우리나라 꽃 박람회의 원조 격인 '첼시 플라워 쇼(Chelsea Flower Show)'에 대해 설명했다. 전 세계에서 현존하고 있는 플라워 쇼 중 역사, 권위, 입장료 면에서 모두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 행사다. 매년 5월 셋째 주에 일주일 동안 열리는 이 플라워 쇼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내년도 티켓팅에 들어간다. 
 
"우리나라도 순천에서 정원 엑스포를 하고, 일산에서는 고양 꽃 박람회를 해요. 우리나라 공무원은 관람객 수 확보에 목숨을 걸어요. 영국인한테 꽃 박람회에 100만 명이 왔다고 하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냐면서 엄청 놀랄 거예요. 첼시 플라워 쇼에는 방문객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럭셔리한 옷을 입고 와요. 밴드가 음악 연주도 하고 있고요. 모히토를 마시면서 하루 종일 놀다 가요. 한바탕의 페스티벌이죠. 제가 데리고 갔던 분은 정원 말고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할 정도였죠.

이 행사는 전문 가든 디자이너들이 자기 제품을 보여주는 쇼라고 할 수 있어요. 또 이 곳은 부스가 아주 많은데요. 이게 바로 비즈니스의 장입니다. 플라워 쇼는 관람객을 모으기 위해 개최하는 게 아니라, 정원 산업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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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디자인이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원 디자인에 대해 정확한 개념 정의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잘 아는 정원사는 ‘식물을 1년 내내 어떻게 하면 잘 관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관리자에 가깝다. 가든 디자이너는 건축가와 비교하면 된다. 건축가는 지붕이 덮여 있는 내부 공간인 집을 디자인 하는 사람이라면, 가든 디자이너는 집을 제외한 나머지 아웃도어 스페이스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다. 그 아웃도어 스페이스 안에 정원이 중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넓게는 담장, 의자, 탁자, 파빌리온, 벽화 디자인 등 전부 가든 디자인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가든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건축, 원예, 디자인 이 3개 영역을 다 공부를 했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해야 돼요. 제가 공부를 하러 갔을 때 38살이었는데요. 제가 꽤 연장자거나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고 제 또래가 의외로 많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른 영역에서 일을 조금 하고 오셔야 그 다음 단계로 정원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처음부터 이 영역을 공부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돼요."
 
이어서 저자는 다양한 정원 사진을 보여주며 디자인 과정을 설명했다. 정원 하나를 꾸미기 위해 가든 디자이너가 벽체 디자인부터 식물을 구조적으로 쓸지, 색채로 쓸지 다양하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즉, 정원 디자이너는 이러한 건축적 요소와 식물적 요소를 아름답고 조화롭게 디자인하는 작업을 한다. 
 
"정원에서 구조물을 없애 보세요. 그럼 그냥 필드예요. 구조물 때문에 정원의 볼륨감이 생겨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요. 가든 디자인을 할 때 초보자들이 가장 우를 범하는 게 있어요. 우리가 도면을 그릴 때 평면도를 그리는데요. 지상에서 수직으로 1미터 정도 뜬 상태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린 그림이에요.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이 도면을 가지고 패턴을 주면 이건 그냥 피자판이지, 정원의 볼륨을 살릴 수가 없어요. 실제로 내가 일어섰을 때 내 눈으로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즉, 수직 디자인을 해야 하는 거죠.

 

저희 정원에도 집에 어울리게끔 수많은 수직의 구조물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거든요. 이게 정원에 깊이를 주기도 하고요. 정원의 방을 계속 생기게 하는 거예요. 이런 걸 잘 구사할 수 있을 때 정원이 훨씬 더 풍요로움을 줄 수 있어요. 디자인적으로 가장 피해야 할 건 그 집에 들어섰을 때 한 눈에 쫙 보이는 정원이에요. 더 이상 그 안에 안 들어가게 되죠. 궁금하지가 않거든요.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에요. 한 바퀴를 돌고 나왔을 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면 정원이 잘 디자인 되어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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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디자이너로서의 역할

 

마지막으로 저자는 최근 붐이 일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공동으로 꾸며진 ‘마을 정원’을 소개했다. 이 정원은 다른 마을과의 경쟁을 통해서 'Britain in Bloom'에 뽑히게 되면 영국관광청의 지원을 받게 된다. 지역 자체를 지속적으로 융성시키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영국인들은 이러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전통 가옥에서 살고 있음에 굉장히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배울 만한 점이다.
 
"몇 년 전에 제 강의를 들으셨던 선생님 중에 대체 의학을 공부하시는 서울대 의사선생님이 있었어요. 그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심리 치료를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그림 그리기래요. 아이들 같은 경우 집 한 채, 손을 잡고 있는 엄마와 아빠, 반짝이는 햇살 그리고 나무 한 그루. 이게 가장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라는 거죠. 신기한 게 아파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지붕이 들어간 집을 그린다는 거예요. 본인의 집이 아닌 거죠. 그 의사 선생님 말로는 우리가 실은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아파트를 집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래요. 그래서 주말마다 밖으로 나오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른다는 거죠, 집을 찾아서.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분들이 근대화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세기는 우리가 얻은 건 얻은 거고, 잃은 부분에 대해서는 회복을 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세기인 거 같아요. 그 가운데 제가 하고 있는 정원 디자인도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차경은 할 수 없고, 서양식 개념을 가져와야 하는데요. 그 개념을 어떻게 가져와야 우리와 조화를 잘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은 여전히 숙제예요. 어쩌면 이번 세기 안에 해결이 안 날 수도 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방법을 찾아가는 게 옳은 거 같아요."
 
준비된 강의가 끝난 후 모두 정원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텃밭 정원부터 남편이 목공 일을 하는 작업장까지 구석구석 살펴보며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저자가 이 집을 디자인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이 '설악산 바로 아래 있는 오래된 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이었다고 한다. 정원 디자이너로서 정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주거지와 가장 잘 어울리게끔 시골스럽고 내추럴한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아주 한국적인 정원은 아니며 다양한 국적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드닝 특강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오경아 저자의 블로그(http://blog.naver.com/oka05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속초로 달려가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는 분들께 오경아 저자의 『정원생활자』를 먼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한 꼭지씩만 틈틈이 읽으려고 해도 어느새 다음 장을 넘기고 있을 것이다.


 

 

정원생활자 오경아 저 | 궁리출판
꿈꾸는 정원을 만들고 가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하루 3분이면 충분하다. 이 책 『정원생활자』를 한 꼭지씩 읽어본다면!


 

<채널예스> 베스트 기사를 댓글로 알려주세요! (~6월 30일까지)

 

http://ch.yes24.com/Article/View/3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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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집은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주거공간이란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집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가족의 ‘추억’을 담아내고 ‘힐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이란 단어와 연결시킨다.
우리는 꿈꾸고 싶다. 담고 싶다. 짓고 싶다.
고로, 지붕 아래 가족과의 행복한 추억을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점이 될 것이다. (11쪽)

 

지난 6월 24일, 주말 오후 판교에서 『스타 건축가 3인방의 따뜻한 전원주택을 꿈꾸다』의 저자 세 명과 전원주택을 꿈꾸는 사람들이 만났다. 이동혁, 정다운, 임성재, 이 세 명의 건축가는 10년의 시간을 전원주택 짓기에 매진해온 전원주택의 베테랑들이다. 다양한 온라인 채널로 전원주택을 꿈꾸는 사람들과 소통해온 이 건축가들은 급기야 책으로 전원주택 짓기의 모든 것을 공개했다. 집을 잘 짓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즉, 좋은 땅 고르는 법부터 설계, 건축 방법에 따른 집들의 장단점을 꼼꼼히 따지고 구체적인 건축비용까지 소개했다. “집 지으려면 무엇부터 알아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 현장의 경험을 최대한 담은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자 했다. 누구나 한 번은 꿈꿨을 나만의 전원주택 짓기. 여기에 경험 많은 건축가가 들려주는 세심한 조언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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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동혁

 

안전한 집짓기

 

“음악에 비유를 해볼까 해요. 저희는 대중음악을 하는 건축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편안함을 느끼는 집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보시는 일반적인, 보편타당한 집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건축가는 건축주가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큰 차이를 줄이는 다리 역할을 한다.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라고 말하는 임성재 건축가는 “많은 건축주 분들이 끝에 가서 후회의 말씀을 합니다. 건축가가 분명 중간에 조언을 하거든요. 당시에는 듣질 않으시죠. 아쉽긴 하지만 저희 의견을 밀어붙이진 못해요. 건축주의 만족을 위해야 하기 때문에요. 결국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건축주의 몫입니다. 그러니 집짓기 과정에서 설계자든 건축가든 시공자든, 그들이 하는 조언을 오랫동안 고민해보셔야 합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동혁 건축가는 “이제는 집을 짓는 이유가 재테크나 투자 목적이 아닙니다. 집이란 따뜻한 느낌, 살고 싶은 곳이라는 인식이 많아요.”고 말했다. 최근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짓겠다고 생각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집에 대한 관심이 과거와는 다른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짓기를 떠올린 후 보통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 정도. 집을 지을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일반적으로 “1,300여 가지”나 된다는 이동혁 건축가는 집짓기를 “개인이 다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전문 분야는 전문가한테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 예로, 등기가 있잖아요. 등기도 법무사를 통해야 합니다. 그것처럼 내가 망치 하나를 가지고 가서 모든 걸 하겠다, 고 해서는 안 되겠죠. 전문 분야와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를 구분하면서 집짓기를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전원주택을 지을 때 경계할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첫째, 인터넷 정보에 속지 말고 둘째, 처음 세운 목적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한정된 예산 안에서 집을 지을 때 “포기할 것을 과감히 포기”하지 않으면 애초의 목적을 잃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맨 처음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자신이 원했던 핵심 요소 한두 개만은 절대 잃지 않고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처음에는 소박한 목적이죠. 많은 분들이 크게 지을 필요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 25평에서 35평 사이예요. 그런데 하다 보니 어차피 짓는 집이면 화장실도 두 개여야 하고(웃음), 드레스룸도 있어야 하고, 현관은 작으면 안 되고, 옆집보다는 무조건 커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집이 커질수록 예산이 부족해지겠죠. 그러면 싼 개인업자를 찾게 되고요. 결국에는 품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제가 하루에도 두세 통 씩은 꼭 공사 중에 현장 사람들이 도망갔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사기 당하지 않고 집을 안전하게 지을 방법은 절대로 편법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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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임성재

 

집짓기의 과정


행복한 전원주택을 짓기 위한 4가지 키워드
01. 예산을 잡자
02. 땅을 구매하자
03. 땅에 맞는 설계를 하자
04. 설계 도면대로 시공을 하자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예산일 터다. 예산 안에서 원하는 요소가 들어가도록 집을 짓는 것, 이것이 집짓기의 시작이자 거의 모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건축비(시공견적)’에는 세금, 측량, 조경과 같은 기반시설 등에 해당하는 부대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얼마에 집을 지어주겠다 해놓고 자꾸 추가비를 달라 하더라”는 오해가 발생한다. 결국 많게는 5천만 원 이상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동혁 건축가는 “땅이나 옹벽을 개발해야 하는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이 든다”며 예산 항목에서 고려해야 할 네 가지를 강조했다. 땅에 대한 토목공사비, 머릿속 그림을 가시화시킬 설계비, 실제 건축에 들어가는 시공비, 그 외 부대비용이다. 이를 통칭한 “완공비”를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각종 고발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이 같은 비용 문제다. 세금을 피할 목적으로 심지어 직접 사람을 구해 건축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거액의 건축비를 넣은 통장을 업자에게 맡겨 사기를 당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또 설계와 다르게 시공을 하거나 터무니없는 건축자재로 허술하게 집을 짓게 되는 사례까지 있다. 이에 이동혁 건축가는 건축주도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을 한 채 지을 때 투입되는 인력이 보통 40명 정도 됩니다. 작은 집, 20평대의 집을 지을 때도 그 정도 인원이 필요합니다. 많은 인력이 많은 부분을 확인하면서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집짓기를 할 때는 시기도 중요하다. 집짓기에는 최소 6개월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허가를 포함한 설계 기간 3개월, 착공을 위한 정리 기간 1개월, 시공 3.5개월 등이 소요되므로 시공 기간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6개월도 단계별로 딱딱 맞춰 진행되었을 때고요. 민원 같은 특이사항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완전 멈춥니다. 집을 짓다가 민원이 발생해 마을 주민이 집 앞에 눕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짜 여러 상황이 펼쳐져요. 그러면 시간이 길어집니다. 이런 사항을 다 고려해서 평균적으로 착공(터파기) 전 최소 6개월 전에는 설계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야 중간에 발생하는 일들을 정리하면서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해를 넘기면 인건비, 장비 사용비 등은 자연히 오르게 마련이다. 이를 간과하고 전해에 견적을 받아둔 후 다음 해에 집을 지으려고 한다면 또 다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정확히 언제 터파기를 하고, 계약 수주를 언제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이 이동혁 건축가의 말이다.

 

마지막 순서로 앞에 선 정다운 건축가는 “전원주택이 가지는 단 하나의 공통점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전원주택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담고 있고요. 실제로 보더라도 구조 자체가 개인의 개성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자신들이 맡아 진행했던 실제 전원주택 사례의 구체적인 비용을 가감 없이 공개하며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주목할 것은 전원주택의 설계 역시 아파트를 고르듯 고를 수 있는 수준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싼 설계비를 들여 자신만의 집을 지을 것인지, 평준화된 설계를 골라 설계비를 줄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 형태를 기반으로 한 개성을 담은 집이 낫다는 평가를 저희는 하고 있는데요. 현재 국내의 아파트가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편이거든요. 지나치게 개성을 찾기보다 이 안에서 어떻게 설계를 바꿀 수 있을까를 찾아보세요. 여러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다녀보셔도 좋아요. 그 안에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해보는 게 전원주택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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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정다운

 

질의응답


전원주택에서도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나요?


정다운: 사실은 힘들어요. 제주라든지 강릉 같은 풍경이 강한 곳이라면 일정 정도의 리스크를 안고는 가능한데요. 대부분은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적인 요건이나 갖고 있는 대지의 특장점을 모두 가진 상태에서 임대에 대한 내용도 함께 설계에 들어가야만 임대를 통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의 범위는 얼마나 되나요?


임성재: 디자인, 비용, 설계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중요한 건 건축주가 원하는 바를 최대한 반영한다는 점인데요. 가령 일반적인 전원주택이지만 그 중에서도 좀 더 예술적인 부분을 원한다면 건축가는 후에 시공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말씀드릴 수 있겠죠.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설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완공 후에도 문제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분명히 말씀드릴 텐데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민원을 주시는 경우가 있고요. 그밖에도 많은 부분을 조언할 수 있습니다.

 

책에 단열재의 종류가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정다운: 기준이 중요하겠죠. 2017년 우리나라에서 발표한 단열기준이 있는데요. 그 인허가 기준으로만 맞춰도 거의 패시브하우스를 넘어설 정도예요. 전체적인 열관리율 값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러니 어떤 자재를 쓰는 것이 좋다고는 함부로 이야기를 못하죠. 현재 국내 인허가 기준은 타 국가에 비해서도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스타 건축가 3인방의 따뜻한 전원주택을 꿈꾸다 이동혁, 정다운, 임성재 공저 | 카멜북스
전원주택을 짓고자 하는 예비 건축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비용이다. 그러나 건축비는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고 관련 정보 또한 매우 적은 편이었다. 이에 따라 전원주택 분야에서 젊고 실력 있는 건축가로 유명한 이동혁, 정다운, 임성재 3명의 저자가 뭉쳤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시대에 대한 나의 책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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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 저자

 

이 시대에 대한 나의 책임은 무엇인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이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을 열었다. 지난 6월 24일, 충정로에 위치한 벙커1에서 진행된 본 강연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3부작’의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영원한 소년』, 『가난한 사회, 고귀한 삶』, 『Doing Democracy』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3부작’은 현 시대에 대한 냉정한 고찰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책을 펴낸 ‘인디고 서원’은 처음 문을 연 2004년부터 인문학을 중심으로 청소년과 소통해왔다. 함께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도덕적 품성, 비판적 지성, 예술적 감성을 키워갔고 새로운 시대의 윤리적 가치를 찾고자 공부했다. 자신들이 주축이 되어 인문교양서 <인디고잉>과 영문 잡지 <인디고>를 출간하는가 하면 박원순 서울시장, 조국 민정수석, 김영란 전 대법관 등 서원에 초청된 유명 저자들과 활발한 토론을 이어갔다. 노엄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 브라이언 파머 등 세계적 석학들은 <인디고>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거나 인터뷰에 응했다. <인디고잉>의 이윤영 편집장은 이 모든 활동이 ‘창조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말한다.

 

이윤영 : 이 세계는 창조적이고 헌신적인 소수의 사람들이 바꿔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노력이 지금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편안하고 안전한 일상을 누리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들여다보는 것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전 세계를 무대로 여정을 떠났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 뵙기 위해서요.

 

‘인디고 서원’의 운영진이기도 한 이윤영 저자는 첫 번째 강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다가올 시대에 필요한 역량과 능력에 대해 생각하려면 현재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우리의 현실을 보여줬다. TV 광고는 ‘잘 사는 것(buying)이 잘 사는 것(living)’이라고, 비싼 아파트에 살면 ‘클래스가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혼정보회사는 재산과 학력을 기준으로 인간의 등급을 매겼다.

 

이윤영 : 어떻게 하면 이런 일상들을 조금 더 인간적으로, 조금 더 인문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야만 하는 시기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우리가 겪었던 국정농단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이상할 것 없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시간들이 만들어낸 괴물인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이런 시대에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요.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책임이라는 말은 바로 응답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사태에 대해서 사유하고 고민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을 하는 것이고, 그 응답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까지 포함한다는 의미입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면서 ‘책임져야 할 사안들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상기했다. “우리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고통 앞에서 얼마나 부적절한 대응을 해왔는가”라고 물었던 수전 손택의 말처럼,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가족들 앞에서 줄곧 부적절한 대응을 보였다는 지적이었다.

 

이윤영 :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후에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제대로 책임지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2014년에 출간한 『새로운 세대의 탄생』은 일종의 저희의 응답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위로하고 애도하는 데 그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탄생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배 자체를 만들지 않는 사회, 그런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사회, 문제가 생겼더라도 즉시 달려가서 해결할 수 있는 세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윤리적인 세대가 탄생하는 일이 지금 당장 일어나야 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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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결 저자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민주 시민의 역량


‘인디고 서원’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현 시대의 모습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과 마주했고, 그러한 현실에 맞서는 인물 누어 사이드를 만났다. 아일란 쿠르디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터키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이의 모습은 온 세상을 충격과 슬픔에 잠기게 했다. 이에 ‘인디고 서원’은 실제 시리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누어 사이드를 만났다.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서 현재 스웨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떠나온 비극의 땅,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들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그에 맞서 희망을 세우는 사람들. ‘인디고 서원’은 두 간극 사이를 오가며 치열한 고민을 이어갔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3부작’은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다.

 

1부 강연이 끝난 뒤 윤한결 저자가 무대에 올라 ‘새로운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3부작’을 소개했다. 고등학생 시절 ‘인디고 서원’과 만난 뒤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현재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원에서 제공하는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 ‘정세청세(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를 처음 만든 주인공 중 한 사람이기도 한데, 2007년 시작된 이 토론 행사는 이제 28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윤한결 : 『영원한 소년』은 시대의 불의에 눈 감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공헌한 위대한 영혼들을 청소년들이 만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그런데 어떻게 바꿔야 하지? 내가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지?’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민과 실천을 했는지 보고 영감을 받은 경험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가난한 사회, 고귀한 삶』은 제목에서 보실 수 있듯이 우리 사회를 가난한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는 결코 아니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영혼이 가난하고 행복하지 못하다고 봤거든요. 청소년들이 ‘우리나라 같은 가난한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고귀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주제로 토론한 내용을 엮었습니다. 『Doing Democracy』는 민주주의를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Doing’이라는 실천의 의미에서 소개하는 책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을 삶의 기술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Doing Democracy』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기술을 소개한다. 귀 기울여 듣기, 창조적으로 논쟁하기, 더 좋은 공동체 상상하기, 대화의 장에 참여하고 함께 결정하기 등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민주 시민의 필수적인 역량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실천들이 모여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윤한결 : 민주시민으로서의 삶의 기술을 바탕에서부터 만들어간다면 우리 사회를 비롯해서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 부모님들까지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인문 혁명 운동에 함께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윤한결 저자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3부작’을 통해서 많은 청소년들과 대화하고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결과 개개인의 삶이 사회의 공동선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인디고 서원’이 그리는 희망이자 미래였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시리즈 세트 인디고 서원 편 | 궁리출판
경제성장을 이토록 눈부시게 이루고도 행복지수가 낮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런 부자 나라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입시경쟁에 내몰려 한 해 수백 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부를 수 없는 노릇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늘한여름밤 “우리는 여전히 같이 헤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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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폭우가 내리던 지난 6일, 신촌 기차역이 내려다보이는 ‘카페 파스텔’에서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저자인 서늘한여름밤 작가와 함께 하는 ‘어차피 여름밤 북토크’가 열렸다. 28살 봄,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들어간 대형 병원을 100일 만에 그만둔 서늘한여름밤 작가는 이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블로그에 올린 그림일기는 SNS를 중심으로 퍼졌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지난 5월 말, 300여 편의 그림일기 중 50편을 선별해 출간한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에는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서늘한여름밤 작가와 함께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을 진행하는 블블이 사회자였기 때문일까. 북토크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연신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서늘한 여름밤에 데자와를 마시는 것을 좋아해 필명을 서늘한여름밤으로 정했다는 유쾌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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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가 책으로 나오기까지

 

책의 목차를 시간순이 아니라 ‘버리다’, ‘느끼다’, ‘자란다’로 따로 나눈 기준이 있나요?

 

시간순이 완전히 다른 건 아니고 비슷한 시기에 묶여 있어요. 아무래도 첫 책이고 에세이다 보니 성장의 서사를 느낄 수 있도록 편집자님께서 작업해주셨어요. 보고 감탄했어요.

 

목차 중 ‘자란다’만 현재진행형인데 이것도 편집자님께서 작업하신 건가요? 작가님께서 ‘자란다’는 것에 ‘잘한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건 아닌가요?


편집자님께서 작업하셨는데요. (웃음) 지금까지 계속 자란다는 느낌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을 냄으로써 고민이 끝났다는 게 아니라 이만큼 자랐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편집자님께서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제목을 지으셨던 같아요. 그리고 뭐, 나이 서른에 책까지 냈으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책에 꼭 싣고 싶었는데 지면상 못 실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철벽 치는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http://blog.naver.com/leeojsh/220824185477)가 있어요. 항상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블블님을 만난 후 왜 그들이 철벽을 치는지 깨닫고 그린 건데 그걸 실었으면 저랑 다른 성격을 가진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었을 거예요. 그밖에도 페미니즘이나 LGBT 관련 이슈도 책의 전체적 느낌상 빠져서 아쉬웠는데 서로의 다름을 이야기하는 「네가 어떤 모습이라 해도」가 실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어쩌면 이 책을 대표하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은데, 「이제야 좋아하게 됐어」가 가장 애착이 가요. 그리면서 많이 울었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제가 어리고 미숙하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러다가 그림일기를 그린 지 1년 정도 됐을 때, 나의 어린 시절이 여전히 내게 좋은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걸 떠올리게 됐어요. 모험도 좋아하고 활달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그때 문득 “아, 이제야 진짜 예전의 나를 미워하지 않고 좋아하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림일기가 결국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그린 것이기 때문에 힘든 시기가 지나기 전까지는 계속 보게 되는데 역대 최고라고 생각해요. (웃음) 감동적이죠.

 

그럼 ‘이건 좀 별로였다’ 싶은 에피소드도 있나요?


지금까지 그런 건 없었어요. 다른 편들에 비해 반응이 안 좋았던 것은 있지만 후회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반응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작가님은 둥둥 떠다니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잘 포착하시는데, 어떤 경위로 영감을 받았나요? 혹은 그릴 내용이 떠올랐을 때 하는 행동이 있으신가요?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한 시기에 상담도 받게 되었어요. 그때 상담 선생님께 제가 감정을 잘 못 느낀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림일기를 그리다 보면 글로 쓸 때는 몰랐던 순간의 표정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슬프지 않다가도 캐릭터가 우는 걸 그리면서 갑자기 눈물이 터지기도 해요. 그런 걸 2년 넘게 하다 보니 제가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많이 연습하게 됐어요. 그릴 내용이 떠오르면 반짝이는 마음들을 바로 핸드폰에 메모해놔요. 그리고 그 감정이 어땠는지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제 생각과 마음에 대해 좀 더 곱씹어보고 질문을 하는 과정에 있어요.

 

사실, 모른 척하거나 외면한 채로 지나가면 흘러가잖아요. 그걸 포착해서 그림을 그리려면 그 사실과 대면해야 하는데, 힘들지 않나요?


쉽지는 않아요. 얘기해야 하는데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면 오히려 그걸 더 끄집어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왜 이렇게 도망치고 싶지?’라는 생각 때문에요. 도망치면 벗어나는 게 아니라 계속 쌓이다가 방심하는 순간에 나를 덮쳐요. 그래서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집안일처럼 마음을 챙기는 것도 틈틈이 하려고 노력하죠. 너무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생각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살다가 소진되었다는 걸 깨닫고 퇴사를 결정하기도 했고.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리고 독자분들과 이야기하려고 해요. 저는 오늘 고민했던 걸 그때그때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주로 SNS를 통해 소통하시잖아요. 좋은 점도 있지만,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점에서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욕하면 안 되겠죠? (웃음) 사실 지금 맞고소가 진행되고 있을 만큼 힘든 점이 많아요. 작은 공격이라도 당하면 마음의 문을 닫고 싶어져요. 그런데도 저를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분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도 저를 위해 와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마음의 문을 닫으면 이런 마음마저 볼 수 없게 되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인데도 마음을 나누는 그 작은 노력까지도 볼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저는 상처를 입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달겠지만, 그것 때문에 마음을 닫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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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외로운 건 나 혼자가 아니야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기 ‘작게 반짝이며 살아가자’며 예쁜 마음, 못난 마음 전부 꺼내어 보여주는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이 있다.”라는 오지은 님의 추천사가 생각나요. 이런저런 일로 걱정이 되어서 먼저 연락하면 늘 괜찮다고 이야기하시는 편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특별히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저도 많이 불안해해요. 그런데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제게 엄청 용기가 돼요. 제가 가진 용기보다 더 크게 보일 수 있는 건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용기를 품앗이해주셨기 때문인 거죠. 그런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은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어 그림일기를 그린다고 하셨는데, 주변 인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가감 없이 그리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책이 출간됐을 때, “너희 부모님 괜찮으셔?”라는 반응이 가장 먼저 나왔어요. 사실 저희 부모님이 제 블로그 애독자예요. 저는 부모님께 제가 느꼈던 걸 감정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그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걸 부모님께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부모님께서 제 그림일기를 보고 우시기도 하고 반성하셨대요. 또 책이 나왔을 때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다만 딸 책이라고는 말씀 못 하시고 조카가 책 냈다고 둘러대세요. (웃음)

 

남편분의 반응은 어떤가요?


남편은 자기가 나온 에피소드가 제일 재밌다고 이야기해요. 귀엽죠. (웃음) 사실 의도적으로라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그리려고 노력해요. 저는 자랄 때 좋은 커플의 이야기를 많이 못 들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좋은 사람들은 굳이 자신이 좋은 걸 이야기하지 않은 거였어요. 그냥 자기가 좋고, 남이 보기엔 자랑하는 것 같으니까. 그러다 보니 저는 연애나 사랑에 대한 생각의 폭이 매우 좁았어요. 좋은 이야기를 통해서 좋은 연애와 결혼도 있고 그건 그 누구의 삶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동생분의 반응은요?


동생은 제가 많이 사랑해요. (웃음) 동생이 정말 많은 용기를 줬어요. 동생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자기 인생 행복하게 당당하게 잘살고 있어요.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을 때 큰 용기가 됐어요. 고등학교 그만둔 애도 잘사는데 내가 석사까지 나와서 못 살겠냐,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웃음) 내 바로 옆에 남들과 다르게 잘사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정말로 칭찬이에요. 그리고 백수 시절, 동생이 제 멘토였어요. 삶의 태도를 많이 배웠죠.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게 힘들지 몰라도 그것 때문에 주눅 들거나 잘못했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동생을 통해서 알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다양성에 대해 열려 있는 태도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림일기의 매력은 익살스러운 동시에 마음을 건드린다는 것 같아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이야기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어렵진 않나요?


사실 두 가지를 만족하는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아요. (웃음) 이런 말 하면 좀 웃기지만 제가 유머러스한 편이에요. 친구들한테 말하듯이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제 말투가 나와서 재밌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동은 받으시는 분도 있지만, 아닌 분도 있어요. 사실 좀 셀프랄까.

 

따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에필로그에도 있지만, 제가 이 책을 낼 때 가장 감사한 사람들이 누군가 생각해봤어요. 남편이나 친구한테도 고마웠지만, 저랑 이야기 나눠주신 분들이 제일 감사했어요. 그래서 저는 ‘얼굴 모를 당신’에게 가장 큰 감사를 드린다고 썼는데요. SNS는 혼자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일기를 쓰고 싶었다면 일기장에만 썼을 텐데 저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제가 느끼고 생각했던 걸 같이 공감해주고 이야기해주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제 그림일기를 보고 좋아해 주셨거나 같이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특별한 감정이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소통하실 예정이신가요?


얼마 전에 ‘에브리마인드’라는 상담센터를 개설했어요. 블로그를 통해 꾸준하게 받는 질문은 ‘심리상담을 어디에서 받아야 하나요?’라는 거였어요. 저도 심리 상담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공부도 했지만 섣불리 추천하기에는 불안함이 있었죠. 그래서 제 가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심리상담센터를 개설하는데 이르렀어요. 저는 심리 상담을 제외한 기획, 마케팅, 영업 등을 할 예정이에요. (웃음)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심리 상담을 친절하게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관련된 책도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에요.

 

블로그도 계속할 예정이고 그림일기도 최소한 1년은 더 그리겠죠. 처음 목표가 3년이었는데 지금 2년 조금 넘었거든요. 일단 3년을 채우고 생각하려고 해요. 지금처럼 주되게 그릴 순 없겠죠. 제가 블로거다 보니 몇 년씩 구독하는 블로그가 있어요. 그런 블로그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까, 생각했더니 조금 스산해졌어요. 그래서 저도 갑자기 사라지지 말고 길고 가늘게 오래도록 인터넷 지인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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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작은 기적을 일으키고 있어요”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 속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북토크 시작 전 미리 적어 낸 포스트잇에 적힌 궁금즘뿐만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들으며 생긴 질문, 나아가 팟캐스트를 통해 심리상담의 벽을 낮춰 자신과 지인에게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고백까지 자유롭게 오고 갔다.

 

직장을 그만두셨을 때 등을 떠밀어준 계기, 혹은 순간이 있으셨나요? 그리고 퇴사를 가장 주저하게 만든 말은 무엇이었나요?


퇴사를 결정한 계기는 정말 작았어요. 회사에서 연락처 주소록을 돌리는데 다시 해오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니까 선배가 명조체가 아닌 고딕체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제가 속한 곳이 정말 그런 분위기였어요. 선배의 선호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 하룻밤 내내 고민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이야기했더니 그때부터 계속 면담을 하게 됐죠. ‘너 왜 그러냐’, ‘세상은 다 이런 거다’라는 식의. 그래서 그림에 그린 것처럼 토하듯이 그만뒀어요.
 
저를 제일 힘들게 한 건 ‘오해’라는 말이었어요. “네가 지금 뭔가 잘못 느끼고, 오해하고 있어.”라는 말이요. 오해라는 말은 ‘어, 내가 정말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내가 틀린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느끼는 것에는 맞고 틀리는 게 없잖아요, 적어도 저한테는. 그런데 그 말이 마음에 많이 남아 있어서 ‘저 사람에게는 틀릴 수 있지만, 나한테는 맞는 거야’라는 생각을 정립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상처를 받고 늘 제가 배려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어요. 마음을 다치면서 최선을 다해도 괜찮을까요?


최선을 다한다는 건 자기 마음을 많이 건다는 거죠. 그런데 항상 괜찮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원래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취약해지니까요. 그래서 그 선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운동할 때도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고통이 있고 근육이 잘못되는 고통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내가 지금 피폐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섬세하게 잘 구분하면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비하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은 상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면 나의 고집이 꺾인다거나 작은 오해로 인한 상처는 얼마든지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관계에 있어 자신의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 상처를 감당하되 상처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걸 내가 감당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거죠.

 

책을 출판한다는 건 연재하는 것과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 어떤 느낌이세요?


아직도 떨려서 책을 완독하지 못했어요. 갑자기 수정하고 싶은 게 보이면 어떡해요. 그래서 안 읽고 있어요. (웃음) 책으로 엮여서 나오니까 엄청 떨리고 부담돼요. 이게 과연 잘 팔릴까?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분이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조금은 안정된 상태로 매일 순위를 확인해요. 평가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죠.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가 아니라 폐렴이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문가들이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이야기하는 건, 그만큼 쉽게 올 수 있다는 의미이지 쉽게 나을 수 있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해요. 사실 우울증은 내버려 두면 폐렴 이상으로 인생을 황폐하게 만들어요. 우리나라는 우울증은 많은데 치료는 거의 받지 않아요. 또한 전문가는 치료뿐만 아니라 진단을 위해서도 존재해요. 항상 충치가 있어야 치과를 가는 건 아니잖아요? 충치가 생기기 전에 예방 차원으로 가는 것처럼 심리상담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힘들 때 심리 상담을 찾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어떻게든 직장을 다녀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그 과정에서도 분명 배우는 게 많아요. 힘든 시간 속에서 자기를 지켜가는 연습을 매일 하는 거니까요. 그게 자기를 갉아먹는 수준이 아니라면 자신을 엄청나게 성장시키고 여러모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떠나는 것도 떠나는 대로, 남아 있는 것도 남아 있는 대로 배우는 게 있어요. 제 친구들은 퇴사를 안 했는데 저와 배우는 내용이 다를 뿐이지 배움 자체는 정말 많아요. 그래서 그 시간을 단순히 소진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의미를 찾아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북토크를 마치기 전, 한 독자가 손을 들었다. 부산에서 북토크를 위해 올라왔다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팟캐스트를 친구와 같이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우울증을 가볍게 여겼던 친구였는데 우울증이 폐렴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걸 보고 작가님이 큰 변화를 일으켰구나, 생각했어요. 상담에 회의적이었던 다른 친구도 제가 상담을 통해 나아지는 걸 보면서 상담을 받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 기적에 작가님과 팟캐스트의 힘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늘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서늘한여름밤 저 | 예담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는 서늘한여름밤의 그림일기 중에서도 현실적이지만 따뜻한 에피소드 50여 편을 선별하여, 바쁘게 살아가느라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과 응원을 전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남종영 “돌고래 해방 운동의 미래, 태지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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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를 이야기하지만 인간을 이야기한다

 

지난 1일, 충정로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벙커1에서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의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렸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는 제주 바다에서 불법 포획되어 돌고래쇼에 동원되었다가 귀향한 ‘제돌이’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다. 저자 남종영은 환경 논픽션 작가이자 <한겨레신문>의 기자로, 2012년 ‘제돌이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썼다. 이를 계기로 동물 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돌고래쇼를 잠정 중단하고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돌고래 야생방사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는 이 작지만 큰 변화의 출발을 기록한다. 남종영 저자가 홀로 돌고래 전수조사를 시작한 2011년 여름부터, 제돌이의 뒤를 이어 바다로 돌아간 춘삼이와 삼팔이가 새끼를 낳은 2016년까지의 일들을 증언한다.

 

제돌이라는 돌고래를 다뤘던 인간의 방식은 인간이 동물을 다루는 방식이자 인간이 인간을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돌고래를 포함해 지배받는 인간과 동물, 즉 소수자의 삶과 저항이었다. 아울러 이들을 지배하는 국가의 재영토화, 특히 인간의 동물에 대한 재영토화를 묻고 싶었다. 돌고래쇼가 벌어지는 수족관과 돌고래 관광이 이뤄지는 야생 바다의 공간에서 맺어지고 또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관계를 살펴보면, 인간과 동물 사이에 흐르는 권력과 그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정치의 거울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돌고래를 이야기하지만 인간을 이야기한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7~8쪽)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라는 제목은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노래 가사에서 빌려왔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이 노래는 돌고래들의 작별 인사다. 자신들은 지구가 강제 철거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인간들은 도통 알아듣지를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인간을 두고 떠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였다. 남종영 저자는 “우리가 떠나 보낸 돌고래들도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하면서 제주 바다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제목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오늘 자리는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의 출판 기념 북 콘서트이기도 하지만, 2012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돌고래 해방운동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며 특별한 손님들을 소개했다. 책 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 칭했던 세 사람-황현진 핫핑크돌핀스 대표,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김현우 고래연구센터 연구원이었다. 이들은 남종영 저자와 함께 돌고래 야생방사를 위해 한 마음으로 노력해왔다.

 

남종영 : 제돌이와 처음 만나기 전 해에, 제주도의 퍼시픽랜드에서 불법 포획된 돌고래를 길러왔고 심지어 서울대공원에 보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서울대공원에 어떤 돌고래가 살고 있는지, 그 아이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진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취재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잘 협조를 안 해주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요청해서 일주일 만에 제돌이를 보러 갔습니다. 그때 사육사님께서 이 아이는 제주도에서 와서 제돌이라고 이야기했죠. 그 즈음에 이 세분과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바로 이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저자는 돌고래 해방운동에 있어서 역사적 사건으로 남은 하나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대표가 촬영한 영상이었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제 몸보다 조금 더 큰 수조에 갇혀 마음껏 움직이지도 못하는 돌고래였다.

 

황현진 : 뉴스를 보다가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들이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불법 포획됐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을까 갸우뚱했어요. 그래서 저는 무작정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중문단지에 위치한 돌고래쇼장에 가게 됐는데, 이곳 저곳을 살펴보다가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적혀있는 작은 문을 발견했습니다. 하필이면 문이 열려있더라고요. 왠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들어갔는데 첨벙첨벙 소리가 나는 거예요. 심장이 뛰더라고요.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이걸 기록해야겠다’ 싶어서 찍은 영상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래들을 만났던 순간인데, 안타깝게도 바다에서 뛰노는 고래들이 아니라 좁고 열악한 수조에 갇혀있는 고래들이었습니다. 이 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야겠다는 막연한 결정을 하고 다음 날부터 피켓을 만들어서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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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바다로 돌아가는 ‘금등이’, ‘대포’


2011년, 해양경찰청이 돌고래를 불법 포획한 어민을 적발하자 동물자유연대는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SNS를 통해 핫핑크돌핀스의 소식을 접한 후부터 연대를 시작했다. 당시 김현우 고래연구센터 연구원은 ‘제주 야생 남방큰돌고래’의 멸종 가능성을 알리고 있었다. 불법 포획으로 인한 멸종을 막으려면 수족관에 있는 돌고래를 방생해야 된다고 호소했던 것이다. 세 사람은 돌고래 방사를 위해 머리를 맞댔고, 남종영 기자는 ‘제돌이의 운명’ 특집 기사를 썼다.

 

남종영 : 신문 1면에 돌고래가 나온 건 아마 세계적으로 처음일 거예요. 당시에 민간인 불법 사찰 등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에 섰을 때였습니다. 원래는 제돌이 기사가 1면 톱으로 나가게 돼있었는데 편집회의에서 강한 반대가 있었어요. 지금 한가하게 돌고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냐고요. 신문사 내부에서도 엄청 논란이 됐던 사건으로 아직도 유명합니다. 결국은 1면에 나가게 됐는데요, <한겨레신문>이니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기사가 나가고 나흘 뒤쯤 핫핑크돌핀스와 동물자유연대가 기자회견을 했고, 열흘 뒤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돌이의 야생 방사를 선언했습니다. 결국 1년 뒤에 제돌이가 야생의 바다로 돌아갔죠. 이 소식이 다시 <한겨레신문> 1면에 실렸는데, 이때는 신문사 내부에서 논란이 없었습니다(웃음).

 

제돌이가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재판이 진행됐다. 불법 포획된 돌고래들의 몰수 여부를 가리는 재판이었다. 제돌이에 대한 소유권은 서울시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바다로 돌려보낼 수 있었지만, 다른 돌고래들은 몰수형 판결을 받아야 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춘삼이, 삼팔이처럼 몰수형 판결을 받은 돌고래들조차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이들을 보호?관리할 시설과 단체를 찾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와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대표의 노력 끝에 춘삼이와 삼팔이는 좁은 수족관을 벗어날 수 있었다.

 

황현진 : 재판 기간이 1년 정도 지속됐어요. 그 과정에서 7마리가 죽고 나머지 4마리만 남게 돼서 굉장히 안타까웠죠. 그런데 퍼시픽랜드에서도 자신들이 불법 포획했다는 것을 계속 인정했거든요. 그러면서도 계속 항소를 하는 거예요. 저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봤더니 돌고래들이 몰수됐을 때를 대비해서 일본의 타이지에서 돌고래를 수입하는 과정을 밟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1년이 지나 몰수형 확정 판결을 받았어도 계속 돌고래 쇼를 이어갈 수 있었죠. 그동안 돌고래들을 사왔으니까요. 저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막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아쉬웠어요.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에 이어 태산이, 복순이가 야생의 바다로 돌아갔다. 특히 태산이와 복순이는 건강상의 문제로 방사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이들의 성공적인 귀환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남종영 저자는 “춘삼이는 새끼까지 낳았다. 수족관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아이가 야생으로 돌아가 새끼를 낳은 건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모든 돌고래와의 작별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해순이’는 유독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김현우 고래연구센터 연구원 역시 마찬가지다.

 

김현우 : 제가 해순이라는 돌고래를 조금 좋아했어요. 저희가 돌고래를 조사할 때 등지느러미 모양을 보고 각각의 개체를 구별하는데요. 해순이는 멀리서 봐도 구분이 됐거든요(웃음). 그때 제가 돌고래를 좋아하는 기준은 굉장히 단순했습니다. 쉽게 구분이 가는 아이를 좋아했어요. 그래야 제가 잘 인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해순이를 개인적으로 좋아했는데, 어느 날부터 안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얘가 어디 갔지?’라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회의가 있어서 그 공연 업체(퍼시픽랜드)를 방문했는데, 거기에 해순이가 있는 거예요. 그때 처음 알게 됐죠. 이 업체가 야생 돌고래를 데려와서 사육한다는 걸요. 결국 해순이는 재판 과정에서 죽었어요. 소송이 진행되면서 시간이 지연됐거든요. 저는 해순이의 사체를 한 냉동 창고에서 확인했어요. 공연 업체 입장에서는 이제 (해순이가) 필요 없어졌으니까, 사체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해부를 하든지 어떻게 쓰라고 해서 제가 인수받으려고 갔었어요. 그때 해순이가 있었는데... 저는 가급적이면 연구하는 대상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해요. 그냥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마음이 굉장히 안 좋더라고요.

 

남종영 저자는 준비해 온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고래연구센터에서 촬영한 화면 속에는 야생 가두리 속에서 헤엄치는 태산이, 복순이가 있었다. 그리고 가두리 근처에서 헤엄치는 야생 돌고래 떼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바다 위로 뛰어오르자, 가두리 안의 태산이와 복순이도 함께 뛰어올랐다. 이 경이로운 장면은 “가두리 안과 밖의 돌고래들이 커뮤니케이션하는 모습”이라고 김현우 연구원은 설명했다. 태산이와 복순이가 고향의 바다와 만난 그곳에서 이제는 금등이, 대포가 방사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은 7월 18일,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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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북토크의 2부는 핫핑크돌핀스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대표활동가 황현진, 조약골로 이루어진 이 사회단체는 더 재밌는 방식으로, 더 친근하게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있다. 이 날 핫핑크돌핀스는 「바다에서 만나요」, 「나는 강정 간다」 두 곡을 통해 돌고래와 제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노래했다. 이후 다시 시작된 대담에서 남종영 저자는 ‘태지’라는 이름의 돌고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종영 : 태지는 일본 타이지에서 잡혀왔는데요. 서울대공원이 제주에서 불법 포획된 야생 남방큰돌고래를 다 방류했지만, 이 아이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일본에 데려다 주고 싶어도 일본에서 받으려고 하지도 않고, 또 그곳은 돌고래를 사냥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방사는 힘들어요. 그래서 금등이, 대포가 떠난 뒤에 태지만 홀로 서울대공원에 남게 됐고 결국 지난주에 제주 퍼시픽랜드로 이송됐습니다. 돌고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놔두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됐기 때문인데요. 앞으로 돌고래 보호 운동 혹은 돌고래 해방 운동의 미래는 태지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일부 시민 단체에서는 바다 쉼터를 통해서 태지 같은 아이들을 수용하자고 이야기하고, 어떤 분들은 태지를 그냥 동해 바다에 야생 방사 하자고 합니다. 양쪽 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고, 어느 것이 옳은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에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대표는 “바다 쉼터는 원 서식처로 방류하기 어려운 돌고래들이 조금 더 야생 환경과 비슷한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지금 한국에 남아있는 돌고래들 대부분은 일본의 타이지 또는 러시아 북극해에서 잡혀온 벨루가 고래이기 때문에 원 서식처에 방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연안에서 최대한 야생과 비슷한 환경에서 지내도록” 하는 것이 차선책이라는 것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이와 같은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이후에 발생할 문제들까지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희경 : 사실 태지 같은 경우는 동물 보호 단체도 고민하는 부분이 있어요. 바다 쉼터의 기본적인 입장은 동의해요. 그런데 동물 보호 단체는 개체의 생명에 대해서 늘 고려하거든요. 바다 쉼터라는 건 상당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우리가 지향점을 가지고 운동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갑론을박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나이도 먹고 병도 든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현실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하고, 지금보다 나은 상태를 목표로 바다 쉼터와의 접점을 고민해야 되지 않나 생각해요. 그리고 처음에 정책적으로 무언가가 투입되고 나서도, 이후에 사후관리가 안 되고 방치돼서 문제가 되는 경우다 자주 보게 되거든요. 그랬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도 고민해야 하고요. 

 

돌고래 야생 방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많은 이들, 특히 동물 보호 단체와 환경 단체는 태지를 퍼시픽랜드로 보내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불법 포획과 돌고래쇼를 일삼았던 이들에게 돌려보낸다는 건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은, 사회적 동물인 돌고래 태지에게는 혼자 있는 것이 더 독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황현진 대표와 함께 핫핑크돌핀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약골 평화운동가는 “태지가 퍼시픽랜드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직접 가서 볼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퍼시픽랜드에서 촬영한 후 서울대공원 사육사에게 보내준 태지 동영상을 봤다”며 “지금 퍼시픽랜드에 돌고래 4마리가 있는데 태지가 그 아이들과 조금씩 교류하고 있었다”고 근황을 전했다. “퍼시픽랜드의 돌고래들과 어울리는 것이 태지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동화되어서 나중에 쇼에 동원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가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할, 아직 돌아가지 못한 돌고래 ‘태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남종영 저자는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제돌이가 야생의 바다로 돌아가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었다. 그는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남종영 : 저도 마찬가지이고,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습니다. 동물을 가까이에서 보고 만져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그런데 상대방이 싫으면 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욕망을 무시할 수는 없죠. 우리는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서 항상 호기심이 있고 가까이 가고 싶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이 사진처럼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갔을 때 가까이에서 보는 게 아니라 뒤에서 보는 자세가 바로 그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남종영 저 | 한겨레출판
불법포획되어 강제로 돌고래쇼의 대상이 되었던 제주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내용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는 르포.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동물인 돌고래에 대한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동물복지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기자이자 『북극곰은 걷고 싶다』 등을 펴낸 환경 논픽션 작가인 저자의 흥미진진한 신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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