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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채널예스 :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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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 함부로 뱉을 말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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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월령가』는 조선시대 농민들의 일상적 삶을 담은 가사다. 조선 헌종 때 정학유(丁學游)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매달 하는 일과 의식을 노래에 맞춰 풀었다. 농사를 노동으로서만이 아닌 풍류를 담아 녹여냄으로써 그 가치는 더욱 중요하다. 『농가월령가』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농가에서 행한 행사와 세세풍속, 미덕의 세목 등을 촘촘하게 엿볼 수 있다. 일상적인 농촌풍경을 서경적이고 흥미롭게 담아냈다는 점도 이 가사집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들살림 월령가』는 지금 이 시대가 담아낼 수 있는 또 다른 농촌 풍경의 하나다. 양은숙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도시 생활을 접고 경기도 광주시 방등골로 삶터를 옮겼다.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시골살림의 서정적이고 서경적인 일상의 흐름을 『들살림 월령가』로 옮겼다.

“한 톨의 곡식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음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거대자본이 주도한 공장식 노동은 이런 지당하고도 타당한 먹거리에 대한 기본 의식을 빼앗았다. 고마움과 미안함.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동물성의 육체가 성찰하고 품어야할 지점이었다. 더불어 식당에서 노동하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 역시. 인간이라는 한 존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보여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함으로써 그들도 우리를 아끼는 마음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건네주는 선순환의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

“덕분에 살아가는 일이 어렵고 힘들고 아프지만 속도에 밀리지 않고 선한 삶을 믿으며, 생존에 지치지 않고 놀멘놀멘 걸어가며 살아가는 힘도 조금씩 붙었다. 더하여 한아한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며 나이를 갖고 늙어 가는 일은 제법 근사한 것이라는 것도 알아 간다.”(p.9)


방등골을 휘감는 여름향기

그렇게 들밥을 먹고 방등골에 도착하자, 양은숙 작가의 환한 미소가 독자들을 반긴다. 그리고 함께 방등골을 걷는다. 양은숙이 사랑해 마지않는 6월의 꽃들도 우리를 반긴다. 화려하지 않지만 향으로 자기존재감을 발휘하는 그들이다. 밤나무에서 피는 밤꽃냄새 가득한 방등골을 거닐며 만나는 터줏대감은 300여 년을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느티나무다. 경기 광주 71호 보호수로서 높이가 24m, 나무둘레는 340cm에 달한다. 우리를 굽이 보는 느티나무의 위용에 주눅 들기보다는 생명의 경이와 위대함을 절감한다.

엊그제 내린 비로 떨어진 오디열매에 눈길을 주고, 모내기가 한창인 논을 바라본다. 따가운 여름햇살을 뚫고 방등골에 울리는 새소리가 햇살냄새와 맞물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평화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양 작가는 이 냄새를 맡으면 어릴 때가 자연스레 떠오른단다. 논에서 우렁이 잡던 그 시절, 그 추억. 길가의 보리수 앞에 멈춰선 양 작가 덕분에 새빨간 보리수열매를 마주한다. 그리고 손끝으로 보리수열매를 따서 입으로 가져간다. 입에서 터지는 알맹이가 도시에선 좀체 맞볼 수 없는 맛을 선사한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즐거움이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점, 인심 한 자락으로 여름날의 하루가 바삭바삭 고소해진다.”(p.165)
느릿느릿 걸어가면 세상이 분명 넓어진다. 땅은 감각적으로 지각되고, 냄새를 맡게 한다. 빠르게 빠르게만 요구하는 사회에선 볼 수 없는 놀랍고 경이로운 세계가 있다. 따라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에 열어놓으면서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도시에 사는 많은 우리가 경도당한 속도와 편의를 내려놓으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책이나 미디어에 있지 않다. 온몸으로 느껴야 가능한 경험이야말로 진짜 삶이다. 사소하고 작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방등골은 체감하게 해준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기어 다니는 거예요. 그걸 엊그제 봤어요. 체면이고 뭐고 ‘꺅~’ 소리를 지르면서 집까지 달려갔어요. 쌍둥이 소나무 보이죠? 어느 각도, 어느 계절에서 봐도 예뻐요. 저기 뽕나무 오디가 있네요. 굉장히 달고 맛있어요.”

제철 오디다. 더구나 내 손으로 딴 오디. 맛있고 달콤하다. 오디를 따 먹는데, 나비 두 마리가 연애중인 장면도 들어온다. 짝짓기 중인가. 나비 자체가 오랜만이다. 도시에선 보기 드문 노란나비가 반갑다. 이 오디, 자연의 맛을 만나자니 입안도 시원해지고 마음도 시원해진다. 손도 오디색으로 물들고 입도 물든다. 덩달아 마음도 물든다.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도 좋다. 세상이 무너진다손 이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길로 들어서는데, 햇살이 비치는 곳과 확연하게 다르다. 시원하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하늘도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서늘하기까지 한 바람. 어디서 이 바람은 불어오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평상을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풀어놨으면 하는 바람도 뭉게뭉게. 그리고 한 농가로 발을 들여놓는다.

“곗돈을 붓지 않고도 계를 탄 기분이다. 장밋빛 인생이 거창한 것인가. 푸성귀를 나누며 훈정에 달뜨는 오늘이 바로 장밋빛 인생이다.”(p.137)


방등골, 파티를 열다

방등골의 어르신 신 회장님 댁으로 들어선다. 집 앞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선 오이, 호박 등이 주렁주렁이다. 아침, 저녁으로 그 자라남이 남다르다고 양 작가가 설명한다. 토실토실 영글고 있는 유월의 열매들이 그저 반갑고 놀라울 따름이다. 생명을 접촉한다는 건 본디 그런 것이다. 이어지는 것은 하지감자를 캐는 행사다. 호미를 들고 감자밭을 파헤친다. 줄줄이 나오는 감자를 캐니,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반갑다, 감자. 그렇게 감자를 만나니 깨달았다. 불량이니 우등이니 하는 감자 앞에 붙는 수식어, 철저히 인간의 시선에 갇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고맙고 놀라운 것에 왜 우리는 어쭙잖은 수식어를 갖다 붙일까.

“모가 부리를 내리고 단단해질 즈음이면 한식에 몸을 묻은 감자는 몸통을 불리고 가족을 불려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하지 무렵에 캔다 해서 ‘하지 감자’라고 한다.”(p.124)

“신 회장님의 영농 솜씨는 마을사람들도 인정할 정도로 탁월하다. 무엇이든 그의 손을 거치는 작물은 윤기가 난다. “별 것도 없어요. 그냥그냥 넘들 허는 대로 심은 것뿐이어요”라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이건 짐승이건 작물이건 정성을 쏟고 가축하는 대로 거두는 건 인지상정이다. 세상 만물은 손길 한 번, 발걸음 한 번, 눈길 한 번이라도 더 바친 정성과 노력을 거스르지 않는 법이다.”(p.114)
양 작가의 집까진 얼마 되지 않는다. 집에 도달하니 ‘아~’ 감탄사가 절로 입을 뚫고 나온다. 비밀의 정원처럼 펼쳐진 집 앞의 정원과 원두막이 어찌나 예쁘던지. 파티도 준비돼 있다. 수박칵테일의 붉은 핏물은 여름의 뜨거움을 상징하면서도 그 뜨거움을 날려버릴 수 있는 음용수다. 여름에 무난한 술떡, 신 회장님 댁에서 캔 하지감자와 어우러져 양은숙 작가의 푸드스타일링 클래스도 펼쳐진다. 과일과 어우러진 자연으로 만드는 푸드 스타일링이다.

“자연주의는 느낌에 따라 연출하면 되는 거예요. 여기 개똥참외가 있는데, 그 이름을 수용할 순 없어요. 봐요. 얼마나 색깔이 예쁜지. 손님이 오면 이 참외를 4등분해서 그릇에 다소곳이 담아주면 좋아요. 참외 껍질을 벗겨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벗어나시고요. 색감이 정말 좋지 않아요? 여기에 무심한 듯 잎사귀 하나만 놓아주면 푸드 스타일링은 완성되는 거죠. 무심한 듯해도 철저히 계산됐다고나 할까요(웃음).”

이어 수박의 등장이다. 디저트를 낼 때도 품격을 생각해서 무뚝뚝하게 썰어내기보다는, 입모양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서 민망해질 수 있으므로, 큐브 모양으로 썬다. 그리고 단순하다. 큐브 모양으로 잘린 수박에 푸른 잎사귀를 깔아준다. 포크는 수해지역에서 가져온 가지로 만든 것을 내놓는다. 큐브조각을 낸 수박의 빈 통에는 허브 잎들을 꽂아줌으로써 상큼한 푸드 스타일링의 완성이다. 과일 하나로도 충분히 대접받는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센스다.

“처지 곤란한 남은 수박을 버리지 마세요. 얼려서 슬러시를 한 뒤 유자청 등을 넣어서 먹어도 좋아요. 수박껍질도 김치를 담글 때 넣어도 상관없어요. 다만 입에 착착 들러붙진 않아요(웃음).”

테이블 세팅도 어렵지 않다. 소박한 음식을 차려도 꽃으로 장식을 해주면 충분히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양 작가의 설명이다. 꽃꽂이 공식도 따로 없단다. 기분대로 꽂아주면 끝. 싱그러운 초록만으로 유리병에 꽂아도 세련됨이 나올 수 있다. 꽃 이름을 알아주면 더 좋다. 꽃에 대한 예의니까. 박카스 병에 야생화 한두 송이를 꽂아주고 병목에 리본을 달아줌으로써 달라지는 풍경도 놀랍다. 사소하고 작은 것으로도 무미건조한 박카스 병이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 마술이다. 감탄한다.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새 쓰임이다.

이런 것도 있다. 꽃병이 없다면, 투명한 봉투에 물을 넣고 조개 혹은 소라 껍질, 조약돌 등을 넣고 꽃을 넣어주는 방법. 그리고 그것을 오두막에 묶어줌으로써 순식간에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돈 있고, 뭔가 갖춰져야만 가능한 것이 스타일링이 아니다. 양 작가는 내 눈 앞에 있는 별 것 아닌 재료로 얼마든지 스타일을 만들 수 있음을 몸소 알려준다. 삶은 그렇듯 언제나 놀라움과 새로움을 안겨다주는 법이다. 독자들이 작가들에게 물었다.




그날 그날 일상처럼 기록한 사진들이 인상적이에요. 또 길가에 있는 식물들이 먹을 수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책을 만들겠다고 찍은 사진이 아니에요. 그렇게 했다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마 죽었을 거예요. 알고 보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아요. 이 마당에도 마트를 가지 않아도 한 상을 차릴 수 있을 만큼 풍성하고요.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눈을 뜨고 관심을 가지면 돼요. 독초가 있긴 한데 눈에 잘 띠진 않아요. 용기를 갖고 도전해 봐도 좋을 거고요. 웬만한 꽃은 다 먹을 수 있고 맛도 다양해요.

“파 한 줄기도 마트에 가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세상인 것 같지만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지천이 밥상이다. 마음만 열면 자연은 많은 것을 허락한다.” (pp.31, 33)
전원생활 해보니 어떠세요?

전원생활, 그 말 함부로 뱉을 말은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나이 들면 전원생활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데, 나이 들면 되레 편해야 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시도하는 것이 낫다고 보고요. 저는 여기에 2006년에 왔으니까, 8년차 정도 됐는데, 작정하고 온 건 아니에요. 하루하루 지내면서 한해한해 보내고 있는 건데요. 흠뻑 정이 들었어요. 더 오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여기도 처음에 왔을 때보다는 좀 더 오염됐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10년 가까이 여기서 지내면서 주민들하고도 친해졌고, 텃세에 대한 압박도 없었어요. 내가 마음을 여니 상대방도 열어주더라고요.

책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건가요?

연재하던 것들이 있었고, 절반 정도는 새로 썼어요. 책을 준비하면서 행복했어요. 어느 순간에는 쓰다가 울컥했던 적도 있고요. 그만큼 젖어있었던 거죠. 책을 쓰고 이런 기회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에도 감사하고요. 요즘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충분한 삶을 살고 있어요.

“삶에 찾아오는 보드랍고 결 고운 순간이 달콤하고 행복하지만, 어지럽고 멀미나는 시간이라고 내 것이 아니라고 피할 순 없다. 그에 불행하다 여길 만큼 미숙하지는 않다. 때 묻어 눅눅한 생이라고 폐기 처분하지 않을 줄도 익히 안다. 행주를 삶으면서 시간도 함께 삶는다. 그저 나로서 살아온 시간에 고개 숙인다. “고맙습니다. 고요하고 겸허하게 새날을 맞겠습니다.” (p.281)
책 제목도 어떻게 나온 것인지 궁금해요.

연재 꼭지의 이름이었어요. 다른 제목의 후보군도 있었는데, 이 제목이 좋다는 의견이 많았고, 연재 꼭지 제목을 만들어준 분도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쓰게 됐어요. 제목이 결정되고 이걸 캘리그래피로 적어주신 분도 잘 해주셔서 기분이 참 좋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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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살림 월령가양은숙 저 | 컬처그라퍼
『들살림 월령가』는 자연주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들려주는 소박하고 건강한 시골살림 이야기다. 책 속에는 자연에 따라, 철에 따라 사는 건강함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현대인들은 여름에는 에어컨과 겨울에는 난방기로 더위와 추위를 잊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고 저장해둔 재료를 사시사철 먹으며 계절 감각을 잊고 철 없이 산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들살림 이야기에는 철 따라 사는 멋이 가득하다. 이 책은 철을 잊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가져오는 동시에 우리의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LP를 통해 내 삶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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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Long Playing).
1931년 미국의 RCA가 개발했다. 잡음 등으로 제작이 중단됐다가 1948년 미국 콜롬비아사에서 이를 보완, 직경 30cm의, 1분에 33과 1/3회전하면서 음악을 재생하는 LP의 시대를 열었다. 이듬해 45회전 LP가 등장했고, LP는 20세기를 풍미한 음악적, 미학적 아이콘이 됐다. 물론 LP의 시대는 영원하지 않았다. CD, 디지털음원 등에 차츰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LP는 이제 과거에서나 꺼냄직한 골동품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가 됐다. LP의 시대가 저물면서 음악 감상법도 달라졌다. 앨범 단위의 콘셉트와 맥락에서 음악을 이해하고 느끼던 태도에서 물러났다.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고 진득하게 음악을 만나는 여유와 희열도 사라졌다. 곡 단위의 파편화된 음악 감상을 하게 됐다. LP커버의 미학에 어우러져 앨범에 동봉된 해설지를 꼼꼼하게 읽으며 음악을 흡수ㆍ소화하는 것은 옛이야기가 됐다.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느닷없이 마음을 뺏겨, 벌컥 레코드점 문을 열고 들어가 LP판을 사던 풍경도 그렇다. 희귀 앨범을 구하고자 발품 팔아가며 레코드점을 돌아다녀 어렵게 구한 LP를 신주단지 모시듯 턴테이블에 올려 황홀경에 빠지던 그림은 어떻고.

디지털 음원은 편리성을 무기로 LP를 무쓸모로, 잉여로, 쓸데없는 것으로 전락시켰다. 커다란 LP커버의 미학도 잃었다. 모니터상의 실물로 잡히지 않는 조그만 썸네일이 대세가 됐다. 과연 LP는 이제는 잊힌 잉여일까.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생명 잃은 무엇일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쓸모의 쓸모, 소용없는 것의 소용, 쓸데없는 일의 쓸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해야 행복한 삶이 된다고 말한다. 오로지 쓸모와 효용, 소용과 효율만 우리가 취해야 할 전부인양 포장하는 세상에 태클을 걸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솔깃한 제안이다. 쓸데없는 것이 주는 재미를 통해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져보라고 권한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LP판을 모으는 남자, 김기연이 그렇다. 앨범 커버에 담긴 내 이야기를 풀어헤친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가 그 산물이다.

“오래되어 좋은 것이 아니다. 여전히 좋은 것이 오래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를 고전이라 부른다. 그에게 이 시대의 고전이 된 레코드앨범 커버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야 한다. 다음 편은 언제 나옵니까?”(p.7) 이런 추천사를 쓴 글 쓰는 사진가 윤광준이 맥주 건배사를 외치면서 LP가 있는 여름밤은 시작됐다.




LP, 삶이고 감정이며 감성인 무엇

쑥맥 같던 까까머리 중2소년에게 어머니 친구의 딸이 마음에 들어왔다. 어떻게든 그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싶던 소년 김기연, 어머니들이 고스톱삼매경에 빠진 시간을 틈타 소녀의 집에 가서 전축을 틀고 음악을 함께 들었다. 행복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음악을 함께 듣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소녀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주워들은 풍월이 있어 기차를 타고 서울 청계천에 갔다. ‘빽판’을 샀다. 핑크 플로이드 등 공식적으론 수입 불가였던 불후의 앨범들이 그곳엔 버젓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가격도 싼 대신 판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게 대수일까. 몇 장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무척 행복했다. 어서 돌아가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은 두근두근 쿵쿵. 설렘과 희열.

“그때 청계천은 서울이란 도시에 둥둥 떠 있는 이방인들의 섬처럼 보였지요. 주문만 하면 뭐든지 뚝딱 만들어 줄 듯한 이 섬에는 소위 빽판, 복사판, 해적판이라 불리는 레코드판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어요. 불온하다거나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음반이 정식으로는 유통되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p.160)
“아날로그와 LP, 그것은 삶이고 감정이고 감성이다. LP레코드라 불리는 것을 사랑했고, 사랑한다. 헌데 지금은 조금 불편하다. 다루는데 불편한 것이 아니고 만질 수 있어서 더 좋긴 한데, 돈이 많이 든다(웃음). 물론 그것을 다 상쇄시킬 만큼 레코드는 매력이 있다. 퇴근하고 앰프 전원을 켜고 LP를 돌린다. 소파에 앉아 LP가 내는 음악을 들으면 정말 행복하다. 지난날 그 친구와 함께 LP를 듣던 시간과는 다르다. 지금은 음악 자체를 더 들을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날이 있어서, 지금도 그날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음악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귀를 즐겁게 만들고 행복하게 할 것을 믿어요. 첫사랑이 좋아하던 노래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누군가처럼.”(p.79)
그는 레코드 빠돌이였다. 지난날 그랬다. 그렇게 열심히 듣다가 잠시 잊었던 적도 있었다. 하나둘 사서 쌓은 LP 보관을 더 이상 못할 지경이 돼서 후배에게 맡겼다. 내가 애정 하는 것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 그렇듯, 애정의 농도나 밀도가 다름으로 인해 LP가 많이 줄었다. 더불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빠지다 보니 CD만 샀던 시절도 있었다. 허나 그것은 LP가 줄 수 있는 것과 확연히 달랐다. LP, 김기연을 형성하는 무엇임을 절감했다.




LP를 통해 내 삶을 이야기하다

지난해 어느 날, LP가 주는 음악 삼매경에 빠져 있던 김기연. 그러던 중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음악이 주는 순수함만으로 만족하고 즐기고 말 것인가. 생각이 더 뻗어갔다. 그렇다고 음악을 많이 알아서 깊이 있는 얘기를 하거나 담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했다. 그랬다. 음악이야기를 쓰진 못해도 LP를 통해 내 삶의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판사를 만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진과 디자인까지 하고 싶어졌고, 책에 들어간 사진과 디자인까지 그가 맡아서 했다.

“갑자기 그런 것들이 왜 하고 싶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어졌다. 출판사 대표는 다음엔 디자인 하지 말고 책만 쓰라고 하더라(웃음).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거다. 글 쓰는 일에 자신이 없어지다 보니 다른 걸 엿본 거지. 다른 걸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진이나 디자인이 그랬다. 그런데 책이 막상 나오고 보니, 잘못했다는 생각이 조금 들더라. 글에 좀 더 몰입했더라면 글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한 번쯤 경험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거지.”

그는 이번 책에 레코드 100장 정도를 담으려고 했었다. 갖고 있던 것은 물론 없던 것까지 수집을 하고자 했었다. 그 수집, 만만치 않았다. 어떤 LP커버는 이야기가 없었다. 다른 것은 이야기는 있으나 그림이 별로였다.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그림을 봤을 때 흥미로울까. 그래서 쉽게 선택하진 못했다. 그래도 사고 또 샀다. 500장 가량의 LP를 샀다. 용돈에게 살짝 미안했다. 다른데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후횐 없었다. 수많은 LP 커버와 음악들이 기막히게 아름답다는 것을 더 깊이 알게 됐으니까.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했던 것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음악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 선정을 하고 디자인을 하면서 56개의 레코드가 선정됐다. 처음엔 500페이지가 넘던 것이 300페이지 가량으로 정리됐다.

“이 책이 많이 읽히면 좋겠지만, 나라는 사람에게 이 책은 가치 있는 무엇이다. 하나의 책에 담긴 무수한 것들이 그것 이상이면 좋겠다. LP처럼 말이지. 책에서 삶에 대한 관찰은 물론 삶에 드리워진 관계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늘 하던 이야기를 엮었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마무리한 느낌이다. 책의 이야기가 도덕적이고 밋밋하다고 느낀 독자들도 있을 텐데, 그런 분들에게는 다음 책을 기대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것을 버리고 막 써보려고 하거든(웃음). 이번 책에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다음 책은 이번 책보다 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책이 다음 책보다 못하진 않다. 이 책은 삶, 관계에 대한 이야기면서 따스함, 인간미, 느린 것, 불편한 것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글이 있어도 어떤 삶의 모습이 이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LP를 좋아했다고 했는데 팝송을 주로 들었나?

주로 팝송을 들었다. 다른 지역이 고향인데, 대학을 서울로 와서 하숙을 했다. 오디오를 갖고 온 사람은 하숙집에서 내가 유일했다. 그때는 가요, 팝 등 다양하게 들었다. 요즘에는 팝보다는 클래식과 재즈를 많이 듣는다. 팝은 주말에 크게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듣고 싶은 팝송을 주말에 크게 듣곤 한다.

레코드 앨범과 음악에 대한 느낌 중 어느 것이 비중이 더 큰가?

김기연: 많이 알려진 유명 뮤지션이나 음악은 그것만으로 사지만, 내가 잘 모르는 뮤지션은 절반쯤 앨범 자켓이 주는 이미지가 영향을 많이 미친다. 광고회사에 근무해서 그런지, 시각적인 것에 대해 민감하다. 예전에도 그림 때문에 샀던 레코드가 많다. 물론 자켓 이미지는 무척 좋은데, 음악을 들으면 아니거나 황당할 때도 있다. 기괴한 소리를 내는 음반도 있다. 그런데 나이가 더 들면 좋아질 수도 있다. 잘못 샀다는 생각이 들어도 버리지 말고 놔뒀다가 나중에 나이 들어 들으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LP, CD, MP3 소리가 어떻게 다른가?

윤광준: 아날로그는 소리의 단절이 없다. 그런데 디지털은 소리를 전기로 토막 내고, 기계를 동원해 붙여서 다시 소리를 만든다. 즉, 떨어트렸다가 다시 붙여서 듣는 것이 디지털 음원이다. 결과는 비슷하나 생각해봐라. 원재료를 토막 냈다가 붙이는 것이 좋겠나, 원재료를 그대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겠나. 원형을 파손시키면 아무리 정교하게 붙여도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LP음원이 디지털 음원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결과로 좋고 나쁘고를 파악한다. 그것이 인간의 감각이다.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느냐, 원형을 부수고 복원시키느냐는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계다. 그 차이를 이해하고 단계를 밟기 위해 평생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들은 아무 관심 없는 LP와 음악, 이야기를 추적하는 것, 굉장히 중요한 행위다. 편리만 추구하고자 한다면 공부할 필요가 없다. 네이버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아날로그가 왜 좋은지 물어봐도 네이버는 답변을 못한다. 인간의 경험과 체험만이 대답해줄 수 있다. 인간이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에는 명시지가 있고, 암묵지가 있다. 암묵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어떤 소리가 왜 좋은지는 체험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알 수 있다. 아날로그야 말로 암묵지의 세계와 비슷하다. 체험과 시간을 관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다. 신기하고 깊어서 한 번 빠지면 쉽게 나오기가 쉽지 않다.

나도 40년 가까이 판을 돌리고 살았다. 40년을 돌리면 지겨울 텐데 여전히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디지털의 세계에선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아날로그는 보이지 않는 가공의 정보와 귀만 존재하는 세계다. 하나하나의 과정과 변수가 새로운 결과를 낳는 것이 놀라운 거지. LP를 오래 들은 사람은 내가 그 짓을 왜 하는지 안다. 나는 나를 레코드 연주가라고 말한다. LP를 통해 연주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날로그의 다양한 방식과 섬세한 편차가 존재함을 안다는 것이다. 메이커가 달라지면 음원이 달라지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을 조합하고 어떤 공간에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추적하고 연구한다. 오늘 경험한 건데, 여러분이 알면 기절할 세계가 있다. 1930년대 나온 진공관 앰프가 값이 3~4천만 원 한다면 이해하겠나? 왜 LP음악에 주목해야 하느냐. 디지털과의 가장 큰 차이는 실체의 음악이라는 점이다. 물론 레코딩한 음악이지만 레코드라는 실체가 있다. 만지고 열어볼 수 있는 실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실물을 만져본 적이 없다. 음원이 있고 사기만 하면 된다. 다운을 받긴 했는데 뭘 샀는지 모른다. 과정을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노력하지 않은 결과물을 오래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지점이 가장 의문스럽다. 요즘 사람들이 노래에 빠지지 않는 것은 실물을 갖지 않은데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네이버를 보면 클래식 300장 전집을 하드디스크에 구워 18만 8천원에 판다는 광고가 나온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랑할 자신이 없다. 땀 흘려 어떤 날에 어느 장소에 가서 사고,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에겐 적절한 것이 필요하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아날로그는 실물의 세계라서 값지다. 가장 허망한 것이 무엇일까.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상태가 허망하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나. 어떤 사람은 오래 LP를 모았어. 몰입한 세계가 있고, 결과가 이렇게 나온다. 내 삶의 흔적을 레코드를 통해 복원하고 한 부분에 대해 얘기할 재료가 생긴다. 그게 인생이다. 사람들은 같은 시간을 산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채우느냐가 지적 차이를 만든다. 레코드 모으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해야 행복한 삶이 된다. 쓸데없는 관심이 재미있는 일이 훨씬 많다. 어느 한 부분에선 쓸 데 없는 일을 많이 해서 재미의 한 부분,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파일로 음악을 듣는 세대는 레코드 커버의 아름다움과 비밀을 알지 못한다. 큼직한 커버의 면은 음악과 일체화된 독립적 예술품인 것이다. 최고란 형용사는 이때 필요하다.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은 기꺼이 커버를 디자인하고 음악 안에 녹아든 이력을 갖고 있다. 본질과 형식이 겉돌지 않고 동거하던 시대의 풍요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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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김기연 저 | 그책
비틀즈의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커버를 디자인한 피터 블레이크는 “앨범 커버는 음반의 첫 순간이다. 그것은 음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당신은 음반 상점에서 뭘 사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앨범을 집어 드는 순간 당신을 음악으로 이끄는 이미지에 늘 흥분한다.”라고 말하였다. 앨범 커버는 노래로 말하는 가수들의 얼굴이다. 우리는 어떤 가수의 노래를 만나기 전, 커버를 통해 먼저 얼굴을 대면한다.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에는, 그 앨범 커버를 보고 삶의 속살을 살며시 들추며 이야기를 건네는 김기연의 담백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심보선 “모든 사람은 늘 이중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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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수아비>

제리 샤츠버그 감독의 1973년작인 영화 <허수아비>는 막 감옥에서 출소한 맥스와 5년간 선원생활를 마친 프랜시스가 캘리포니아 시골길에서 만나면서 시작된다. 맥스에게 마지막 남은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여주며 프랜시스는 맥스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된다. 처음 둘은 일종의 사업파트너다. 맥스는 프랜시스에게 자신과 함께 세차사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피츠버그에 있는 돈을 찾아 사업을 하자는 맥스에게 프랜시스는 자신이 두고 온 아내와 아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게 먼저라고 답한다. 그래서 둘은 디트로이트를 들러 피츠버그로 가는 여정을 짜고 함께 길을 떠난다. 맥스는 늘 정확한 인생 계획을 강조하지만 툭하면 다른 사람을 윽박지르고 싸운다. 이에 비해 프랜시스는 나누는데 인색함이 없고,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한다. 그는 어디에서나 희극배우다. 어느 날, 프랜시스는 맥스에게 까마귀들이 왜 허수아비를 보면 도망치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까마귀들은 허수아비를 무섭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며 오히려 허수아비를 보고 한바탕 웃은 다음, 농부가 고마워 피해가 덜 가도록 해주는 거라고 말한다. 처음에 맥스는 이 말을 ‘헛소리’ 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둘의 여행이 계속되면서 맥스는 어느새 화를 내기보다는 스스로를 광대로 만들어 사람들을 웃게 하는 법을 배운다. 프랜시스의 유머와 여유가 맥스에게 옮겨 간 것이다.


하지만 늘 낙천적일 것 같던 프랜시스도 곧 다가오는 끔찍한 현실 앞에 무너진다. 고향에 도착한 그에게 아내는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아이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프랜시스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사실 그 이야기는 아내가 원망 속에서 던진, 순간적인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진실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말은 프랜시스를 거대한 비극 속으로 몰아간다. 언제나 희극배우였던 그는 이제 비극배우가 되어 광장 분수대에 선다. 비장하게 대사를 외치며 그는 물속에 고꾸라진다. 이제 맥스는 프랜시스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그의 모든 계획은 무너지고 어긋나지만 상관없다. 딱딱한 시체처럼 누워있는 프랜시스에게 맥스는 자신이 돌봐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약속한다. 구두쇠에 돈과 사업이 중요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맥스는 이제 프랜시스를 위해 피츠버그로 떠난다. 그곳에 돈이 있는지 없는지, 정말 프랜시스를 돌봐줄 수 있을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맥스는 잠들기 전에 늘 머리맡에 두고 자던 신발 뒤축을 열어 피츠버그 행 왕복표를 구입한다. 그리고 구두를 바로잡기 위해 뒤축을 탕탕, 두들기는 맥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상영을 모두 마친 뒤, 심보선 작가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작가는 이 영화를 어렸을 적 TV에서 우연히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글을 쓰던 그에게 이 영화는 하나의 아이디어로 찾아왔다. 그는 구두 뒤축을 두드리는 마지막 장면이 여전히 인상적이라고 말하며 함께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영화인데, 당시 미국 영화들 중에 좋은 작품이 많다고 했다. 주로 밑바닥 인생에 대한 영화가 많다며 그는 <미드나잇 카우보이>,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를 꼽았다. 당시가 할리우드는 위기에 빠졌고, 그래서 일종의 도박처럼 젊은 감독들에게 마음껏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이 시기 할리우드에서 상업성보다는 감독의 개성이 드러나는 드라마들이 많이 제작된 건 바로 이런 이유다.

심보선 작가는 자신이 책에서 이 영화를 우리 삶 속의 우정과 우정으로서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용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영화를 다시 보고 나니 프랜시스는 삶에서 이미 예술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까마귀가 웃는다’는 표현 자체가 시적이라는 거였다. 사기꾼이자 항상 계획을 짜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맥스는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bull shit”이라고 반응한다. 작가는 이걸 달리 말하자면 시 쓰고 자빠졌네, 라는 뜻이 된다고 했다. 또 프랜시스는 소설가이기도 한데 흔히 말하는 소설 쓰고 자빠졌네, 하는 말이 프랜시스에게 얼마든지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배우 이미지다. 심보선 작가는 영화의 뒷부분에서 ‘내 단검은 어디 있느냐’며 울부짖는 분수에서의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연극 같았다고 감상을 전했다. 그는 프랜시스의 예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대한 개인의 예술’이 아니라 삶 속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또 다른 의미의 예술이라고 했다.

작가는 머리맡에 구두를 숨기고 잠을 자던 수전노 맥스가 그 구두를 스스로 열어 왕복표를 사는 마지막 장면이 다시 봐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10달러 밖에 되지 않는 돈을 구두 뒤축에 넣어 둔 남자를 떠올려보면 정말 피츠버그에 돈이 있는지, 이 약속이 지켜질지 자신할 수 없지만 작가는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글에서 ‘텅 빈 우정’이라고 명명한 관계가 이 장면에서 극대화되고 있다고 집어주었다.


심보선 작가와 독자들의 대화


책에서 이야기 하는 ‘텅 빈 우정’이란 개념이 궁금하다. ‘공허한 우정’과 헷갈리기도 한다.

맥스와 프랜시스가 처음 이야기한 건 사업이다. 맥스는 한동안 계속 사업이야기를 한다. 이 때 둘의 관계는 파트너십이다. 지금 현실 속에는 이런 관계가 만연해 있는 것 같다. 현대의 우정은 언제나 내용이 꽉 차 있어야 한다. 왜 ‘텅 빈’이라고 했느냐 하면 맥스가 처음에 프랜시스와 맺은 협정은 세차장을 여는 거였다. 그런데 점점 그게 중요하지 않아진다. 맥스가 프랜시스를 돌보겠다고 하며 왕복티켓을 사는 장면도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콜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맥스는 그다지 사업수완이 없어 보인다. 정말 돈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게 결국 프랜시스에게 돌아오느냐, 세차장을 하게 되느냐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그저 구두 뒤축에서 10달러를 꺼내는 것, 그리고 다시 뒤축을 바로 잡으려는 그 궁색한 몸짓이 중요했다. 둘 사이에는 신뢰가 있고, 그 신뢰 속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있다. 그러니 이건 공허한 우정과는 다른 의미다. 내용이 뭐든, 지킬 수 있건 없건, 최선을 다해 행동하고 말하는 거다. ‘텅 빈 우정’이라는 말이 생소해서 오해가 있을 수는 있겠다. 공허한 우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책에서 변호사 선배와 ‘공허한 대화’가 나온 다음 바로 ‘텅 빈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헷갈렸던 것 같다.

우정은 탈 관계적 관계, 실체 없는 실체다. 탈 관계라는 것은 보통 확실한 관계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선후배관계나 파트너십 같은 건 명명하기 쉽다. 하지만 그 관계에서 벗어났을 때, 그때는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실체는 있지만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른다. 그게 바로 ‘텅 빈 관계’다.

예술가들이 창작의 행복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현실적 측면도 중요할 텐데, 교수면서 시인인 사람으로서 본인이 생각하는 대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그걸 이중생활이라고 표현한다. 모든 사람은 늘 이중생활을 해야 한다. 나는 현재 직업의 세계가 점점 사람들을 파괴시키고 거의 영혼을 죽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계의 현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축의 현장이 있어야 한다. 창작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창작 전문가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으면 오히려 창작이 되지 않는다. 창작을 하는데, 그 이유나 자극을 항상 외부에 두게 된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이럴 때, 결과는 대게 좋지 않다. 나는 ‘인정’을 다른 의미에서 사용하고 싶다. 영어로 하면 인정은 recognize, 즉 다시 알아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타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알아보는 것이 ‘인정’이 된다면 경쟁만 있는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라는 낭독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어떤 의도에서 시작한 것인지 궁금하다.

네 달 정도 됐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낭독회다. 요즘 대부분의 낭독회들이 출판사의 기획을 통해 이루어진다. 방송에서도 낭독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 낭독회는 그런 기획 없다. 그냥 시인들이 마음대로 하는 자리다. 홍보도 트위터가 전부다. 일단은 시인들이 즐거워한다. 사실 잘한다고 보긴 어렵다. 내가 볼 때는 학예회 수준일 때도 많다. 그런데 관객들이 관용도가 높다. 뭘 해도 좋아해준다. 시인들이 애처럼 놀고, 관객들도 애처럼 듣다가 같이 노는 시간이다. 이 영화를 보도 애와 어른의 구분이 있다. 맥스가 꾸준히 프랜시스에게 너는 애다, 라고 놀리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른이 되는 건 일의 세계, 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낭독회는 어쩌면 그런 이중생활의 일환이다. 준비할 때는 굉장히 열심히 한다. 절대 학예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에서 스노비즘에 대해 언급한 부분만 읽었는데, 이중생활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책에도 썼지만 스노비즘에 대한 글을 귀국 뒤에 바로 쓴 것이다. 비관주의에 젖어 있던 시기였다. 이제 누구도 속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다 스놉이다. 이런 진단 아래서 쓴 글이다. 그런데 글을 완성한 뒤에 과연 그럴까, 그 길 밖에 없는 걸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그 글은 어떤 부분에서는 문제가 있는 글이다. 여전히 내게는 중요한 글이지만 계속해서 반성하게 하는 글이었다. 비관주의에서 출발해서 장밋빛 전망은 아니지만 희미하고 희박한 경로라도 찾아서 가보자는 이야기를 하며 이중생활을 이야기하게 된 거다. 사실 이중생활을 지키기란 아주 어렵다. 하지만 계속 그 길을 찾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

프랜시스를 예술가라고 하셨는데 사실 그가 생계와 예술을 함께하는 사람,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하지만 맥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맥스는 일종의 컨설팅을 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안 벌면 큰일이 난다고 협박한다. 프랜시스는 질질 끌려간다. 그러다 감옥에서 쇼비지니스에 넘어가기도 한다. 사실 이 인물은 줏대도 없고, 그냥 철이 없는 아이다. 인생의 목표라는 것도 자기 아이한테 램프를 전달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프랜시스가 콜리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콜리는 맥스도 인생의 목표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부분이다. 맥스는 늘 인생의 목표를 말하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인데 말이다. 콜리가 보기에 아이에게 램프를 전달하는 게 사업을 구상하는 것보다 훨씬 목표다운 목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에 대해 삶을 나누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삶은 이미 내 안에 나누어져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나누어져 있는 거다. 내가 나와 나누는 것도 우정이다. 타인과 나누는 것도, 또 사회와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중생활은 나의 이중생활이기도 하고, 나와 타인 사이의 이중생활이기도 하고, 사회적 이중생활이기도 하다. 돈을 벌어 성공해야 한다는 세계가 있고 다른 편에는 우정으로서의 예술의 세계, 또 삶을 살리는 세계가 있는 거다. 내 안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이중생활을 적용해볼 수 있다.

작가의 이중생활이 궁금하다. 바쁜 일정 속에서 글 쓰는 시간은 어떻게 확보하나.

요새 시를 잘 못 쓴다. 가능한 짬짬이 틈나는 대로 쓴다. 시가 이중생활의 중요한 축인 건 맞지만 사실 그 것 말고도 많다. 시 낭독회도 있고, 요즘 자전거를 타는데 자전거도 재미있다. 자전거, 친구, 시, 대화. 모두가 이중생활에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제 인생과 영혼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예술이 없어진 시대이고, 그 대신 생활 속에서 소소한 예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누구나 삶에서 예술가로, 이중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인가?

나는 예술을 이렇게 표현한다. 자유로운 노동. 철학적으로 미학은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학문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영미의 경우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원래 미학의 어원은 감성에 대한 담론이었다. 감정, 느끼고 감각하고 인식하는 것, 즐겁고 슬픈 감정에 대한 담론이 미학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조금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시를 잘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지금은 시의 시대를 벗어난 셈이다. 그런데 시인의 숫자는 더 많이 늘어났다. 등단한 시인만 삼만 명은 된다고 한다. 시인은 늘어났는데, 왜 시를 읽지 않을까? 사실 내가 시를 읽던 80년대를 떠올려보면 기형도, 이성복, 황지우씨 시를 읽을 때 나는 이해한 게 아니었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어쩐지 아랫배가 울렁거리는 야릇함이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사회학자라 문학에 대한 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울렁거림이 내 삶과 시대와 맞닿아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이건 우리 이야기, 우리 시대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성복 시인의 유명한 구절 ‘모두 다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를 보면서 나는 시대와 맞닿아있는, 막연하지만 강렬한 시의 세계에 사로잡혔다. 이제 시를 읽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는 건 그 야릇함이 점점 사라지거나 ‘나’와 ‘시’와 ‘시대’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야릇한 감정의 지대가 사라졌다는 뜻이 될 거다. 혹은 여전히 그 지대가 존재하지만 계속해서 배제되고 밀려나고 있다는, 그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한 시대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바로 바로 이해되고 확실한 것, 적용될 수 있는 게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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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예술심보선 저 | 민음사
대중의 사랑과 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을 낸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심보선이 첫 연구서이자 산문집인 『그을린 예술』을 ㈜민음사에서 출간하였다. 심보선은 이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맞이한, 예술의 위기와 삶의 비참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하며, 예술을 행하고 또 삶을 사는 당사자로서 체험하고 관찰하고 느끼고 사유한, 예술과 삶의 관계를 말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몽키 티처’ 리처드 용재 오닐을 반하게 만든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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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C 안녕?! 오케스트라]

리처드 용재 오닐은 ‘몽키 티처’였다. 그가 몽키처럼 생겼다며 아이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도 아이들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2012년 3월 8일, 그들은 처음 만났다. 처음 볼 때, 아이들에겐 세계적인 비올리스트도, 리처드 용재 오닐이라는 유명한 이름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이 통하지도 않는 용재 오닐은 막막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1년. 막막했던 그들의 첫 대면은 이제 음악으로 똘똘 뭉친 사이가 됐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용재 오닐의 진심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첫 만남. 아이들은 낯선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낯선 용재 오닐을 어색해했고 불편해했다.”(p.37)
그 시간은 음악의 힘, 음악이 가지고 있는 포용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안녕?!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졌고, 그것을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으며 『안녕?! 오케스트라 :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한 1년의 기적』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다문화가정 아이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용재 오닐이 흔쾌히 승낙한 이유는 바로 음악 때문이었다. 용재 오닐은 아이들에게 현실과 부딪쳐 싸워 나갈 힘을 주고, 그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하고 싶었다. 인생에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 생겨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무언가를 그들의 손에 쥐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음악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p.21)
[출처: MBC 안녕?! 오케스트라]

기적의 하모니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다큐를 연출하고 책을 집필한 이보영 저자와의 대화가 먼저 이뤄졌다.

다큐를 준비, 기획하고 방송할 때까지의 기간이 길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보영: 2011년 가을에 처음 기획했다. 2013년 2월 방영까지 만 16개월이 걸렸다. 내 인생에서 이 16개월은 무겁고 참 인상적이었다. 내 삶에 깊이 새겨진 시간이었다.

책 출간 소감은 어떤가? 힘들었던 점과 보람 있었던 점도 하나씩 들어준다면.

이보영: 방송을 만들 때는 책이 나올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책에 내 이름이 박힌 것을 봤을 때 설레고 떨렸다. 책을 처음 받고 책을 넘기는데 촉감, 냄새, 무게감이 굉장히 좋았다. 단순하지만 아름다웠다. 용재오닐과 아이들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들고 읽는 분들이 끝까지 읽어주면 좋겠다. 아마추어 저자로서 책을 쓰는 것은 힘들었다. 원고지 1000매를 쓰는 것은 굉장한 작업이었다. 1년 이상 촬영한 삶의 기록을 읽으면서 어떻게 책 한 권을 뽑아낼까 고민했다. 무엇보다 힘든 점은, 단원 아이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보람이라면, 독자들이 책이 참 좋다고 해줘서, 감상문도 보내줘서 고마웠다.

가장 큰 기적이 있다면?

이보영: 내 인생이 기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1년, 기적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했다. 처음 기획하면서 공상했던 것들이 있었다. 첫째는 아이들에게 재단이 생겨서 오케스트라를 계속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책과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것이 공상 같아서 웃었다. 그러다 방송이 끝나고 3통의 전화를 받았다. 첫 통화는 대기업 부회장의 전화였다. 방송을 보고 감동 받아서 연말콘서트에 협찬금을 후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음 통화가 출판사였고, 세 번째 통화가 영화제작사에서 온 전화였다. 마지막으로 안산문화재단에서 전화가 와서 아이들이 안산문화재단의 오케스트라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꿈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꿈이 이뤄진 것은 감동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긴 까닭이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정말 흥미롭다.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였던 일들이 어떤 ‘결정적 순간’과 맞닿으면서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 의미들을 다 알지 못한다. 평범하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일들의 수면 아래에서 어떤 비밀스럽고 놀라운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우리 눈앞에 나타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기적과 마주하게 된다.”(p.7)
<안녕?! 오케스트라>는 현재 영화로도 제작 중이다. 영화 작업을 하고 있는 이철하 영화감독에게 다음 질문이 갔다.

영화를 만들면서 걱정되지는 않나? 영화를 만들고자 한 계기가 있었다면?

이철하: 부담감도 있고, 목표를 갖고 임하고 있다. 다큐를 잘 만들어주신 이보영 PD님의 진정성 때문에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과의 만남이 운명과도 같다. 이전부터 나는 음악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청춘을 그리고 싶었다. 지금 작업이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으니 운명일 수밖에 없지. 처음에 영화와 관련해서 연락을 받고 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목표는 뭔가?

이철하: 부산영화제를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현재 편집중이다. 극영화는 아니다. 방송을 영화로 재편집하고 있는데, 물론 연출자로서 내 시각이 담겨 있다. 후반작업을 하고 있는데, 음악을 사이에 두고 용재 오닐과 아이들이 어떻게 교감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보면 알 것이다. 무척 재미있다. 영화를 통해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출처: MBC 안녕?! 오케스트라]

안녕?!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공유하는 삶이 좋을 뿐’이라는 용재 오닐의 차례가 왔다.

작년 12월에 연주를 한 뒤 오랜만에 단원들을 만났다. 소감이 어떤가?

용재 오닐: 아이들이 무척 많이 컸다. 시간이 빨리 지난 것 같다. 아이들이 더 나은 공간에서 연주하길 바라고 더 나은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나도 아이들도, 서로가 있어서 좋고 행복하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도 살아갈 곳은 서로가 있어서 좋고 행복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안녕?! 오케스트라를 만나고 인생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용재 오닐: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더 얻은 게 많았다. 시간을 많이 내야했고, 일정 부분 희생도 했지만 내 인생을 통해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것을 받았다. 놀라운 시간이었다.

“‘안녕?! 오케스트라’ 아이들은 내 삶을 바꿔놓았고, 나는 그들이 내게 준 것을 영원히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당신도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해준 놀라운 사람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p.5)
기쁜 점이 있다면 무엇이고, 소망이 있다면?

용재 오닐: 문화관광체육부의 청소년오케스트라 지원프로그램에 선정돼 3년 동안 지원을 받기로 한 게 기쁘다. 이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고, 이들과 함께 계속 공연을 할 것이다. 이 친구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줄 수 있으면 좋겠다.

“첫 캠프에서 제작진이나 선생님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처럼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클래식을 접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낯선 음악을 들었을 때, 그것도 꽤나 엄숙하고 고전적인 곡을 들었을 때, 감성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즉각 반응하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어른들은 너무도 쉽게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창의력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리석은 세상과 아둔한 어른들이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을 개성 없이 똑같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p.42)


아이들 자랑을 해 달라.

용재 오닐: 아이들이 내게 영감을 주고 용기를 줬다. 나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데, 아이들을 만나면서 오픈되고 강해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다.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그러니까, 그것은 ‘기적의 하모니’라고 할 수 있겠다. 리처드 용재 오닐과 아이들이 만난 생의 협연이자 음악적 앙상블. 그들이 다시 6개월 만에 무대에 서서 「섬집아기」를 연주했고, 용재 오닐의 독주곡 역시 흘러나왔다. 음악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그 음악이 청중들의 몸을 휘감는다. 음악이 촉각인 이유다. 오케스트라 화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이보영: 가장 충격을 받은 장면은 첫 합숙을 갖던 첫날 저녁이었다. 아이들이 그리 시끄러울 줄 몰랐다(웃음). 강당에서 소리 지르고 난리를 치는데, 앞으로 이걸 어떻게 찍어야할지 엄두가 안 나더라. 1년을 어떻게 보낼까 싶고. 인솔 교사 말도 안 듣고. 그때 용재 오닐이 비올라를 꺼내 바흐를 연주했다. 활이 그어지는 순간, 아이들이 일순간에 조용해지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음악에 빨려 들어가더라.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우리 프로젝트가 빛을 발하는 시작이었다.

“말을 마친 용재 오닐은 짧은 음악을 연주했다. 그것은 바흐였다. (중략) 1720년경 그가 작곡한 고전적 선율이 수백 년의 시공간을 가로질러 난생처음 클래식을 접하는 아이들에게 흘러들어 갔다. 어수선하고 번잡하던 분위기에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일순 고용해졌다. (중략) 음악이 음악으로만 불러일으킨 순수한 기적의 순간이었다.”(pp.38~39)


영화는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제작하고 있나?

이철하: 많은 분들이 보고 오랫동안 상영됐으면 좋겠다. 목표 관객층은 가족이다. 겨울방학에 개봉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음악을 통한 치유다. 음악이 어떻게 아픈 곳을 치유하고 용재 오닐을 통해 음악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고 싶다. 뭣보다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만들었다(웃음).

평은이는 첼로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더라. 사람들이 연주를 듣고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나?

평은이: 음악의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용재 오닐의 연주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 졸림을 느낀다(일동 폭소).

준마리는 악장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커서 음악 외에 하고 싶은 게 있나?

준마리: 말 좀 잘 듣고, 먹을 것 그만 사달라고 하고, 연습 좀 제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다(웃음). 커서는 음악 말고 아직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제가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달라진 것은, 저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용재 오닐 선생님처럼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 거예요. 아직 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용재 오닐 선생님을 보면서 희망을 가지게 된 것처럼, 저도 선생님처럼 음악을 연주해서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고 희망을 갖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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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케스트라이보영 저 | 이담북스(이담Books)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와 아픔을 안고 있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안녕?! 오케스트라』의 아이들도 그랬다. 지적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입양한 아일랜드계 조부모님 밑에서, 동네 유일의 동양인 꼬마로 자란 용재 오닐. 엄마 혹은 아빠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안녕?! 오케스트라』의 아이들. 이 책은 이처럼 자신을 꽁꽁 숨긴 채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이들이 음악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하나의 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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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나 작가가 드라마작가 지망생들에게 건네는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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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를 쓰면서 소설을 알게 되었다

원작의 재탄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대부분 ‘차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연 무엇이 원작과 다른지, 그것이 가장 궁금한 것이다. 소설 『신의』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 했던 것도 바로 그 ‘차이’였을 것이다. 드라마 <신의>에는 없고 소설 『신의』에는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가 첫 번째 관심사였다. 하지만 소설 『신의』가 품고 있는 것은 ‘차이’가 아닌 ‘깊이’였다. 드라마에서는 미처 보여주지 못하고 들려주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까닭이다.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위해 지난 6월 27일, 송지나 작가가 독자들과 만났다. 오랜 시간 그녀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해 온 시청자들과의 만남이기도 했다. <여명의 눈동자>를 시작으로 <모래시계>와 <카이스트> <태왕사신기>를 거쳐 <신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브라운관 앞을 지켜주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 송지나 작가는 자신을 드라마 작가가 아닌 신인 소설가로 소개했다. 그리고 소설 『신의』안에 담긴 자신과 인물들의 이야기와 시간에 대해 말했다.

『신의』 1권은 서비스 차원에서 썼던 것 같아요. 드라마 <신의>가 끝난 후에 뭔가 성에 차지 않고 여운이 남았던 시청자 분들을 위해서요. 그래서 제가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들을 들려드린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드라마 대본을 소설로 옮기는 방식으로 썼더니 한 달도 안 돼서 책 한 권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문득 ‘이렇게 빨리 써내는 게 맞는 건가’ 싶더라고요. 2권을 쓰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났는데, 점점 욕심이 커지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지는 거죠. 그래서 『신의』 2권은 대본을 내려놓고, 그동안 썼던 이야기들도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썼어요.”

드라마 <신의>는 끝났지만 송지나 작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었다. 그것이 소설 『신의』를 탄생시킨 단 하나의 이유였다. 드라마 <신의>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의 초안은 송지나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지만, 김종학 감독과 얘기를 나눌수록 자신 안에서 커져가는 이야기들을 멈출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에 이어 다시 한 번 김종학 감독과 손잡고 <신의>를 만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신의>는 제작여건상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곁을 맴도는 그 이야기들을 떠나보내기 위해, 송지나 작가는 소설 『신의』를 써내려갔다.

“소설은 정말 드라마와 다르더라고요. 드라마는 대사 부분에만 신경을 많이 쓰면 되거든요. 감정이나 심리는 지시문으로 전달하면 돼요. 그런데 소설은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다 남는 거고, 뭔가 전달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정확한 표현을 찾다 보니까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어요.”

드라마에서 소설로 이야기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작가의 고민 역시 달라졌다. 드라마 작가로서 그녀가 고민했던 것은 ‘시청자들은 어떤 대사와 엔딩을 좋아할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시청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송지나 작가는 단어와 끝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해줄 수 있는 단어를 찾고, 문장으로 만들어내고 다듬었다. 소설가로서 새롭게 마주한 그 고민들 끝에서 『신의』가 탄생했다. 드라마 작가로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녀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시간들이었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선보였던 『신의』 1권과는 달리 2권을 쓰는 데는 무려 5개월이 걸렸다. 지난한 싸움이 계속되었지만 작가는 웃으며 말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소설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고.


[출처: SBS]

글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신의』를 쓰면서 송지나 작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드라마를 통해 전달되지 못했던 인물들의 심리와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보다 가까운 곳에서 인물들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소리와 마음은 송지나 작가의 것이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에 최영이 검의 무게에 대해서 느껴가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 부분이 드라마에서는 많이 생략돼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실 최영의 검의 무게는 저의 글의 무게와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갔었거든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축, 하나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무겁다는 것도 말하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너무나 사색적이고 드라마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죠. 제가 욕심을 낸 부분이기도 해요. 그렇다 보니까 『신의』를 출간하면서 이 이야기를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드라마 <신의>의 대본을 쓰는 동안 송지나 작가는 글의 무게를 체감했다. 계속 글을 써야할까, 고민했던 시기였다. 지금까지 송지나 작가의 작품에 변함없는 애정을 보내온 독자들이 그 고통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신의』의 독자들은 작가를 채근하기보다 응원했다. 작품을 쓰는 시간 동안 작가가 행복해야 독자 역시 작품을 읽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작가의 오랜 벗이기도 한 독자들은 『신의』가 송지나 작가의 아쉬움을 씻어낼 수 있는 치유의 길이 되기를 바랐다. 그 마음들을 전해 받은 작가는 『신의』는 정말 마음이 많이 다치면서 힘들게 쓴 작품이지만, 이 작품 때문에 글을 쓸 명분이 생긴 것 같다.”고 답했다.

이 날 송지나 작가와 만나기 위해 찾아온 독자들 중에는 그녀와 같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도 있었다. 작가는 그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시간보다 자신의 생각을 하는 시간을 늘려나가야 해요.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고 드라마를 보면, 다른 사람이 쓴 드라마와 비슷한 작품밖에 쓰지 못하거든요. 자신만의 작품을 쓰려면 상상력을 키우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는 책 읽는 게 최고예요. 훌륭한 책보다 자신한테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돼요. 처음에는 짧고 빈약한 책을 읽더라도 읽다보면 점점 더 깊이 있는 책을 많이 읽고 싶어져요. 그게 책을 읽는 사람의 습성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 없어요. 자신이 재밌는 책을 계속해서 많이 읽어나가면 돼요. 그리고 사람들을 관찰하는 연습을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밖에 쓰지 못해요. 소설의 등장인물이 모두 똑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거죠. 항상 사람을 관찰하고 그걸 잊지 않으면, 나중에 글을 쓸 때 재료가 돼요. 관찰했던 사람들을 조합하면 자기만의 한 사람이 탄생하는 거죠. 그 과정을 재밌어하다 보면 작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송지나 작가는 다른 작가가 쓴 드라마뿐만 아니라, 자신이 쓴 드라마도 시청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탈고한 뒤에는 다시 읽지 않는다. 지난 작품의 이야기를 반복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연기자 김미경은 이러한 작가의 노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드라마 <카이스트> 때부터 함께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 오랜 우정으로 김미경 씨는 이 날 송지나 작가와 함께 『신의』의 독자들을 만났다.

김미경: “연기자들이 송 선생님 작품을 선호하고 출연을 원하는 이유는, 내가 연기자가 되기를 잘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아시다시피 드라마 <신의>는 대본대로 촬영하지 못한 부분이 참 많아요. 그래서 저도 소설 『신의』를 보면서 그 속에서 같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이 부분을 촬영했어야 했는데’하고 아쉬워하면서 읽고 있죠.”

드라마와 소설은 장르가 다를 뿐, 자신에게는 그저 다음 작품이라고 말하는 송지나 작가. 그녀는 언제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작가다. 소설가로서 새로운 첫 발을 내딛은 작품 『신의』역시 마찬가지다. 작가가 그토록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보여주고 싶었던 감정들은 무엇인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야기들을 떠나보낼 작가만의 방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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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1
송지나 저 | 비채
드라마에서 소설로 진화한 『신의』! 고려시대의 무사 최영, 현대의 여의사 유은수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과 진정한 왕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판타지와 역사의 경계에서 피어난 사랑이야기로 스피드한 문체, 기발한 착상, 무규칙한 형식 등 결코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 송지나만의 문학세계를 만날 수 있다. 독특하면서도 개성에 충실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긴장과 충돌을 유발하고, 영상의 한 장면처럼 짧게 조각내어 병치한 단락들은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이끌어내면서 끊임없이 가독성을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태혁 “포커페이스는 무표정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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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혁의 이야기는 1990년대 한 당구장에서 시작한다. 속칭 ‘셧다’라는 도박이 한창이었다. 
화장실에 간 당구장 주인 대신 자리를 채우고 앉았던 한 중학생. 남다른 실력을 뽐냈던 그는 프로 겜블러가 됐다. 군 제대 후 일본, 유럽, 미국, 동남아 등지를 떠돌며 활동했다. 2004년엔 영국 세계포커대회에서 우승했고, 2007년 귀국해 SBS ‘스타킹’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카드를 이용한 심리 게임으로 강호동을 압도했다. 


만화 『포커페이스』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천재 포커 이태혁 52장의 심리 게임』, 『세계 최강의 승부사 이태혁의 주식투자는 두뇌게임이다』, 『이태혁 ON 텍사스 홀덤』, 『상대의 겉과 속을 꿰뚫어보는 사람을 읽는 기술』, 『사람의 마음이 읽힌다』등이 있다.

최근 『지면서 이기는 관계술』을 낸 그는 자신을 간결하게 소개했다.

“이제 도박 세계는 떠났다. 대신 수많은 게임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 분석과 주식 투자에 대한 책을 쓴다. 증권방송 MC도 맡고,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책도 7권째다.”


책을 내는 이유는 ‘돈’이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이번 책은 저자 자신도 만족한다고 말한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와 관련한 사례를 묶은 형식이다. 게임이나 포커와 연관된 기존의 저서를 생각했다면 조금 색다르다. 원래 책 제목은 ‘주도권의 신’이었다. 주도권을 쥐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내용이다.


책과 작가에 대한 소개는 5분 내로 간단하게 끝났다. 기존의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자신의 책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바로 독자와의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번만큼은 독자들의 질문에 응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질의응답을 하면서도 말투와 행동으로 질문하는 독자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표정을 감정에 상관없이 이성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은?


그런 방법은 없다. (웃음) 사람들은 ‘포커페이스’에 대해 착각한다. 그건 무표정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고 가장 자신다운 얼굴이 포커페이스다. 본질을 바꾸면서까지 시무룩해지는 건 포커페이스가 아니다. 신경 조직처럼 사람 심리에도 반사작용이 있다. 그걸 참을 사람은 세상에 없다. 평소 자신의 모습을 잘 알아야 한다. 너무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드러내 보라. 화도 내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본인의 마음을 읽혀서 졌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


당연하다.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면 그런 경우가 생긴다. 평상시에도 감정을 마구 숨기는 편은 아니다. 물론 내 정보가 노출이 덜 되면 덜 될수록 유리한 건 사실이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필요 이상 말이 많아지면 안 된다. 대인관계나 연애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말이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감정이 드러난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심리를 꿰뚫어볼 수 있는지?


많은 경험이 답이다. 20년 정도 하면 노련해진다. 무언가를 겪으면서 새로 배운다고 생각하면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다. 자신만의 것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지는 법도 알아야 하고. 정답은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심리는 파악하는 게 아니다. 단지 상대의 행동에서 단서를 찾는 것뿐이다. 단서가 없는 행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단어는 ‘그냥’이다. 어떤 것이든 세상엔 이유와 근거가 따르기 마련이다. 상대의 표정, 말투, 행동을 잘 살펴 보라. 많은 경험의 데이터를 토대로 역으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겉모습이 아닌 진짜 모습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혈액형 별 성격 유형은 도쿄에서 만들어졌다. 인구밀도가 엄청난 곳이다. 재빨리 누군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현대 사회가 그렇게 바쁘다. 우리는 그 사람을 알 때까지 지켜볼 시간이 없다. 상대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진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커진다. 자신의 본 모습과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직업이 도박하던 예전의 짜릿함을 채워주는지?


지금도 마카오에 가긴 한다. 행위가 직업이 되면 짜릿함이 사라진다. 도박은 통계, 심리, 대인관계가 섞인 어려운 분야다. 물론 그걸 알기 전에는 짜릿했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니 그 느낌이 사라지더라. 지금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잔잔한 보람 속에서 짜릿함을 느끼고 있긴 하다. 예전과 같이 폭발적인 한방은 아니지만. 짜릿함만 찾다 보면 결국 그걸로 끝난다.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길게 봐야 한다.


지면서 이기는 관계술은 직접 경험에서 나온 말인가?


그렇다. 모든 책은 경험을 토대로 쓴다.


삶의 모토나 존경하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게 삶 아닐까? 아직은 그 과정에 있다. 세상에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과정을 통해 쌓아가려고 한다.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더 많은 걸 배웠을 것 같다. 어렸을 때에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최근 소설가 김진명 씨에게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


이태혁은 권력이나 재산으로 상대와 승부수를 걸지 말라고 전했다. 승리의 여신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능력의 손을 들어준다. 지면서 이기는 관계술의 답은 그렇게 주도권을 잡는 자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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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서 이기는 관계술이태혁 저 | 위즈덤하우스
저자에 따르면 아무리 심리전에 능숙하고,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본다 해도 모든 사람이 내 편이 될 수는 없다. 이에 이 책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내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원만히 맺으려 하지 말고, 원만한 관계가 될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해서 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효율적인 인간관계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37가지 방법을 각각의 상황과 상대에 따라 실전에 응용하다 보면 관계와 이득을 모두 얻는 진정한 승자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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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자유로운 자만이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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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그의 행적을 빗대어 거리의 철학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보통의 학자들처럼 강단에 머물기보다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고, 인문학의 참뜻을 대중들과 부대끼며 설명하고, 알리고 이해시키려 노력했던 탓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그저 ‘철학자’라고 말한다. 또 스스럼없이 철학자는 ‘다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경제와 사회, 정치와 윤리를 비롯해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모든 담론을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스스럼없이 말한다. “아는 것은 답해줄 수 있지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것”이라고. 이를테면, 그의 인문학이란 당당함이며 솔직함이다. 가식이나 허위도 스며들 자리가 없다. ‘삶은 원래 고통이며 가끔씩 덜 고통스러울 때가 행복’이라고 너무도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그에게 대중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한다. 그럴듯한 희망을 심듯, 미끼마냥 삶의 달콤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이들의 말보다는 차라리 후련하게 들린다. 솔직함은 솔직함을 만났을 때 더 유쾌해지는 법이다. 그런 그가 최근 새로운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아니, 어쩌면 생각을 던져 놓았다고 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 씨가 묻고 그가 답한 형식의 인터뷰 집이다. 장장 50여 시간을 주고받은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녹여 넣었다고 한다. 바로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이다.




당당한 인문학이란, 그리고 진짜 자유란 무엇인가

그의 이야기는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나 듣고 있노라면 엉뚱한 이야기 역시도 하나의 맥락 속에 포함 돼 있고 그 조차도 청중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림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인문학의 오해에 대한 것이다. 겉멋과 고상함으로 치장된 인문학에 대한 오해다.

“대학시절을 떠올려보면 인문학은 제가 생각해도 겉멋이 엄청 들었어요. 당시에는 멋있어 보여 질투도 했었죠.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친구들은 교수들의 흉내를 내고 있던 것이더군요. 어쨌든 인문학에 대해 처음 들었던 생각은 ‘귀족들이 하는 것’이었어요. 저처럼 가난한 사람은 하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죠. 돌이켜 보면 그게 가장 큰 오해였던 것 같아요. 그들이 인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일종의 화장품과 같은 것이었어요. 계속 공부를 하고 책을 쓰면서 제가 깨달은 인문학은 사실 화장과는 반대의 개념이었어요.”

그가 발견한 인문학의 본색은 당당함이었다. 유사 이래로 이어진 말, ‘펜은 칼보다 강하다’가 그가 이야기하는 인문학의 정확한 정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겉멋이 든 인문학, 여리고 퇴폐적인 인문학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그가 당당한 인문학을 설명하기 위해 김수영 시인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수영 시인의 생애와 작품, 그 안에 고통과 고민까지 꿰뚫었기에 가능한 일일 터였다. 실제로 그는 근자에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부제는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이었다.

“제가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김수영은 6.25의 시인, 분단의 시인이에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던 시인은 김수영뿐이었죠.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그야말로 남북의 대립이 극명했던 곳이었어요. 이념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던 곳이었죠. 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사라진 게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수용소가 된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좌익 이념 공세가 넘치는 인터넷 댓글 보면 아실 거예요. 이념이 뭐가 중요해요. 이념은 인간을 위해있는 것이잖아요. 김수영은 그걸 안 거죠. 그래서 김수영 시인은 남한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쳤을 때 우리사회에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그랬어요. 김수영은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계속 읽혀야하는 시인이에요. 20세기에 이념대립이 끝났는데 21세기의 우리가 정리 못하면 20세기는 계속 지속되는 겁니다. 우리가 낙후됐다는 것은 거기에 있어요. 물론 살기 힘든 세상이고, 일상의 갈등은 존재해요. 하지만 여러분도 자각해야 합니다.”

잠시 말을 멈춘 그가 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을’을 낭독했다. 혁명으로 칭해진 ‘4.19’가 일어난 직후 시인이 비분강개하며 쓴 시는 진정한 혁명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자유는 피 냄새가 섞여 있는 것, 혁명은 고독한 것임을 토로하고 있다. 푸른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를 ‘자유롭다’고 말하는 이는 가혹한 푸른 하늘의 실체를, 자유를 위해 비상하는 것이 어떤 고통을 수반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겨울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가 본 사람은 그 바람이 얼마나 매섭고 센지를 알거에요. 또 산에 올라가는 것은 강제로 데려가지 못해요. 다섯 사람이 가면 다섯 사람 모두가 올라가야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산이거든요. 산을 제대로 올라가 본 사람은 모두 스스로 올라가야한다는 걸 알아요. 자유에는 그렇게 피 냄새가 섞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는 젖과 꿀이 흘러야 하는 것으로 잘못알고 있어요. 직접 겪어봐야 아는 세계죠.”

그의 말은 다시 혁명의 고독성으로 이어졌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고독한 주인이어야 간신히 유지되는 것이라고, 또 혁명은 개개인이 고독하게 이뤄내야 진정 이뤄지는 것이라고 한다.

“혁명은 정치적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삶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어요. 누가 끌고 가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와 땀 냄새를 맡으며 해내야하는 것이죠. 한 번 혁명을 하면 두 번 사는 겁니다. 혁명은 그런 것이에요.”

그의 이야기는 다시 ‘자유’에서 맴돌았다. 그가 이야기하는 자유는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그것과는 조금 차원이 달랐던 탓이다. 구속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구속을 뚫고 가야하는 것,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피가 나면서도 쟁취하는 자유야 말로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다. 적어도 그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용된 자유에 만족하는 노예의 삶에 안주하고 있는 듯하다.

“군대에서도 자유를 누릴 수 있어요. 허용된 범위만 벗어나지 않으면 되죠. 억압이 있는 사회에서는 허용된 자유만 누리면 되요. 조선시대에 여성들에게도 자유가 있었죠. 그저 삼종지도만 지키면 됐어요. 자기 방에서 수를 놓을 자유가 주어지는 거죠. 독재시대에도, 일제강점기에도 허용된 범위의 자유는 있었어요. 그러나 진정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한계에 부딪혀 보는 사람은 드물어요. 죽을 때까지 부딪혀보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그리고 저처럼 부딪히는 사람에게는 오버한다고 하죠.”

그는 다시 동물원의 사자우리를 이야기했다. 가운데 호수가 허용된 자유라면 벽이 둘러쳐진 우리의 경계는 그 자유가 허황된 것임을 깨닫게 하는 한계라는 것이다. 한번 벽의 존재를 깨달아버린 이는 어쩔 수 없어 다시 호수로 돌아오는 순간 예전처럼 편치 않음을 절실히 느낀다.

“김수영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경계, 벽에서 절규하고 있을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합니다. 심지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벽 밖이 오히려 갇힌 것이고 안이 자유로운 것일 수도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죠. 인문학은 벽에 서서 버티며 자유를 갈구하는 겁니다. 벽에 서서 손톱이 빠지도록 박박 긁어 피투성이가 되어 뚫는 것이 예술이고 인문학이에요. 무서워도 당당하게 버티는 거죠.”




자유가 없는 것은 노예의 삶

    사령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그가 낭독한 김수영 시인의 두 번 째 시는 ‘사령(死靈)’이었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인의 심상이 느껴지는 시는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영을 죽은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자유라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은 주인이에요. 하지만 타인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은 노예죠. 내 삶을 못 사는 것은 죽음과 다르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고 타인이, 독재자가 원하는 걸 하는 데 뭐가 마음에 들겠어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죠. 아름다운 것들, 사랑스러운 것들도 마음에 들지 않죠.”

그는 다시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소설 『무무』를 설명하며 자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정 러시아의 농노제도가 존재했던 시절, 게라심이라는 농노가 감정을 느끼는 것, 사랑을 느끼는 것조차도 주인인 귀족 부인에게 허락받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사랑을 쏟아 부은 개 ‘무무’조차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하는 비극을 다룬 이야기. 이 작품은 당시 황제인 알렉산드로 2세로 하여금 농노제도를 폐지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줬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어요. 노예는 사랑을 하면 안 되죠. 사랑과 자유는 같은 것이거든요. 황제가 농노제도를 없앴다고 하지만 그는 다시 만들 수도 있는 사람이에요. 누군가 나에게 밥을 줬을 때 고마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스스로 밥을 얻어야 되는 겁니다. 누군가 주는 것에 흡족해 할 때, 그 준 사람은 빼앗을 권리도 있거든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라

    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의 세 번째 시 ‘폭포’를 낭독하는 그의 목소리에 새삼 힘이 느껴진다. 그는 이 시가 ‘모든 인문학자들, 예술가들, 철학자들이 글을 쓰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김수영 시인의 오만도 보이긴 해요. ‘내가 시를 한 편씩 폭포처럼 쏟아낼 때 과연 누가 읽을까’하는 고민도 있죠. 그런데도 희망을 해 보는 거죠. ‘벽에 부딪혀서 우리가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고 소리치는데, 이 이야기를 누가 들을까’하면서도 희망을 가져 보는 거예요.”

그는 또 청중들에게 ‘당신은 폭포냐’고 되묻는다. 남의 인정과 평가에 휘둘리는 사람은 폭포가 될 수 없다.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기준도 다르지 않다. 남의 인정과 평가에 휘둘리는 것은 아이의 특징이다. 욕하면 싫어하고 칭찬하면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 행동이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주변에 어른인 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려면 모든 것을 떨어뜨려야 해요. 누가 떨어지면 안 된다고 하면 안 떨어질 건가요? 폭포는 소리가 들려야 해요. 여러분은 폭포신가요? 김수영의 폭포 소리는 그의 심장 소리에요. 제일 중요한 것은 소리입니다.”

강연 내내 강신주는 당당한 철학자이자 솔직한 인문학자로서 자유와 사랑을 이야기했다. 또 그 모두가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어야 가능한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외부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만의 소리를 가진 폭포가 되라고 했다. 우리의 경계, 벽에 섰을 때 깨닫게 되는 것이고 벽을 뛰어넘었을 때, 허물었을 때 진정으로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가 이야기하는 벽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섰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록 경험해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인간은 은연 중 끊임없이 사랑과 자유를 갈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 강신주의 인문학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각하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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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강신주,지승호 공저 | 시대의창
끊임없이 인문정신에 육박해 들어가는 우리 시대의 철학자, 강신주를 우리 시대의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났다. 인문정신에서 시작한 이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인문학적 계보를 찾다가 제자백가에 이르고, 다시 현대 한국 사회로 돌아와 우리 현실을 바라보다, 본연의 인문정신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밤을 지새고 난 뒤 오히려 육체와 정신이 가뿐해질 때처럼, 철학자 강신주의 촘촘하고 정교한 사유의 그물을 통과하고 나면, ‘나’와 ‘너’를 그리고 세상을 좀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여행을 통해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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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불안하고 지긋지긋하고 싫기만 했던 소녀는 2년의 떠남 동안 성큼 어른이 됐다. 본인도 의도하지 않은 변화였을 것이다. 생은 그렇듯 병적인 유머센스를 발현하곤 한다. 이집트의 사막 이름이자 싱어송라이터 시와와의 만남도 그랬다. 2007년 프린지페스티벌, 두 사람은 만났다. 이후 시와의 음반재킷을 그리는 인연을 맺었다. 예쁜 소녀의 옆모습이었다. 연필로 그린 그림이어서 시와는 더욱 좋았다.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시와라는 손글씨 옆에 자리한 쉼표에 시와는 더욱 눈길이 갔다. 마음이 움직였다. 내 음악도 누군가에겐 쉼표 같은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6월30일, 서울 대학로의 이음책방, 시와는 그와의 인연을 주절주절 풀고 있었다. 음악과 함께였다. 더없이 좋은 여름날의 주말.




여름날 시와의 노래가 좋은 이유

「길상사에서」가 첫 곡으로 흘러나온다.

이렇게 앉아있는 이 오후에도/ 나무사이로 보인 하늘/ 아름다운 것들을/ 가만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무언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노래가 온몸을 감싼다. 정말로 괜찮다는 느낌. 백석과 자야의 잊지 못할 사랑이 있는 곳, 법정스님의 자취가 묻힌 그 길상사를 연상하며, 누군가 내 어깰 감싸주면서 토닥거려주는 듯하다. 음악이 주는 이 놀라운 촉각. 음악의 힘이다. 완전하고도 강력한 힘. 설명도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전해지는 음악의 촉각. 시와의 음악이 지하에서 울려 퍼져야 하는 이유도 또렷하다. 눈을 감고 듣자, 음악은 선풍기 소리와 어우러져 리듬을 만들어낸다. 지하 바깥의 찌는 무더위, 소나기와 무관하게,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이 느낌이 좋다. 온전하게 음악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시와는 성북동 길상사 돌계단에 앉아 나무를 바라보면서 만든 노래라고 했다. 아무렴.

“봉현 씨가 내 노래를 좋아해줘서 다행이에요. 사실 음반재킷이 중요하거든요. 노래와 어울리는 디자인, 사진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데, 7년 전에 만나 그렇게 나온 앨범 덕분에 지금까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3장의 앨범을 냈고, 봉현 씨는 긴 여행을 다녀와서 책을 냈어요.”

두 사람이 만난 것, 우리에게도 다행이다. 그들의 노래와 그림이 스스로는 물론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위안이 되어줄 테니까. 여행을 다녀와서 쓴 곡이라고 했다. 「마시의 노래」.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차갑지만 춥지 않은 바람이/ 나보다 한 살 위인 그는/ 자신을 어부라고 했지/ 그의 일주일은 여덟 날 이었지/ 여섯 날은 배 위에서/ 두 날은 섬 위에서…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에어컨 아닌 선풍기가 앞뒤로 돌아가는 풍경이 참 좋다. 사실 시와의 노래는 좋았지만, 시와가 한 번도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노래 부르는 시와가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가 이어진다. 『시와, 커피』 앨범에 실린 「인사」.

어제보다 느려진 나는 내일보다 조금은/ 길다 그래서(…) 그러니 이제 당신의 안부를 묻지 않아요/ 묻은 것과 묻지 못한 기억 밖으로/ 여행을 떠나요(…) 곧 흩어질 내 인사를 전해요
김선재 시인의 시집 『얼룩의 탄생』에 수록된 「마지막의 들판」 일부를 가사로 삼아 멜로디를 붙였단다. 이 시집, 김선재 시인이 몽골 초원에서 빈 하늘을 바라보고 돌아와서 쓴 것이었다. 시와는 마지막 두 연을 읽으면서 풍경이 펼쳐지고 이야기가 그려졌다. 곡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시인의 허락을 받아서 만든 곡이란다.

시와는 그런 사람이다. 좋은 글을 보면 상상을 하고 곡을 만드는.
다른 이의 트위터를 보고서도 곡을 만들었다. 이런 트윗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나는 당신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좋았다가 서운했다가
                    좋았다가 미웠다가 좋았다가 더더더 좋았다가
귀여웠다. 운율도 있고, 가사를 더 붙여 노래를 완성했다. 그 노래가 「나는 당신이」.
이 노래, 꼭 권하고 싶다. 실은 이 노랠 들으며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비가 오든 해가 짱짱하든, 여름날에 딱 어울리는 곡이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좋았다가 서운했다가/ 좋았다가 미웠다가 좋았다가/ 우리가 만난 진 한참 됐지 자랑삼아 말한 건 아냐… 더더더 좋았다가
이어서 마지막 곡으로 들려주는 「랄랄라」는 방점이다.
눈을 감고 노래를 듣는다. 흐르는 물소리가 어우러진 계곡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

흐르는 물소리/ 떨어지는 꽃잎/ 발소리 내는 것도 조심스럽게/ 흐르는 물속에/ 세상이 비치네/ 내 얼굴도 비춰볼까/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 랄라라


예쁘게 웃었던 여행의 기억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진심과 감정 표현이라면 시와의 음악은 충분하고 완전하다. 봉현 저자와의 만남을 위한 완벽한 복선이다. 책방 한 곳에 자리한,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에 실린 저자의 그림이 음악이라는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림에는 긴 시간 홀로 여행을 다닌 저자의 기억과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림도 그래서 감정이 있고, 마음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그 그림은 온전히 봉현 자체인 듯하다. 봉현도 기억에 남기고 싶은 장소가 많았다. 허나 알다시피,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은 백만분의 일도 담을 수 없다. 내가 그 공간에 있었음을 기억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기록하고 싶었다. 그림 속에 봉현이 들어가 있는 이유였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는 부모에게 잘 지내고 있음을 알리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어떤 독자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리만족을 취한다고도 했다.

“그런 일들이 이어지면서 여행 경비를 마련하고자 매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은 내가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고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다. 여행을 계속할 이유를 찾았다. 그래,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자.”(p.75)
여기만 아니라면, 여행이라기보다는 떠남에 의미를 둔 봉현도 어느 순간부터 매순간 즐겼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더라. 나는 여행이 삶을, 일상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변화된 내 모습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접었다. 그것이 얼마나 헛되고 전형적인 바람인지 깨달은 것이다. 그전까지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변화’였다. 나를 변화시킨다는 둥, 자아를 찾는다는 둥. 개소리였다. 사람살이에 탈출구 따위는 없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여행은 그저 ‘즐김’이었다. 그 순간 ‘까르페디엠(Carpe diem)’을 외치면서 푹 빠지는 것. 변화를 여행의 목적으로 두지 말 것이라는 경구는 유효했다. 그래서 나의 여행은 이후 한결 가벼워졌다. 인생 또한 하나의 여행이고 여정이라면 그러할 것임도.

“길의 끝에 도착하려고 걷는 것이 아니다. 길을 걷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외롭지 않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웃고, 진심으로 즐거웠다. 많은 생각을 하고, 행복하게 길을 걸었다.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온몸과 온정신을 다해 충실하게 살고 있다는 기분이었다.”(p.161)
그 덕일까. 책을 읽으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래서 카미노에서 저자가 아주 예쁘게 웃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지나치지 않고 사치스럽지도 않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여행자의 모습도 떠올릴 수 있다. 책 제목을 처음에 생각했던 ‘스물다섯, 문득’으로 짓지 않은 게 참 다행이다.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이 있을라고. 여행의 한 순간을 가장 잘 담아낸 제목이 아닌가 싶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풍경의 연속이다. 얼핏 보면 비슷하고 똑같아 보이지만, 햇빛 따라 바람 따라 기분 따라 다른 풍경이 된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아서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남겨놓고 싶지만 백만 분의 일도 담을 수 없다. 나만이 찰나의 순간 느낄 수 있기에 더욱더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세상은 참 아름답다.”(p.144)
책을 넘기면서 그림을 만나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노란색. 그림의 한 작은 부분마다 스며든 것이 노란색이다. 봉현이 처음 그렸던 그림은 대부분 칼라였다. 그러다 책에 싣는 그림은 흑백으로 통일을 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흑백만으로 하기 보다는 뭔가 악센트를 주고자했고, 선택은 노란색이었다.

“카미노에는 순례자의 길이 있다. 900km를 걷는 길인데,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서 걷는다. 그 노란색 화살표가 내가 어떻게 살고,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그런 것에 마음이 끌려서 자연스럽게 노란색을 쓰게 됐다.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데, 한 군데가 아닌 두 군데다. 카미노와 인도. 누군가 여행을 간다면 카미노는 반드시 권해준다.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가야하는데, 십년 치의 감상을 얻을 수 있다. 거기 가 본 사람들은 노란색 화살표에 공감을 많이 해준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나왔는데, 여기서도 계속해서 도시에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도시 생활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카미노’를 알게 되었다. 프랑스 국경부터 스페인 끝자락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한 달가량 90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가는 ‘순례자의 길’이 있다.”(p.130)
그렇게 걸었던 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책은 나에 대한, 남에 대한 이야기다. 즉,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와 남을 사랑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는 말한다. 떠나기 전, 그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노력했지만,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당시 그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남을 사랑할 순 없었다. 사랑하고 받는데 서툰 소녀였었다. 그랬던 그가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많은 것을 느끼면서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갔다. 떠나기 전 깔끔 떨고 깨끗한 척 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진짜 자신을 찾게 됐다. 털털하게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디서든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돌아오지 않겠다고 떠났지만 결국은 돌아와 2년 동안의 공백이 없었던 양 비슷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조금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과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는 법, 조금 가진 것만으로도 많이 누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p.345)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내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졌다. 여행을 다녀와서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 달라졌다고 말하더라. 씩씩하고 밝아졌다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줄도 알게 됐고, 혼자 있는 시간도 잘 보내게 됐다. 무엇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확신도 얻었다.”

“땀을 흘리고, 햇빛에 그을리고, 발과 손이 긁혀 피가 나고, 가방도 옷도 낡아갔지만, 나는 아주 예쁘게 웃는다.… 매일 그림을 그린다. 일기처럼 기록하고 남기면서 그날그날의 마음을 적어나간다. 즐겁고 행복하고 단순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간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내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나 건강하고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p.150)
떠나고 1년 정도 지나자 그토록 지긋지긋하던 서울이 그리워졌다. 그렇다고 돌아가도 잘 지낼 확신이 들진 않았다. 미루고 미뤘다. 2년이 됐다. 그때서야 이제는 돌아가도 되겠다, 나답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워서 돌아왔다. 예전에 지겨웠던 것들이 그립고 소중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편안하게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 양 죄책감을 느꼈었다.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이 소중하다는 걸 몰랐다.”(p.42)
변화를 목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여행은 그를 자연스레 변화시켰다. 떠났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2년 동안의 여행은 그를 어른으로 만든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여행을 즐겼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삶 또한 그렇게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살면서 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슬픔, 불행, 외로움 등을 피하려고만 하지 않기. 그 모든 것을 껴안고 친구처럼 살아가기. 노래와 그림이 있는 행복한 여름날, 나도 예쁘게 웃는다.

“별것 아닌 일상도 여행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잠이 드는 하루하루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내가 소중히 여길 수만 있다면 외로움도, 상처도, 허전함도 모두 삶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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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봉현 저 | 푸른지식
이 책은 우리 주위에서 만나는 평범한 이십대의 자아 찾기 과정이 일러스트와 함께 진솔하게 펼쳐진다. 스물다섯 어느 날 문득, 자기 자신과 서울의 모든 것이 싫어진 저자는 서울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여행길에 오른다. 쓸쓸한 베를린의 가난한 방에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왔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자기를 찾기 위한 긴 여행자의 길로 들어선다. 2년여 동안 유럽 일대와 중동, 인도 등을 여행하며 방랑한다. 산티아고 길도 두 번이나 걸었다. 그리고 그 방랑 끝에서 ‘아주 예쁘게 웃고 있는’ 자기 자신을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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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마우스는 왜 죽지 않는 불사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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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가 말한 혁신의 핵심에는 디자인이 있었다. 애플의 제품이 주는 디자인적 감성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지갑을 열게끔 했다. 디자인이 어떻게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지, 디자인 경영의 정점을 보여줬다. 어디서(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느냐가 중요했던 ‘Made in OOO’는 2000년대 들어 ‘Designed in OOO’라는 문법에도 맞지 않는 문구에 자리를 내줬다. 그렇다면 현재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디자인을 둘러싸고 어떤 흐름이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혁신이란 ‘디자인’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1980년대, 소니가 워크맨을 만들어내던 시기부터 모든 혁신은 디자인에서 시작되었고, 디자인으로 끝이 났다. 기술은 점차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으로 밀려났고, 디자이너가 기술자에게 제품의 사양을 제시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p.30)


저작권, 인정과 불인정의 사이

김 심사관, 문제를 낸다. 만약 내 집 담벼락에 누군가 그림을 그렸다면 마음대로 지울 수 있을까? 아니, 내 집의 담벼락인데, 당연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면, 오산! 법적으로 담벼락에 그린 그림을 마음대로 지울 수 없다. 저작권법 상의 원본이 유지될 권리, 동일성 유지권 때문이다. 김 심사관에 의하면, 저작권은 만드는 순간 발생하고 변경이나 발표 권리도 작가에게 있다. 또 공터에 농사를 짓는다고, 땅주인이 뽑을 수도 없다. 소유권에 우선한 경작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유권이 전능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내 집 담벼락에 낙서했을 때, 낙서한 장본인을 혼낼 수 있는 방법은? 기물훼손죄가 있다.

“‘거인의 어깨위의 난쟁이’. 뉴턴이 즐겨 썼던 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전에 쌓아온 지식 위에 나는 조그만 것을 올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저작권은 이런 것을 기본에 깔고 간다. 고양이만 그렸다고 내 저작권이 될 수 없다. 저작권을 따질 때는 인류가 이룬 업적이나 인류 공동의 자산은 빼고 내가 더한 것만 따진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만의 표현기법이 있다고해서 독점할 수는 없다. 표현기법에 대한 것이나 행위 자체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사람의 몸, 동작, 구도 등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

너훈아, 패튀김, 조용팔 등의 이른바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목소리, 인상, 머리 등을 원본 가수와 비슷하게 하는 것,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아무리 비슷해도 목소리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이 되지 않는다.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아주 독특한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헤어스타일에는 저작권이 없다. 옷(패션)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한국과 미국에선 옷에 대한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지만, 유럽에선 저작권을 인정한다. 유럽은 패션산업이 발전해서 베껴 쓰는 곳이 많고, 패션산업을 지키기 위해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재밌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유행하고 유명세를 떨쳤던 두 캐릭터, 마시마로와 졸라맨. 마시마로는 저작권을 통해 큰돈을 벌었으나 졸라맨은 돈을 벌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졸라맨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림을 처음 그릴 때 졸라맨과 비슷하게 그리는 표현 방법이라는 이유로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졸라맨은 저작권이 없느냐. 그렇지 않다. 플래시 동영상은 영상 저작물로 인정이 된다. 캐릭터에 대해선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또 졸라맨은 캐릭터 상품으로도 만들기가 무지하게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초상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도 있었다. 대개 공인인 대통령은 초상권에 대해 보호가 덜 된다. 한 작가가 오바마 사진을 토대로 2차적인 작품 포스터를 만들었다. 2차 저작물에 HOPE라는 글을 썼고, T-Shirt로 만들어 엄청나게 팔렸다. 그러자 오바마의 사진을 처음 찍었던 사진작가가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걸었다. 문제는 법정에서 불거졌다. 2차 저작물을 만든 작가가 사진을 보고 그리긴 했는데요, 라고 인정한 것. 게임이 끝났다. 2차 저작물의 작가는 벌었던 돈을 사진작가에게 줘야했다. 김 심사관이 전하는 교훈. “침해를 해도 인정하면 안 된다(웃음).” 한편 함부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고소하다가 명예훼손으로 걸리는 경우도 많단다. 저작권 침해소송을 남발해선 안 되는 이유.

“포장디자인에서 점점 손글씨가 늘어나고 있다. 손글씨는 미술저작물로 패키지에서는 상표로 보호받을 수 있다. 글자는 저작권이 없으나, 손글씨는 미술저작물로서 원한다면 특허청에 상표로 등록할 수 있다. 그러나 책 편집이나 포털사이트는 저작권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한정된 지면에 제한된 글자를 배치하는 것은 저작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다만 네이버는 녹색 네모박스를 상표로 등록해 놨다. 옷은 저작물로 인정이 안 되나 버버리는 100년 이상 자신들의 패턴으로 돈을 벌어왔고, 상표로 등록해 놨다. 상표법 적용이 가능하다. 등록상표다. 버버리 패턴을 따라하다가는 저작권 침해가 아닌 상표권 침해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어 김 심사관은 아파트와 관련한 소송도 이야기한다. 외관디자인 저작권 침해소송이 있었고, 아파트 외관을 그대로 따라한 경우, 저작권 침해가 인정됐다고 밝혔다. 다만 아파트 도면은 거의 비슷한 일반적인 예라서 저작권 침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저작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저작권 침해소송을 해서 떼돈을 벌지 못한다. 변호사 비용이나 시간, 기회비용, 평판 등을 생각하면 실리가 없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해서 저작권 침해소송을 걸어서 돈을 절대 못 번다. 함부로 남발하다가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도 있다. 확실히 따져보고 해야 한다.”




브랜드와 상표, 어떻게 따져봐야 할까?

TM. 트레이드 마크의 약자다. 등록된 상표라는 뜻이다. R이 붙어 있는 상표를 함부로 쓰면 상표권 침해가 된다. 한미FTA체결 이후 상표권 침해에 대한 규정이 크게 강화됐다. 할리데이비슨 소리는 할리데이비슨사의 상표이며, MGM영화마다 나오는 사자 포효소리도 상표고, 리바이스의 빨간 딱지도 위치상표다.

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1984년에 디자인한 매킨토시 초기 모델. 윈도우 시스템의 원형을 간직한 이 모델을 내놓고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다.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이것을 베껴서 윈도우 3.0을 만들었다. 마우스는 IBM에서 가져가서 발전적으로 만들었다. 쫓겨난 잡스, 픽사를 만들어 부활한 뒤 애플이 거의 망할 무렵, 다시 돌아와 디자인 혁신을 하고 지적재산권 방어에 적극 나선다. 직접 생산을 하는 않고 디자인에 역점을 뒀다.

“아이폰이 2007년에 나왔는데, 잡스는 변리사를 불러 일일이 특허를 건다. 매킨토시 초기 모델을 만들어놓고 저작권으로 피 본 경험 때문에 그랬다. 미국은 디자인을 특허권으로 보호해준다. 우리나라는 디자인보호법으로 부른다. 잡스는 외관 디자인을 스무 개로 쪼개 특허권을 걸고, 박스는 물론 아이콘도 상표권으로 걸었다. 밀어서 잠금 해제, ‘스티브 잡스 특허’로 불린다. 디자인 하는 사람들은 지재권으로 걸 생각을 안 했는데, 많은 것을 특허로 걸었다.”

잡스는 화면은 물론 아이콘 하나하나, 운영체제 등 모든 것을 특허로 걸고 삼성전자와 소송을 했다. 특허는 만든 사람, 유통한 사람, 판매한 사람 모두를 잡을 수 있다. 아이콘은 구글이 만들었으나 유통?판매는 삼성이 했다는 이유로 애플은 삼성을 걸고 넘어졌다. 애플이 구글을 걸면 미국 기업끼리 싸우는 모양새가 나오기 때문에 삼성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는 것. 미국 배심원들은 애플 손을 들어줬다. 잡스는 직원이 꿈꾼 내용까지 특허로 만들고, 아이폰 전체를 상표로 만들었다.

“가까운 미래에 디자인 경영은 종말을 고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자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지재권 전문법률가가 차지하였듯이, 디자이너를 기술자화시켜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 기업의 지식재산권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필수 이행과정이 되었다.”(p.30)
김 심사관에 의하면 상표권이 가장 힘이 세고 오래 간다. 특허는 20년, 디자인 저작은 15년을 가는데, 상표권은 돈만 내면 무한대로 간다. 그런 의미에서 상표는 참 재밌는 지점이 있다.

“나이키는 디자인 등록을 하지 않는다. 상표와 특허권으로 디자인을 보호한다. 리복은 97년부터 밑창을 상표로 등록했다. 이들은 상표와 특허로 수백 가지 상품을 보호하고 있다. 특허로 걸면 일단 베끼지 못한다. 가령 특허 받은 음식, 느낌이 어떤가. 특허청이 맛을 평가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특허권이 걸려 있다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든다. 쓰레기 같은 특허도 많은데, 아무짝에 쓸모없는 특허도 그런 효과가 있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특허를 100개도 넘게 만들 수 있다. 미국에선 미키마우스 연장법이 저작권 시효를 20년 더 연장시켜 미키마우스도 70년이 지나면 끝나면 저작권이 풀리나 월드 디즈니는 상표권 등록을 했다. 미키 마우스는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가 됐다. 인류 공동의 자산인데 미국에서는 상표가 된다. 인정을 해준다. FTA 때문에 우리나라도 곧 들어올 것이다. ‘주지 저명성’의 활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는 상표권과 저작권법이 미국의 산업을 보호한다. 작가가 죽고 나서도 무려 70년이나 그 권리를 보호해 주니, 월트 디즈니 사후에 자식과 손자와 증손자까지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든든한 금액을 챙겨주고, 미국의 세금으로 고스란히 흡수된다. 미국의 각종 산업은 특허법과 상표법, 저작권법, 부정경쟁방지법, 영업비밀보호법 등의 보호장치들로 둘러싸여 공장 없이 제품을 생산하고, 타국의 회사를 집어삼키고, 경영권을 간섭하고 있다.”(p.33)
날개 없는 다이슨 선풍기가 크게 히트를 쳤다. 그런데 코스텔이라는 업체에서 날개 없는 선풍기를 내놨고, 다이슨이 특허소송을 내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피해간 건가?

모두 팬이 없다. 두 개가 같다고 생각하는데, 팬이 없다고 해서 다 침해가 되는 게 아니다. 모양이 달랐다. 모양이 달라서 디자인 침해는 되지 않고 특허 침해는 소송이 진행 중으로 알고 있다. 다이슨은 날개가 없으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좀 더 까보면서 지켜봐야 한다. 잘못하면 영업방해나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도 있다. 소송을 당한 회사는 피해놓을 방법을 만들어놓고 제품을 내놓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피해갈 수도 있다.

디자인관련법이 어떤 기준으로 개정돼야 하고 디자인업계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디자인보호법이니까 디자인이면 다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디자이너는 저작자도 아니고, 아무데서도 보호받을 수 없다. 디자인보호법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기업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디자이너를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남의 것을 베껴서 소송해서 지면 번 것에 대해서만 돈을 주면 그만이다. 미국은 벌금을 추가로 3배 더 물린다. 우리나라는 간신히 이겨도 원래의 돈 밖에 못 받는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에 대해선 돈을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도 징벌적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자 할 때 프로그래밍과 함께 디자인이 들어갈 텐데, 지재권 개념에 대해 알고 싶다.

소프트웨어보호법이 저작권보호법에 들어갔고, 프로그래밍을 만든 뒤 저작권등록을 하면서 개발자 등을 써놓으면 저작권위원회 서버에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누군가 소송을 걸었을 때 강력한 힘이 된다. 소프트웨어를 보호하려면 저작권위원회에 등록하는 게 확실하다. 이때의 디자인은 굳이 등록을 안 해도 저작권등록이 된다. 운영체제는 가능하면 특허를 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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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전쟁
김종균 저 | 홍시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지재권 경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법률 지식과 관리 방법을 한데 모은 최초의 책이다. 저자는 현장 경험과 수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컨설팅을 위해 만났던 중소기업 대표, 지자체 공무원, 기획실/홍보팀, 농어민 단체 담당자 등의 눈높이로 전문성 있는 내용을 흥미롭고 쉽게 썼다. 국내외 디자인 경영과 지재권 분쟁의 다양한 사례들이 적재적소에서 이해를 도우며, 실제 기업 경영에 반드시 적용해야 할 내용들이 알기 쉽게 제시되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닥스훈트는 왜 몸통이 길고 다리가 짧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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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만큼 인간과 가까이 지내는 동물은 없다. 반려동물 가운데서도 개는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아이들에게도 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다. 다른 생명에 대한 존재와 가치를 자연스레 습득하게 하고,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이에 아이들을 초대해 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황 선생은 재일 한국인 3세로, 책을 통해 어린이에게 동물과 교감하는 방법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있는 작가다. 지난 2006년, 한국에도 나온, 『코끼리 사쿠라』로 일본아동문학자협회가 주최한 제1회 ‘어린이를 위한 감동 논픽션 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탔다.




우리의 토종개들

“옛날부터 한반도에는 여러 종류의 개가 우리 민족과 함께 살고 있었어. 특히 진도, 제주, 거제, 경주, 해남 등지에 순수 혈통의 토종개가 많았단다. 그런데 오늘날 한반도의 토종개라고 인정받는 개들은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 그리고 얼마 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주개 동경이 뿐이야.”(p.32)
김 선생은 우리의 토종개를 하나씩 꺼냈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고 한국을 대표하는 진돗개. 천연기념물 제53호다. 1938년 한국 개로는 처음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진돗개는 주인에게 충실하다는 점에서 한국 사람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팔려갔다가 300킬로미터를 돌아온 진돗개 백구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진도에는 ‘돌아온 백구상’이 있다.

털복숭이 삽살개도 빠질 수 없다. 천연기념물 368호인 삽살개는 털이 길어서 눈을 덮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귀신을 쫓는 개로 유명한데, 조선시대에는 삽살개 그림을 집 앞에 붙여서 나쁜 귀신이 오지 않도록 했다. 삽살개는 ‘악귀를 쫓는 개’라는 뜻이다. 신라시대 왕실의 개였던 삽살개는 조선시대에 서민적인 개가 됐다.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368호인 풍산개는 호랑이 잡는 사냥개로 유명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남북 정상이 서로 개를 교환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풍산개를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진돗개를 기증했다. 이 풍산개를 만나고 싶어서 김황 선생은 2004년 서울대공원을 찾았고, 풍산개와 함께 산책을 했다.

작년에 새로 천연기념물이 된 개가 있다. 제540호로 지정된 경주개 동경이는 고려시대 경주를 ‘동경’이라고 불렀고, 경주에서 볼 수 있는 개여서 동경이로 불렸다. 동경이의 특징은 꼬리가 없거나 아주 짧다는 것. 신라시대 토우에도 자주 나오는 이 개는 남아 있지 않았을 거라고 여겨졌으나, 7년간의 조사와 연구 결과, 2012년 토종개로 인정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외국의 개

개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이름을 대며 집중하던 아이들은 외국의 개에도 관심을 보였다. 물론 함께 한 부모에게도 개 이름을 물어보며 부모와 아이를 함께 생각한 김 선생의 진행이 돋보인다. 토종개에 이어 외국의 개들도 하나씩 소개됐다.

웰시 코기다. 가축을 돌보는 목축견, 목양견인 이 개는 동경이처럼 꼬리가 없거나 극히 짧다. 그러나 원래 없거나 짧았던 동경이와 달리 웰시 코기는 원래는 꼬리가 있었다. 가축들을 돌봐야 하는데, 꼬리가 밟힐 우려 때문에 어릴 때 꼬리를 잘랐다. 그래서 요즘은 자르지 않는다고 한다. 웰시 코기가 실제로 목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새 사냥을 도와주는 레브라도레트리버가 등장한다. 레트리버는 물에 뛰어들어 사냥감을 가져오도록 개량된 개로 ‘레트리버’는 회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 한편 동물 사냥을 도와주는 사냥견도 있었다. 미니어처 닥스훈트가 대표적이다. 몸통이 길고 다리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알쏭달쏭한 아이들에게 김 선생이 알려준다. “땅에 구멍을 파고 사는 오소리를 잡기 위해서 다리를 개량했어요.”

쥐 같은 작은 동물의 사냥을 도와주는 테리어도 있었다. 에어데일테리어가 대표적으로, 테리어 가운데 가장 커서 ‘테리어의 왕’이라고 불렸다. 테리어는 라틴어로 흙을 의미한다. 땅속에 있는 작은 동물을 잡는데, 에어데일테리어는 수달 사냥을 주로 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역견도 있었다. 위험하거나 큰 힘이 필요한 일을 하는데, 세인트버나드가 대표적이다. 구조견으로 주로 활동하는데, 산에서 조난당한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한다. 김 선생이 세인트버나드 사진에서 목에 달린 작은 나무통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물었다. 한 아이가 맞췄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술이 정답이다.

이밖에 애완동물로 길들인 개, 치와와를 언급했고, 달마시안의 사진도 보여준다. 달마시안에 대한 과거도 알려준다. 달마시안은 과거 마차의 경비견이었다. 옛날 거리가 어두워서 마차 앞에 달마시안이 달렸다. 달마시안의 무늬가 어둠 속에서 눈에 잘 띄었기 때문이다. 불독이라고 빠질 수 없다. 투견이었던 불독의 생김새에서 하늘로 향하고 있는 불독의 코는 이유가 있었다. 소를 물고도 호흡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고마워! 도우미견

개들은 인간을 위해 하는 일이 많다. 예전의 개는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들을 돕거나 집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짐을 지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전과 다른 또 다른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독일어로 양치기라는 뜻을 지닌 저먼 셰퍼드. 범죄수사를 돕는 경찰견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셰퍼드는 세관에서 마약을 감지하고 마약 탐지견으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또 지진 등의 재난이 일어났을 때 냄새를 맡아 조난자를 찾는 인명 구조견으로도 활동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인명 구조견 ‘백두’가 있었다. 119구조단에서 활동한 백두는 각종 재난 현장에서 15명의 생명을 구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까지 나가서 활약을 하기도 했다.

사람의 눈이 되어주는 시각장애인 도우미견도 빠뜨릴 수 없다. 래브라도 레트리버는 사냥감을 주워오는 일 외에도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이자 도우미견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친근감을 주는 외모에 힘이 있어서 도우미견으로 활동이 가능하다.

“시각 장애인 도우미견으로는 골든레트리버와 래브라도레트리버가 주로 활동해. 레트리버 종은 선천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견종이야.”(p.123)
김 선생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 차별의 말이라고 설명했다. 불교경전인 열반경에서 유래한 이 이야기는 각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의 한 부분씩만 만져보고 그것에 대해 판단한 것을 담고 있다. 누군가는 코를 만지면서 뱀 같은 동물이라고 했고, 상아를 만진 이는 송곳 같다고 말했으며, 귀를 만진 시각장애인은 부채 같다고 하는 등 사물을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전체를 못보고 일부만 보고 나쁘게 평가하는 것에 대한 교훈인데, 이 이야기를 고증해보자는 사람이 있었다. 시각장애인은 정말 코끼리를 알 수 없을까? 아니다. 마음으로 본 코끼리로 그들 각자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이 만져보고 그린 코끼리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다르다. 과연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마음으로 보고 만든 코끼리가 얼마나 상상력이 뛰어난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김 선생은 이어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을 널리 알린 일본의 ‘사브’이야기를 꺼낸다. 일본에도 30년 전만해도 도우미견에 대한 이해가 없었단다. 그런데 사브라는 개가 이런 인식을 바꿨고, 미국에도 초대받아 영웅 칭호를 받았다. 일본에선 『훌륭하다, 사브』라는 책으로도 나왔다.

“도우미견 사브도 어릴 때는 여느 보통의 집에서 자랐다. 그러다 커서 도우미견으로 훈련을 받았다. 7개월 간 훈련을 받고, 10년이나 도우미견을 기다린 시각장애인과 만났다. 사브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1987년 11월 사브를 키운 훈련사들이 4마리의 도우미견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다. 이어 1988년 서울 장애인 올림픽이 열리고 역사상 최초로 25마리의 도우미견이 행진을 했다. 그러나 그 도우미견은 일본의 개들이었다. 그래서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형구 씨가 1993년 ‘나들이’와 ‘마실이’를 우리나라 최초의 도우미견으로 만들었다.”

지금 도우미견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믹스견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래브라두들이 그것으로, 레트리버(털이 빠지나 성격이 좋다)와 푸들(털이 빠지지 않으나 성격이 좋지 않다)을 교미한 믹스견이다. 믹스견은 서로 다른 종의 개를 의식적으로 교배해서 만든 개다. 국내의 래브라두들 ‘버팀이’는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으로 활약하다가 지금은 은퇴했다. 김 선생은 프로골퍼 신지애가 장애인 도우미견 육성을 위해 지난 2011년 1억 원을 기부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도우미견에 대한 관심을 널리 퍼지게 해달라는 당부의 말로 이날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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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랜 친구 개
김황 글/김은주 그림 | 논장
김황 작가는 재일 한국인 3세로, 생물학을 전공한 뒤 주로 어린이를 위한 동물 책을 쓰는 동물 전문 작가이다. 특히 《인간의 오랜 친구 개》는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여 인터뷰를 하고 손수 사진을 찍으며 발로 뛰어 쓴 소중한 결과물이다. 경산의 삽살개 목장,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서울대공원 등을 직접 취재하여 쓴 글은 옆에서 들려주듯이 때로는 대화하듯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에는 현장감이 넘친다. 우리 곁의 다양한 생명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깊은 속마음 역시 따뜻하게 전해 온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영세 디자이너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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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퍼플피플’이 세상을 이끈다

디자이너 김영세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한국인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디자인 전문 회사 이노디자인의 CEO로서 언제나 변화와 혁신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고, 창의와 창조를 키워드로 하는 삶을 살아왔다.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기억되는 아이리버의 MP3 플레이어와 라네즈의 슬라이딩 팩트, ‘가로 본능’으로 유명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가 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전자제품 뿐만 아니라 주방 용품과 욕실 용품, 조명기기와 골프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제품들이 김영세 디자이너표 옷을 입고 제2의 탄생을 맞았다. 늘 한 발 앞서가며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도해 온 그이기에 세계적인 명성도 뒤따랐다.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의 IDEA(국제 디자인 최우수상)에서 금ㆍ은ㆍ동상을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긴 그를 세계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디자인 전문지인 <디자인DESIGN>은 그의 활동을 커버스토리로 다뤘고, 일본 경제지 <닛케이Nikkei>는 이노디자인을 세계 10대 디자인 회사로 소개했다.

그의 끊임없는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도전 정신은 ‘산업 디자인’이라는 틀 속에 가둬두기에는 너무나 역동적이고 거대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제품과 공간을 뛰어넘어 신인류를 디자인하기에 이르렀다. 모두가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정의하려고 하지 않았던,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스타일의 리더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유튜브의 스티브 첸,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사람들이다. 김영세 디자이너는 1986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실리콘밸리에 디자인 기업을 설립하면서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관찰해왔다. 김영세의 눈에 비친 그들은 과거의 직업관이나 성공의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노는 듯 일하는 모습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김영세는 그들에게 별명을 붙여주기로 한다. 바로 『퍼플피플』이다.




미쳐야 빛난다

과연 『퍼플피플』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무엇이 그들을 『퍼플피플』로 만들었을까. 이와 같은 질문을 품고 독자들이 김영세 디자이너와 만났다. 김영세 디자이너는 퍼플피플의 정의와 특징, 그리고 퍼플피플로서 살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들려주었다.

“흔히 근로자들을 표현할 때 ‘화이트 컬러’와 ‘블루 컬러’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어느 날 문득, 그 표현이 너무 올드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무언가 다른 컬러가 탄생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세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블루 컬러와 화이트 컬러, 그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인재들이 있잖아요. 그 새로운 컬러를 지정하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하고 ‘퍼플피플’이라고 이름 붙여 봤어요. 퍼플 컬러의 특징이라면 고급스럽고, 특이하고, 신비롭다는 거죠.”

김영세 디자이너는 『퍼플피플』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고귀한 창의적 생산 활동을 규정할 컬러로 퍼플만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오래 전부터 고귀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보라색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저자가 만나온 ‘퍼플피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앞서 간 사람들이 세워놓은 성공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걷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일, 자신을 즐겁게 만들고 가슴 뛰는 일을 찾아 새롭게 길을 낸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영세 디자이너는 그들을 창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창의가 고귀하다고 이야기한다.

“狂光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쳐야 빛난다는 거죠. 미친다는 것은 남이 못 말리게 무언가에 빠지는 거예요. 전문적인 용어로 쓸 때 미친다는 것은 그들의 미침이 많은 사람들한테 기쁨도 주고, 생활도 편리하게 해주고, 영향력을 미치면서 여러 가지 관련을 만들어간다는 의미예요. 요즘의 미친 사람들을 보세요. 자기가 미치게 좋아서 프로그램, 디바이스, 아이디어, 기업, 플랫폼들을 만들어냈죠. 그런데 그것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한테 기쁨을 주고 돈도 벌게 해주고, 그야말로 그들의 라이프를 움직이잖아요. 그 변화를 이룬 것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디자인의 영감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얻는다

김영세 디자이너는 지금의 세대를 ‘C 제너레이션’이라 일컬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열정이 다른 이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을 할 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듯이 디자인하라’고 말한다. “Design is loving others!”, 디자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디자인을 통해 좋은 물건을 만들고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은 김영세에게 최우선적인 가치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디자인할 때, 상상만으로도 흥분되고 기쁜 순간이다. 그의 아이디어의 출처가 대부분 사람인 것은, 언제나 사람을 향하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제 아이디어의 원천은 ‘anytime, anywhere’라고 할 수 있어요. ‘언제든, 어디서든’ 생겨난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비결이라고 한다면 ‘필사적으로 찾고 있을 때 보인다’는 거예요. 기회를 잡는 순간을 기획할 수는 없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야 우연히 그 순간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동기 부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느 순간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었을 때 그것을 준 것은 항상 사람이었던 것 같거든요. 물론 언제나 같은 류의 사람을 만나서 영감을 얻는 건 아니에요. 운명에 맡기면서 살다보면 영감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저자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한 마디’를 남기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 이야기는 꿈과 창의, 열정과 사람, 도전과 혁신으로 요약되는 『퍼플피플』의 메시지와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재주를 타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피카소도 ‘누구나 예술가로 태어났다, 다만 예술가로 남는 것이 힘들 뿐이다’라고 얘기했더라고요. 굉장히 공감이 가요. 살다보면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데도 그것을 발현할 수 없을 때도 있죠.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창의적인 방향으로 예술적 재능을 접목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일을 할 때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 일(my business)이라고 생각하면 내일(tomorrow)이 생겨요. 너무나 진부한 얘기일지는 몰라도 창의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꿈을 크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사랑하다 보면 할 일은 눈덩이처럼 많아져요. 그렇게 삶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즈니스가 일어나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일도 일어나고요. 창작이라는 것도 생기죠. 그런 창작을 통하면 생산품 혹은 부가 가치가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실패예요

김영세 디자이너의 뒤를 이어 힙합 그룹 ‘It Item’의 멤버 ‘Nop. K’가 무대에 올랐다. 『퍼플피플』의 독자들을 위해 마련된 공연이었다. 강연의 식지 않는 열기가 공연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그리고 독자들에게 전해졌다. 김영세 디자이너와 퍼플피플들에게 궁금한 점들을 독자들이 묻고 김영세 디자이너가 답했다.

최근에 디자인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디자인한 것들이 전부 다 중요하고 소중한데요. 최근에 한국에서 보람을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이촌 역에서부터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이어지는 터널을 디자인한 거예요. 가끔 주말에 찾아가서 제 디자인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감상해요. 지금까지 10번 가까이 갔는데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어요. 그렇게 중요한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한국정부가 저한테 의뢰했다는 점에서, 정말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였죠. ‘어떤 작품을 만들까’ 고민 끝에 떠오른 테마가 ‘모던 코리아’였어요. 현대적인 한국의 모습을 담자고 생각했죠. ‘공간의 건축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발상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곳에서 한국을 느끼게 하고 싶었거든요. 디자인 콘셉트는 디자이너 마음의 표현인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저는 코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건곤감리 4괘를 천장에 조명하고, 벽에는 음양을 나타내는 태극의 곡선을 LED 라이트로 표현했어요. 황병기 선생님의 비단길이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하고요. 조명과 음악과 디자인을 합쳐서 모던 코리아를 표현하고자 했던 건데, 상당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항상 젊은 감각의 디자인적 사고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철이 안 들어서 그렇겠죠(웃음). 디자인은 항상 시작인 것 같아요. 프로젝트 시작할 때 저는 항상 신인 같은 마음이에요. 무슨 프로젝트든 해봤던 걸 하는 게 아니라 항상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죠. 항상 시작하는 느낌으로 늘 내일이 기다려지는 생활을 하기도 하고요. 아침에 출근할 때 ‘오늘은 무슨 만남이 있을까, 어떤 아이디어와 만날까’하고 호기심과 설렘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처음 시작하는 사람과 똑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까 그 수준에 머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돼요. 디자이너는 나이가 없어야 될 것 같아요. 아이들 장난감을 디자인할 때는 아이들처럼 되어야 하고, 어른들을 위한 디자인을 할 때는 어른처럼 되어야 하고요. 저는 연륜이라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이야기 나누면서 연결되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저는 운명적으로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하면서 계속 아이디어가 생겨요. 아마도 제가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어차피 제 인생은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항상 실패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실패는 중요하지 않고 그것이 꼭 반전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포기하면 문제지만, 실패한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시도했을 때 오히려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저의 느낌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믿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끌리는 대로 하고 있어요. 퍼플피플의 핵심 중에 하나도 그거예요. 어느 누구도 과학적으로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신은 하고 싶은 일조차도 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합니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들려오지만, ‘당신은 너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문제야’ 라고 말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어요. 저는 젊은이들에게 자기가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못된 짓도 아니고, 위험한 짓도 아니고, 실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예요. 자기가 스스로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이는 것이 창조적인 퍼플피플이 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에서 동기를 부여받으시나요?

동기 부여는 자신의 장기나 능력을 발휘하고 싶을 때 생기는 것 같아요. 가수가 노래하고 싶은 것과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싶어 하는 것이 똑같을 것 같거든요. 결국 누구나 다 박수 받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사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동기가 돼요. 혼자라고 생각할 때는 동기 부여라는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우리는 함께이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생기는 거죠. 내가 기쁘기 위해서 남을 기쁘게 해줘야 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요. ‘인간으로서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것인가’라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하고 싶은 원초적인 열망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보는 거죠. 제 경우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때 동기가 약해지더라고요. 돌아보면 제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고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이라는 회사를 만들었을 때, 동기는 돈이 아니었더라고요. 돈벌이를 목표로 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제게 동기가 되는 건 여러분들의 눈빛이에요. 여러분들이 저를 바라봐주는 눈빛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를 던지고 싶어 하는 거죠.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남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다들 있으실 것 같아요. 그걸 믿으시면 돼요.

이노디자인에서 함께 일할 디자이너를 뽑으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실력이 있어야 될 것 같고요(웃음). 인연이 있어야 될 것 같고, 또 정성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특별히 다른 건 없고요, 적극적으로 저희한테 찾아오셨으면 해요. 저희가 스태프들을 찾아 나서지 않거든요. 제 철학이 저랑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농도가 짙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찾는 방식 중에 하나는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서 최고를 찾는 거죠. 우리가 찾아 나서서 평범한 기준의 잣대로 사람을 뽑는다면 특별한 디자인 회사가 될 수 없어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디자인 회사는 머릿속이 중요하지 머리수가 중요하지 않거든요. 한 사람이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중요하고 힘들고, 일반인 100명의 아이디어를 가져야 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희귀하죠. 거의 국가대표 축구팀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수백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에이전시를 통해서 사람을 찾았던 적이 전혀 없고, 한 번도 공고를 통해 모집해 본 적이 없어요. 이노디자인은 저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뭉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퍼플피플』을 통해 디자이너 김영세는 퍼플피플들의 특징에 대해 소개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해 자유를 만끽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들은 퍼플피플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가 되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성공을 위해 그러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그 부분이 김영세 디자이너가 『퍼플피플』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퍼플피플』을 통해 보게 될 것은 성공의 그림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과 그 과정에서의 창의와 도전,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어떻게 성공으로 이어지는지 그 과정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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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피플
김영세 저 | 교보문고
이 책은 디자인을 통해 창의와 혁신에 다가서고자 했던 김영세가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한 또 다른 미래 창조자들의 이야기다.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트위터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소통한 결과물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청춘들의 질문에 가장 솔직하고 냉정한, 그러나 사랑과 걱정이 담긴 진심을 담은 대답을 더했다. 독자들은 『퍼플피플』을 통해 창의시대에 도전하는 용기는 물론 자신의 일과 가치와 삶을 스스로 디자인해 나가는 길을 발견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사마천의 8글자, 과거에 모든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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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저자는 중국 전문가로 학계와 문화계에서 활약하는 국내의 몇 안 되는 중국 전문가다. 중국 소진학회 초빙이사이자 중국 사마천 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중국사를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여러 번역서와 연구서를 펴냈다.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탐구』,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가 바로 그 예다. 이번 강의에서는 중국이 바라보는 역사와 사마천의 『사기』 속에 나오는 고사성어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국의 지혜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

중국은 과거사를 중시한다. 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이 가장 잘 만드는 영화는 ‘SF’다. 그에 비해 중국은 역사가 가미되어 있는 무협영화를 잘 만든다. 미국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로 가고, 중국은 과거로 간다. 중국은 모든 답이 역사에 있다고 생각하고 과거를 통해 지혜를 얻고 해결책을 찾는다. 미국은 300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으므로 계속해서 미래로 간다. 역사학자나 사회학자는 미국이 로마의 마지막 모습, 즉 몰락단계에 있다고 보고, 중국은 발전해나가는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앞으로 100년 이내 중국의 세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언했다. 실제로 제2외국어마저도 이미 많은 사람이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이어서 김영수는 한국이 중국에 추월당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는 정치, 중국의 지도체제다. 중국에서 상무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대 20년을 인증과 검증을 받지 않으면 상무위원이 될 수 없는 체제다. 70세 이상은 상무위원이 될 수 없으므로 알아서 나가고, 그렇게 돌고 도는 순환체제로 잘 이루어져 있다. 둘째도 정치적인 측면이다. 전 정권이 차기 정권을 위해 모든 설거지를 해주고 떠난다. 그에 비해 한국은 복잡한 문제를 다음 정권에까지 남긴다. 셋째는 여성의 지위문제다. 중국이 세계 5위 정도 해당하며 그냥 5위가 아니라 국민소득을 따지지 않고 5위인 것이다. 최고지도자 중 30퍼센트가 여성이며 경제 쪽도 마찬가지다.


주극생난(酒極生亂)

이번 강의의 제목은 ‘주극생난’이다. 도가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난리가 난다는 뜻이다. 저자는 ‘낙극생비’라는 말도 설명했다. 즐거움도 도가 지나치면 슬퍼진다는 뜻이다. 저자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학교 교사를 3년 동안 한 적이 있다. 20대 중반이고 펄펄 뛰어다닐 때였으니 다른 선생들과 술을 정말 자주, 많이 마시곤 했다. 하루는 집에서 술에 취한 채로 자다가 물이 생각나서 깼다. 미닫이 문을 열면 마당으로 이어지는 턱이 한 뼘도 안 되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는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러고 살지?’하면서 말이다. (웃음) 이렇듯 사마천은 기가 막히게도, 8글자로 인간의 삶의 문제, 지나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사마천을 언급한 내용의 시 몇 개와 영화 <넘버3>의 일부 장면이 편집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사마천
                                         -박경리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낯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박경리 시인의 시 중에서 사마천을 언급한 시가 몇 개 있다.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에는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구절이 있다. 김영수 저자가 보여준 영상에는 영화 <넘버3>의 장면 몇 개가 담겨있는데, 말할 때 사자성어 쓰는 버릇이 있는 ‘염쟁이’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염쟁이’가 호텔 인수 건으로 거래하면서 내뱉는 고사성어들은 스크린 위에 모두 한자로 적힌다. 영화 <넘버3>제작자는 이 장면에 어울릴 사자성어를 고민하다, 김영수 저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사자성어에는 압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사기에 나오는 사자성어만 600항목에 이르고 속담이나 격언, 명언 등을 합치면 1,200항목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만큼 사기는 대단한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영수 저자는 고사성어의 매력을 이렇게 8가지로 정리했다.

1. 압축의 묘미
2. 역사와 문화의 축적
3. 현장성과 드라마적 요소
4. 가치개념을 내포한 귀중한 팩트(FACT)
5. 지적 욕구와 지적 호기심 충족
6.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
7. 중국(인) 이해의 지름길
8. 언어의 소금(비유, 과장, 대비, 대구, 운율)

고사성어에는 압축의 묘미는 물론이고 4글자, 8글자를 통해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으며 자아 성찰의 계기를 준다. 중국인의 사유체계와 심리를 제대로 알려면 고사성어를 배워 그 의미를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




우리나라 정치권의 문제, 인문학에 무관심

김영수를 찾는 곳은 주로 대기업이 많다고 한다. 처음 갔던 곳이 삼성이었고 지금까지도 강연을 진행한다. 반면저자를 한 번도 찾지 않은 곳은 정치계. 자신이 펴낸 책에 싫은 소리, 쓴소리만 있어서일 것이라고 이유를 추측했다. 청와대의 높은 곳에 자리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중국방문을 하는데, 방명록에 적을 만한 글을 알려줄 수 있을까?’ 하고 조언을 구한 적은 있다. 그래서 국무상강무상약(國無常强無常弱)이라는 7글자를 알려주었다. 한비자가 한 말이며, ‘영원히 강한 나라도 없고, 영원히 약한 나라도 없다’는 뜻이다. 대한항공 광고에도 나온 말이다. 이 7자로 중국인들에게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한마디 덧붙여 쓰라고 했다. ‘문화야말로 진정한 국력이다’. 이것이 한국이 안고 있는 가장 구조적인 문제다. 뒤떨어진다. 인문학 강의의 중요성을 알고 수 백만 원을 들여서라도 가장 빠르게 강연회를 마련한 곳은 대기업뿐이었다. 그들이 무엇이 중요한지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문제에 직면할 때 과거를 통해 지혜를 얻는 중국과 더 나은 미래만 계획해가는 미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지금은 비록 뚜렷한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듯 보여도 저자의 예언대로 곧 중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또한 중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사기』는 읽는 나이에 따라 그 느낌과 반응이 다르다고 합니다. 10대 때 읽으면 재미난 이야기에 넋을 빼앗기고, 대학 시절에 읽으면 사마천의 문제와 시대를 관통하는 기풍에 흠뻑 빠져들고, 중년 이후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읽으면 인정(人情)과 세상사 이치의 본질을 곱씹으며 마치 지금의 내 모습을 2,000년 전 미리 예견하기라도 한 것 같은 사마천의 통찰력에 탄복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읽든 시공을 초월하여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기』 의 주옥 같은 고사성어(故事成語) 가 가진 맛일 것입니다.“ (7p. 저자서문)

Tip, 『사기』 읽는 방법

사기는 5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근본의 되는 기록의 뜻인 12권의 제왕절기 ‘12본기’, 그리고 중국 시대사의 연표‘10표’, 국가제도와 문물을 전문적으로 기록한 논문과 같은 ‘8서’, 제후들에 관한 기본적인 기록인 ‘30세가’, 사회 각계각층 사람들의 위대한 행적을 기록한 ‘70열전’, 이렇게 5체제다. 130권 가운데 70권이 ‘열전’이며 보통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반 이상 담았다. 중국 역사나 지리, 왕들에 대한 기록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12본기’부터 읽는 것이 맞고, ‘세가’와 ‘열전’을 이어서 읽으면 이 시대에 이 제국, 이 인물이 위대했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체제로 이루어져있지만 각각 독립적인 체제, 그면서도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One for All, All for One’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처럼 사기는 각 체제들이 상당히 유기적이다.


(※ 이미지는 2012년 3월 26일 인터뷰 사진으로 본 강연과 관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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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 본기 1사마천 저/김영수 역 | 알마

사마천의 「사기」는 꼭 읽어야 하는 동양고전의 목록 중에서 빠지지 않는 타이틀 가운데 하나이다.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누구나 완독할 수 없는 「사기」를 20년 넘게 연구하고, 「사기」의 완역본을 위해 고민을 거듭한 학자 '김영수'의 『완역사기본기』가 출간되었다. 역자는 고전이라는 부담감에 선뜻 읽을 결심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사기」를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누구나 쉽게 본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장치를 마련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유정 “사이코패스 인간에 흥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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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 잡은 정유정 작가의 이번 신작은 발간되기 전부터 이미 큰 화제였다. 한국 문단에서 보기 드문 강력한 서사와 장르적인 긴장감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써나가는 소설가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설 『28』은 출간 2주 만에 8만부가 팔리며 한국 소설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주인공이 섹시해야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 작가보다는 소설가, 소설가보다는 이야기꾼이 좋다고 말하는 소설가.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 곁을 찾아온 이야기꾼 정유정의 ‘향긋한 북살롱’ 그 유쾌했던 시간을 옮긴다.




제목을 『28』이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28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밖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고, 괴질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시간. 그 시간 속에 삶은 너무나도 폭력적이다. 이 무기력한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 28일을 잡았다. 또 다른 것은 암시다. 2 8은 10. 결국 0이다. 제목에서부터 이 도시가 폐허가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독자들이 살다가 화가 나셨을 때, 책 제목을 한번 크게 소리 내 읽어보시라고 정한 거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슬럼프를 심하게 겪었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인가?

초고를 끝낸 다음이었다. 보충 취재를 나가서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고 다시 원고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6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처음 2주 정도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서 지리산 둘레길을 8킬로씩 걸었다. 2주가 지나고 나니 서서히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글이 점점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료조사를 너무 많이 한 탓이었다. 처음에 쓴 2,500매를 버리고 시놉시스만 가지고 다시 글을 썼다. 그렇게 4개월 정도 쓰고 나니 이제 책을 출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작품을 쓸 때, 수정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는 뺄셈의 방식으로 글을 쓴다. 일단 초고를 많이 쓴 다음, 읽어가며 덜어내는 식이다.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번 소설은 수년 전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들이 대거 생매장되는 장면을 보면서 구상했다. 누군가가 몰래 찍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이었다. 구제역이 의심되는 돼지들이 산 채로 땅에 묻혔고, 돼지들의 울음소리는 새벽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 울음소리가 내 몸을 쥐어뜯는 것 같았다. 참담했다. 많이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저 돼지들은 인간 때문에 죽어간 것 아닌가. 우리를 위해 죽어간 저 동물들을 위해 최소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 저렇게 작대기로 함부로 처넣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전작보다 감성적이다. 로맨스도 등장한다.

나름대로는 세기의 로맨스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편집자 분들이 웃더라. 인물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쓸 때는 신이 났다. 하지만 이야기를 점점 진행시키면서 내가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는 일이 마음 아팠다. 사실 독자들이 작품을 읽으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는 사이코패스 인간에 흥미가 많다. 그런데 독자들은 이 부분을 괴롭게 읽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사이코패스에 대해 이야기하며 유머를 많이 넣으려고 노력했다. 조금 편하게 읽으시라는 배려였는데, 더 무섭다는 반응이 많다. 작품 속 인물 중 수진이 같은 경우는 내 개인사가 많이 들어갔다. 엄마나 동생, 그리고 꿈 이야기까지 모두 다 내 이야기다. 스스로의 개인사를 집어넣은 인물을 끔찍하게 죽여야 했다. 그 부분을 쓸 때 가장 고통스러웠다.

특별히 여성 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설 속에 멋진 남자 주인공이 나와서라는 의견도 있는데 왜 그런 것 같은가.

소설 속 인물은 일단 섹시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해서 따라온다. 주인공이 섹슈얼한 매력이 없으면 독자들이 반응하지 않는다. 사실 멋진 주인공은 착한 인물일 필요가 없다. 사이코패스지만 섹시할 수도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을 보면 한니발 렉커박사를 보면 전혀 착하지 않지만 매력적이다. 이번 작품의 경우, 주인공이 이런 부분은 좀 약하다. 하지만 이 남자의 진정성을 알아봐주시리라 믿는다.

한국 문학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가 많다. 꼭 미국드라마의 주인공 같기도 하다. 이 인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사이코패스와 가정폭력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는 보통 뇌가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은 감정적인 것을 느끼는 게 아니라 학습한다. 표현의 경우도 느껴서 하는 게 아니라 흉내를 내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는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이코패스가 유전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가정폭력은 악마를 만드는 또 다른 요소라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성장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트라우마 때문에 자기 안의 지옥이 만들어진다. 이런 관심들 안에서 인물이 만들어졌다. 또 다른 면을 생각해본다면 나는 정보를 통해 세계와 인물을 만들어가는 작가다. 취재도 많이 하는 편이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에 맞는 인물들을 만들고 장소를 만들어 그곳에 떨어트려 놓는다. 그러면 인물들이 움직이면서 역할을 해준다. 이번에도 인물들이 제 역할을 잘 해주길 바랐는데, 실제로 잘 해낸 것 같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 역시 한국 소설에서는 특이한 공간인데, 정유정 작가의 소설에는 자주 등장한다.

아마 직접 경험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예전에 소설을 쓰기 위해 일주일 정도 폐쇄병동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스스로 공주라 생각하는 환자분이 있었다. 버킹검공주라 불리는 그분은 나를 엄마라 불렀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병원의 여왕님이었다. 처음에는 입원하려고 했는데 의사가 그러지 말고 작가로 왔다고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취재 때문에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고 말이다. 일주일간 취재를 마치고 헤어지는데 버킹검 공주가 울면서 우리 한을 좀 풀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오면서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집에 올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경험 때문에 계속해서 소설에 쓰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소설에서는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보다 처음으로 여주인공을 썼다. 지금껏 여자인물을 조연으로만 썼는데, 걱정이 많아서였다. 여주인공을 쓰면 내가 튀어나올까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남자 주인공들만 써왔다. 이번에 여자 주인공을 쓴 건 나에겐 중요한 의미다. 또 특이한 점은 지금까지는 단일 플롯을 사용했다가 이번엔 여섯 개의 플롯으로 메인으로 엮었다는 거다. 여기에 대해서는 끝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무엇보다 스펙트럼 확장의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정말 힘든 일이어서 다음에는 1인칭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여섯 명을 쓰면서 옆으로 확장했으니 다음 번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출간된 작품에서는 마지막에 두 사람이 살아남는데, 원래는 윤주 혼자 살아남는 이야기였다고 들었다.

윤주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역사를 의미한다. 생각해보니 기록하는 사람 외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전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누구를 살릴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랬더니 기준이 밖에 없었다. 누군가 남편의 직업과 기준의 직업이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전혀 사심은 없었다.

이 작품을 읽고 광주 민주화운동이 생각난다는 이야기가 많다. 의도한 부분인가?

우리 현대사에서 이 소설 속 장면과 비슷한 게 딱 하나다. 소설을 설계하면서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다. 5.18 자료집을 놓고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소수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반드시 찾아보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 소록도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인터넷 댓글에 그들에 대한 혐오가 잔뜩 달려 있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미안함과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생각했다. 한번쯤 진실을 알아봐야 한다고 느낀다.

5.18 당시 광주에 계셨다고 알고 있다. 그때 상황을 이야기해 달라.

그날은 내가 소설가가 된 계기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15살 고등학생이었다. 어느 저녁에 시민군이 도청에 있다고 하고 총소리가 난무했다. 집주인 아저씨가 위험하다가 이불로 창문을 모두 막아주셨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그날 방에서 밤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읽었다. 어떻게 보면 책을 읽으며 버틴 거다. 밤새 굉음이 들리다가 총소리가 그칠 때쯤, 책을 모두 읽었다. 그날 밤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오열하듯 울었다. 그리고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 누군가에게 이런 새벽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유정 작가, 독자와 대화

윤주의 과거가 궁금하다.

내가 머물던 지리산 근처에 통닭집이 있었다. 그곳을 보면서 스케치를 했다. 아빠는 나이가 많고, 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다. 걸어서 등교를 하는데 아주 멀어서 힘들게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지리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악착같이 자기 욕망을 따라가는 인물이다. 책에 윤주의 과거를 자세히 쓰지 않은 건 수진이의 과거나 나오기 때문이다. 모두의 과거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윤주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묘사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궁금하다. 그 표현력은 어떻게 나오나?

연습이다. 표현을 잘하는 건 기술이다. 나는 시체에 대해서 쓰면 시체를 독자의 품에 안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냄새, 촉감, 무게감까지 모두 전달되어야 하는 거다. 습작기에는 방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면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이야기를 A4 3장, 4장이 되도록 묘사했다. 그런 묘사 속에서 내면의 이야기도 함께 묻어나는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위해 직장을 과감하게 그만두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나?

일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한 건 어떻게 보면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벼랑 앞으로 밀어 넣을 필요가 있었다. 돌아갈 길이 없도록 말이다. 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도전하고 싶었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자신을 벼랑 끝에 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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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정유정 저 | 은행나무
작가는 리얼리티 넘치는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무저갱으로 변해버린, 파괴된 인간들의 도시를 독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5명의 인물과 1마리 개의 시점을 톱니로 삼아 맞물린 6개의 서사적 톱니바퀴는 독자의 심장을 움켜쥔 채 현실 같은 이야기 속으로 치닫는다. 극도의 단문으로 밀어붙인 문장은 펄떡이며 살아 숨 쉬는 묘사와 폭발하는 이야기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며,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강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 소설은 모든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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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 지식의 융합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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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6일, 서울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브리꼴레르’라는 명칭이 자주 호명됐다. 유영만 교수(한양대 교육공학과)의 신작 『브리꼴레르』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열린 까닭이었다. 유 교수에 의하면, 브리꼴레르는 ‘이질적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지식의 연금술사이자,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양한 현답을 찾는 실천적 지식인을 뜻한다.

“브리꼴레르bricoleur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 ‘그래도’라는 섬에서 절치부심하면서 미덕을 갖춘 최고 경지의 전문성인 아레테에 이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는 사람이다. 지식이든 작품이든 물건이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은 한계나 경계의 끝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또 다른 융합의 가능성을 찾아 무한탐구를 계속한다.”(p.25)


융합형 인재 브리꼴레르

유 교수가 말하는 브레꼴레르의 핵심은 융합형 인재다. 그렇다면 왜 지금 브리꼴레르가 필요한 것일까. 그는 “우리가 아는 모든 전문가는 전문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어 ‘전문가의 위기, 위기의 전문가’라고 덧붙인다. 즉, 짝퉁 전문가, 가짜 전문가가 넘친다는 것.

이에 네 가지 전문가의 위기(위기의 전문가)를 나열한다.

① 멍청한 전문가 : 무사안일
② 답답한 전문가 : 좌정관천
③ 밥맛없는 전문가 : 안하무인
④ 무늬만 전문가 : 표리부동

“머리는 스마트한데 가슴이 없는 전문가가 넘친다. 예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수술을 받고 입원한 적이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어이없었던 것이 신체부위별 전문 의사는 있지만, 신체 부위간 ‘사이’ 전문가는 없더라. 좌정관천형 전문가의 대량 양산을 엿볼 수 있었다. 전체를 아는 전문가는 없어지고 부분만 아는 전문가는 많아지는 현실이다. 전문가끼리 소통이 안 되니 울화통이 터진다. 사이 전문가는 없이 앞만 보고 가다가는 정말 우리 모두 죽을 수도 있다. 삶은 속도가 아닌 각도가 중요하다. 삶의 속도를 줄이라는 조기경보기가 뜰 수도 있다.”

그는 브리꼴레르의 등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자신 이외의 지식인이나 전문가와 끊임없이 접촉하고 교류하며 만나면서 지식을 융합ㆍ확장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얘기할 때도 전문가의 용어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가 보기엔 전문가랍시고 어려운 말이나 전문용어를 사용해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교수나 리더들도 있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설명하는 것이 평범한 교수라면, 어려운 이야기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보기 드문 교수다. 브리꼴레르는 후자의 유형이다.

“답답한 전문가가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안하무인형 전문가는 다른 분야를 얕잡아보는 비뚤어진 자세와 태도가 문제다.”(p.35)
“브레꼴레르는 개념과 개념을 조합한다. 세상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경우가 2개 있다. 남다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남다르나 남이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로부터도 브리꼴레르에 대한 것을 배울 수 있다. 초현실주의 기법인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 창조적 융합의 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도 꺼낸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그는 시골에서 수렵-어로-채취-농경생활을 했다. 아울러 생태적 상상력을 키웠고 자연이 책이었다. 그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철판용접공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다양한 경험이 지금의 그를 형성했으며, 철판 용접에서 지식융합을 배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자기계발전문가 브라이언 트레이시,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용접공 출신이다. 이질적 지식을 융합해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브리꼴레르에 대한 것을 서문에 썼다. 용접도 크게 동일 재료를 용접하는 동종용접, 비슷한 재료로 용접하는 유사용접, 이질적 재료끼리 용접하는 이종용접이 있는데, 동종용접보다 이종용접이 훨씬 어렵다.”

“모두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얻은 남다른 깨달음을 글로 녹여낸 작가들이다. 작가로서 내게 과거의 용덥 체험으로 깨달은 삶의 지혜를 다양한 방식으로 융합해 또 다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는 소중한 기억이자 메타포다.”(p.11)


브리꼴레르가 되기 위하여

그는 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을 꺼낸 뒤, 자신을 바꾼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라는 책을 이야기했다. 그는 용접공 시절,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을 만나 한양대 교육공학과에 입학했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이후 운명의 스승이라고 표현한 김종량 한양대 이사장과 조우했고, 연구실에서 숙식하면서 새벽 5시까지 다독하면서 자신을 달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잡는 사람이 보이는 것을 지배한다. 유학을 가서 원 없이 공부했다. 종횡무진 책 읽기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닫고 지식을 융합했다. 유학에서 돌아와 삼성인력개발원이라는 현장에서 만난 현실과 진실도 내게 자양분이 됐다. 이때, 책상 지식이 현실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실천적 지식인으로 거듭나야 함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68권의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매일 한 페이지 이상 글을 쓰고자 했고, 써온 덕분이다. 1995년 『지식경제시대의 학습조직』이 최초의 저서였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낸 『지식생태학』을 냈다. 이때 생태학을 공부하면서 생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내가 많은 책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융합’이다. 책의 문제의식과 목적의식을 세운 다음, 경계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해온 덕분이다.”(p.15)
그는 이어 생태 체제와 구조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건넸다. 씨앗은 어떤 난국에서도 자살하지 않고 싹을 틔울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 그리고 나무는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

“요즘 꿈꾸지 않으면 멍청하다고 하는데, 꿈을 머리로만 꾸려고 한다. 몸으로 꿈을 꾸는 사람이 진짜 꿈꾸는 사람이다. 장석주 시인이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고 말했는데, 등반의 완성은 올라가는데 있지 않다. 살아서 내려오는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려가는 연습도 필요하다. 내가 지닌 지식이 보잘 것 없다고 해도 다른 전문가의 지식을 이식시켜서 융합의 열매를 맺게 할 수도 있다. 꿈(Dream)은 꿈(Borrowing)이다.”

그는 무엇보다 브리꼴레르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사유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원색적이거나 노골적 사고와는 다르다. 지금 많은 우리의 뇌는 너무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남의 생각에 휘둘리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 남의 생각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나를 지배함으로써 나는 내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게 된다.

브리꼴레르의 일상은 어떨까. 그는 자신의 경우를 말한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매일 칼럼도 쓰고 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이 글의 재료이자 소재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기 위함이다.

“글 쓰는 일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아이디어의 샘물을 길어올리는 과정이다. 창작은 다양한 체험, 방대한 독서, 색다른 일상이 융합되어 한 편의 글로 완성되는 과정이고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되는 과정이다.… 결국 지식융합은 융합할 재료가 얼마나 풍부한가의 문제이자, 이것을 남다른 방식으로 엮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p.23)
그렇다고 그는 일순간에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거창한 꿈을 꾸지 마라. 먼 산을 넘기 위해서는 앞산을 먼저 넘어야 한다. 지금은 눈앞의 산을 넘는데 집중해야 한다. 뭔가 성취를 하는 사람은 자기 앞에 맡겨진 일에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한다. 브리꼴레르가 되기 위해서는 체험이 중요하다. 도전하지 않으면 도약할 수 없다. 야성 없는 지성은 지루하고 지성 없는 야성은 야만이다. 끝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끝까지 가는 것이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체험을 하고 만나야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다.”


그는 브리꼴레르에게 필요한 마음가짐과 태도 등을 말하면서 자리를 맺었다.

“브레꼴레르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사랑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난 사람이다. 나와 전문성이 다른 사람이 만나 부딪히고 두 지식 간의 사랑이 싹을 틔워 개념을 임신하고 새로운 지식이 태어난다. 진짜 꿈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행위에 ‘가난한’이라는 말을 붙여보라. ‘가난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여전히 하고 싶으면 그게 바로 여러분의 꿈이다.”

“전문가는 전문성을 축적한 사람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덕목과 자질을 갖춘 인격적인 존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전문가는 전문적 지식과 기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사람일 뿐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개인 또는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는 사람이다. 전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다양한 관계 속에 자란 사회적 산물이자 특정 맥락에서 발아된 문화적 산물이다. 자신의 탁월한 능력과 노력으로 홀로 성취한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p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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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꼴레르유영만 저 | 쌤앤파커스
이 책은 브리꼴레르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교육분야는 물론 인문사회과학, 문학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브리꼴레르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가 안내하는 지적 여정에 동참하다 보면, 어느새 브리꼴레르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차이를 ‘지식’으로 만드는 융합형 인재이자,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현답’을 찾는 실천적 지식인, 당신은 브리꼴레르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당신의 숨겨진 능력이 1만 배 증폭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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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구운몽을 제대로 읽었고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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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그 유명세만큼이나 오해가 많은 소설이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으레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여느 고전처럼 말이다. 또 허무주의 소설로 보는 경향도 짙다. 주인공 양소유의 입신양명과 부귀영화가 한낮 일장춘몽이라는 이유에서다. 인생살이가 덧없고 허무하다는 독법으로 읽기도 한다. 아울러 불교의 윤회사상을 주제로 한 불교 소설로 읽는 시선도 있다.

물론 소설의 독법은 온전히 읽는 사람의 것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시선으로 이를 읽지 못한 채 『구운몽』에 덧씌워진 해석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정병설 교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학창시절부터 읽었으나 재미가 없었다. 시험을 위한, 어떤 특정한 목적에 기반을 둔 수단으로 접근했던 까닭이었다. 이에 그는 예술작품을 통해 뭔가를 얻으려고만 접근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왜 작품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는가! 왜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하는가!

“<구운몽도>의 개성은 자유로움이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활달함과 분방함이 <구운몽도>의 정신이며, 『구운몽』의 정신이기도 하다. 『구운몽』에서는 누구도 억지로, 강제로 일이 이루는 법이 없다. 양소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인물이고 팔선녀도 그렇다.… 『구운몽』은 자유와 해방의 세계다. 자유와 해방의 공간에는 낭만과 사랑이 있다.”(p.170)


구운몽도를 찾아서

정 교수는 『구운몽』을 통해 가장 많이 묘사되고 언급되는 것 중의 하나인 돌다리 장면을 꺼냈다. 팔선녀와 성진이 처음 만나는 장면. 구운몽을 그린 그림들도 역시 이 장면을 가장 많이 담고 있다. 가장 오래된 구운몽도 역시 돌다리 장면을 그렸다. 병풍 형태의 구운몽도를 보여준 정 교수는 조선시대 병풍의 의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시 병풍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집안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자 중요한 가구였다. 따라서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많지 않다. 두루마리 형태가 더 많았다. 병풍은 그만큼 정성을 기울인 티가 난다.

구운몽도가 그려진 책 표지도 있다. 박문서관에서 발행한 ‘딱지본’ 책이다. 과거 조선시대 소설에는 그림이 없었다. 전 세계 소설 가운데 그림이 없는 소설은 우리 소설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는 언급도 덧붙인다. 중국만 해도 그림 비율이 20~30%, 서양소설도 그림이 꼭 들어간다는 것. 조선의 소설에는 20세기 이전에는 그림이 일절 없었다. 정 교수는 경제적인 이유인 것으로 추정했다. 그랬던 것이 20세기 딱지본을 만들면서 그림이 본격 등장했다. 작품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표지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표지그림이 좋으면 잘 팔렸다. 따라서 구운몽도 역시 소박하기보다 화려했다.

“한국소설에 그림이 등장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근대 이후 들어온 서양의 신식 납활자 인쇄기술로 찍은 소설을 구활자본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들 소설에 비로소 표지 그림이 등장했다. 구활자본 소설은 표지가 딱지처럼 울긋불긋하다고 해서 딱지본 소설이라고 하는데, 딱지본 소설은 표지 그림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좌우되었고, 이 바람에 표지 그림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p.96)
정 교수는 구운몽도를 찾아다녔다. 40여종을 봤다. 도록에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도록이 워낙 적었기 때문이다. 그가 본 인상적인 구운몽도 중의 하나는 한국자수박물관(서울 논현동)에 소장된 ‘10첩 병풍’ 구운몽도다. 한국자수박물관은 사설 박물관으로 이곳의 허동화 관장이 가장 아끼는 것이 구운몽도 병풍이다. 허 관장은 꿈을 꾸고 10년을 공들여 이 병풍을 구했다.

“10첩의 병풍은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의 허동화 관장은 자신의 저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규방문화』에서 특별히 이 병풍의 입수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하루는 허관장이 <구운몽도>자수 병풍이 인삼 밭에 있으리라는 영감을 받았다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인 인삼으로 유명한 충청도 금산에 <구운몽도>자수 병풍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입수를 위해 십 년 이상 정성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그것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p.40)
정 교수는 이 구운몽도 10첩 병풍을 도록에서 보고 자수박물관을 찾아갔다. 홀에는 이것을 내놓지 않았고, 허 관장을 뵀으나 결국 병풍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궁박물관에 출품을 하면서 정 교수에게 연락을 했고, 그때 처음으로 만났다. 대형의 병풍이었고, 어지간한 집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더 재미있는 구운몽도

“나는 그림을 볼 때, 내 마음의 때를 걷어내고 본다. 구운몽도는 100년 정도 됐는데, 우리가 관리를 잘못하기 때문에 상태가 썩 좋진 않다. 그래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다. 내가 본 여러 구운몽도 병풍에서 이야기 순으로 된 것은 단 한 점도 없었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이야기 순으로 그려지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병풍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병풍 상단에는 이야기가 없고, 중하단 부분에 이야기가 퍼져있는데, 동화적이다. 성진이 스승 명령으로 용궁에 가 용왕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술 한 잔을 얻어먹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성진이 스승에게 돌아가는 길, 위부인의 여덟 제자와 돌다리에서 마주치는 장면이다. 즉, 돌다리 장면이다. 성진과 팔선녀는 길을 놓고 다투게 된다. 취기가 오른 성진이 시비를 걸고, 고작 여자들과 다투느냐면서 팔선녀도 맞받아친다. 그러자 성진이 복숭아꽃 가지를 주워서 선녀들에게 던지는데, 그것이 구슬이 되어 떨어진다. 여자들이 그걸 하나씩 주워서 하늘로 올라간다. 환상적인 장면이다.

“돌다리 장면은 <구운몽도>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가장 많은 그림이 남아 있다.”(p.32)
육관도사의 수제자로 도를 잘 닦고 있던 성진은 이날 이후 회의에 빠진다. 이리 살아서 무엇 하나. 팔선녀의 얼굴만 떠오를 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그걸 지켜보던 육관대사, 성진을 불러 호통을 친다. 성진이 잘못했다고 말하지만, 육관대사는 마음이 그리 흔들린다면 가라고 말하고 사자들에 이끌려 염라대왕 앞에 간 성진, 지상으로 내처져서 아이(양소유)로 태어난다.

“구운몽은 디테일로 들어가야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지상에서 새로 태어난 양소유의 행동이 거북살스러운 분이 많다. 여덟 여자와 만나는 것이 소설의 중심이다. 옛날 소설을 보면 아버지는 주인공의 옹호자가 아닌 방해자다. 주인공이 활동하기 위해선 아버지는 없어지거나 죽어야 한다. 양소유 아버지는 양소유가 열 살 때 신선 세계로 가출한다. 양소유는 어쨌든 열다섯 무렵부터 과거를 보기 위해 간다. 공부한 내용은 없는데, 주인공이니까 1등을 한다(웃음).”

정 교수는 이때의 구운몽도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잇는다. 양소유의 화려한 여성편력(?)이 본격 펼쳐지는 장면이다. 과거를 보러 가는 길, 어느 누각에서 한 여자가 잠에서 막 깬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다가 양소유와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은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진채봉이다. 詩를 주고받고 두 사람의 주변에는 춘정의 상징인 버드나무와 복숭아나무가 그려져 있다. 사랑의 언약을 하는 두 사람. 그러나 전쟁이 나고 전쟁이 끝난 뒤 진채봉이 사라졌다. 진채봉의 아버지가 반란에 부역을 해서 역도로 몰려 죽고, 딸도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는다.

낙심한 양소유, 1년 뒤에 다시 길을 나선다. 역시 이런 이야기를 그린 구운몽도도 있다. 낙양에 이르러 천진교를 건너자, 다리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다는 의미인데, 누각에서 기생과 유생들이 시회를 주고받고 있고, 계섬월이라는 기생이 심판관 노릇을 하고 있다. 마침 양소유가 시회에 끼어들고, 다른 유생들을 누른다. 그런 양소유에게 계섬월이 풍덩 빠진다.

“낙양 천진교 옆 누각에서는 귀공자들이 기생들을 모아놓고 봄 경치를 구경하며 시회를 열고 있었다. 양소유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귀공자들을 제치고 빼어난 시로 모두의 우상인 절대가인 계섬월의 마음을 사로잡는다.”(p.48)
“계섬월은 여느 기생과 다른데, 양소유를 자기 집으로 먼저 가 있으라고 말한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잠자리를 가진다. 계섬월은 기생이기 때문에 양소유와 같은 사람의 부인이 될 수 없음도 자각하고 있다. 조선 사회는 1부1처(다첩)사회였다. 그것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데 방해가 많이 된다. 중국은 다처사회였다. 『구운몽』은 2처6첩이 되는데, 첩은 어떻게든 상관없으나 2처가 문제다. 계섬월은 스스로 첩이 될 운명임을 안다. 당시 많은 기생들이 바랐던 것은 좋은 사람의 첩이 되는 것이었다. 경제적인, 즉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구운몽도의 테마는 스무 개 정도다. 그 가운데 10첩 병풍은 10개, 8첩 병풍은 8개를 뽑아낸 것이다. 계섬월을 만난 이후 테마는 이어진다. 스스로 첩이 되길 자처한 계섬월은 양소유에게 부인이 될 만한 사람으로 정경패를 추천한다. 그러나 한양에 간다고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내외지분(內外之分)때문에 외간남자가 집을 찾아가도 쉽게 만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구운몽』의 이야기는 현대 여성으로선 용서가 안 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다. 그러나 이 소설이 조선의 여성독자로부터 호응을 많이 받은 이유가 있다. 『구운몽』보다 현실이 훨씬 더 엄혹하고 혹독한 상황이어서 여성들이 무리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역사적 상황이 지금과 과거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가령 이런 상황도 그렇다. 귀족의 딸 정경패는 양소유의 아내가 되고, 정경패는 자신의 시비를 첩으로 삼으라고 한다.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한 양소유는 궁궐에 들어가 옥퉁소로 부는데, 공주와 연결이 된다. 그러다 전쟁이 터지는데, 무술을 배운 적도 없는 양소유는 영웅이 된다. 덕분에 남해 용왕의 딸 백릉파를 만나는 등 양소유는 별별 여자들을 다 만난다. 양소유는 위기도 쉽게 넘기고 부귀영화를 누린 끝에 불도를 닦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말하자면, 즐길 것은 다 즐기고, 다른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을 한다. 이것에 팔선녀가 동의하면서 함께 불교에 귀의하는 장면이 구운몽도를 통해 펼쳐지기도 한다.

『구운몽』은 일단 읽어봐야 재밌다. 작가에 대해 말하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만중. 굉장히 낭만적인 사람이다. 그는 조선의 0.01% 집안이었다. 증조부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제자이자 송시열의 스승으로 조선 예학의 대가였다. 할아버지는 김반으로 이조참판이었다. 김만중은 1637년 생으로 15세에 진사시에 일등을 했고, 학문과 글로 조선을 제패했다. 김만중에게도 여러 평가가 있다. 『숙종실록』에는 김만중의 인물평이 두 번 나온다. 당파의 주도권에 따라 달라진 거지. 두 평가에서 공통점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는 점이다. 『구운몽』은 김만중이 유배를 갔을 때 썼다. 이런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소설을 쓴 것은 스스로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해서였다. 일장춘몽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닌 극악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썼다. 어디서 위로를 받겠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쓴 것이다. 『구운몽』은 읽을 때마다 다르다. 여러 층위가 있다. 한 차원에서만 볼 작품이 아니다. 이 책을 가둬두려는 시도들에 휘둘리지 마라. 인생의 깨달음? 이 책이 얼마나 깨달음을 줄지는 모르겠다.”

“관료이자 정치인으로서 늘 숨 가쁘게 전개되는 긴박한 조정 쟁투의 중심에 있었던 김만중이 소설을 창작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하지만 김만중은 일단 붓을 잡자 화려한 환상과 조화의 세계를 꾸며냈다. 그리고 이처럼 작품 속에 자신의 삶을 투영시켰던 것이다.”(p.84)

“『구운몽』이 그린 세계는 작가 김만중이 살았던 현실의 모습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다. 김만중의 유배의 고통을 견디며 이 작품을 썼다. 평안도 선천의 벽지에서 언제 사약을 받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불안과 공포를 잊기 위해 『구운몽』을 썼던 것이다.”(p.173)
정 교수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구운몽』과 같은 작품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읽었고,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턱대고 재미없게 생각한다는 것. 그는 책임이 자신과 같은 국문학자들에게도 있다고 반성했다. 충분히 풀어서 만들고, 맥락이 닿고 읽을 만하도록 번역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함으로써 안 읽히는 책으로 만들었다는 것.

『구운몽』은 글을 읽는 맛이 있다. 이 책이 제시한 메시지는 지친 사람은 쉬는 게 필요하고 그럼에도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줄타기를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서포 김만중이 그렇게 살았거든. 이것이 내가 이해한 『구운몽』이다. 구운몽도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다. 가을 무렵 『구운몽』번역본을 내는데,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기대해 달라.”

“『구운몽』의 중심은 낭만적 사랑이다. 고전으로서 『구운몽』의 위대한 점은 그 불교적 인생철학이 아니라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낭만적으로 보여준 데 있다. 종반부에 있는 육관대사의 의미심장한 불교적 계명은 낭만적 삶을 다시 진지하게 성찰하게 함으로써 소설의 품격을 한층 더 높였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p.165)

“『구운몽』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더욱이 조금 안다는 사람 중에서 그 고전적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적다.”(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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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정병설 저 | 문학동네
이 책은 「구운몽도」로 소설 『구운몽』을 다시 읽은 책이다. 사람들은 『구운몽』의 사상적 의미에 치중해 왔다. 그래서 『구운몽』은 곧 유불도의 사상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소설이라는 이해가 가능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편으로 『구운몽』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구운몽』의 중심은 낭만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고전으로서 『구운몽』의 위대한 점은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낭만적으로 보여준 데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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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가 될 뻔했던 일본 최고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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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신문빌딩 강연장에서 이나모리 가즈오의 『일심일언』에 관한 강연회가 진행되었다. 책의 번역자이자 국내 최고 ’이나모리 가즈오’ 전문가인 양준호 교수가 이날 강연자로 섰다. 그는 인천대 동북아경제통상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경제실 수석연구원을 역임했다.

책의 저자인 이나모리 가즈오(이하 이나모리)는 일본 ‘교세라’의 창립자이자 명예회장이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이며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교토식 경영을 유명하게 만든 아메바 경영과 다양성 경영, 윤리경영을 강조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윤리경영, 다양성 경영, 아메바 경영

윤리경영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한 경쟁력도 갖춰야 하지만, 지역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동료와 지역 주민으로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역과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상품과 서비스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이전에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품질이 좋은 물건, 혹은 같은 가격에 싼 물건을 내놓으면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서 더는 그런 태도만으로는 먹히지 않는다. 이것이 이나모리가 강조하는 ‘윤리경영’이다.

다양성 경영

도요타 기업은 모두 감색 양복을 입고 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획일적이다. 그것을 미학으로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조직에 맞추고 가장 평균적이고 획일적인 상태에서 조직을 운영해내는 것을 미학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이나모리는 ‘そうか(소오까)?’ ‘그래서?’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비해 다양성 경영은 톨레랑스(Tolerance)경영이다. 어떠한 공간, 하나의 조직이나, 하나의 중소기업, 하나의 사회 속에 있는 다양한 주체, 즉 구성원들의 개인의 시각, 문제의식, 선호, 아이덴티티를 최대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톨레랑스 경영이다. 교세라 기업에 가보면 핑크색 양복, 보라색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 심지어 펑크족 머리를 하고 출근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구성원들의 개성을 존중한다. 여성직원 비율이 제일 높은 곳도 교세라 기업이다. 여성의 시각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아메바 경영

2008년도에 삼성경제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역자는 교세라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36번째 팀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알아보았더니 국제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50개가 있고 그중에 36번째 조직의 팀장이 36번째 팀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팀장 밑으로는 5명의 직원만이 있었다. 교세라에는 한국, 외국, 브라질, 독일 등 각 나라의 기업 담당을 맡는 조직이 있고, 다양한 상품마다 쪼개어 담당하는 조직이 그렇게나 많았다.

아메바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은 독서광인 이나모리가 읽은 생물학 책에서였다. 이나모리는 하루 5권씩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우연히 생물학 책을 읽다 환경 변화에 따라서 분열하기도 통합하기도 작게 세분되기도 하는 아메바에 관한 내용을 유심히 보게 된다. 이것을 교세라에 대입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고 그 유명한 ‘아메바 경영’이라는 말이 나왔다. 기업이 내년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 아메바는 다른 아메바에 흡수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회의 모든 아메바와 아메바 사이에 주고받는 서비스에는 수수료가 붙는다는 것이다. 작게는 복사비마저도 수수료가 붙는다고 한다.


야쿠자가 될 뻔했던 경영의 신

이나모리는 대학 시절 세라믹을 개발했다. 불과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자신의 세라믹이 큰 기업에 팔릴 것을 꿈꾸며 기업과 미팅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똑같은 피드백 뿐이었다. “당신의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우리와 한 번도 거래한 실적이 없고 다른 전자 기업과도 거래한 실적이 없으므로 우리는 당신을 신뢰할 수 없다.” 라는 피드백. 일본의 집요하고 치밀하고 폐쇄적인 기업 사회 구조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장인을 존중하는 교토에 와서 교토 세라믹이라는 벤처기업을 만든다. 세라믹을 경량화하고 값을 매기고 또 기업에 거래를 요청했지만, 전과 같은 똑같은 피드백을 받았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최대 시련이었다. 몇 달 간 집에서 칩거를 하다 고베에 갔다. 겨우 25살 청년이었지만, 용감하게도 야쿠자 본사 앞에서 “당신들의 오야붕(두목)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 내가 세계 최고의 세라믹을 만든 사람이다.” 라는 말을 단도를 목에 댄 채 뱉었다. 결국 야쿠자 두목을 만났고 그에게 “당신이 내가 바라는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형님으로 모시겠다, 일본기업의 이 치밀한 기업 구조를 깨트려 달라”고 부탁했다. 두목은 “너의 물건을 살 사람이 일본에만 있나? 미국에는 없나?” 하고 물었다. 순간 머리가 딩, 하고 울렸다. 자기의 작품을 항상 도시바나 마쓰시타 같은 자신의 나라 일본 대기업에 파는 것만 꿈꿨던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얻고 미국에서 보디랭귀지를 해가며 결국 거래를 성사시켰다. 거래한 미국회사는 유명한 ‘T.I (Texas Instruments,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기업이었고 이나모리에게 선급금까지 내며 세라믹 제품을 사들였다. 그것이 지금 교세라가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던 사건이었다.

양준호 교수는 자신이 정리한 이나모리의 일과 성공의 12원칙을 화면과 함께 보여주었다.




일과 성공의 12원칙

1. 사업의 목적과 의의를 명확하게 설정하라

연구개발 또는 투자의 목적이 조금 개략적이어도 인류 전체의 생활에 기여하거나 아니면 지구자원 환경 보전에 도움이 되는 등, 대의명분이 있는 보다 높고 대국적인 목적을 설정하면 사업에 관여하는 멤버 전원이 헤매지 않고 사명감을 가지고 사업에 몰두 할 수 있다.

2.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기 쉬우나 목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내는 것과 시간 축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설정한 목표를 늘 항상 동료와 공유하는 것, 즉, 연구개발 동료, 제조 및 영업 관련 현장 사람들과 자신의 구체적인 목표를 공유하면 관계자 전원의 벡터(Vector)가 맞으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3. 강렬한 염원을 마음에 품어라.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강한 염원을 계속해서 되새기고 또 마음에 품게 되면, 그 목표가 잠재의식에까지 스며들어 각인됨으로써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강한 염원을 계속해서 마음에 품는 프로세스는 스포츠에서 승리의 순간에 관한 이미지를 늘 강하게 의식하는 이미지 트레이닝 등과 같은 맥락의 것이다.

4.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노력을 하라

가장 난이도가 높은 조항이다. 사업도 연구개발도 경쟁 없이 불가능 하다. 따라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노력을 하지 않고 경쟁 상대에게 이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노력과 중도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다.

5. 매출은 최대한으로, 경비는 최소한으로

매출을 가능한 한 늘리고 경비는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이익과 직결된다는 경영의 기본적인 원리원칙이다. 매출을 늘리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투자와 경비가 증대할 수밖에 없다는 기존 사고 방식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다. 연구개발의 장에서도, 돈을 쓰지 않고도 매출을 놀리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함축적인 지침이다.

6. 가격책정(determination of price)은 경영 그 자체

이는 경영결과를 좌우하는 최대의 포인트. 고객이 만족하면 구매해줄 수 있는 가장 높은 가격은 단 하나의 점(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점을 찾아내는 노력을 연구개발의 단계에서부터 아끼지 않는 것이 (사업화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고객이 기꺼이 사줄 수 있는 최대 라인이 얼만큼인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7. 기업의 강한 경영

위에서 했던 비슷한 이야기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다. 일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에서 강한 의지가 나타나야 한다.

8. 불타는 투폰

“씨름을 할 때는 씨름판 한가운데서 하라”. 이나모리는 ‘일은 왜 하는가’, ‘카르마 경영’ 등에서 경영자와 인재를 구분한다. 가연성 물질, 불연성 물질, 자연성 물질로 사람을 구분하는데, 가연성 물질은 열정적인 사람이 있으면 주변도 열정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불연성물질은 아무리 경영자가 자신을 불태워도 주변이 불타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 자연성은 자기 스스로가 타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최고의 가치다.

9. 용기를 가지고 만사에 임한다.

연구개발에 관여하는 사람에게도 경영자와 같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와 격투기에서 볼 수 있는 투쟁심, 어떠한 곤란함도 굴복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10. 항상 창조적인 일을 하라

경영의 원점 12개조 중 제4조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노력을 하라’에서 말하는 지속적인 꾸준한 노력에 더해,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와 같이 지금의 기술에 만족하지 않고 매일매일 창의적인 고민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을 감행하는 것이 위대한 기술개발로 이어진다. (창조 = 늘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마음)

11. 타인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하라

마음을 갈고 닦아 마음가짐을 함양하면 일의 능률이 오르고 인생의 질도 향상된다. 이것은 이나모리의 지론이다.

12. 늘 밝고 긍정적인 자세로, 꿈과 희망을 품고 순수한 마음으로 경영하라.

연구개발에 임할 때,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 타인에 대한 친절함과 밝음을 통해 꿈과 희망을 주게 되면 자기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게 된다.

직장 및 인생에서의 성공 = 주관적 사고 x 열정 x 능력

아무리 능력과 열정이 있어도 부정적 사고로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부정적 사고에 열정과 능력이 곱해지면 최악의 상황을 부를 것이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생동감 있는 강연이 이어졌다. CEO로 존경받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원칙과 가치관을 역자인 양준호 교수로부터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강연에서 나온 얘기 외에도 책에는 경영자는 아니지만 구성원으로서 일할 때의 마음가짐, 그리고 기업을 잘 굴릴 경영방법에 대한 도움말이 제시되어 있다. 딱딱한 말과 행동이 아닌 윤리적으로 보았던 이나모리 가즈오가 말하는 『일심일언』. 아로새겨두어도 전혀 해 될 것이 없는 조언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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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일언이나모리 가즈오 저/양준호 역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일심일언』은 이나모리 가즈오가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바라며 인생과 일에서 얻은 지혜의 정수를 전하는 최초의 자기계발서다. 현실과 동떨어진 공리공론이 아니라, 바닥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살아오며 그의 인생으로 증명한 현실감 가득한 성공 노하우이다. 그리고 고통과 고민 속에서 직접 습득해 열정과 경험이 생생히 담긴 인생 가이드다. 지치고 힘든 현대인이라면 마음에 새겨두고, 주저앉고 싶을 때나 인생에 장애를 만났을 때 하나씩 꺼내서 다시 곱씹어 볼 만한 일언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아이의 두뇌성격에 따라 부모가 대처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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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자신의 아이들, 첫째와 둘째가 한 배에서 나왔음에도 다르더라는 얘기부터 꺼냈다. 그의 첫째는 성실하고 규칙 잘 지키고 혼자 공부도 잘했다. 의과대학을 갔고 현재 레지던트로 있다. 둘째 아이도 첫째와 똑같은 방식으로 키웠다. 같은 학원, 같은 스케줄 등 첫째의 길을 그대로 따르게 했으나 둘째는 첫째와 달랐다. 즉, 먹히지 않았다. 둘째는 학원에 가면 놀았고,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게을러졌다. 이게 아니다 싶었다. 두 아이는 그저 달랐던 것이다.

둘째는 초중고 때 자신의 홈페이지 만드는 것에 빠져 있었다. 대학을 가니 그것이 능력으로 발휘됐다. 그렇게 두 아이를 키우면서 김 교수가 내린 결론은 아이에 맞는 공부법이 있다는 것. 그 중심에는 아이마다의 스타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두뇌에도 인지스타일이 있었다.

“시각학습자가 있고, 강의를 잘 듣는 스타일이 있다.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지 못하는 스타일은 돌아다니면서 몸으로 익혀야 공부를 한다. 시각학습자에겐 강연이 도움 되지 않고, 동영상 등이 훨씬 잘 먹힌다. 사람에겐 언어적 기억력, 시각적 기억력이 따로 있다. 효율적으로 아이를 공부시키려면 아이의 두뇌형부터 알아야 한다. 뇌발달은 3개의 층위로 이뤄진다. 본능의 뇌, 감정의 뇌, 이성의 뇌가 있다. 또 하나 구분하자면 좌뇌와 우뇌가 있다. 아이가 공부를 잘 하려면 이것들이 통합돼야 한다.”




뇌의 세 가지 층위

뇌발달을 위해 그는 본능의 뇌가 우선 충족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감정의 뇌, 이성의 뇌가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본능의 뇌가 충족되지 않으면 감정적인 안정 등을 꾀할 수가 없다.

“최근 정서지능이 관심 받고 있다. 아이들이 어떤 것을 봤을 때 후두엽으로 시각적인 이미지를 받으면 두정엽에서 이것을 모아 변연계로 간다. 이것이 외울만한 것이냐, 좋은 것이냐 등을 판단해서 전두엽으로 보낸다. 전두엽에서 기억하고 사고하는 것이 다음 단계다. 자극이 있어도 중간에 감정의 뇌가 문지기 역할을 한다. 항상 그것을 통해서 간다. 뇌는 감정의 뇌를 일단 통과해야 하므로 감정의 뇌가 중요하다. 감정의 뇌를 통과하지 않으면 이성의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서지능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아이가 본능의 뇌에 반응하도록 도와주면서 아이의 감정의 뇌를 관리해줘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 의하면, 감정의 뇌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우선, 정서적인 안정. 정서가 뇌에 존재하는 시간은 길어야 90초다. 그러나 이것을 바꾸지 않고 방치하면 하루 종일 갈 수도 있다. 이에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거나 음악을 틀거나 좋은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바꿔줄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긍정성이다. 어떤 정보를 받았을 때, 그것은 변연계의 편도체를 지나간다. 편도체 부위는 쾌 혹은 불쾌를 판단하고 적군이냐 아군이냐를 판가름한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변연계가 많이 활성화돼 있다. 그래서 신뢰가 중요하다. 엄마가 아군이라고 생각하면 엄마가 혼낼 때도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엄마를 신뢰하지 못하고 적군이라고 판단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공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내편이라고 생각하면 공부를 한다. 감정의 뇌를 통과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변연계가 모든 것을 좌우하면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기조절력을 키워야 하고, 아이가 엄마가 내 편이라고 인식을 해야 기억력, 집중력, 문제해결력, 창의력 등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정서의 뇌가 받쳐줘야 한다.”

감정의 뇌를 통과한 뒤 이성의 뇌가 작동을 한다. 이때 전두엽이 중요하다. 사고력, 판단력, 기억력, 집중력, 창의력 등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경험, 시행착오가 중요하다. 가령, 아이가 걷기 위해선 1000번 이상 넘어진다. 1000번 이상 넘어지지 않으면 걸을 수가 없다. 그런데 많은 우리 부모들은 아이를 보행기에 태워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한다. 이것은 좋지 않다. 전두엽이 발달하기 이전에 시행착오를 많이 해야 이성의 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야 한다. 두뇌 자극은 시행착오를 많이 하는 아이에게 더 많이 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감정의 뇌는 24개월에 주로 많이 발달한다. 이 시기,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고 부모가 아군이라는 것을 느껴야 감정의 뇌가 나중에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소뇌다. 심리학자들이 아이큐 테스트를 했다. 언어를 잘 하는 아이들이 아이큐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론은 소근육 운동이 많이 된 아이가 아이큐가 높게 나왔다. 소근육을 담당하는 소뇌의 발달은 대뇌피질이 발달할 때 같이 이뤄진다. 언어가 발달할 시기와 맞물린다. 더구나 소근육은 사회성, 추상적인 사고 등을 담당한다. 소뇌의 특징은 기억이 한 번 익히면 30~40년을 간다. 자전거를 어릴 때 배우면 어른이 돼서도 잘 탄다. 우리가 의식하는 기억은 반복해야 하지만 무의식적인 기억은 한 번만 잘 익히면 평생 간다.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오래 남는 기억은 감정에 큰 충격을 준 기억이다.”

그는 감정을 형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이 바로 그것. 우선, 세로토닌은 긴장을 했을 때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감정에 휘둘릴 때 감정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충동성을 떨어트려서 집중력에 도움을 준다. 햇빛을 많이 받거나 잠을 많이 자고, 콩이나 옥수수를 많이 먹으면 좋다.

도파민은 열정이다. 가령 아이들이 게임에 열정을 보이는 이유와 연관이 있다. 게임이 도파민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 재미난 것, 도전적인 것을 제시하면 도파민이 높아지고 칭찬을 받거나 성취감을 느끼면 도파민이 향상된다. 세로토닌은 높아지는데 한계가 있으나 도파민은 한계가 없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긴장을 담당한다. 아이들이 긴장을 하면 집중력과 기억력이 높아진다. 관심을 보여주면 노르에피네프린이 높아진다. 김 교수는 아이에게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이 적절하게 유지되도록 만드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도 아이 성격에 따라 농도가 다르다.


아이마다 다른 두뇌성격

김 교수가 강조한 지점은 아이들은 다 다르다는 점이다. 기질로 분류하면, 순한 아이, 까다로운 아이, 느린 아이로 분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에게 똑같은 양육방식을 써선 안 된다는 것. 기질은 대뇌피질의 기능이라기보다 편도체(변연계)의 기능이다. 유아원에 들어갈 시기에는 기질을 판단해야 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에 대해선 충동형인지, 숙고형인지 구분한 육아가 필요하다.

“기질의 형성에는 이성의 뇌인 대뇌겉질, 감정의 뇌인 변연계, 본능의 뇌인 뇌줄기까지 모두 관여하지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변연계의 민감도이다. 우리가 아이의 기질을 까다롭다 혹은 순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이가 새롭고 낯선 자극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이다.”(p.18)
“좌뇌와 우뇌의 통합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전까지 좌뇌적인 사회였는데, 지금 왜 우뇌적인 사회로 바뀌고 있을까. 하이 터치, 하이 콘셉트의 사회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보만 갖고 해결이 안 된다. 감성이나 이야기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감성, 창의력, 스토리 모두 우뇌에 속한다. 부모들은 여전히 좌뇌형 아이들을 키우려는데, 사회는 우뇌형을 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좌뇌성향의 아이와 우뇌성향의 아이의 특징을 들었다.

좌뇌성향 아이의 특성

우뇌성향 아이의 특성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한 번에 한 가지씩 한다

여러 개를 한꺼번에 한다

길 안내 시 말로 설명한다

길 안내 시 지도를 그린다

거의 항상 제 시간에 온다

종종 늦게 온다

일을 미리 끝낸다

마감시간 즈음 일이 끝난다

메시지 경청 시 잘 기억한다

그림을 볼 때 잘 기억한다

과제는 스스로 한다

과제는 친구들과 함께 한다


이어 뇌과학적으로 다섯 가지 성향, 즉 성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5가지 요인을 들었다. 외향성, 개방성, 수용성, 성실성, 신경성이 그것들이다.

“어린 시절에 보이는 5대 성격 요인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결혼, 자녀, 이혼, 주거와 직업 이동 그리고 건강 등의 변화가 생겨도 비교적 크게 변하지 않는다. 5대 성격 요인을 살피다 보면 내 아이의 기질이 점차 확연해질 것이다. 또 아이의 좋은 성격을 위해 무엇을 더하고 빼야 할지도 알 수 있다.”(p.87)
김 교수는 두뇌성격(Brain Mode)을 분류하면서 이에 따른 문제행동과 지침을 제시했다.


두뇌성격

-이성좌뇌형 : 성실성이 높지만 개방성ㆍ외향성은 낮다. 학자스타일. 논리, 분석, 사실, 양적.
-감성좌뇌형 : 외향성ㆍ성실성은 높지만 개방성이나 수용성은 낮다. 지도자스타일. 조직, 단계, 계획, 상세.
-이성우뇌형 : 개방성과 외향성은 높지만 성실성이나 신경성은 낮다. 전체, 직관, 통합, 합성.
-감성우뇌형 : 수용성, 개방성, 신경성이 높고 성실성은 낮다. 유대, 느낌, 운동, 감정.

두뇌성격별 문제행동

-이성좌뇌형 : 입맛이 까다롭다, 동일한 방식을 고집한다, 처음에는 거부한다, 혼자서 논다 등
-감성좌뇌형 :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주 화를 낸다, 떼를 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등
-이성우뇌형 :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위험한 일을 한다, 재미있는 것만 추구한다, 정리정돈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한다 등
-감성우뇌형 ; 자주 도움을 요청한다, 남의 눈치만 살핀다, 감정기복이 심하다, 우울한다, 자기주장을 하지 못한다 등

두뇌성격별 지침

-이성좌뇌형 : 목표나 과제를 설정하라.
-감성좌뇌형 : 목표를 분명하게 알게 하라, 기대하고 격려하라
-이성우뇌형 : 능력에 맞게 목표를 설정하게 하자, 도전의식을 자극하자
-감성우뇌형 : 목표는 크고 높게 잡아라, 끊임없이 인정하고 수용해주자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아이스타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부모스타일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엄마스타일과 아빠스타일은 서로 다르면 좋다. 문제가 있을 때,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해결해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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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성격이 아이 인생을 결정한다김영훈 저 | 이다미디어
이 책은 최신 뇌과학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아이의 기질이 두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갓난아기들이 동일한 자극에도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육아의 첫걸음은 내 아이의 ‘두뇌성격’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그 다음은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성격을 그대로 인정하고, 아이에게 맞는 육아법과 넘치는 사랑으로 키우라고 강조한다. 부모와 아이의 이런 상호작용이 뇌의 발달과 바람직한 두뇌성격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즉 아이에게 가장 알맞은 맞춤육아법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광고인 박웅현, 꿈꾸지 말고 내 아이를 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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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겠다며 도서관에 앉아있던 학생 박웅현. 그는 시사상식을 공부하는 대신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언론고시엔 모두 낙방했고, 광고 회사에 들어갔다. 지금은 TBWA KOREA에서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활의 중심’,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진심이 짓는다’ 등 시대를 대표하는 카피를 여럿 탄생시켰다.


책은 도끼다』와 인문학으로 광고하다(공저) 등으로 알려진 광고인 박웅현 ECD. 그가 이번에는 인생에 관한 화두를 던졌다.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여덟 개로 정리하여 『여덟 단어를 출간했다.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인생에 대한 답은 몇 번의 강의와 몇 권의 책에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나’라는 유기체를 무시하지 말라. 그렇게 당신만의 인생을 또박또박 걸어가면 된다.”




인생의 정답은 마음속에 있다


하얀 칠판이 새까매지도록 질문이 들어찼다. 박웅현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인생관부터 이상형까지, 질문은 가지각색이었다. 독자가 여러 문장으로 질문하면 그걸 한 문장으로 만들어 적었다. 저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처럼 풀어나가며 강연회를 이끌었다. 자신의 답은 한 개인의 생각이니 참고 사항으로 여기라는 전제를 두었다.


“내 생각을 말할 뿐이다. 나조차도 인생을 사는 방식에 관해 알려주는 책은 믿지 않는다. 멘토도 마찬가지다. 참고로만 삼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어떤 책이나 멘토도 내가 될 수 없고,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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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지 말고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살자


박웅현은 자신을 광고하는 사람이라고 간략하게 소개했다. 꿈을 묻는 말엔 ‘없다’고 대답했다. 하루하루 사는 게 모여서 내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이 더 중요하기에 젊은이들에게 꿈꾸지 말라고 말한다.


“나에게는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여덟 단어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집에 가면 자는 것, 내일 일어나면 수영하는 것을 생각한다. 개는 밥 먹을 때 꼬리치기를 후회하지 않고, 내일의 공놀이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충실한 하루하루가 모여 5년 뒤에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많은 독자가 삶의 고난에서 벗어나는 법에 대해 물었다. 이에 그는 불교의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을 인용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p.218)


슬럼프가 오면 견디고, 현실이 싫다고 도망치면 안 된다. 박웅현은 슬럼프가 삶에서 자동차의 범퍼와 같은 것이라고 비유했다. 덧붙여 모든 문제의 가장 좋은 해결책으로 정면 돌파를 제시했다.


“언젠가 고난이 올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게 좋다. 이런 점은 동물로부터 배워야 한다. 산에 사는 동물은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먹이가 없으면 굶고, 다치면 스스로 치유한다. 그래도 안 되면 구석에 가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다른 사람의 슬럼프 극복법을 따라 하지 말라. 그것이 당신 자신의 치유법이 될 수 없다. 문제를 피하면 더 꼬이기 마련이다. 직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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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고민해서 선택한 답을 옳게 만들자


저자는 26년간 한 가지 일을 했다. 그만큼 직업에 관한 질문도 많았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돈의 흐름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박웅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돈이 따라올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진부할 수 있지만, 이 얘기밖에 할 수 없다. 돈을 따라가면 돈은 오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잘하는 걸 하면 돈은 따라온다. 돈은 자연스럽게 흐른다. 당장 연봉이 높은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라.”


결국 고민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 자신의 신념을 사랑하라고 조언했다. 


“어떤 선택도 가능하고, 옳은 답은 없다. 어디에나 진흙탕은 있다. 이직을 생각한다면 고민해서 선택하라. 그리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들어라.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아이는 다치면서 자란다


그의 딸 박연은 『인문학으로 콩갈다』를 냈다. 책에 적힌 그녀의 사례는 많은 부모의 관심을 샀다. 박웅현은 부모가 저지르는 흔한 실수는 ‘생각대로 커 줬으면 좋겠다’는 오만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걸 안다. 세상은 부모 뜻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되면 나와는 다른 유기체라고 인정해야 한다. 책임감을 버리고 아이를 덜 사랑해야 한다. 다쳐가면서 커가는 걸 받아들이자. 내가 만든 최고의 작품으로 자식을 가리키는 부모는 무섭다. 자식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자.”


언제나 답은 내 안에 있다


강연회장 칠판에 가장 많은 질문은 ‘뭘 하면 좋을까요?’였다. 박웅현은 ‘무엇’이라는 답 대신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너무나 많은 책이 인생이 쉬워지고,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우리 삶은 규격화할 수 없다. 그걸 규격화하는 건 불합리하다. 누군가의 가치관과 환경이 앞으로 내가 맞닥뜨릴 상황과 같을 수는 없다. 방학에 무엇을 할지 알고 싶다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잘 모르겠다면,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인생은 나만의 길이다


박웅현은 광고를 하면서 ‘사기꾼’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혹자는 정치인 만큼 믿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광고인을 꼽았다. 짧은 시간에 시선을 끌고 구매욕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광고를 ‘잘’ 만들고자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광고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세상에 변화를 준다고 평가 받는다. 가치 울림을 주는 광고인 박웅현. 이번 책을 통해 그의 삶을 지탱하는 여덟 가지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책을 읽고 마음이 움직인 독자라면, 이제 자신만의 답을 찾아 떠날 시간이다.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 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 (중략) 이제 자신을 믿고 씩씩하게 또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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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단어박웅현 저 | 북하우스
『책은 도끼다』의 저자이자 광고인 박웅현이 인생을 위해 생각해봐야 할 여덟 가지 단어를 말한다. 저자는 2012년 10월부터 두 달여 간 이십여 명의 20,30대들과 만나 젊음에 필요한, 아니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여덟 가지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했다. 이 때 강의에서 이야기했던 여덟 개의 키워드는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선희 “번역하는 분들에게 무릎 꿇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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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캐스터 이윤지의 낭독으로 시작했다.

“보다 근사한 내일을 위해 오늘 담벼락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를 못 본다면, 내 아이와 단 1분도 눈을 마주보지 못한다면, 불행히도 그건 버티는 삶이다. 물론, 살다보면 두 주먹 불끈 쥐고 견뎌야만 하는 시기도 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우리에겐 일상이 있다. 그 일상 속에 찾아지길 갈망하는 행복들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던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 프롤로그 옮긴이의 넋두리 중에서- (p.13~14)
어려운 책을 냈다.

정말 부끄러운 결과물이지만, 열심히 만들어주셔서 마냥 겸손해선 안 될 것 같다. 4개월 약간 못 미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원제는 ‘인생이 준비하는 것들’이다. 내 인생 가치관은 나라에서 자격증 준 사람의 말을 잘 따르자는 거다. 그래서 PD, 작가 말 잘 듣는다(웃음).

어떤 책인가, 소개해줬으면 좋겠다.

정선희: 가수, 배우, 소설가 시인인 가와카미 미에코의 에세이다. 하루를 채우는 무수한 감상, 사건, 사람 등에 대해 적고 있다. 가와카미는 2008년,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을 탔다. 문체가 특별하다.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이 우리나라엔 어필이 많이 돼 있는데, 그네들한테는 일본 여자 특유의 느낌이 있다면, 가와카미는 그렇지 않고 독특하다. 전형적인 일본 여성 작가 이미지가 아닌, ‘얘는 뭐지?’ 이런 똘기가 있다. 크레이지, 광기, 똘기 같은 느낌이 매력 있잖나. 상식의 선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시작부터 ‘빤쭈’ 얘기부터 한다. 에세이 첫 출발이 팬티라니(웃음). 그렇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지금 이 도시에 차고 넘치는 따스하고 친절한 ‘힐링 도서’도 아니고, 카리스마 넘치는 ‘멘토’의 힘찬 메시지와도 거리가 멀다. 그저, 다소 엉뚱하면서도 골똘한, 가와카미 미에코라는 한 여자의(우리나라에서는 다소 낯선 이름의), 생각의 단편들이다. 그저 그녀의 일상이고 삶의 이야기다.”(p.12)
가수 린이 등장했다. 정선희는 그녀에 대해 “사랑스러움에 있어서 국내에서 따를 자가 없다”“내가 아는 한 최고의 여성성을 갖고 있고, 섬세한 필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넘어서는 가창력을 갖고 있는 팜 파탈”이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 어떤 사이냐. 무척 친한 것 같다.

정선희: 내가 예뻐하고, 린이 나를 많이 따라준다. 작은 무대의 호흡을 즐기는 친구다. 섬세하고, 통할 것 같아서 이 자리에 불렀다.

: 선희 언니가 훌륭한 감성을 갖고 있는데, 번역까지 했다고 해서 더 대단해 보인다. 언어에 관심이 많고, 공부도 많이 한 걸 알고 있었지만, 책을 번역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언니 스타일이 담겨 있더라.

책은 일상에 대한 내용이다. 두 사람 연예인으로서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언제인가?

: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와서 닭발에 소주 마실 때(웃음)! ‘아, 일 끝났다’고 느끼면서 그렇게 마실 때가 좋다.

정선희: 대중의 환호를 뒤로 한 고독한 아티스트? 천만에 린도 겁나게 술 마신다(웃음). 린은 1분 1초도 자지러지게 즐기는 친구다. 이런 친구만 있다면 신도 인간을 만든 보람이 있겠구나 싶다. 같은 1분 1초를 쓰더라도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에겐 신도 만든 보람을 못 느낄 거다. 린은 길가에 핀 꽃을 보고 감탄할 줄 아는, 일상을 즐길 줄 아는 친구다.

: 얼마 전에 우울한 날이었는데, 운전하다가 언니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들었다. 전화로 청취자와 대화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친언니처럼 청취자에게 이야길 해주는데, 이런 사람 아니면 누가 DJ를 하지 싶더라. 진정한 소통을 한 거지. 그때 언니가 가진 에너지가, 말이 내게 해준 응원의 메시지 같아서 무척 좋았다. 언니가 내 이름 불러주는 것이 참 좋다. 언니의 많은 재능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린이 자신의 노래 두 곡을 불렀다. 「실화」와 「사랑했잖아」. 간간이 가사를 잊어먹고는 이를 애교로 넘기는 린의 모습에 관객들은 “귀엽다”를 연발하며 박수를 쳤다. 노래 두 곡을 마치고 다음 일정 때문에 린은 자리를 옮겼다.




린은 정말 사랑스러운 스타일이다.

사실 내가 친해질 수 없는 스타일인데, 10년을 만났는데 한결 같다. 몇 년 동안 내가 어려운 일을 되게 많이 겪었는데, 린의 웃음을 왜 지나치고 살았지, 싶은 생각이 들더라. 소소하고 예쁜 일상을 잘 즐기는 친구다. 나도 오늘 린이 하는 걸 보고 애교를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일동, 귀여워요~)

린이 라디오를 듣다가 힐링 됐다고 했다. 책 번역하면서 뭐가 어려웠나?

번역을 했지만 저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책이 나오고 쇼케이스를 하는데, 홍진경이 묻더라. 언니가 번역자잖아, 번역자가 이렇게 판을 크게 벌려도 돼? 저자가 알고 있어? 생각해보니 그렇기도 하더라(웃음). 5만 부가 팔려도 가와카미를 만나게 될지는 미지수다(웃음). 번역하다보니 내 호흡을 넣게 되더라. 그게 좀 미안하긴 했다. 윤문 작업하면서 두 가지를 병행했다. ‘한국 독자에게 어떻게 하면 편하게 다가갈까’와 ‘원작자의 기본 틀을 해치면 안 돼’. 그게 좀 까다롭더라.

요즘 중국어도 배운다고 들었다.

중국어는 내게 맞지 않는 것 같다. 4개월째 하고 있는데, 맞질 않아서 그만하고 스페인어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홍진경의 말을 빌자면, 내가 11개 국어 정도 배우다가 죽을 것 같다고 하더라. 마지막은 티벳어나 몽골어로 하면 어떨까(웃음)?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어땠나?

알다시피 내가 휘몰아치는 폭풍우도 맞았다가, 위기의 감성을 느꼈다가 넘어갔는데, 일상에서 우울한 뭔가가 확 덮치더라. 그러면서 느꼈던 게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것이었다. 내게 관심을 꺼달라고 하다가도 정작 관심이 꺼지면 못 사는 것이 연예인이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와 평범한 일상이 적응이 안 되는 거지. 거칠고 험난해도 그게 낫다. 그런 순간에 이 책을 만났다.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 본 지난 3개월, 번역이라는 힘든 과제를 떠안은 기간이었음에도, 나는 삶이 고단하지 않았다. 그토록 사랑하는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도, 강하고 힘차게 긍정적으로 밝고 명랑하게 살아내면서도, 때때로 나는 사는 게 참 고단했었건만,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 나는 웃고 있었다.”(p.13)
일본어를 한 것은 스무 살부터다.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정도였는데, 사실 에세이 번역이라서 망설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문학작품이라 행간의 의미도 파악해야 해서 걱정하고 겁을 냈다. 그래도 도전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시 뭔가 붙잡을 것이 필요했다. 펼치면서 번역하다보니 만만치가 않더라. 나중에 알았는데, 작가가 철학을 전공했더라. 이 사람이 우리가 쓰는 일본어를 안 쓴다. 1920년대의 언어와 에도시대 문법을 쓴다(웃음). 내가 말을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번역은 또 다른 장르라는 것을 알았다. 번역은 결코 만만하지 않더라. 번역하는 분들에게 무릎 꿇고 싶더라. 이번 번역을 하면서 내가 한국말을 잘 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국어사전을 더 많이 봤다.




번역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일본 동북부 3.11 지진을 언급한 부분을 번역하면서 내 깜냥으로는 이 아픔과 슬픔을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더라. 액면 그대로만 전달하는 그냥 블랑카가 되는 거야(웃음). 속상해서 울었다. 한계에 부딪혀서. 그때 하루키 소설의 번역자인 김남주 선생의 인터뷰 기사를 우연히 접했다. “하루키 소설을 번역하면서 떠나지 않는 굵직한 문장이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김남주 선생은 “하루키의 문학을 사랑한다”는 답을 하더라. 문장이 안 풀리면 하루 종일 곱씹는다고 하면서. 그걸 보고 깨달았다. 내가 번역이 아닌 독해를 하고 있었구나. 이게 번역과 독해의 차이구나. 나는 저자와 친해질 생각을 못했구나. 그때부터 원고를 놓고 다 덮고 책을 다시 천천히 읽었다. 전작도 읽고. 의역이라고 한 것도 흉내를 냈던 거였다.

“무수히 많은 슬픔 중에는 언젠가 잊어버리게 될 것도 있겠고, 어떻게 해봐도 절대 잊지 못할 것도 있을 것이고, 그 슬픔의 맥락이라는 것도 날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변할 수도 있는 것이고, 변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p.274~275)
많은 고민을 하면서 냈는데도, 청취자와 대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 책이 참 재밌더라. 역주가 인상적이더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저자와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듯 역주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일본이 쓰나미로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일본 국민가수의 공연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떻게 역주를 달까 고민하다가 노사연의 만남 같은 것이라고 다가가고 싶었다. 일본에선 유명해도 우리가 모르면 살갑게 다가올 수 없으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이라면서 역주를 붙였다. 또 가와카미가 방송을 하는 분이라 팬을 만나곤 하는데, 애매한 장소에서 팬을 만난 에피소드가 있다. 속옷과 관련한 에피소드인데, 점원들이 챙겨주잖나. 탈의실에 가서 전투적인 얼굴로 사이즈에 맞는 브래지어를 입는다. 오로지 한 가지 목적으로 탈의실에 함께 들어와서 점원이 계속 팬이라고 말하는데, 뭐라 리액션을 할 수 없어서 허공을 바라보며 ‘그러셨군요’하는 자질구레한 에피소드 인데, 저자가 굉장히 매력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소심하고 어떤 때는 발상이 독특하다. 그러면서도 참 따뜻하고 예쁜 사람이다. 그래서 얘기하듯 역주를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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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알려준 것들가와카미 미에코 저/정선희 역 | M&K
2008년에 『젖과 알』이 제138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팔방미인 가수 출신 작가’로 언론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았던 기와카미 미에코의 에세이집이다. 학교 내 왕따 문제를 통해 선과 악의 근원을 묻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 『헤븐』은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일본 최대 서점 기노쿠니야 직원들이 뽑는 2010년 최고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그는 이 작품으로 당대 최고의 여성 작가에게 수여하는 무라사키 시키부 문학상까지 거머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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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내가 마늘을 안 먹은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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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구 선수 출신이다. 공은 잘 던졌다. 지금도 시키면 잘할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하라고 하면 부끄럽고 힘들다. 여러분의 박수에 힘을 얻어 깊고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야구만큼 책 내는 것도 힘들었다며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겪었던 도전과 실패, 그리고 노력이 담겨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1997년 IMF 시절에는 박세리와 함께 ‘국민 영웅’으로 불리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으로,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도 세웠다.




바닥을 경험했기에 메이저리그 17년 기반이 됐다

박찬호가 야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 동호인 야구부에서 설득하여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한양대 2학년 재학 중에 메이저리그로 스카우트됐다. 17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올라간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나 17일 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와 2년을 보냈다.

“높은 벽 뒤에는 낭떠러지가 있음을 몰랐다. 언어 문제나 문화적 장애도 컸다. 피부색도, 말도 다른 사람들과의 생활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나를 자랑스러워 하고 항상 걱정하는 부모님 때문에 악착같이 노력했다. 그렇게 2년만에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바닥을 경험했기에 메이저리그 17년을 버틸 수 있었다.”


기록하는 습관은 나의 보물이다

박찬호는 경험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뒤돌아보는 습관을 자신의 ‘보물’이라고 불렀다. 힘겨웠던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경험과 느낀 것을 적었다. 그는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며 ‘강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젊은 시절엔 빠른 공을 강하게 던지고, 싸워서 이기는 게 강한 것이라 믿었다. 육체적인 힘을 써서라도 상대를 어렵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면적으로 지혜로운 게 진짜 강한 것이었다. 각기 다른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도 필요하다. 나는 도전과 시련을 대하는 방법을 안다. 참고 견디면 된다. 두려움이 있었다면 일본이나 한국에서 야구도 못했을 거다. 누가 뭐라 해도 나만 떳떳하면 된다는 걸 터득했다.”




스스로 변할 때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박찬호가 마이너리그 시절에 햄버거와 치즈만 먹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마늘 냄새에 불평하던 다른 선수들 때문에 택한 방법이었다. 그는 괴로움을 피하는 방법으로 괴로움을 택했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몸에서 나던 마늘 냄새가 사라졌다. 이후 그는 야구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박찬호를 변하게 했던 게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려심’이 박찬호를 변하게 했다.

“내 앞에서 킁킁대며 피하던 사람들이 너무 미웠다. 한국 음식을 아예 끊고 살았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그들은 싫은 걸 표현한 것뿐이었다. 나만의 집착임을 깨닫고 일단 영어부터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미워하는 마음도 모두 사라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상대의 마음을 변하게 할 순 없다. 그런데 내가 먼저 변하면 상대도 자연적으로 변한다. 그게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박찬호는 어린 시절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담력을 길러야 투수를 잘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였다. 밤에 혼자 공동묘지에 가기도 했다. 성공하기 위해 ‘술, 담배, 여자’는 가까이하지도 않았다.

“이상한 짓을 많이 하니까 부모님은 항상 걱정이 컸다. 목표가 뚜렷했기에 신념과 의지도 강했다. 친구들이 봤을 땐 짜증 날 정도로 집념이 강했다. 집에 갈 땐 걷는 시간이 아까워 오리걸음으로 걸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계단을 뛰어다녔다. 한 마디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상한 짓을 한다는 건 창의력이 있는 거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했다. 강한 자는 스스로를 바꾸면서 상대도 바꾼다. 그렇게 주위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메이저리그 역시 새로운 것을 해보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힘들었던 텍사스 시절이 큰 밑거름이 됐다

박찬호는 텍사스 시절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특히 한국 사람들과 기자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의 슬럼프 시기는 배신감과 죄책감, 수치심으로 가득했다. 진통제와 불면증 약을 달고 살던 때였다.

“야구장에 가기 싫었다. 나는 스타였고 높은 산에 올라가 있었다. 내려가는 게 너무 두려웠다. 이겨도 집에 가면 다시 불안했다.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속은 거지였다. 패배나 실수에 대한 생각이 너무 컸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터졌다. 심리학 박사를 초대해서 치료를 받았다. 명상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내가 울고 있더라. 처음 본 모습이었다. 저놈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 착각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진정으로 응원하던 사람들은 그때 묵묵히 나를 기다려줬다.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다. 큰일 날 뻔했다.”

그는 한때 감독을 피해 다녔던 경험도 고백했다. 마이너리그로 보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치료와 명상을 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날부턴 매일 감독 방에 먼저 찾아갔다. 눈도 안 마주치던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도 건넸다. 그렇게 수일이 지나자 통증이 신기하게 사라졌다. 그때가 2005년이다. 성적이 좋아져서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됐고 12승을 달성했던 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수치심을 느낀다면 착각이다. 상대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배려해 보자. 싸워서 이기려고 하면 상대는 더 나쁜 사람이 된다. 웃고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면 상대는 변한다. 개는 작을수록 더 크게 짖는다. 반면 큰 개는 잘 짖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조용한 사람이 떠드는 사람보다 강하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고 더 낮추는 사람이어야 한다. 강한 자는 그렇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박찬호의 이야기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예정된 시간이 지났지만 질문지를 고르는 그의 손길이 신중했다. 어린이 한 명 한 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계획에 없던 사인회도 흔쾌히 응했다. 다음은 그가 고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다.





20대로 돌아간다면 다시 야구를 하고 싶은가?

20대 때는 운동만 했다. 성공하려고 술, 담배, 여자도 멀리했다. 하지만 술, 담배, 여자를 멀리한다고 성공하지는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내겠다는 의지력이 성공의 비결이다.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격은?

참을 줄 아는 것이 아닐까. 한 번 참으면 자신도, 주변도, 가족도 편해진다. 한 발 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화를 보면 어떤 심정인가?

안타깝다. 일 년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후배들과 많이 정들었다. 한국 야구 선수의 어려움도 많이 경험했다. 후배들에게 연락이 오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너나 잘해.’ 네 안을 들여다보라는 뜻이다. 지고 이기는 건 모두 외적이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외적인 것에 집중하면 더 힘들다. 투수의 목표는 타자를 잡는 게 아니다. 투수는 정확하게 던지는 게 목표다. 타자가 어떻게 반응한 것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투수의 행위는 여러 가지 공을 던지는 예술이다. 한화는 너무 많이 졌으니, 이기려 하지 말고 지려 하라고 한다. 이럴 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길 바란다. 내가 이루어낸 승리의 3할은 그랬다. 던지는 것에만 집중했더니 이기더라. 한화는 지금이 기회다. 최악의 순간을 경험할 때 반전할 수 있으니까. 그게 빨리 왔으면 좋겠다.

박찬호 선수에게 사랑이란?

힘겨웠던 텍사스 시절,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느낀 것 같다. 그때 책을 많이 읽었다. 훌륭한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더라. 자신의 것만 정진하고 수행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거다. 사랑이란 내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방법이기도 하다.

수염을 기르는 이유?

사실 깎기 귀찮아서 기르기 시작했다. 근데 꽤 괜찮게 자라더라. 수염에 관한 징크스도 생겼다. 깎고서 이기면 계속 깎다가, 기르고 이기면 한동안 또 계속 기른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경기가 있다면?

메이저리그에선 124승째 경기를 꼽겠다. 그 승리는 동료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꼴찌였던 피츠버그에서 젊은 선수들의 멘토 격으로 나를 데려갔다. 선수들은 늘 나에게 질문을 했다. 팀의 1승이 절실했다. 마지막 124승은 선발 투수가 아니라 구원투수로 달성했다. 선발이 4이닝까지 잘 던졌다. 1이닝만 던지면 승리투수인데 그걸 나에게 넘겼다. 당시에 팔이 너무 아팠는데 그 해의 어느 공보다 잘 나갔다. 간절했다. 간절하면 자신을 백 퍼센트 믿게 된다. 야구 경력 전체에선 한화 소속으로 뛰었던 마지막 경기가 그렇다. 은퇴 경기라는 걸 나만 알고 아무도 몰랐다. 잘하고 싶었고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늘 아쉽다.

30여 년간 한길을 걸어온 박찬호. 그가 걸어온 길엔 신념과 꿈이 있었다. 그는 하나를 할 수 있는 용기와 다짐이 있으면 두 개, 세 개는 문제 없다고 말한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창의성과 집념으로 오늘날의 그가 되었다. 박찬호는 앞으로 사회를 위해 살고 싶다고 한다.

“책 출간과 더불어 미술 전시회도 진행 중이다. 야구 클리닉, 어린이 수술 프로그램도 함께하고 있다. 현장에서 야구만 했던 때에는 불가능했지만, 이제 가능한 건 도전하고 싶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또 할 거다.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확인하고 싶다. 그게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도전하면 성숙하고 강해진다. 더불어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에게 먼저 집중해야 한다.”




화려한 은퇴식은 없었지만, 마운드엔 61번이 깊이 새겨졌다. 야구 선수가 아닌 불혹을 맞은 한 남자로 돌아온 박찬호. 그는 ‘인생’이라는 마운드 위에서도 실패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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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박찬호 저 |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은 박찬호가 중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일기장과 스마트폰에 남겨온 생각, 신념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왜 야구를 해야 하는지,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끝은 무엇이고 시작이란 무엇인지……. 야구선수 전에 한 인간으로, 인생의 커다란 굴곡을 경험한 첫 번째 메이저리거는 지난 시절의 눈물, 인내, 내려놓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말한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떠나야 할 때가 온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하나가 끝나야, 또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고. 그래도 당신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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